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1월8일】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과거 인류사회는 올바른 이치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은 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으며, 사람은 여태껏 모두 징벌이라는 수단으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리하여 이것이 사람의 이치가 되었다. 사람이 신(神)이 되고자 한다면 사람의 상태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럼 이런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며, 자비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009년 워싱턴 dc국제 법회 설법』
나는 체험하였다: 동수의 잘못에 대하여 조급해하며 화내고, 비평, 질책, 쟁론, 원망 하고, 멀리 하고, 배후에서 말하면서 퍼뜨리고, 심지어는 원한을 기억하고, 보답을 기억하는 등등은 모두 사람들 중에서의 선하지 못한 방법으로서 ‘징벌의 수단’ 이다. 이런 방법으로 문제를 처리한다면,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부면적인 요소를 건드리게 되는 것으로서 아주 쉽게 동수 사이의 간격을 조성한다. 이것은 동수의 제고에 좋은 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쉽게 사람 마음의 집착을 형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자비라고 할 수 있는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동수의 부족에 대 해 반드시 선의로 이해하고, 관용, 신임할 수 있으며, 과도하거나. 너무 높고 가혹하게 요구하지 말아야 하고, 열심히 구체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선의적으로 자신이 보아낸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이야기하며, 일종 평등한 태도로 상대와 교류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기회와 시간을 주어야 하고, 정념으로 수련생이 법공부와 수련 중에서 제고하게끔 가지하여 주어야 한다. 아마 이렇게 하는 것이 자비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에도 비록 수련인은 선을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 문제에서 속인의 관념을 근본적으로 개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늘 당면해서 한 조목씩 똑똑히 지적하지 않고, 명백하게 말하지 않거나, 심지어 세게 치지 않으면 상대방은 깨닫지 못하거나, 깨닫고, 제고됨이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줄곧 ‘징벌의 수단’을 채용하여 문제를 대하였다. 결국 모순이 나타났고, 인위적으로 불필요한 간극을 조성 하였다.
사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대함에 있어서 사람의 사유에서 걸어 나와야 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족한 면을 대함에서도 사람의 정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자책과 후회도 보건 대는 마치 괜찮은 것 같지만, 사실 이런 심리는 매우 쉽게 다른 하나의 집착을 형성하게 하는데, 이 집착도 자신이 가볍게 전진하는데 부담으로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집착하지 말고, 다만 법에 따라 하면서, 부단히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 가장 좋은 상태이다.
개인 층차에서의 약간의 체험이다. 부족한 곳에 대하여 동수들의 자비로운 시정이 있기를 희망한다.
문장완성: 2010년 1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10/1/8/2158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