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닝샤(寧夏) 대법제자 스위안(史緣)
[밍후이왕 2010년 4월 18일] 밍후이왕 2010년 4월 7일 ‘선량한 경찰의 특별한 보살핌’ 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나에게 주는 감수가 깊었다. 글에서는 션윈 얼후 연주가 메이쉬안 수련생이 박해를 당할 때, 전에 일부 선량한 경찰의 동정과 도움을 받은 일을 적었다. 나도 이와 같은 경험이 아주 많다. 나는 전에 닝샤 몇 개 감옥에서 2천여 일의 밤낮을 보내면서 지속적인 박해를 당했다. 많은 경찰의 선과 악을 경험했으며 뿐 아니라 더욱 많은 범죄자들의 선과 악(여기서 말하는 선과 악은 대법제자에 대한 태도임)을 경험했다.
내가 장기적인 박해를 당하면서 2001년은 박해가 한층 상승된 전환점이다. 닝샤 ‘610’(파룬궁을 박해하는 전문기구)은 소위 ‘전향’지표를 완성하기 위해 있는 힘껏 계획을 짰다. 그들은 닝샤 경내의 모든 불법으로 판결 당한 남자 대법제자를 전부 인촨(銀川)감옥의 허둥(河東) 벽돌공장에 집결시키고 혹형과 노예노동을 감행하는 이중적인 박해를 했다. 여기서 나는 악경과 범죄자들로부터 혹형, 구타 등 극히 악독한 박해를 당했다. 그들은 나를 전향시키는 목적을 성사시키지 못하자 나를 감금실에 가두고 박해했다.
여기서 한 끼는 만두 절반, 물 반 컵이며 하루에 두 끼만 준다. 뿐 아니라 그곳은 특별히 추워서 나는 기아와 추위를 동시에 겪었다. 나를 감시한 범죄자 중에 류(劉)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 나는 그에게 대법진상을 알렸고 그는 늘 기회를 엿보아 나에게 만두 한 덩이를 건네주고 뜨거운 물 한 컵을 부어주었다. 내가 다 마시기 바쁘게 컵을 가져갔으며 다른 사람이 볼까봐 두려워했다. 나는 몇 차례 감금실에 감금됐고 매번 그의 한결같은 보살핌을 받았다. 내가 연공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소리 하지 않았고 일러바치지도 않았다. 마(馬)씨 성을 가진 범죄자는 내가 추워서 덜덜 떠는 것을 보고 그와 관계가 좋은 경찰을 찾아가 사정하고 관례를 타파하고 나에게 옷 한 벌을 가져다주었다. 그도 나에게 몰래 먹을 것을 주었고 나를 도와 기타 동수에게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사악은 섣불리 기아와 추위로 나의 의지를 무너뜨리려고 했으나 그들의 선한 보살핌과 소리 없는 도움 하에 나는 사악을 와해시킬 수 있었다.
겨울이 되어 우리 동수들은 서로 볼 수 없는 감옥에 갇혔다. 사람마다 한 무리 범죄자들이 지키고 섰다. 범죄자 중에 치(齊)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나에게 라디오를 가져다주었다. 매일 밤마다 나는 자유아시아방송(RFA), 미국의 소리(VOA) 등 채널의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도와 기타 동수에게 경서를 전해주었다. 한번은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어 감금실에 갇혔고 그는 나온 후 편하게 담소를 나누었고 아무런 원한도 없었다.
허둥 벽돌공장에서 박해를 가장 심하게 당한 이는 왕위주(王玉柱)이며 가장 확고한 이도 왕위주이다. 범죄자들도 모두 그에 대하여 탄복했고 그에게 왕철인(王鐵人)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한번은 그들이 한 범죄자 갑을 시켜 나를 감시하게 했다. 나는 갑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는 알고 있다고 했으며 자신은 대법제자에 대해 탄복한다고 말했다. 한번은 가족들이 음료수를 들여보냈는데 범죄자 갑은 우선 일부를 왕위주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는 “연공하고 싶으면 연공하세요, 제가 지켜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와 함께 벽돌공장에 납치된 수련생이 있었다. 그는 혹형과 강도가 심한 노예노동에 시달리기 힘들어 악인이 소집한 비판대회에서 마음을 어기고 악인에게 순종해 글을 읽었다. 그런 후 그는 가벼운 노동을 할 수 있었다. 하루는 이 수련생이 벽돌 가마 문어귀에 글을 쓰게 되었는데 범죄자 갑이 그를 돕게 배치됐다. 밀차에 틀을 세워놓고 그 위에 서서 글을 써야 했다. 4∼50개 가마에 모두 써야 했다. 이 수련생은 오르고 내리기 힘드니 범죄자 갑에게 밀차를 밀라고 했다. 범죄자 갑이 말했다. “만일 왕위주였다면 나는 도울 수 있다. 당신은 뭔가? 파룬궁의 변절자다. 당신 같은 사람이 나에게 당신을 끌고 다니라고? 어림도 없다.” 그의 말은 이 수련생의 뇌리를 강하게 때렸다. 이후에 나는 일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 수련생과 대화했고 그가 대법에 확고히 하고 성명을 발표해 전향을 폐기하기를 건의했다. 한 달쯤 지나서 이 수련생은 용감하게 ‘610’에 엄정성명을 제출했다.
