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2009년 11월 29일】 최근, 우리 시에서 박해당하는 일이 연속으로 나타났고, 동수들은 구출사업을 몇 번 조직하였으나 이전 구출사업을 마무리짓기 전에 또 박해당하는 수련생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바빠서 서로를 돌볼 사이가 없을 지경이었으나 효과는 미미하였다(수련생을 구출하지 못하였다). 어떤 수련생은 곤혹스러워 하였고 어쩔 수 없어 하였으며 태만해졌다. 정법은 마무리 단계에 다가서고 있고 중생들은 구도되기를 초조히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지역에 이런 상태가 나타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부님께서는 《2009년 대뉴욕 국제법회 설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주먹을 쥔 자세로) 마치 이 주먹을 내지를 때처럼 여러분들이 한데로 쥐어야 힘이 있다.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고, 한 손가락씩 가리키시며) 그것이 무엇을 하려 하고, 그것이 무엇을 하려 하고, 그것이 무엇을 하려 하고. 이러면 힘이 없어 내지르기만 하면 좌절당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들은 통일된 기획과 안배가 있어야 하고, 협조를 잘 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 맨하턴 설법》에서 또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이처럼 큰 법이 있으며, 정념 중에서 대법과 당신들이 같이 있는데, 이는 거대한 보장이다. 정념이 부족해 법에 부합되지 않을 때는 법의 힘에서 이탈할 것인데, 고립되어 도움을 받지 못할 것 같이 보인다. 설령 대법의 일을 하더라도, 법에 부합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법의 힘이 없게 된다.“
내가 깨달은 바로는, 사부님께서 금년에 연속 발표하신 여러 편의 새로운 설법은 모두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서의 협력 문제를 겨냥하신 것으로서 그 중 대법제자의 협력과 협조에 대해 여러 번 지적하셨고 대법제자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수련중의 문제를 지적하셨다. 우리 지역의 정체적인 협력 협조에서 법에 부합되지 않아 목전의 정법형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뒷다리를 잡아끈 것이 아닌가?
아래에 수련생이 농촌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박해당한 것과 구출 과정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개인 인식을 말해 보겠다.
수련생이 농촌에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데, 우리는 농촌에 가자면 길도 멀고 지형도 익숙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그 지역의 동수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진상을 똑똑하게 알려주는 것을 중시하지 않고, 자신이 책임진 공간장의 사악한 요소를 청리하는 발정념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동수들의 지불과 감당은 우리를 대신하여 추가로 감당하는 것이 아닌가? 법이 내가 여기에서 살도록 안배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므로, 우리에게는 이곳의 중생을 구도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깨달은 것인데, 우리가 가서 자료배포 하는 등 법실증에 관련되는 일을 할 때, 마땅히 작은 범위로 다른 동수들에게 통지하여 발정념으로 가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혼자만 한다면, 두려운 마음이 없이 정념정행하여 한다 해도 부족하다. 정체적인 관념이란 없는 이런 상태도 과시심과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사람을 구하는 정법의 일에 관련되는 일이기만 하면 무조건 묵묵히 협력하고 원용하며 엄숙하고도 진지하게 발정념 하여 수련생이 중생구도하는 것을 가지해 주어야 한다. 바로 당년에 수천 명의 연공 대열이 그 누구의 지휘도 필요 없이 몇 분 내에 자동적으로 줄을 잘 서던 것과 같다. 속인도 고군작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의 사람 구함이 이 공간에서는 사람이 신문 몇 장을 배포하고 진상 몇 마디 알려 주는 것으로만 표현되지만 다른 공간에서는 바로 정사(正邪) 대결이며, 발정념은 신통으로 사악과 교란을 제거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늘 사람의 사유로, 사람의 방법으로 사람의 기점에서 사람 구하는 일을 한다면 그럼 저애를 받고 박해받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박해는 사람의 사람에 대한 박해가 아니다. 과거의 수련계에는 ‘여덟 신선이 바다를 건너는데 각자 신통을 나타냈다’는 설이 있다. 여러분이 모두 법에서 마음으로 했다면 박해가 발생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예에 부끄럽지 않아야 할 것이며, 정법시기 대법제자란 칭호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며, 우리에 대한 중생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협력하지 않고, 마음으로 협력하지 않는 것은 흔히 속인 중에서 편안한 날을 보내려는 마음, 이익의 마음, 두려운 마음, 자아에 집착하는 등 사람마음에 제한을 받고 장애를 받아서이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여전히 사심(私心)이다.
