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3월 6일】 우리는 ’96년에 기쁘게도 법을 얻었다. 홍대한 우주 대법의 은혜에 푹 빠져서, 위대하고 자비하신 사부님의 보살핌 속에서, 우리는 비바람 속에서도 13년을 걸어왔다. 온몸에 업력이 가득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무지한 속인으로부터 환골탈태(换骨脱胎)한 대법제자가 되었고, 정법시기의 대법도가 되었다. 사존님의 구도와 가르침에 감사드리며 십 몇 년 동안의 수련심득을 사부님께 회보하고, 동수들과 함께 서로 격려하고자 한다.
’96년 5월 우리 시에서는 사부님 설법 학습반에 참가하였던 몇몇 동수들이 홍법하기 시작하였고, 얼마 안 되어 많은 사람들이 잇따라 대법 속으로 들어왔다. 초기의 열 몇 사람에서 백여 명에 이르렀고, 아주 빨리 도시에서 농촌으로 발전하였으며, 나중에는 몇 천 명으로 많아졌다. 연공장이 도시와 시골 구석구석에까지 널리 펴져감에 따라 법공부 팀도 생겨나게 되었다. 우리 집에도 법공부팀이 생겼는데 수가 부단히 증가하여 처음의 4, 5명으로부터 20여명으로 발전하였으며, 그 중에는 노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보통 학력이 낮고 기억력이 차했지만 법공부 열정만은 아주 높았다.
단체 법공부를 통하여 모두가 대법을 감성적으로 인식하던 데로부터 이성적으로 인식하게끔 제고되었는데 적지 않은 법리를 알게 되었고, 진·선·인을 수련하는 길에서 끊임없이 제고하였으며,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는 길에서 끊임없이 정진하였다.
‘7.20’ 이후 사당(邪黨)의 하늘땅을 뒤덮을 듯한 탄압 하에서 법공부팀은 한때 핍박으로 중단되었다. 이때 대다수 수련생은 사당의 거짓말에 미혹되지 않고 확고히 사부님을 믿으면서 홀로 법공부를 견지하였으며 동요하지 않고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였는데 이 모두는 다 이 몇 년간의 단체 법공부 결과였다. 어떤 수련생은 성정부(省政府)에 가서 청원하였고, 어떤 수련생은 북경 천안문에 가서 사부님과 대법의 결백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였는데, 그 중의 어떤 사람은 사악(邪惡)에게 납치당하여 현지로 돌려보내졌고, 어떤 사람은 집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것을 견지하였고, 또 소수 사람은 두려워하였으며, 개별적인 사람은 말법시기의 종교에 입문하기도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대노출〉이란 문장에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속인사회의 형세를 개변하여 사회여론과 분위기가 반대로 된 형세 하에서, 누가 여전히 大法이 좋다고 하는가를 보고 누구의 심태(心態)가 변화하는가를 본다면, 단번에 남김없이 다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이때 우리는 단체 법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하였다. 팀에서 《轉法輪》과 사부님의 각 시기의 설법을 반복적으로 읽었는데 우리로 하여금 정법형세와 대법제자의 사명을 더 분명히 알게 하였고, 지금은 이미 개인적인 층차를 제고해야함은 물론이고 더 주요하게는 조사정법하여 중생구도하는 것임을 알게 하였다.
동수 갑은 70이 다 되었고 공부를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법공부팀에 하루도 빠짐없이 참가하여 한 글자 한 마디씩 따라 배웠다. 집에 돌아가서는 남편과 자식한테서 배워 반년이 되지 않아 한 단락 한 단락씩 혼자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그녀는 사부님 설법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밍후이주간》과 각종 대법자료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각고의 노력으로 법공부하고 연공하였기 때문에 사부님은 그녀의 신체를 정화시켜 주셨는데 지금 그녀의 신체는 희고도 깨끗한 것이 마치 50대 사람 같아 보인다. 심성제고도 아주 빠르고 성격도 많이 좋아져 가족들은 그녀의 거대한 변화를 보았고 모두 대법의 신기함을 느끼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13명의 식구 모두가 대법의 대오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한때는 미담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동수 을은 법을 얻기 전에 요독증(尿毒症)이 있어 병원에서 사형판결을 받았었다. 한 동안의 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요독증이 다 없어졌고 그녀는 대법수련에 대한 신심이 더더욱 확고해졌다. 2005년 그녀가 여러 명의 동수들과 함께 시골에 가서 진상자료 배포한 일이 모함 당하여 악경(惡警)이 그녀를 구치소에 억류하고 박해하였지만 그녀는 정념으로 나오게 되었다. 나온 이후 더 확고히 수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집에다 법공부팀을 세웠다. 2009년 ‘610’은 또 한 번 그녀의 집에 뛰어들었으나 그녀는 위협에 직면하여 정념을 발하고, 악경에게 선을 권하면서 나쁜 일을 적게 해야 하고 선악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것은 하늘의 이치라고 알려주는 한편, 며느리가 빠져나가게 하여 제때에 동수들에게 통지함으로서 한 차례 박해를 피하게 하였다.
