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기대에 찬 그 눈빛

글/ 산둥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4월 23일] 온갖 시련을 겪고 사부를 따라 정법하며 오늘까지 왔다. 현재 중생구도는 나의 유일한 숙원이다. 비록 미혹 중에서 수련하지만 한가지 만은 굳게 믿는다. 중생을 위해서 왔다.

2010년 어느 날 법공부 하는데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셨다. ‘나가라, 사회에서 다녀라.’

그때부터 나는 길고 고생스러운 법을 실증하는 길에 올랐다. 길에서 세인을 마주보며 진상을 알렸고 그렇게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 8년 여정에 나는 얼마나 많은 곤두박질을 쳤고, 마난을 겪었으며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매번 스승님의 보호 하에 넘어왔다. 이 길고 힘든 8년간 법을 실증하는 수련의 길을 오늘까지 견지하며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스승님의 그 홍대한 자비와 위대한 불법이 나의 마음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중생이 당신을 기다리는 눈빛이다. 중생은 무엇 때문에 왔고, 무엇을 기다리며 생생세세 윤회 환생했는가, 바로 오늘 이 시각을 기다린 것이다.

법공부를 하는데 스승님의 한마디 설법이 나의 마음을 진동시켰다. “반드시 노력하고 반드시 잘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당신들이 원하는 것은 일체를 원만 하려는 것이며, 당신은 책임이 있고, 당신은 중생을 구도하는 사명과 책임을 갖고 왔기 때문이다.” (『북미순회설법』)

그때부터 이 말은 수련의 길에서 부단히 정진하도록 나를 격려했다. 당시 이 말의 내포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책임’ 이 두 글자는 나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졌다.

2001년 어느 날, 고물을 줍는 한 젊은이가 내 앞으로 다가와 “저 좀 도와주세요”라고 애원했다. 나는 깜짝 놀라 주머니를 만져봤다. ‘돈도 없는데 어떻게 당신을 돕지?’ 나는 총각의 기대에 찬 갈망하는 눈빛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어떻게 당신을 도와야 하는지 알겠다!’ 나는 격동되어 그에게 대법을 알려주고 진상을 말했다. 그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고, 얼굴에 어렸던 수심이 사라졌으며, 눈에서는 분명 빛이 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그날부터 나는 자신이 짊어진 사명과 책임을 안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길을 걸으며 길옆에 서있는 사람, 길을 가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하고 웃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기대하는 눈빛에서 나는 보았다. 그 눈빛은 분명히 “저를 구해주세요, 저를 구해주세요” 라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중생의 다급한 눈빛을 본 나는 자신을 잊었고, 두려움을 잊었으며 주위의 일체를 잊었고 ‘대법은 당신을 구할 수 있다’라는 일념만 남았다.

진상을 듣고 난 중생의 찬란한 웃음 속에서, 그들의 만족하는 눈빛에서 나는 알았다 ‘파룬따파는 좋다, 쩐싼런은 좋다’가 그들 마음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 하루하루가 지나고, 한 해 또 한 해가 지났으며 날씨가 춥든 덥든 아무것도 나를 막지 못했고, 나는 이렇게 걸으며 진상하고 있다. 중생의 구원 받은 눈빛을 본 나는 위안을 느꼈고 스승의 자비로운 고도(苦度)를 체험할 수 있었다. 매번 진상을 주동적으로 하지 않았을 때, 집에 오면 중생의 그 애원하는 눈빛이 내 앞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왜 나를 구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따지는 것 같았다.

