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2010년 3월 21일】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신지 십 몇 년이 되었고, 구세력이 대법을 박해한지도 십여 년이 되었는데, 우리가 오늘까지 걸어온 것도 정말 쉽지 않았다. 이 십 년 중, 매개 진수하는 대법제자마다 모두 고난을 감당 하였다. 지금 사악한 요소가 적어져 1999년 ‘7.20’ 때처럼 그렇지는 않지만 압력이 적어짐에 따라 많은 대법제자들이 예전처럼 그렇게 정진하지 않고 있다.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상대적으로 환경이 느슨하다보니 게으른 마음도 따라서 생겨나, 연공도 부지런히 하지 않고 책도 적게 보며, 자신의 책임감도 그다지 중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최근에 어떤 곳의 박해가 또 다시 가중되고 있는데 예전 몇 년 동안 박해받은 적이 없던 동수마저 소란받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우리의 태만이 이미 엄중한 후과를 빚어냈다는 것을 설명한다.
수련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처럼 전진하지 않으면 곧 후퇴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번 정법은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가 아니라 구세력이 정법을 한다는 빌미로 난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구세력, 사악한 난귀가 확실히 적어졌다. 하지만 수량의 감소가 우리가 해이해 지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더 잘한다면 그 사악은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청리되어 버릴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그렇다면 만약 매 한사람의 수련생들이 모두 이 한 점을 할 수 있을 때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동시에 발정념하는 그 5분에 사악은 삼계(三界)내에 더 이상 영원히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바로 이처럼 중요하다.”(《미국 풀로리다 법회설법》)어떠한 때라도 우리는 모두 해이해 질 수 없으며, 느슨한 환경이 속인마음을 자양하는 온상이 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전반 사람의 수련 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이다.”(《转法轮》)닦을 수(修)는 바로 사람마음을 버리는 과정이다. 사람마음이 적으면 초상적인 사람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데 몸과 사유방식을 포함하여서이다. 오로지 이래야만 진상을 알려 중생을 더 잘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동수의 수련 상태는 특히 나쁘다. 해야 할 자질구레한 일이 끝이 없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삐 돌아다니면서 심신이 피곤한데 무엇 때문인지 알지 못한다. 수련인이라면 반드시 정념 정행해야 하는데 당신이 마음을 법에 두지 않고 자신의 정욕, 집착에 끌리어 자신을 찾지 못하고, 자신은 대법제자라는 것도 모르고 있다. 이러한 마음을 구세력이 보아냈으니 그것이 일을 만들어 당신을 아래로 끌어갈 것이 아닌가? 이런 속인의 일을 당신더러 하라한다 해도 당신이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려하고 마음만 순정하다면 모든 속인의 일은 모두 당신에게 길을 비켜줄 것이다.
수련은 우주 중에서 가장 큰 일이다. 만약 마음만 바르다면 일체는 모두 정법을 위해 길을 비켜 줄 것이다. 당신이 밥을 해 먹더라도 대법제자의 일을 생각하고, 잠을 자면서도 여전히 발정념을 생각한다면 사악이 아직도 당신에게 난잡한 일을 배치해 주겠는가? 만약 속인의 욕망에 집착한다면 사악은 당신더러 바쁘게 할 것이고, 만약 수련인의 모습이 없다면 그것은 당신을 박해할 것이다. 우리 집착하는 것을 버려 버리자.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신 수련의 길은 우리의 세계를 귀정하는 과정이다. 오직 시시각각 정념이 법에 있어야만 비로소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을 수 있으며, 정법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또 있는데 감옥에 있는 동수들이 정념정행하는 문제이다. 감옥은 검은 소굴로서 사악한 난귀가 가장 많이 집중돼 있는 곳이고, 또한 정념의 작용을 발휘하기 가장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사부님께서는 매개 대법제자마다 모두 천룡팔부(天龙八部) 호법을 지녔다고 말씀하셨다. 아울러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법신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신통공능도 제일 많고 제일 좋은 것이다. 그런데 왜 아직도 사악한 감옥에서 박해를 받고 있는가? 관건은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데 있다. 확실히 어떤 사람은 생사 일념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바로 그가 박해받아 죽을 임박이 되었을 때에도 이를 악물고 사람의 견강함으로 소극적인 감당을 하고 있을 뿐 사부님과 법을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감옥에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감옥에서 박해를 받아 거의 죽게 되었다. 그 며칠 동안 나는 정신이 맑을 때마다 생각한 것이라면 내가 아직도 죽지 않았구나 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제 막 죽게 되었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법을 생각하게 되었고, 나는 그제야 아직도 수많은 세인들이 내가 가서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음으로 나는 살아서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일념이 나가자 사악은 사흘 만에 나를 집에 보내 주었다. 바로 이렇게 간단하였다. 대법제자의 이 일념이 결정적인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동수 당신은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럼 왜 ‘법’으로 법을 실증하지 못하는가? 그건 당신의 강렬한 사람 관념이 당신의 바른 믿음(正信)을 가로 막은 것이다. 당신은 당신에게 신통이 없다고 여기는데, 다시 말해서 당신은 여전히 당신을 사람으로 여겼지 수련의 길에서 걸어가는 신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유기 중의 당승이 천하(天河)를 건너 서천에 이를 때까지 앉은 그 배는 밑창이 없는 것이었는데 그건 사람마음이 밑창이 없다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부처에 대한 확고한 믿음 하나로 단숨에 배에 뛰어 올랐다. 그는 수련인이다. 만약 손오공이라면 그는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박해로 거의 죽게 되었을 때 당신은 당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가? 당신이 침대위에서 맞을 때, 당신이 감히 반항하지 않는다 해서 당신을 때리지 않겠는가? 당신이 움직일 수 없을 때 당신은 사부님을 생각했는가? 당신은 사부님께 구원을 빌었는가? 당신이 공능을 운용하면 박해를 제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면, 당신의 마음에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만약 당신들이 사람마다 모두 내심에서 法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위력이 끝없는 法의 체현 ― 인간세상에서 강대한 佛法의 재현(再現)이다!“!”(《정진요지》〈경언〉)
나는 감옥에서 신통을 써 봤다. 당시 신통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않았고 두려움이 없었으며, 과시심이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으나 그저 공능을 운용하여 사악을 제압하겠다는 일념뿐이었으며, 사악이 어떻게 하면 그도 어떻게 하려는 것 뿐이었다. 나는 대법제자이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나를 관계하심으로 나는 너 구세력의 관계에 속하지 않으며 나는 너희들과 한 동아리가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转法轮》에서 공능을 말씀 하셨을 뿐만 아니라 단독으로 공능이란 법을 말씀 하셨다. 인식하지 못했다면 바로 당신의 집착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고, 당신의 많은 집착심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며, 그것들이 당신더러 두렵게 하였으며 그것들 역량이 당신의 대뇌를 공제한 것인데 당신은 아직도 당신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오직 신사신법 해야만 비로소 청성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문장발표 : 2010년 3월 2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10/3/21/22016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