나는 우리 시에서는 구출에 성공한 적이 없다는 말을 많은 동수들에게서 들었다. 비록 원망하는 마음이 있긴 하지만 확실히 우리 시의 수련상태를 보여준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 대보름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整體)로서 법을 실증하는 중에 일치하게 협력한다면 법력이 아주 클 것이다.” 그럼 왜 우리의 구출 과정에 법의 위력이 나타나지 않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사람마음을 지니고 했기 때문이다. 구출과정에 모순, 장애에 부딪히면 안으로 자신의 문제를 찾지 못한다. 이를테면 박해당하는 동수의 부족을 찾고, 일을 하는 동수의 부족에 집착하며, 부족을 보면 선의적으로 지적해 주어 서로 원용하는 것이 아니라 피차 서로 원망하고, 협력하지 않고 헐뜯으며, 자기 의견을 고집하고, 각자의 생활, 사업만 고려한다…… 이런 상태로 사악을 해체할 수 있는가? 신(神)의 행적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의 사람 상태가 바로 구우주의 신에게 박해할 구실을 준 것이 아닌가? 모종의 정도에서 우리의 사람 마음은 바른 역량을 쇠약하게 하였고, 우리가 비록 구출 사업에 참여하였지만 동수 구출을 저애하였다.
구출 과정에 어떤 수련생은 기다리지도 의뢰하지도 않으면서 박해가 발생한 이튿날 점심에 박해 관련 책임자의 전화번호를 밍후이왕에 보내어, 그날로 대만이며 미국의 동수들이 진상전화를 걸 수 있게 하였다. 밍후이 동수들은 가장 빠른 시간에 박해소식을 접수하고 아울러 즉시 전달하여 동수들은 또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전화를 걸어 왔는데 내가 생각하건대 이는 여러 사람과 여러 팀이 전문적으로 협조해야만 할 수 있다고 본다. 국외 동수들이 직면하고 있는 것은 전반 대륙 지역과 도시인데 그들은 정체적인 협력과 분공 협조상에서 아주 조리정연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다. 이는 자아를 내려놓고 교란을 돌파하면서 법을 가장 크게 여기고 수련해낸 것이지 속인의 합작으로 사업을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고 나는 인식한다. 그런데 우리 이 자그마한 도시에서는 박해가 발생한지도 십여 일이 넘었는데 근거리 발정념과 같은 일조차 계속 유지해 나가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차이점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같은 한 부의 법을 수련하고 있고 같은 대법도인데 우리는 더이상 사부님께 걱정을 끼치지 말아야 하며, 더이상 동수들로 하여금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을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수련생을 구출하는 과정에 해야 할 한 가지 항목은 바로 박해 책임자의 전화, 주소 및 개인정보를 수집하여 국내외 대법제자들 진상 알리기에 편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의문을 제출한다. 왜 이렇게도 피동적인가, 왜 박해가 발생되기를 기다렸다가는 다시 진상을 알리는가? 왜 우리더러 이 도시에, 이 지역에 살게 했는가? 여기에서 우리 작은 범위에서 협력하여 자기가 사는 곳의 공안분국, 파출소, 변호사 사무소를 포괄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직장, 구성원, 및 가족의 이름, 주소, 전화, 학교 등 정보를 수집하여 밍후이왕에 보내며 동시에 각자 책임지고 우편진상 혹은 각종 방식으로 진상을 알리고 아울러 그들을 겨냥하여 발정념할 것을 건의한다. 그들을 조종하는 사악한 생명을 해체하여 그들의 선념(善念)을 계발하고, 그들더러 진상을 요해하게 하여 박해를 중지하며, 자신의 미래를 찾아옴으로서 구도받게 해야 한다.
현 지역에 한 때 발생한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아주 사악한 한 경찰이 있었는데, 몇 년간 여러 번 대법제자를 납치했고, 대법제자를 폭력적으로 구타하고 감옥에 넣었다. 얼마 전에 대법제자는 단체로 그에게 발정념하고 아울러 각종방식으로 이 생명을 구도하였다. 그의 가족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편지를 부치고 국외 대법제자들이 전화를 걸어 그의 악행을 유포하였다. 한 동안 지난 후 또 한 명의 대법제자가 그에게 납치당했다. 그는 그 대법제자를 마주하고 물었다. 내가 정말 당신들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나쁜가? 당신들이 나에게 보낸 그 두꺼운 편지를 나는 다 보았다. 오늘 나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 되겠다. 당신을 놓아주겠다. 아울러 동수의 진상자료를 돌려주었다. 이로부터 보건대, 우리의 진상 알리기는 얼마나 중요한가!
