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캉핑(康平) 지역 일부 동수들에게 연속으로 일이 생기고, 오늘도 자료점 수련생이 불법 체포 되었다. 캉평의 수련생은 모두 정말로 마땅히 냉정하고도 이지적으로 자신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며, 자신의 수련 상태를 정확히 대해야 할 것이다. 아래에 일부 현상을 보고 정체에 존재하고 있을 부족한 부분에 대해 말해 보려 한다.
1. 법 공부 문제
어떤 법 공부 팀의 어떤 동수에게는 아직도 형식적으로 가면서 법 공부가 마음에 닿지 않는 현상이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법 공부에 시간을 다투고 진도를 다툰다. 단체 법 공부 형식은 사부님께서 남겨준 것이므로 우리 매 수련인마다 모두 단체 법 공부 환경의 순정함, 엄숙함을 수호할 책임이 있으며, 진정으로 그가 여러 사람이 공동정진 하고 제고를 촉진하는 실수 환경으로 되게 해야 한다.
2. 발정념
어떤 수련생은 발정념할 때 늘 손이 기울어지고 주의식이 똑똑하지 못하다. 비록 다방면의 원인이 있겠지만 한 방면은 우리가 발정념을 한 가지 중요한 일로 여기고 하지 않으며,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현하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여러 번 발정념의 요령, 작용과 중요성을 말씀 하셨고, 따라서 이 역시 우리가 조사정법 하는 세 가지 일 중의 한 가지이다.
3. 진상 알리기
어떤 사람에게는 진상을 말할 때 말하기 위해 말하며, 임무 완수하는 심태가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열흘이고 반달이고 진상을 알리지 않는다.
4. 연공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도 연공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심지어 장기간 연공하지 않는데 줄곧 안일한 마음, 게으름에 곤혹 당하고 있으면서 장기간 돌파하지 못하고 구세력에게 통제 당하고 있다. 우리 이 공법은 성명쌍수 공법인데 연공하지 않고서야 어찌 본체를 아주 훌륭하게 연화시킬 수 있겠는가? 아울러 장기간 연공하지 않으면 공력도 저애를 받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동작은 원만의 보조수단이라고 말씀하셨다. 본체가 연화되지 않고서야 어찌 진정한 대원만에 이를 수 있겠는가?
5. 수구
어떤 동수 간에는 함께 있기만 하면 자기는 역사상의 누구라면서 흥미진진하게 담론한다. (집착심의 이끌림으로 본 것은 모두 구세력이 연화해 낸 가상이다) 역사상의 누구로 전생했다거나 자기는 예전에 어떻게 잘했다고 강조하는데 자아를 실증하는 강렬한 마음을 표현했다.
시간을 잡담에 소모해 버리고 보귀한 시간을 아껴 법 공부하지 않는다. 또 어떤 수련생은 자료 출처에 대해 비밀을 지키지 않고 여러 사람 앞에서 직접적으로 “누구누구가 자료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개별 지역에서는 거의 모든 동수들이 어느 수련생이 자료를 만든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6. 통신 안전 문제,
여전히 핸드폰 안전 방면에 그다지 주의하지 않는다. 핸드폰, 전화로 직접 말한다. “사부님 의《맨하튼 설법》을 주세요”,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하오” 그리고는 또 그것으로 다른 동수들과 연계하면서 자신의 안전에도 주의하지 않거니와 동수의 안전도 주의하지 않는다.
7. 병업
어떤 수련생은 병업이 나타나자 정말로 속인의 병으로 여긴다. 표면적으로는 수련도 하고 세가지 일도 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병에 집착한다. 사람의 관념을 근본으로부터 개변하지 않았고, 나쁜 일을 좋은 일로 여기지 않고, 신체 반응 현상을 정확히 대하지 못하며, 심성을 제고할 기회를 잘 틀어 잡지 못한다.
각 방면에 존재하는 부족한 점에 있어서 근본적인 원인은 법을 첫 자리에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은 우리들의 보장으로서, 일체 정념은 모두 법 중에서 온다. 사존님께서는 《브라질 법회에 보냄》에서 말씀 하셨다. “법 공부를 많이 해야만 정념이 족하고, 법 공부를 많이 해야만 대법제자의 역사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 수련과 정법 중에서 우리는 이미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는데 왜 위로 오르려는 의식이 없는가? 사부님께서는 《2009년 대뉴욕 국제 법회 설법》에서 말씀 하셨다. “그러므로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한다면 정과를 필히 이룩할 것이다”
장기간 안일을 구하는 마음, 과시심, 질투심. 색욕심, 쟁투심, 이득을 얻으려는 마음, 강렬하게 자아에 집착하고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 혈육정에 대한 집착, 남에게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자신을 주재하지만, 도리어 법으로 가늠하여 이런 사람마음을 닦아 버리지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에서 말씀 하셨다.“사람의 집착,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교란하는 관념은 모두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신(神)의 길에서 걷고 있는 수련자에 대하여 말하면 이러한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과 관념을 개변하는 것이 그처럼 어렵단 말인가? 만일 한 수련하는 사람이 이러한 것마저도 제거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럼 수련인의 체현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부님 설법에 비추어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자. 나는 수련을 했는가? 나는 수련할 수 있는가?
만약 우리가 평소에 법 공부의 질(質)을 보증할 수 있고, 제때에 법으로 자신의 일사일념, 일언일행을 비추어 본다면 사악은 들어올 틈이 없을 것이다.
바라건대 우리는 세 가지 일을 잘한다는 것을 한 마디 구호로 삼지 말았으면 한다. 마땅히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법에 대해, 자신에 대해, 중생에 대해 책임지며, 법 공부를 많이 하고 더 많이 안을 향해 자신을 수련하기 바란다. 우리 공동으로 법 중에서 정진하여 ‘정법시기 대법제자 칭호’에 부끄럽지 않게 하자.
개인의 얕은 견해이므로 부당한 곳은 동수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09년 11월 3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명혜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