그 당시 쳰완시(錢萬喜)라는 범죄자가 있었는데 닝샤 대학 졸업생이며 전에 교사였다. 6살 어린이를 강간해 6년 판결을 받았다. 그는 ‘610’을 도와 감옥 내에서 파룬궁을 박해하는 두목이 됐다. 발언하는 식으로 대법을 모함하든지 뒤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하든지 그는 늘 악경들도 생각해내지 못하는 못된 방법을 내놓아 악경들보다 더 나쁜 작용을 일으켰다. 범죄자 갑이 나에게 말했다. “저 놈은 6살 되는 어린이도 강간하는 짐승이죠. 길을 걸으면서도 사람을 해치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몇 번이고 저놈을 때려눕히려고 했으나 아직 감형 판결이 내려오지 않아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두고 보세요, 감형 판결이 아침에 도착하면 그날 밤을 넘기지 않고 꼭 저 놈을 다스릴 겁니다.” 2달 후 어느 날 밤 감옥에서 감형 명단을 선포했다. 그 속에 범죄자 갑도 있었다. 이튿날 복도에서 몇 달 동안 참아왔던 갑은 아무런 원인도 없이 쳰완시 앞에 다가가더니 한바탕 그를 패주었다. 쳰완시는 감히 맞받아치지도 못했고 아무 소리도 못냈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달아났다. 범죄자 갑은 자신이 쳰완시를 때린 것의 몇 곱절되는 구타를 감당할 준비도 했고 감금실에 갇힐 준비도 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사람이 이런 사람을 때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간이 부은 것이며 하물며 파룬궁을 위해서 한 행동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결과 쳰완시는 감히 보고하지 못했고 범죄자 갑은 기적같이 아무런 일이 없었다.
이 일은 범죄자들 속에서 큰 영향을 일으켰다. 기타 일부 ‘610’을 돕던 범죄자들도 꼬리를 많이 내렸다. 사실 일부 악한 범죄자들도 우리의 상태가 개변됨에 따라 변화하고 있었다. 물론 더욱 중요한 원인은 대법제자가 체현한 대선대인(大善大忍)과 높은 경지가 더 많은 사람들의 양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박해는 감옥 안에서 더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또 허젠중(何建忠)이라는 범죄자가 있었다. 여러 차례 왕위주를 혹독하게 구타했다. 듣자니 내가 인촨 감옥을 떠난지 얼마 안 되어 허젠중은 한 범죄자를 때려 죽여 총살당했다고 한다.
우리는 사악이 강요한 박해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일부 수련생은 장애를 타파하고 연공하기 시작했으며 악인들은 아주 두려워했다. 그들이 감금실 등 수단을 채용했으나 동수들은 여전히 연공을 견지했다. 나중에 범죄자들도 연공하는 것을 교란하지 못했다. 단지 실제 상황대로 기록할 뿐이었다. 모모는 몇 시 몇 분에 서서 연공했고 몇 시 몇 분에 앉아서 연공했다 이렇게 적어서 쳰완시에게 주었다. 닝샤 ‘610’은 집중해 박해해도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자 새로운 박해를 전개했다. 연공을 견지한 대법제자를 각각 가장 공포적인 닝샤 인촨 몇 개 감옥 감시 구역에 보냈고 인원을 배치해 박해 방법을 전수했다.
내가 아직 인촨 북쪽 감시구역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우선 회의를 가졌다. 말하기를 파룬궁이 우리 감시구역으로 온단다, 나에 대한 말을 테러리스트에 대한 것보다 더 무섭게 했다. 모든 사람은 나와 말을 못하게 했으며(그러나 욕하게는 했다) 나와 거래하지 못하게 했다.(그러나 나의 일체 활동을 감시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보고해 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어기면 벌을 준다고 했다. 내가 이곳으로 갔을 때 느낌은 마치 벌집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일거일동 심지어 하나의 눈길마저 한바탕 모욕당했고 욕을 먹었다. 사악들은 박해의 목적에 도달하려고 원한을 부추겼고 공포 속에서 원한 속에서 학대를 맛보는 절망 속에서 그들과 타협하기를 바랐다.