내가 아는 동수 중에 이런 상태가 있는데, 협조인이나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무엇을 안배해 주기를 기다린다. 그렇지 않으면 한쪽에서 구경만 하면서 우리 지역에는 협조인이 없다고, 협력이 좋지 않다고 원망한다. 사실 이런 상태는 법에 부합되지 않으며, 여전히 밖으로 구한 것이지 자신을 찾아보지 않은 것이다. 협조인이 수련하지 않으면 그래 우리도 수련하지 않겠단 말인가? 협조인이 없으면 우리는 수련하지 않겠는가? 사부님께서는《아태지역 수련생 회의에서의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대법에 대해 불량 작용을 일으킨 것에 대하여 제지시키는 외에는, 개개 대법제자는 모두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하며 주동적으로 가서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법을 실증하는 가운데서 당신들이 생각된 것, 본 것, 접촉한 것, 능히 인식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당신은 가서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자신의 길, 자신의 위덕을 세우는 것이다. 바로 이런 하나의 도리가 아닌가? 만약 이 지역이 잘 되었다면 꼭 이러한 정황일 것이다. 오로지 책임자가 어떤 한 가지 일을 하자고 말만 하면 대법제자들이 자율적으로 공동협조하고 곤란을 극복하며 대법제자의 지혜를 충분히 발휘해서 일을 잘 하고 더욱더 완벽하게 할 것이다. 책임자가 이 일에 대하여 충분한 생각을 못했고 심지어는 실수가 있기 때문에 대법제자들이 일하는 과정 중에서 그것을 확보하기 마련인데, 그것이야말로 당신의 위덕이다. 곤란 앞에서 원망하지 말고 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도 하지 말라. 사부님은 볼 수 있고 뭇 신들이 볼 수 있다. 잘 하였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의 영원한 위덕이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여전히 사심, 두려운 마음이다. 선두에 나서면 개인 일이 지체될까 두렵고, 선두에 나서면 박해받을까 두렵다보니 법중에서 이런 좋지 못한 마음을 버린 것이 아니라 서로간에 원망하여 동수사이에 간격이 생겨 수련생을 구출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방해하였다. 동수들이여! 수련은 아이들 장난이 아니므로 절대로 명백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법이 안배한 이 일을 마땅히 당신이나 내가 협조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아직도 누구를 기다릴 것인가? 푸신(阜新) 지역의 매 한 대법제자마다 모두 마음을 조용히 하고 사부님 최신 경문을 더 여러 번 학습하고, 자아를 내려놓고 안을 향해 찾아보며, 자신을 깊이 파보고 수련중에서의 자신의 차이점을 진정으로 찾아내어 정체를 원용하고 선두를 향하여 따라 잡아야 한다!
건의하는 바, 누구나 모두 걸어 나오고, 기다리지도 의지하지도 말며, 먼저 소면적으로 협력할 수도 있다. 근거리 발정념팀을 많이 조직하여야 한다(우리의 동수들이 아직도 여기에 갇혀서 박해를 받고 있다). 자기가 살고있는 지역의 대법제자를 박해한 공안부문에 정각 근거리 발정념팀을 조직하여 견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편지 진상팀을 조직하여, 설이 곧 다가오는데 축하카드를 부쳐 진상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므로, 앞당겨 협력하여 축하카드와 자료를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분공(分功)이 있고, 합작이 있게 되어 정법의 일에 빈자리가 없을 것이며, 사악에게 숨쉴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동수들이여, 우리 교류를 통해 자신의 부족을 찾아내고 우리의 정념이 강화되고 정념이 있으면 또 정행(正行)이 있게 될 것인 즉, 정말로 움직여 사부님의 정법을 돕자! 그리하여 사부님께서 기대하시는 “수련에서 하나의 비약을 가져올 수 있으며 각 항목 중의 역할을 더욱 잘 완성할 수 있다”(《밍후이왕 10주년 법회에서의 설법》)에 도달해야 한다.
문장발표 : 2009년 11월 2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29/2134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