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대법제자
【밍후이왕 2001년 2월 21일】저는 95년에 법을 얻은 노제자이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끊임없이 사람마음에서 걸어 나오고 사람의 관념에서 걸어 나와 사람의 집착을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마침 사부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전법륜』)매 한 걸음 전진할 때마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가호가 있어 수련의 길에서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구세력에게 교란을 당하지 않고 사람을 가두는 사람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음은 전부 법공부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법공부를 통해 구세력이 모든 대법제자가 입문해서 지금까지의 일체 크고 작은 일과 대법제자의 수련 중에서의 모든 정황의 교란을 배치했고 어디에나 할 것 없이 모두 틈을 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만약 법을 잘 배우지 못하면 법에 대해 인식이 부족하고 법리에 대해 똑똑히 알지 못함으로써 정념이 부족해지는 등으로 구세력의 교란, 박해, 모순 속, 사람들 속, 사람마음, 관념, 집착들에 부딪치면서 거기에 빠져 걸어 나오지 못한다. 심지어 끊임없이 교란 받아 수동적으로 소극적으로 어찌할 방법 없이 교란과 박해를 받게 된다. 사람마음에 제약되고 이끌리고 통제되어 내심으로 고뇌, 억눌림으로 인해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여 수련에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고생을 낙으로 하는 대법제자의 풍채가 없어진다. 더 나아가서는 막막함에 빠지는데 잇달아 대법에 대해 미혹과 오해가 생긴다.
수련의 길에서 나는 넘어지기도 하고 굽은 길도 걸었지만 현재는 이미 청성해졌다. 나는 법공부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고 어떻게 수련하여 기점을 바르게 놓아야 하는지를 알아냈고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 사명에 대해 청성하게 알아냈다. 가장 신나는 것은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면서 정념이 생기고 안을 향해 찾고, 법을 스승으로 모시고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다의 내포에 대해 인식이 깊어진 것이다. 아울러 실천 속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법제자는 완전히 정념에 의지하여 관을 넘어야 한다는 법리를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어 2009년 4월경, 나는 사업환경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진상을 알리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의 모함에 의해 불법으로 현지 구치소에 갇혔다가 정념으로 사악의 교란 박해에서 벗어난 적이 있다. 이 과정 중에서 나는 소극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처음에 사악들의 납치를 마주하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정념으로 제지해야 함을 잊었다. 그리하여 사람마음으로 다투다가 아주 빨리 자신의 심태를 조절했고 마음 속으로 강대한 일념을 내보냈다. 정사대전이 시작되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매우 똑똑히 알았는데 왜냐하면 나의 마음 속에는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정법시기의 법리에 대해 매우 똑똑히 알고 있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자신에게는 책임과 사명이 있음을 잘 알고 어디에서든지 세가지 일을 잘 하여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어감으로써 구세력이 강제로 가한 어떠한 배치를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면서 일체는 사부님의 결정에 따르되 자신에게 누락이 있으면 법 속에서 바로 잡으려 했다. 아울러 강대한 일념을 더 내보내어 구세력이 고험을 구실로 중생을 해치지 못하게 하고 세인과 가족들이 나로 인해 대법에 부정적 영향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며 나로 인해 동수와 갓 걸어 나오거나 또 아직 걸어 나오지 못한 동수들에게 소침해지는 영향을 일으키지 못하게 했다. 나는 법 속에서 즉시 자신을 바로 잡으려고 했고 나는 정면적 작용을 일으키려고 했다.
나는 우선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았는데 서명하지 않고 일하지 않고 번호를 부르지 않고 죄수복을 입지 않았다. 단식하지 않았다. 대법제자는 정념에 의지하여 고비를 넘어야 하므로 정력을 집중하여 발정념하고 법을 외웠다. 그리하여 매일 모두 잠을 자지 않았다. 잠들면 발정념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법을 외우면서 거의 매 정각마다 반시간씩 발정념하고 반시간씩 법을 외웠다. 동시에 자신이 사람마음에 이끌리지 않으려고 되도록 자신더러 매 시각마다 일사일념을 법에 있게 했다.