하루는 길을 가는데 한 경찰이 여자 아이를 데리고 슈퍼 문 앞에 서 있었다. 내가 지나가자 경찰은 고개를 들고 나를 봤다. 사람의 관념이 진정한 염두를 막았으며 나는 그에게 인사하지 않았고 그를 구해야겠다는 염원도 없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허전하고 괴로웠다. 몇 발자국 가지 못해 나는 그 경찰을 돌아보았다. 마침 그도 뒤돌아서 나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고통과 절망이 가득했다. 집에 돌아와 중생의 슬픈 눈빛을 생각하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고, 마음은 말 못할 뼈를 깎는 아픔을 느꼈다. 그것이 어찌 나의 아픔이겠는가, 그것은 분명 중생의 아픔이다. 천만 년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다. 대법제자가 그의 곁으로 지나가다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의 사람 관념으로 인해 중생을 절망하게 했다. 나는 정말 스승을 볼 면목이 없다. 안으로 찾으며 자신에게 물었다. “왜 그를 구하지 않았나? 무슨 사람 마음이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가로 막았을까? 지금도 나를 뒤돌아보던 그 경찰과 여자 아이가 눈앞에 선하다. 매번 이와 같은 마음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고 나면, 스승님이 생각나고 대법이 생각나며 중생의 기대하는 눈빛이 생각난다. 어서 법공부하고 안으로 찾으며 정념을 세워서 다시는 중생이 이 만고의 기연(機緣)을 놓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염두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 힘은 무엇으로도 막아낼 수 없으며 무너뜨릴 수 없다. 다시 길에 나서 정념이 충족하여 중생을 구도하니 장애가 되던 물질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나의 씬씽(心性)은 바로 이렇게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승화하고 있다. 대법도 내가 중생을 구도하는 수련 중에서 수시로 대법의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드러냈다.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에서 나의 심신은 늘 그런 자비한 에너지에 쌓여 가지(加持) 되며, 진상을 할수록 더 하고 싶고, 구도할수록 더 하고 싶게 한다. 할수록 심신이 더욱 순정해지고 정념도 더욱 충족해 진다.

사악한 당의 언론 선전 독해를 받아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말하자마자 중생의 눈빛에는 놀라움과 기피하는 기색이 보인다. 이때 나는 웃으면서 그의 눈을 마주보며 한편으로는 진상을 하며 한편으로는 강대한 ‘멸(滅)’을 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생의 눈빛은 놀라움에서 감격으로 변하는데, 더 말하지 않아도 나는 또 하나의 생명이 구원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념이 부족하고 마음이 불안할 때는 중생 앞에서 말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이때 중생의 그 갈망하는 눈빛, 그 기대하는 눈빛을 보면 금방 용기를 내어 말할 수 있다. 한번은 사람들 앞에서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때 몇 사람이 고개를 내게로 돌려 구원을 바라는 눈빛으로 함께 바라보았다. 그들 중 한 남자가 나에게 웃으며 걸어와 물었다. “우리에게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나는 태연하게 그의 말을 받아서 그들에게 진상을 했다. 또 한 무리 사람이 구도됐다.

하루는 길을 가는데 차를 기다리던 남자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진상을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그 남자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 눈빛에는 흥분이 가득 차서 마치 오래 헤어졌던 친지를 보는듯 했다. 그 격동된 눈빛은 분명히 “나를 구해줄 사람이 왔다. 나는 구원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남자는 진상을 듣고 나서 나의 손을 잡고 격동되어, 베이징에서 출장 나왔다며 그 해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 발생 당시 그는 현장에 있었다고 말했다. 헤어질 무렵 그 남자는 꼭 내 이름을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하길 희망했다.

그날 길을 가는데 길 왼쪽에 중년 부녀가 서 있었다. 나는 그녀 앞으로 가지 않았다. 반시간쯤 지나 돌아올 때 그 여인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녀가 내가 구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다가가서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내가 진상을 다하고 몸을 돌리는 순간, 나는 그 여자의 눈에 눈물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 그녀는 나를 감격스럽게 바라보며 “당신도 평안하세요”라고 진심을 보였다. 고개를 돌린 나는 눈물이 나왔다. 구원 받은 중생은 얼마나 기뻐하는가, 그 인사는 구원받은 중생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대법제자에 대한 진심 어린 축복이다. 그때마다 나는 마음의 위안을 받으며 사람을 구하는 고생과 힘겨움이 깨끗히 씻긴다.

