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ㅡㅡ수련, 가정, 일의 관계를 바르게 놓다
글/ 따랜(大连)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28일】남편은 요즘 한 동수와 협조하여 일을 하고 있다. 이 과정 중에서, 늘 동수의 어려운 처지에 대하여 매우 동정하며 그들을 도와주었다. 그러나 도와주는 과정에서 체현되는 것은 일종 사람의 선으로서 때로는 자신의 선의 방식을 집착하면서, 대법의 원칙을 잊어버렸다. 남편은 이 일을 나와 교류할 때 자신의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을 승인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이 매우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남편만 자신이 이해하는 선을 법의 표준으로 간주하는 문제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수련 중에 자신이 쩐,싼,런에 부합된다고 생각하던 그 부분이 가능하게 대법의 진정한 순진(纯真), 순선(纯善), 순인(纯忍)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나는 내 주위의 동수들을 질책한 것은, 자신의 쩐,싼,런에 대한 이해를 표준으로 간주하고 동수들을 가늠한 것이지, 대법으로 가늠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동수들과 협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인식한 것을 억지로 동수들에게 강요할 때 역시 같은 원인이다. 대법은 순진(纯真), 순선(纯善), 순인(纯忍)한 것으로 일체에 대해 유익할 뿐, 한 가닥의 해로운 요소도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덮어놓고 사악의 우리에 대한 박해를 참고 견디면서 대법을 확고히 한다면 이는 일종 법에 부합되지 않는 의기소침한 참음으로서, 대법이 포함하고 있는 더는 참을 수 없다 라는 법리의 대인(大忍)이 아니고, 사악에게 이용되어 법을 파괴하는 이런 생명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이 속인 중에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이 대법제자의 선을 이용하게끔 내버려두면서,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할 때는 일종 사심적인 선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서, 배후에는 생명의 미래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 것이지 법 속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을 좋게 하기 위한 무사의 순정한 선이 아니다. 우리들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동수들의 일을 도처에서 마구 말하면서 수구하지 않거나, 혹은 사악에 대하여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여 법과 동수에게 손실을 조성하게 할 때 역시 일종 책임지지 않는 진(真)인데, 이는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서, 중생에게 악을 행할 기회를 제공하여 주지 않고, 진정으로 법을 위하며, 중생을 위해 책임지는 이성적인 진(真)이 아니다.
우리들이 자신의 법에 대한 인식을 대법의 위에 놓을 때, 쉽게 자신을 실증하게 되며, 밖을 향해 보게 되며, 다른 사람이 자신의 관념과 부합되지 않는 것을 따지게 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게 된다. 이때 우리는 경사경법과 겸손(謙遜)하고 예의 바른 심태로 사부님을 대하지 못하게 된다. 또 동수의 장점을 보지 못하며, 다른 사람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볼 수 없게 되며,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대법 원칙을 첫 자리에 놓을 수 없게 된다. 이로 인해 정체 협조에 영향을 주며, 유효하게 중생을 구도할 수 없게 된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나도 몰래 최근 접촉한 동수들을 연상하게 된다. 많은 동수들은 어떻게 수련, 가정, 사업의 관계를 바로 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각별히 괴로워하고 있었다. 회사 일을 중하게 보지 않으면, 가정 일에 뒤엉켜지면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더 잘할 수 없게 된다. 또 자신이 생각하는 쩐(真), 싼(善), 런(忍) 표준을 대법의 위에 놓고, 사업 중 속인으로 하여금, 또 집식구들로 하여금 좀 만족하게 하기 위해 대법의 원칙을 버리는데 여기에는 얼마나 많은 명, 리, 정이 뒤섞여 있는가. 보귀한 시간을 모두 속인의 일을 하는데 낭비하여, 법 공부할 시간이 없고, 연공할 정력이 없으며, 발정념은 적게 하지 않으면 졸곤한다. 진상을 알리는 일은 돌볼 사이 없고, 혹은 마음은 있으나 할 시간이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다른 사람이 지적하면 어떤 동수들은 자신이 의연히 법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만 이 시기를 바삐 보내고 나서 다시 보자고 생각한다. 결과 이렇게 저렇게 기다리지만, 한 가지 일 또 한 가지 일이 잇달아 나타나면서 어느 때까지 기다려야 될지 모르게 된다. 사람 역시 점차 안일을 추구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법을 떠나게 된다.
나 자신도 이와 같은 경력이 있다. 법에 있지 않으면서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책임의 경중, 완급(緩急)을 새로 안배하거나, 전체 국면에서 출발하는가 아니면 작은 나로부터 착수하는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대한 임무를 근본으로 간주하는가, 아니면 사람들 중의 각종 명,리,정과 연관되는 일로 바삐 보내는가 하는 이 모두에서 우리들이 안을 향해 찾아야 하고, 기점을 바로 놓고 다시금 새롭게 조정하여야 함이 요구된다.
나는 일반 상황에서는 집안 일, 회사의 일, 법에서의 일에 대하여 모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는 하루 24시간을 부동한 시간 단계로 나누어 놓는다. 집안 일과 법에서의 일, 혹은 회사의 일과 법에서의 일이 모순이 발생하였을 때는 모두 법에서의 일을 주요로 하고, 다시 집안 일을 안배한다. 법에서의 일이 되도록 교란을 받지 않는 것을 보증함과 동시에 만약 집안 일 혹은 회사 일을 완성하지 못 하게 되면, 수련하지 않는 집 사람 혹은 동사자를 찾아 상의하여 나를 도와 속인 중의 일을 해결하게끔 한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시간, 정력을 더욱 많이 법에 사용할 수 있으며, 동시에 집과 회사의 일을 겸하여 돌볼 수 있다. 실천 중, 비록 처음에는 좀 느리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조급하여 나를 원망하지만 이 세 개 방면을 적절하게 한 후에는 정말 갈수록 더욱 넓어진다는 느낌이 있게 된다. 매 한 방면의 책임도 모두 잘 담당할 수 있고, 각 방면에서의 사람들도 갈수록 만족하게 된다. 그러나 이 와중에 해이해지지 않고 견지하며, 오랫동안 꾸준하게 나아가는 상태는 도리어 부단히 법 공부를 하면서 안을 향해 찾는데서 오게 된다. 진정으로 법 속에서 이성적으로 승화하며, 대담하게 실천하려는 결심과 법에서 산생되는 확고한 정념이야말로 일체의 근본 보증이다.
총체적인 체험은 대법은 모두가 영원히 우리들이 추구함에 끝이 없는 표준으로서 오직 대법을, 중생구도를 첫 자리에 놓아야만 조사정법의 책임이 있는 대법제자들의 정념이 움직이지 않게 되며, 비로소 진정으로 움직이지 않음이 만동을 다스릴 수 있다. 이 역시 금강부동함의 법에서의 다른 한 면의 체현이다.
개인의 약간의 체험이다. 동수들의 자비한 시정이 있기를 희망한다.
문장완성: 2009년 11월 2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28/2133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