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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내려놓아야만 자비가 있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2월 31일】 나는 과거 줄곧 동수들의 부족함을 보아내고 거리낌 없이 지적해 주는 것이 수련생을 도와 제고하게 하는 것으로 가장 자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를 절대화시켰다. 그러나 나의 이 방법은 동수들과 간극이 발생하게 했다. 부단히 법을 암송하고, 안을 향해 찾는 과정 중, 또 명혜에서 동수들의 수련체험 문장을 보는 와중에 나는 나의 이런 인식이 반드시 제고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1. 늘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면만 보는 것은 자비가 아니다

속인의 정은 누가 나에게 좋게 대하면 곧 기뻐하고, 누가 나를 잘 대해주지 않으면 곧 좋아하지 않는다. 혹은 누가 잘하여 내게 부합하면 나는 그를 좋아하고, 누가 잘하지 못 하고, 나에게 부합하지 않으면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난날 나는 속인과 마찬가지로 동수의 상태에 집착했고, 동수의 부족한 면에 집착했다. 그리하여 수련생이 개변되면 기뻐했고, 수련생이 나의 의견을 듣지 않고, 자신을 개변하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으면서 그를(그녀를) 보면 불편해하거나 심지어 고의로 따끔하게 말해 수련생을 자극하면서 이것이 동수에 대해 잘하는 것이며, 쇠망치로 두드리지 않으면 그(그녀)가 깨닫지 못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것은 바로 사람의 정으로 수련을 대하는 것인데, 명백하게 말하자면 자비가 부족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실 전반 정법 중에서 모두 이런 일종의 가장 너그럽고 가장 자비로운 방식으로 가서 하였다. 생명이 역사상 저지른 잘못을 탓하지 않는다.”(《각 지역 설법 7》〈2006년 캐나다 설법〉)

그렇다면 우리는 대법제자로서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배워 중생들의 지난날 잘못을 일체 따지지 말아야 하며, 일체 미운 정을 잊어야 하며, 사람의 윤회응보에서 걸어나와 정에 좌우지 되지 말며, 큰 자비심으로 중생을 대하고 수련생을 대해야 한다. 만약 과거의 은혜와 원한을 내려놓지 못하고, 동수의 부족한 점에 집착한다면, 곧 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수련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마음속에 일단 분간하는 마음이 나타나기만 하면 다른 사람의 부족점에 주의하게 되며, 다른 사람의 과실에 집착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태도와 각종 이익의 득실을 따지게 되는데, 이것은 곧 선하지 못한 것이다. 이 불선(不善)은 다만 행동상에서 나타나는 것만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속 생각이 움직인다는 것이 바로 씬씽의 체현이다. 좋지 않는 요소가 당신의 마당 중에서 생겨나는데, 이런 요소가 곧 바로 간극이다. 때로는 표면적으로 내가 아주 잘했으나, 마음속으로는 도리어 억울함을 느낀다. 그 결과 내가 대가를 치렀음에도 다른 사람은 도리어 고맙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실은 어찌 된 일인가? 당신 내심의 불선을 다른 사람이 체험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표면상으로는 잘 했으나, 내재적인 간극이 이미 생겨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가 어떤 일을 대하든지 간에 모두 마땅히 정면으로 대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일면을 보지 말고 늘 다른 사람의 좋은 일면을 봐야 한다. 사실 당신들은 아는가. 내가 그 해 당신들에게 대법을 전할 때, 설법하는 중에서 아래 좌석에 앉은 수련생들로부터 속인의 많은 사상이 반영되어 나왔고 어떤 사람의 사상은 몹시 좋지 못하게 반영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것을 모두 보지 않았다. 나는 당신들의 좋은 일면을 보고 있으며 나는 당신들을 구도할 수 있다.” (《2003년 정월 대보름 설법》)

대법에 대조해 보고 나는 과거 자신이 수련생을 돕는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 늘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면만을 보기 좋아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언행에 근거해 좋지 않은 일면으로 다른 사람을 추측해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은 결론을 내렸고 아울러 이것을 이유로 다른 사람을 개변시키려 했다. 나는 거의 모든 모순이 바로 나의 이런 나쁜 습관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에 와서 내가 따지기, 의구, 경계, 질책, 원망, 쟁투 등 좋지 않은 사람마음을 자신의 공간 마당에서 깨끗이 제거한 후, 인자, 관용, 친절, 이해, 참고 양보하는 것 등등이 처음으로 진정 나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왔다. 나는 마치 처음 그것을 가진 것처럼 기묘한 감수를 체험하게 되었다.

