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3월 7일】내가 갑 동수에게 부족한 점을 제출했더니 갑 수련생은 접수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남을 지적하기 좋아하며 자아에 집착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나는 아들(동수)과 이 일을 언급하였는데 어투에 아주 불평이 많았다. 갑 동수에게 말을 못하게 하는 결함이 아주 크다고 여겼고, 나는 그녀를 위해 말해주었는데 어찌 반대로 자아를 집착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래 그녀의 부족을 보고도 지적해주지 말아야 집착하지 않는 걸로 된단 말인가? 그건 동수에게 책임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아들은 묵묵히 내가 하는 말을 다 듣고 나서 담담하게 한 마디 하였다. “어머니,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만약 어머니께서 정말로 오직 그녀를 좋게 하기 위해서였다면 어머닌 화가 나지 않을 거예요.”
이 말은 단번에 창호지를 뚫듯 내 머릿속이 대번에 환해지게 했다. 나는 놀랐다. 그렇다.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낼까? 나는 이 문제를 가지고 서둘러 안에서 찾아보았다. 내가 화를 낸 것은 갑수련생이 ‘나’를 인정하지 않고 ’나’를 억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란 것을 발견하였다. 갑 수련생은 나에게 자아에 집착한다고 했는데 틀렸는가?
이때, 아들은 이미 컴퓨터 앞에 앉아서 그가 해야 할 일을 바쁘게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고 그가 이미 그의 일 속에 파묻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마치 방금했던 말을 아주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갑 동수와 반나절이나 논쟁을 하고서 불복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불쾌해 하였으니, 경지의 높고 낮음이 일목요연(一目了然)하였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교류하면서 정체로 제고하기를 요구하셨는데, 나는 사부님의 요구대로 한 것이다. 나는 아들을 방해하기 싫었다. “자아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데, 그럼 동수의 부족을 보고도 말하지 말아야 할까?”
아들은 내 곁에 와 앉으면서 그렇듯 온화한 어투로 말하는 것이었다. “제가 어머니께 예 하나를 말씀 드리죠. 저와 한 사무실에 앉아 있는 동료에게 문제가 있으면 저는 그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하여 문제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들었어요. 그런 다음에 그의 매듭진 곳을 겨냥하여 한 걸음 한 걸음씩 관건적인 문제를 제출해 주어 그 자신더러 사고하게 하였더니 그는 곧 알게 되었어요.”
여기까지 듣고 난 나는 탄복되어 아들을 바라보면서 웃었다. 아들은 또 몸을 돌려 그의 일에 몰두 하러갔을 뿐, 자신의 모친에게 큰 문제 하나를 해결해 주었다 하여 정서상에 그 무슨 파동이 없었다. 만약 나였다면 진작부터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이다. 그런 환희심을 예전에 나는 조금도 감출 줄 몰랐고 억제하지도 못했는데, 동수의 제고를 위해 기뻐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 많이는 자아를 실증하고 자아를 실현했기 때문에 기뻐한 것일 것이다.
이 일은 이미 지나간 지 무척 오래 되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자아를 집착’하는 마음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표현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오늘 수련생이 쓴 《걸어 나오지 않는 것은 구세력이 배치한 길로 가는 것이다》란 글을 보고나서 이 일이 떠올랐기에 써내어 자신을 일깨우고 또한 동수도 일깨워 주고자 한다. 우리 몸에서 발생한 어떠한 일이든 모두 우리 자신에게 닦아버려야 할 요소가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수련인이든 속인이든 또한, 보건대 상대방이 어떻게 옳지 않아도 만약 우리가 정말로 착실하게 무조건적으로 안에서 찾는다면, 그리고 늘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에 집착하지 않고 늘 다른 사람의 부족만 눈 박아 보지 않는다면, 그럼 틀림없이 수련에서 깨달음이 있게 될 것이다.
이상은 개인 층차에서의 조그마한 체득으로서, 부족한 곳이 있다면 동수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허스 .
문장발표 : 2010년 3월 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10/3/7/2193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