동수 병은 70이 다 되었어도 마음속에는 시종 법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면 나는 어떻게 한다는 원칙에 따라 법공부하고 심성을 닦았으며, 세 가지 일을 열심히 하였다. 대열에서 떨어져 나간 수련생을 되돌아오도록 권유하기 위해,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녀는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여러 차례 동수들을 방문하였는데, 어떤 때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도 낙심하지 않았다. 마음속에 순수한 정념을 품고 사악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바, 네 번이나 잡힌 적이 있어도 나온 후에는 변함없이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고 세 가지 일을 하였다.
동수 정은 퇴직 전에는 기관의 간부였는데, 두려운 마음이 중한데다 당문화의 독해가 너무 심하여 한때 감히 수련하지 못하였다. 팀의 동수들은 깔보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서 참을성 있게 도와주어 끝내는 마음속 매듭을 풀고 수련의 길로 다시 돌아오게 하였다. 그는 주동적으로 대법자료를 얻어다 송달해 주는 임무를 맡았고, 아울러 아내(동수)와 함께 가정 자료점을 꾸렸다.
동수 사는 소수민족인데 진상을 말하고 3퇴를 권하는 일을 아주 잘한다. 사업상의 편리함을 이용하여 주동적으로 진상을 알려주어 일 년 사이에 수백 명을 탈퇴시켰는바, 우리 팀에서 3퇴 권유 인원수가 제일 많은 분이다.
동수 경, 신, 이 두 수련생은 비교적 일찍 법을 얻었는데 줄곧 묵묵히 소리 없이 그 지방의 자료점에 기술과 소모품 등을 제공한다. 그녀들은 사악의 박해가 엄중한 형세 하에서 각종 압력을 무릅쓰고 사면팔방에서 도움을 바라는 수련생을 위해 기술, 소모품, 자료 등 각종 문제를 해결해 주고 각 방면에서 나타난 모순을 해결해주었다. 그녀들의 정신은 우리를 감동케 한다.
동수임은 수년 이래로 줄곧 십여 명의 밍후이 문장과 자료 송달을 책임지고 있다. 자료점이 ‘큰 규모에서 작은 규모로 변하는’ 단계에서, 종래로 컴퓨터를 만져보지 못한 상황 하에서, 자신이 정말로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무(無)에서부터 일체의 기술을 배웠으며, 자료점을 독자적으로 운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심성을 수련하였고, 몇 년래 뛰어다니며 자료를 송달하던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녀의 도움으로 법공부팀의 노인 부부도 독립적으로 ‘활짝 핀 작은 꽃’을 운영하게 되었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자료점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정말로 많은 사람마음을 찾아내게 되었고, 그 가운데서 제자들의 심성제고를 위해 사부님께서 각종 기회를 이용하여 제자를 도와 고비를 넘게 하는 고심한 안배를 더더욱 느끼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모두 “표준화‘ 된 네티즌이 되었고, 진정으로 만 떨기 꽃 중의 한 떨기 작은 꽃이 되었다.