나는 더이상 다른 사람에 대한 오해와 냉담으로 억울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또 더는 별것도 아닌 각종 이익과 인정의 득실을 지나치게 따지지 않게 되었다. 나는 ‘참음’의 경계를 체험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속인이 각종 고려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눈물을 모금고 참는 것이 아니며, 진정으로 자아를 내려놓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인 것이다. 나의 마음속에 있던 그 단단한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굳은 얼음이 녹자, 찬기가 앞가슴과 등 뒤로부터 발산되었다. 그렇게 한 후, 나는 자신의 마음이 아주 부드럽고 따뜻하며 넓을뿐만 아니라, 광명으로 충만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실 자비는 거대한 에너지이며, 바른 신(正神)의 에너지이다. 자비로울수록 이 에너지는 더욱 커서 어떤 좋지 못한 것도 모두 해체할 수 있다.”(《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나는 이 말씀을 절실히 감수할 수 있었다.

2. 사람의 정과 사람의 이치로 수련을 대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집착에 관해서 말하자면, 사부가 오늘 당신한테 이걸 버리고 저걸 버리라고 알려주면 그것은 강제적인 것이며 당신의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와서 버리려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길어지고 사부가 많이 말하여 당신이 참을 수 없을 때 당신은 원망이 생길 것이다. 당신은 내가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 자신이 법리를 통하여 인식했고, 당신이 이렇게 했을 때, 당신 생명에 대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무엇인가를 알았을 때,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진정으로 제고한 것이며 당신이 진정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외재적인 어떠한 제약이든지 모두 당신이 스스로 원해서 나온 것이 아니며 당신의 진정한 제고가 아니다. 제약과 강제는 영원히 사람으로 하여금 개변시키거나 제고시키지 못할 것이며, 이 제약을 떠나면 사람은 또 다시 원래와 같을 것인데 , 그러면 모두 안 된다.”(《2004년 뉴욕 국제법회 설법》)

이로부터 알 수 있는 바, 지난 날 내가 자신의 호의를 동수에게 강요하고 수련생이 듣지 않으면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가만두려 하지 않았던 작법은 실제상에서는 법을 떠난 것이다. 동수의 부족한 면을 보게 되면 선의적으로 동수에게 제기하는 것은 정확하지만 지적하지 않으면 마음을 놓지 못 하는 집착을 형성하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자신의 인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하며, 강박하여 수련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수련은 수련하는 사람이 착실하게 안을 향해 찾아야만 제고될 수 있다. 내가 늘 다른 사람의 부족한 면에 눈길을 돌린다면 다만 자신의 마음이 깨끗해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동수의 수련에도 좋은 점이 없다.

때로는 얼굴을 맞대고 지적한 후 수련생이 접수하지 못하면, 나는 또 다른 동수들을 찾아 사실의 경과를 상세히 서술하고 동수들이 도와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라고 하면서, 여전히 법으로 가늠했고, 공동으로 제고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나는 이것이 바로 동수의 집착에 대한 나의 집착이 반영된 것으로서, 수련생을 자비로 포용하지 못한 행위임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아울러 그 어떤 목적에서 출발했든지 막론하고, 배후에서 수련생을 의론하는 것은 어떠한 좋은 점도 없으며 다만 부면적인 요소를 강화할 뿐이고 동수에게 절대로 바른 에너지장을 줄 수 없다. 선의적으로 이해하고, 자비로 포용하는 것만이 “쩐싼런에 부합 하는 것으로 비로소 진정하게 수련생을 돕는 것이며, 비로소 깨뜨릴 수 없는 강대한 정체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안을 향해 찾아야만 수련이다. 표면의 옳고 그름을 다투는 것은 수련이 아니다. 정을 내려놓고, 사람의 시비에서 걸어 나와야만, 비로소 자비심을 수련해 낼 수 있다. 지난날 나는 또 동수와의 모순은 상대방의 “말을 못하게 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 라고 생각했을 뿐, 진정으로 법으로 자신을 가늠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 문제에서 수련하는 것이 매우 느렸다. 이상은 개인 층차에서 약간의 체험이다. 부족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시정이 있기를 바란다.

문장완성: 2009년 12월 3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9/12/31/2153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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