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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연령, 직업, 습관으로 형성된 집착

글 /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2월 15일】 매 수련자의 길은 서로 다르고 경과한 것이 아주 많다. 그 과정에서 성숙되는 과정은 말로 모두 표현할 수 없다. 나는 단지 개인의 성격, 연령, 직업, 습관과 수련의 관계와 어떻게 이러한 일을 대할 것인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수련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뜻을 선하게 이해할 줄 알았다. 친구들도 많았고 집안의 각종 관계를 모두 잘 처리했다. 자신이 좀 고생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했다. 항상 나의 주장만을 고집하지 않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고통을 느꼈고 마음은 평형되지 않았다. 바로 이런 고통이 자신을 내리 누르지 말기를 바라는 집착을 지니고 수련으로 걸어 들어왔다.

수련 후 나는 점차 그러한 ‘선(善)’은 모두 순정하지 못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당신을 나쁘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신이 꼭 정말로 나쁜 것은 아니며, 어떤 사람이 당신을 좋다고 해서 당신이 꼭 정말로 좋은 것도 아니다.”(《전법륜》) 수련 층차의 제고에 따라 ‘가짜 선(善)’의 배후에 은폐된 근본적인 집착인 명예를 구하는 마음을 보았다. 좋은 말을 들으려 하는 마음, 이 더러운 마음의 시킴에 따라 줄곧 주변의 평화로운 관계와 가정의 화목한 관계를 수호하려 했다. 바로 이러한 성격은 나로 하여금 수련의 길에서 아주 고생스럽고도 힘들게 걸어가게 했다. 시댁에는 나만 수련자였으므로 ‘7.20’ 이후 가정에서 크고 작은 마난이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 속에서 형성된, 자아가 강하지 못한 모습은 나의 수련의 벽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부님의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보호가 있었기에 마음속에서 수련을 놓지 않았다. 지금은 세 가지 일을 하는 가운데 두려운 마음이 점차 아주 약해졌다.

명예를 구하는 마음으로 양성된 주의식은 강하지 못했다. 이 문제는 오래 전에 인식했고 법리상에서도 아주 똑똑히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행동에서는 여전히 두려워하는 요소가 있었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동수의 글 ‘덮어 감추다’를 보고나서 나는 실마리를 찾았다. 명예를 구하는 마음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한번 또 한번 법으로 그것을 감쌌다. 그 더러운 마음에 외투를 걸쳐주었고 더욱 큰 집착을 형성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떠한 일이든지 습관이 양성되면 바로 물질이 생성된다. 다른 공간에 그런 물질이 있어서, 이 공간에서 비로소 이런 상태가 나타난다.”, “그러한 것들을 내가 당신들을 위해 모조리 떼어버릴 수 있으나, 양성된 습관은 당신들이 반드시 제거해야 하며, 반드시 제거해야 하고,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맨해튼 설법》) 나는 연속 몇 번이나 이 단락의 법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형성된 성격, 습관은 나의 공간마당에 존재하고 있는 부패된 물질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입으로 없어지라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오직 법공부를 많이 하고 착실히 수련하는 속에서, 그리고 공능을 사용하여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발정념시 자신의 공간을 청리할때마다 한 가지 생각을 더하여 주동적으로 이러한 부패된 물질을 깨끗이 제거하였다.