이 기간에 나는 대법제자의 선의 힘을 체험하게 되었다. 구치소에 납치되는 길에서 나는 안을 향해 찾았고 선심도 나왔다. 나는 이 일체가 나의 부족으로 구세력이 이를 구실로 진상을 모르는 사람을 조종하고 파출소의 사람을 조종하여 대법에 대해 죄를 짓게 한 것임을 알고서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게 행하여 중생들까지 연루된 데 대해 후회했다. 마음 속의 쟁투와 불평은 단번에 사라졌다.
구치소에서 사악의 각 방면의 명령요구에 협조하지 않을 때 나는 모두 선념을 내보냈다. 내가 협조하지 않는 목적은 당신들로 하여금 대법에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죄수복을 입지 않는 데에 대해 경찰은 여러 차례 나를 찾아 얘기했고 나는 그녀에게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그녀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비록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의 선을 느꼈다. 그녀는 위에 정황을 보고하겠다고 말했고 나는 내가 오로지 남을 위한 것으로 다른 것은 더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곳곳마다 선념으로 그들을 대하여 개별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소장은 내가 죄수복을 입지 않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한 동안은 2, 3일에 한번씩 와서 검사하고 시간 맞춰 검사하면서 죄수복을 입지 않는 것에 대해 요구가 엄했다.
매 사람마다 종이 한 장씩 주면서 체험을 쓰라고 하자 나는 이를 이용하여 진상을 알렸다. 나는 대법이 중생을 구도하는 법이고 세계에서 널리 전해지는 정황, 대법제자는 왜 진상을 알려야 하며 왜 당신들더러 ‘파룬따파는 좋다’를 읽도록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왜냐하면 대법은 세인들로 하여금 미래로 진입하는 표준을 정해주었기 때문에 대법에 대한 일념이 미래를 정한다고 했다. 내가 협조하지 않음은 바로 당신들로 하여금 대법에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여 아름다운 미래가 있게 하기 위함이다. 나는 그들이 자신의 위치 등등을 잘 배치하기를 희망한다고 적었다. 그녀들은 글을 보고서 모두 잘 썼다고 말했고 매우 사람을 감동시킨다고 했다. 그녀들은 비록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법제자의 선을 감수했다.
이 속에는 또 한가지 일이 있었다. 한 젊은 경찰이 나에게 서명하라고 했다. 나는 협조하지 않았지만 쟁투심이 있었다. 그 결과 그의 부정적 요소를 건드려서 다른 한 죄수로 하여금 나의 발에 족쇄를 채우게 했다. 나는 사람마음으로 그와 쟁론했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나 정념으로 사악을 똑바로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쌍방의 눈빛은 서로 주시하고 대치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지 자신의 마음 속에 원한, 쟁투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어찌 정념이 나올 수 있겠는가? 나는 자신을 재빨리 조절하면서 먼저 자신의 부족한 점이 그가 대법에 대해 죄를 짓게 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대법에 죄를 짓지 못하게 해야 한다…
내가 미처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기적이 발생했다. 그가 연속 몇 걸음 뒤 걸음을 치더니 입으로 “나를 보지 마시오, 나를 보지 마시오.” 라고 했다. 이어서 웃었다. 나는 이것이 선의 힘이고 그의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해체했음을 알았다. 사후에 감옥에서 그는 대화기를 통해 나와 대화를 나눴는데 파룬궁의 정황을 물었다. 일문일답에서 나는 자신감이 가득했고 심태가 비교적 평화로웠다. 그에게 아주 긴 시간 진상을 알렸고 마당에 있던 다른 인원들은 모두 조용히 듣고 있었으며 내가 말을 잘했다고 했다. 나는 또 기회를 찾아 다른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7 명이 삼퇴를 했다.
이 기간에 나는 수련인으로서 몸이 어떠한 환경에 있든 지간에 모두 한 갈래 길을 걸어갈 수 있음을 체험했는데 바로 안을 향해 찾음이다. “공을 수련하는 길은 마음이 지름길”(『홍음』파룬따파) 자신을 즉시 찾아서 당신을 괴롭게 만드는 그 마음을 찾아 파내고 즉시 법에서 바로 잡았다.