오직 마음속에 법을 담았다면 사부님 가지가 있을 것이며, 넘지 못할 고비가 없고, 배워내지 못할 것이 없다. 우리는 컴퓨터, 복사기, 인쇄기를 사다가 기술동수에게 가르쳐 달라고 했으며 재빨리 인터넷 접속, 다운로드, 복사, 인쇄기술을 배워서 동수들이 제때에 《밍후이주간》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또 여러 가지 진상자료를 제작하여 중생을 구도하는 일이 영향 받지 않도록 했으며 목표를 줄이고, 조작에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큰 규모를 축소하여 네 개의 작은 자료점을 세우고 두 세 사람이 한 대의 기계를 사용하였는데 민첩하고도 기동적이었으며 곳곳에 핀 꽃 중의 아름다운 작은 한 떨기 꽃이 되게 했다. 유력하게 사악을 놀라 떨게 했으며 중생을 구도하는 가운데서 거대한 작용을 발휘하였다.
2005년 현지 사악의 박해가 악화되어 형세가 엄중하였는데, 우리 시의 몇 개 큰 자료점이 잇따라 파괴되었고 자료점 수련생이 붙잡혀 한동안 자료의 공급이 끊어졌다. 중생을 구도하는 이 관건적 시각에 우리는 사악에게 겁먹고 넘어질 수는 없었으며, 더는 소극적으로 기다리고, 의지하고, 바랄 수만은 없었다. 자료점에서 장기적으로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을 위해 생각해야했고, 곳곳에 피어난 꽃 중의 한 떨기가 되어야 했다. 우리는 곤란 앞에서 겁먹고 넘어지지 않았으며, 돈이 없으면 여러 사람이 모았고, 기술을 모르면 처음부터 배웠다. 어떤 수련생은 말하기를, 돈이란 오로지 대법에 쓰일 때만이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체현할 수 있다고 했다.
2006년 우리 시에 몇 명의 사오(邪悟)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일찍이 보도소 책임자였는데, 노교소에 잡혀가 일 년 남짓 박해받고 나온 후 정법노정을 따라가지 못하였고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주게 되어 사오하게 되었는데, 자기는 다른 사람보다 높으며 원만했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우리팀에서는 그를 포기하지 않고 여러 차례 집에 청하여 교류, 토론하면서 그를 도와 잘못된 곳을 찾아주었으며 일 년간의 사부님 설법을 보내 주어 그로 하여금 마음속 매듭을 풀게 하였고 드디어 자신의 잘못을 알게 하여 다시 대법수련으로 되돌아오게 하였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는 전진하지 않으면 밀려 내려가기 마련이다. 팀의 한 수련생은 ‘7.20’이전에 법을 얻었는데 사악의 탄압 속에서 수련을 느슨히 하여 어쩌다 책을 보기는 해도 어떻게 수련하는지를 몰랐고, 정력을 장사에 쏟아 큰돈을 벌었다. 몇 년 사이 돈은 많이 벌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이것이 수련과는 상관없다고 여기고 점차 자신을 속인 속에 떨어지게 하였다. 한번은 사부님의 《방할하노라》를 보고나서 깜짝 놀라 깨어났으며 수련의 길로 돌아와 사부님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그녀는 목마른 사람이 물마시듯 법공부하기 시작하였고, 낮이고 밤이고 없이 법공부팀에 와서 법공부 하였으며 집에 돌아가서는 밥 먹고 자는 것 이외에는 하루 종일 법공부하였는데 사부님의 각 시기의 설법을 계통적으로 학습하여 뒤떨어졌던 ‘과목‘을 보충하였다. 세 가지 일을 잘하기 위하여 스스로 한 세트의 설비를 사서 인터넷에 접속하고, 진상자료, 《9평》과 진상지폐를 만들어 밤이나 낮이나 나가서 자료를 배포하고 3퇴를 권했다. 동시에 가난한 시골의 자료점을 도와서 그 곳의 대법사업이 정상적으로 전개되게 하였다.
팀의 동수들에게서 우리는 빛나는 점을 보았고, 그 중에서 부족한 점도 찾았는데 안에서 찾으면서 수련 중에서 정체적인 제고를 가져왔다. 13년 동안의 수련노정을 회고해 보면, 우리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속에서, 단체 법공부의 환경 속에서 정진실수하면서 많고 많은 사람마음을 닦아버렸고, 수련의 길에서 성숙되었다. 사부님의 구도의 은혜에 더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제자들은 절대로 사부님 고도에 어긋나지 않고 용맹정진하여 부끄럽지 않은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겠습니다.
문장발표 : 2010년 3월 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10/3/6/2193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