그 후 법공부도 마음에 들어오게 할 수 있었고 연공하고 발정념할 때 정신도 청성했다. 진상을 알릴 때도 두려운 마음이 점차 담담해져가는 것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고 마음은 평온해졌다. 이전에 발정념할 때는 손이 마치 부채질하는 것 같았다. 1분동안 몇 번이나 손이 넘어갔다. 어떤 때는 눈을 뜨고서도 무형의 힘이 손자세를 바꾸게 하는 것을 통제할 수 없었다. 정공을 연마할 때도 흐리멍덩해졌다. 언제 손의 자세를 바꾸고 결인했는지도 몰랐다. 이로 인해 한 단락 시간 동안 고뇌에 빠졌는데, 이는 바로 그 물질이 작용을 일으켰던 것이었다. 나는 정념이 끊임없이 강화됨에 따라 공간마당이 점차 밝아져감을 알게 되었다. 속담에도 ‘집에 도둑이 없으면, 바깥 귀신을 불러오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습관과 관념에 있어서 부동한 성격, 연령, 직업에 따라 모두 발견하기 힘든 습관이 있다. 예를 들면 당신의 성격은 사람 속에서 개성이 강하고 강자이며 표현은 자신을 중심으로 하여 높이 있어서 남을 업신여기며 다른 사람더러 말을 하지 못하게 하며 말하기만 하면 폭발한다. 수련중에 바로 그것에 부딪히게 되며 그것은 곧 뛰쳐나와 한바탕 표현된다. 실은 이것이 바로 그 가짜 당신이며 당신의 공간마당에 있는 바로 그 물질이며 그것의 반영이다. 당신이 그것을 똑똑히 인식하지 못하면 자신이라고 여기게 된다. 표현되는 것은 어떻게 수련하며, 어찌하여 늘 이 상태인가 하고 생각하게 하며 당신더러 의지가 강하지 못하게 한다. 실은 즉시 그것을 똑똑히 인식하지 못하고 그것을 깨끗이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당신이 젊은이라면 의상으로부터 머리 스타일 등에 있어서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당신은 여러 가지 영양크림으로 얼굴을 예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이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면 자신이 늙었다, 눈이 흐릿하다, 귀가 어둡다, 기억력이 떨어진다, 다리와 발이 아프다고 여기는 것이다. 당신이 의사, 간호사, 건강관리사라면 당신이 사람들과 말할 때 늘 어떻게 영양에 주의하고 어떻게 건강하게 하며, 어떻게 질병을 예방하고 병이 있으면 어떻게 치료하는가 등을 말한다. 자신도 이러한 이치로 가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이 요리사라면, 사람은 영양이 골고루 섭취되도록 식사해야 하며, 식사요법에 주의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러하다면 당신은 아직 속인의 관념이 자신에게 영향주고 있는 것을 똑똑히 인식하지 못한 것이며 관념에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며 사람의 관념에서 뛰쳐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수련 속에서 이러한 부패된 물질은 반면작용을 일으키게 되며 수련의 발걸음을 저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경고하는 말(警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사람의 상태를 개변하고 이성(理性) 상에서 대법(大法)에 대한 진정한 인식으로 승화하려 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곧 기회를 잃게 마련이다. 당신들이 속인의 그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개변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사람의 표면적인 이 한 층의 껍데기를 벗어버릴 수 없으며 원만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이 단락의 법에 대하여 나는 지금 또 한층 깊은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그러한 사람의 이치에서 뛰쳐나오지 못하면 무형 중에 사악한 마(魔)를 자양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물질로서 우리의 공간마당에 존재하며 그것은 우리의 정법을 저애하는 작용을 일으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집 도둑’은 또 바깥 귀신을 불러와 우리의 마난을 가강시킨다. 표현은 수련의 각 방면에 모두 있다. 우리의 의지를 소모시키며 또 많은 경우에 우리더러 의식하지 못하게 하며 무형의 박해를 형성하고 있다. 정법은 곧 표면에 이르고 있으며 우리는 정말로 뿌리를 캐내야 하며 진정으로 ‘사람은 세속 중에 있지만 생각은 그밖에 있는 사람으로서'(《각 지역 설법 5》〈2005년 맨해튼 국제법회 설법〉)를 해내야 한다.

나는 두 가지 체득이 있다. 하나는 나의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를 보면서 불성 아니면 마성이 표현되는 것이다. 마성을 발견할 때 나는 그것을 제거한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의 나의 태도에 대해 내가 내가 움직인 첫 일념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다. 만일 이것을 자신을 비춰보는 조요경(照妖鏡)으로 여길 수 있다면 거울 속에 비춰진 것이 어떠한 부패된 물체라도 무조건적으로 즉시 멸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때 잘 파악하지 못하여 이 거울을 다른 사람에게도 비춘다. 사실 그 순간에 바로 밖을 향하여 찾은 것으로 늘 먼저 다른 사람의 잘못부터 찾아내려 했다. 바로 낡은 우주에서의 사(私) ― 언제나 다른 사람을 개변하려는 이치 속에서 수련하였다. 다른 사람이 수련되면 당신은 어디로 갈 것인가? 바로 제고할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안을 향하여 찾는 이 방면의 법리에 대하여 사부님께서는 부동한 각도에서 아주 많이 많이 말씀하셨다. 모순이 왜 나에게서 발생했을까? 혹은 왜 나더러 보게 했는가? 사부님께서는 또 “상유심생”의 법리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셨다. 내 주위의 환경의 표현은 바로 나의 마음에서 촉성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자신이 ‘안을 향하여 찾는’ 것을 습관으로 형성하여 기제가 형성되도록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대법제자가 되었다. 수많은 낡은 우주의 신불(神佛)에게 모두 이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이 억만년 기다려 온 기연을 아껴야 하며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여 사부님께서 요구하는 것을 완성하며 우리가 각자 삼계로 내려올 때의 홍대한 맹세를 완성해야 한다.

이상은 나 개인의 작은 깨달음이며 부당한 곳은 동수들이 자비롭게 지적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10년 2월 1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 이성인식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10/2/15/2182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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