이번 정사교전의 환경에서 나는 반드시 조건 없이 자신의 일사일념이 법 속에 있게 해야 함을 청성하게 인식했다. 먼저 가족, 친구의 연루와 그들의 나에 대한 감수를 내려놓았고 집안의 일체를 내려놓았다. 좋지 못한 염두가 떠오르기만 하면 즉시 제거했다. 그 후 안을 향하여 자신이 왜 사악에게 틈을 타게 되었는지를 찾았다. 이 기간에 나에게 어떠한 부족한 점을 바로 잡지 못했는지를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한무더기의 부족한 점이 나타났고 거의 모든 마음이 걸쳐져 있었다. 마음 속으로 단번에 부끄러워서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했다.
이어서 매일마다 사람마음을 건드리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손에 둘둘 만 종이가 쥐여져 있으면 나는 깜짝 놀랐다. 노동개조서라고 오인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철문소리, 쇠고랑의 쟁그랑거리는 소리 등등은 모두 나의 두려운 마음을 건드렸으며 폭로되면 그것을 제거했다. 위에서 검사원이 온 것을 보면 그들이 내가 죄수복을 입지 않은 것을 볼까 봐 두렵다는 마음이 튀어나왔다. 나는 즉시 자신을 바로 잡았는데 내가 바로 이 곳의 주역이고 일체는 대법제자를 에워싸고 돈다고 생각했다. 수시로 수감된 날짜를 체크하는 것은 마치 사악의 무슨 결정을 기다리고 그것을 묵인하는 것 같았다. 남들이 이 기간은 ‘엄하게 다스리니’ 인맥을 찾지 않고 돈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의논하면 또한 내가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정념이 충족한가를 고험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나는 자신을 끊임없이 단호히 했고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정념을 강화했다. 자신의 마음을 건드리기만 하면 즉시 바로 잡았다.
나는 또 만약 노동개조소에 가면 길에서 ‘파룬따파는 좋다’를 외칠까 아니면 ‘파룬따파는 좋다’란 노래를 부를까, 이번에 나는 사악을 어떻게 정념으로 대할 것인지를 알았으니 어떻게 협조하지 않을 것이고 사악과 어떻게 맞설 것이다 등등의 생각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불법으로 21일째 수감되던 날 나는 갑자기 명백해졌다. 나의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노교소의 존재를 승인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것은 줄곧 나의 사상을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나는 지금부터 그것을 해체할 것이고 사상 속에 남은 일체 바르지 못한 염두를 해체할 것이며 나의 공간마당에서 철저히 사라지게 할 것이다. 이 정념이 나오자 마음 속은 단번에 밝아졌다.
나는 자신에게 한가지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구치소에 불법으로 수감된 후 마음 속은 마치 어떤 것이 꽉 막고 있어 불안하고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감옥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파룬궁 사람들이 남다르다고 하면서 우는 사람도 안 보이고 단호한 의지가 있다고 여겼다. 이때의 나 자신의 표면의 웃음과 평화로움은 억지로 나온 것임을 알았다. 수련인은 고생을 낙으로 삼지 않는가? 어디를 가든지 마땅히 싱글벙글해야 하지 않는가, 왜 즐겁지 않는가? 어디에 또 문제가 존재하는가? 나는 사부님의 “속인의 마음을 내려놓고 법을 얻음이 곧 신이로다”(『홍음』 중생을 널리 제도)를 반복적으로 외웠다.
어떤 사람마음과 집착이 자신을 저애하고 있는가? 22일째 되던 날 나는 가슴이 탁 틔었다. 나는 자신의 매듭이 어디에 맺혔는지를 알았다. 바로 이 구치소이고 내가 마음 속으로 그것의 존재를 승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의 일체는 나를 제약하고 있었고 나의 마음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고달픔을 느끼게 했고 가족과 수련생을 떠나 그들과 함께하지 못하여 고달프고 인신자유를 느끼지 못하여 고달펐다. 나 또한 이런 감수가 사람의 욕구임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이 환경 속의 일체, 높은 담벽, 철문, 철조망, 수갑, 경찰, 먹고 쓰는 등등 모두 나의 마음을 건드리고 있었고 모두 나를 고달프게 만들었다. 나는 이 곳을 너무 의식하고 있었고 그것은 나를 이곳에 제약하고 있었다. 원래 이 일체는 모두 가상이고 나는 그것을 진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람마음을 겨냥한 가상인 것을 간파하고 그것을 즉시 해체하자 그것은 나에 대해 작용을 일으키지 못했다.