사존님께서 나에게 쩐싼런(眞善忍) 대법을 전수하여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나로 하여금 매 세포마다, 심지어 더욱 미세한 입자까지 모두 초상적인 에너지로 충만 되게 하였으며 이번의 박해에서 넘어지지 않게 됐다. 넘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는 다른 사람을 개변시킬 수 있었다. 나는 대법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며 이 마당은 일체 바르지 못한 상태를 바로 잡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이득을 얻게 할 수 있었다.
나는 인촨 등 감옥의 각종 박해를 경험하고 다른 사람의 흉악함을 기본적으로 두려워하지 않았고 어떤 때는 자비로운 마음까지 생겼으며 그들이 가련했다. 그들이 나를 구타하면 나는 그들을 정시했고 비굴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욕하고 더러운 말을 해도 한번, 열번, 백번 이라도 나는 모두 관용으로 대했다. 그들에게 어조는 선하게 예의 바르게 대했다. 열번, 백번, 천번 시간이 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예의로 대했고 소수의 흉악한 사람도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상을 알렸다. 나는 평소 말이 적으나 진상을 알려야 할 때는 아랑곳없이 했다. 감옥 경찰, 범죄자에 대해 나는 그의 접수능력에 따라 지혜롭게 알렸고 하나하나 진상을 알려 나감에 따라 더욱 많은 사람들이 대법에 경의를 표했다.
내가 인촨감옥에서 공개적으로 연공해 인촨 북쪽 감옥에 납치됐다. 나는 여기에서도 계속적으로 연공을 견지했다. 처음에는 감금실에 갇혔고 범죄자들에게 나를 구타하게 했다. 내가 진정으로 계속적으로 연공을 견지하자 더이상 사람들의 교란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박해는 반복적이었고 일정 시간이 지나서 한 감옥 경찰은 내가 연공하는 것을 보고 범죄자를 시켜 나를 구타하게 했다. 그 범죄자는 경찰의 말을 듣지 않았다. 또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그 감옥 경찰은 내가 연공하는 것을 다른 범죄자를 시켜 구타하게 했다. 그 범죄자는 몇 차례 교란했으나 그 후로는 관여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왜 때리지 않는가 물었다. “다른 사람이 당신과 다 잘 지내고 있는데 내가 당신을 때리면 다른 사람은 나에게 원망을 하게 될 것이다.” 몇 년간 감옥 경찰은 수없이 바뀌었고 당직 범죄자도 얼마나 바뀌었는지 모른다. 내가 있게 될 감옥도 여러 번 바뀌었다. 나의 연공은 감옥을 나오기까지 줄곧 견지됐다. 사람들은 내가 연공하는 것을 정상으로 여겼고 어떤 사람은 몰래 나를 따라 배웠다.
한 범죄자는 나에 대한 태도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이후에는 좋게 변했다. 듣기로 다른 감옥에 있는 수련생이 나를 위해 신경문 축소판을 준비했다고 했다. 곧바로 그 범죄자가 그 감옥으로 갈 일이 있었는데 나는 그에게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 신경문은 내가 감옥을 나올 때까지 지닐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은 불면증이 있다고 말했다. 십몇 년이 되며 치료가 안 되고 아주 고통스럽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성심으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짠싼런은 좋습니다(法輪大法好, 眞善忍好)’를 염하도록 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그는 기쁜 마음으로 나를 찾아서 말했다. “이 아홉 글자를 염했는데 밤에 잠을 아주 달게 잤습니다. 십 몇 년래 처음으로 불면증이 사라졌습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한 달 후 그는 또 기쁜 마음으로 나를 찾아서 말했다. 늘 이 아홉 글자를 외웠는데 잠도 잘 잤고 한 달 동안에 체중이 몇kg 불었다고 했다. 나는 이 아홉 글자를 여러 사람에게 알려주었고 피드백이 아주 좋았다. 어떤 사람은 담배를 끊을 수 있었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병이 나아졌다고 했다. 나는 『홍음』의 일부 시를 일부 사람에게 가르쳤다. 며칠 지나서 물어보았더니 그들은 아주 익숙히 기억하고 있었다.
감옥은 줄곧 범죄자들의 급식비를 덜어내 범죄자들은 원한이 가득했다. 한번은 감옥에서 이례적으로 범죄자들을 소집해 믿을 만한 사람을 선발하라고 했다. 그에게 권리를 주어 그가 감옥의 급식을 감독하게 하려 했다. 급식에 관한 계산과 관리를 맡기려는 것이었다. 이 소식에 모두 격동됐고 앞으로 급식에 희망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주요한 것은 누구를 선택하는 가였다. 먼저 서너 명, 칠팔 명씩 소조 모임을 갖고 나중에 일치하게 투표하기로 했다. 결과 나에게 그들을 대표해 급식을 관리하도록 했다. 회의를 소집한 감옥 경찰은 즉시 얼굴색이 변했다. “안 된다, 파룬궁은 선거할 수 없다. 다시 선거하라.” 이에 사람들은 다시 선거하려 하지 않았고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우리에게 믿을 만한 사람을 선거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파룬궁은 우리가 믿을 수 있습니다. 다시 다른 사람을 선거하면 자신은 잘 먹고 다른 사람은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급식을 관리하는 사람을 선거하는데 왜 안 됩니까?” 평소 감옥 경찰들은 항상 명령식으로 말하기에 수감자들은 대꾸조차 못했다. 그런데 오늘 어쩌다 이런 규칙이 좀 깨지려 하니 참을 수 없어 했다. 그런데 화를 내려해도 꼬투리를 잡지 못하겠고, 그렇다고 화를 내지 않으려니 회의장 분위기가 이상해서 매우 난감한 상황이었다. 범죄자들은 또 투덜댔다.