얼마 전 진상할 때 50세 정도 되는 한 남자를 만났는데 뇌혈전 상태를 보이며 다리를 잘 쓰지 못해 길을 힘겹게 걷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서 그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렸다. 나는 웃으면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라고 한번 해보세요”라고 말했다. 그 남자는 가까스로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면서 ‘따파는 좋습니다’라고 했다. 그 순간 남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남자는 울면서 두손을 합장(合十)하고 “따파는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중생의 그 격동된 눈물은 한 생명이 생생세세 윤회의 고통스러운 기다림 속에서, 끝내 본성이 일깨워져 대법을 고마워하는 눈물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중생이 다급히 구원을 기다리는 장면을 나는 거의 매일 목격한다. 90세에 가까운 노부부가 지팡이를 잡고 서로 부축하며 길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길가의 중생은 당신이 지나가려는 것을 보고 구원 받을 기회를 놓칠세라 큰 걸음으로 달려와 당신의 앞으로 온다. 당신이 길 오른쪽에서 가면 왼쪽의 중생이 재빨리 길을 건너와 당신이 지나갈 길 앞에서 기다린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당신 앞에서 내려 자전거를 밀고 걸어간다. 길가에 서있던 택시 기사는 당신이 걸어오면 스스로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어 당신이 구해주기를 기다린다.

이런 사례는 아주 많다. 매일 진상할 때 대법의 자비가 중생 몸에서 체현된다. 그런 감동적인 장면을 본 나는 길을 걸으면서 자주 눈물을 쏟는다. 또 스승의 설법 “중생들은 모두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모두 무엇 때문에 여기에서 살고 있는가? 바로 이 몇 년을 기다리고 있다!” (『각지설법4』「2003년 애틀란타법회 설법」)라는 말이 늘 떠오른다.

중생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아남기를 갈망하고, 대법제자에게 기대를 건다는 느낌을 나는 분명히 받았다. 매일 진상을 마치고 나는 스승님의 홍대한 자비와 중생을 걱정하는 마음에 감사드린다. 매번 중생이 구원 받고 기뻐하는 것을 보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말이 있다. 스승님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구원 받은 중생을 대신해 스승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 마음과 집착이 있을 때, 자신의 책임이 생각나면 마음속으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정념이 나온다. 집착은 내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진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집착이 다 사라진다. 어떤 수련생은 늘 말한다. 나는 요즘 상태가 좋지 않다. 집에서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정되면 다시 나가서 사람을 구하겠다. 동수여, 당신의 그 좋지 못한 상태는 아마 당신이 중생을 제1위에 놓지 않아, 책임을 다하지 못해서 조성됐을 것이다. 현재는 사람을 많이 구하는 것만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사명이자 책임이다. 이런 동수에게 진심으로 한마디 하고자 한다. 걸어 나와라, 두려운 마음, 모든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정정당당하게 중생을 구도하라.

정진해라 동수들이여, 정법 시간은 끝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많은 중생을 구도하지 못했다. 중생은 길가에서, 거리에서 기대에 찬 눈길로 그를 구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 나도 포함해 수련생이 진정하게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고 서로 협조하여 정체를 형성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여 사전서약을 완성하며, 스승님의 자비로운 구도를 저버리지 말고, 중생이 우리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말기를 바란다. 자비하고 위대하신 스승께서 조금 더 기뻐하시고, 조금 덜 고생하시게 하자.

스승님께 감사드리고, 구원 받은 중생이 나에게 준 위안과 기쁨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나의 과실로 아직도 대법의 구도를 받지 못한 중생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나는 반드시 다그쳐 정진하며 세인을 많이 구도해 중생을 실망시키지 않겠다.

밍후이망 한 구석을 빌려 이 체험을 대륙 동수께 보낸다. 아직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대법의 구도를 받지 못한 중생의 조급한 기대와 초조한 기다림을 알아주고, 서둘러 정진하여 세인을 많이 구도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바란다!

문장완성: 2010년 4월 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10/4/23/222017.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