나의 마음이 여기서 벗어나자 마음 속에는 즐거움이 나왔다. 그 날 밤 나의 웃음소리는 분수처럼 터져 나왔는데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나의 웃음소리가 이렇게도 듣기 좋은가 하고 입을 모았다. 23일째 되는 날 아침 나는 구치소에서 걸어 나왔다. 그곳은 오로지 사람만 가둘 뿐 신을 가둘 수 없다. 나는 사부님의 법리를 직접 체험했다. “몸이 감옥에 갇혔다고 슬퍼하지 마라, 정념정행하면 법이 있거니, 조용히 생각해 보니 집착한 일 얼마이더냐,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 (『홍음2』 슬퍼하지 마라) 나는 이것이 사부님과 대법의 위력임을 똑똑히 알았다.
이 한 단락 경력을 돌이켜보니 아직도 수많은 문제를 그 당시에 인식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마음 속으로 그 ‘610’의 박해를 여전히 승인했었고 사악의 납치를 묵인했고 파출소에서 다시 구치소로 들어가고 후에 노교소에서의 박해 절차와 과정 등이었다. 사실 불법으로 납치되기 전에 만약 즉시 안을 향해 찾고 법으로 바로 잡았다면 이런 결과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두 차례의 기회가 있었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이 파출소에 가서 모함할 때, 있어 본 적 없었던 두려움을 갑자기 느꼈다. 다른 공간의 사악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만약 내가 즉시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의 늦게까지 제거하지 못한 쟁투심, 일하는 마음, 선하지 않은 마음이 그의 부정적 요소를 건드렸을 때 선념으로 그에게 대법에 죄를 짓지 말라고 알려주고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며 발정념으로 사악한 요소를 제거했다면 다른 한 정경일 것이었다. 만약 정념으로 납치하러 쳐들어온 경찰을 제지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 선념으로 그들에게 대법진상을 알리고 그들이 대법에 죄를 짓게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아마도 이러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깨끗한 마음으로 ‘파룬따파는 좋다’라고 외쳤다면 아마도 다른 결과였을 것이다. 나는 나의 체면을 중히 여기고 부끄러워하고 교양 있게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두 번째 기회는 파출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앞의 길이 어떠한지를 지금에야 그 일보를 걸어 나와 즉시 법 속에서 바로 잡으면 이 난은 없어질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 본래 이는 가상이었다. 일체는 모두 마음의 문제이고 일체 가상은 모두 사람마음이 연화해온 것이다.
사람마음이 있어 비로소 고달프고 사람마음이 있어 비로소 즐겁지 않다. 때문에 신은 사람마음이 전혀 없으며 아주 자유롭다. 일부 동수들이 매우 힘들고 지친 상태로 수련하는 것을 보면 수련인의 고생을 낙으로 하는 상태가 아님이 보여진다. 만약 정말로 법공부를 잘 하고 안을 향해 찾는다면 몸이 어떠한 환경, 어떠한 모순, 어떠한 일, 어떠한 고비 속에 있더라도 오로지 자신의 그 마음을 잘 파악하고 수련하여 사람마음을 제거하고 관념을 바꾸면 사람마음에서 매우 빨리 걸어 나오고 고비에서 걸어 나와 즐거운 수련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수많은 마난, 교란, 박해를 겪고서 오늘날 여전히 대법 속에서 수련할 수 있어서 자신이 너무나 행운이라고 느낀다. 앞으로 걸어갈수록 더욱 청성해지고 사부님의 자비와 법의 힘을 갈수록 느낄 수 있다. 수천만에 달하는 대법제자들이 법 속에서 바로 잡히고 개변되고 승화하는데 사부님의 가없는 은혜를 말로 형용할 길이 없다. 오로지 실제 행동으로 세가지 일을 잘함으로써 우리를 자비롭게 제도하고 계시는 사부님께 보답을 드려야 한다.
문장발표: 2010년 2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2/21/21855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