내가 출옥하기 전날 밤 나의 감방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와 작별인사를 나누었고 나는 재차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할 것을 부탁했다. 감옥경찰은 이러한 사람은 출옥해도 집에 돌아갈 수 없다고 소문을 퍼뜨렸고 많은 사람은 이에 분노했다. 내가 집에 돌아가면 꼭 그들에게 편지를 쓸 것을 희망했다. 나는 무사히 집에 돌아왔고 바빠서 편지 쓰는 일을 잊었다. 얼마 안 되어 범죄자들에게서 편지가 왔다. 내가 집에 돌아갔는지 물었고 그들은 아주 근심하고 있었다. 모두 어찌됐는지 수소문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아주 감동했다. 회답편지에 나는 무사히 집에 돌아왔고 마음 놓으라고 했으며 여러분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출옥 후 몇 년간 나는 일부 악경이 대법제자를 박해한 것을 폭로하는 글을 써서 밍후이왕에 발표했다. 그러나 선량한 범죄자들이 나에 대한 도움은 쓰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 나날들을 기억 속에서 더듬어갈 때 그 선량한 얼굴들은 늘 눈앞에 역력했고 그렇게 잊을 수 없었다.
동수와 교류하면서 여러분은 중공사당이 조종한 사악한 범죄자는 심지어 많은 악경보다 더 잔인하고 흉악하며 악독하다고 말했다. 악경은 퇴근할 시간이나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으나 범죄자는 오히려 그림자같이 따라다니고 빈틈이 없어 뚫고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다. 나쁜 방법은 끝없이 많았고 음험하고 악독했다. 많은 수련생은 모두 악독한 범죄자에 구타당해 사망했다. 이와 동시에 확실히 일부 양심이 아직 있어 정과 사를 분명히 하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범죄자들도 있다. 그들은 대법제자를 보호하고 도와주었다. 대법제자가 감옥에서 경서를 읽을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이 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지니고 들어온 것이다. 대법제자가 감옥에서 박해당한 소식은 또 그들이 전해 나간 것이다. 대법제자가 생활에서 곤란한 것도 그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대법제자가 마난을 이겨나갈 때도 늘 그들이 뒤에서 도움을 주었다. 한 컵의 물, 밥 한 끼, 옷 한 벌, 한 장의 화장지, 한마디 안위의 말, 선의가 비친 눈길…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밍후이의 한 모퉁이에 서서 대법제자를 도와주었던 범죄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싶다. 내가 여기건대 밍후이의 글은 미래에 남기는 것이다. 그러할진대 미래의 사람에게 이 시기의 역사를 전면적으로 이해하게 해야 한다. 사실 선량한 범죄자에게 감사하다고 말함은 세인에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진정으로 그들이 구도될 때 대법제자가 그들에게 구도될 기회를 준 것에 대한 감사는 영원히 다 하지 못할 것이다.
표면에서 볼 때 대법제자는 피동에 처하고 감금당하고 박해를 당하고 있다. 만일 더 깊은 면에서 볼 때 쩐싼런 최고 우주 진지를 장악한 대법제자는 어디에 가든지(감옥을 포함) 모두 큰 연극의 주인공들이다. 오직 정념을 확고히 하면 곧 환경을 개변할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 나는 감옥에서 여러 차례 한 가지 현상을 경험했다. 자신의 사람마음이 중할 때 사악은 더욱 창궐했고 자신의 정념이 충족할 때면 사악은 두려워했다. 나는 전에 감옥 경찰이 나의 뒤에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대법제자에 대해 아주 탄복한다고. 우리는 감옥에서 박해를 당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박해가 필경 발생했다. 많은 수련생은 그 단락의 간고한 길을 지나왔다. 그럼 감옥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대법제자의 휘황함을 남겨야 한다.
이상은 개인의 옅은 체득이며 부당한 곳은 동수들이 자비롭게 지적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4월 18일
문장분류: 정법수련 > 수련경과 > 언행으로 대법을 실증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10/4/18/2217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