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를 청해 무죄 변호한 일에 대해 동수들과 교류
글/요녕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10월 18일】 2009년 7월 20일 우리 시의 한 대법제자가 납치되었고 이튿 날 점심에 집을 불법수색 당했으며 법원에서는 불법적으로 재판을 열기로 했다.
‘개정(開庭)’이란 사악이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를 가중하려는 의미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두 알 것이다. 우리는 응당 그것을 반드시 전반 부정해야 한다. 대법제자가 봉착한 일체 일은 모두 수련하고 제고하려는 것이다. 우리들은 반드시 개정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정체 배합하여 발정념의 밀도를 가강하고 법정 공간장에 모인 일체 사악을 해체하는 동시에 진상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수련생을 구출하는 일을 잘 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들이 경찰, 검찰, 법원, 등 사법인들에게 진상을 하고 악당의 본질을 폭로하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이전에 했던 개정은 모두 악당의 말만 들어야 했다. 이번 개정에서 우리는 정의로운 변호사를 청해 무죄 변호를 하려고 의논했다. 이 기간 개정 일을 질질 끌면서 정하지 않고 이간을 늦추고 또 늦추었다. 우리들이 정의가 있는 변호사를 청하는 일에서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것인가? 고 우리들은 생각했다.
이때 사부님의 『밍후이왕(明慧網) 10주년 법회에서의 설법』이 발표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정의로운 변호사를 청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셨다.
“변호사를 청해 법정에서 변호하는 이 일 자체 역시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어디에 앉아서 듣든지, 당신이 중공사당이 파견한 것이든, 또는 일반 민중이든, 그럼 변호사의 정의적인 논리에 직면해, 듣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곧 진상을 알리는 것이다. 그럼 역시 그들의 착한 마음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떤 법관은 들은 다음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도 없으며, 어떤 경찰은 탄복마저 하는데, 나온 다음에 모두 두어 마디씩 한다. 말을 정말 잘했다. 이것은 바로 사람의 착한 마음이 일깨워진 것이다. 사악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바로 이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때문에 나는 여전히 변호사를 마땅히 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는 또 “소송을 통해 정말로 사악을 폭로하고 중생을 구도하고 또 대법제자를 보호할 수 있으며, 현지 대법제자가 인식 상에서 모두 그렇게 명확한 인식이 있고, 아울러 활동과정 중에서 모두들 협력할 수 있다면, 그럼 나는 바로 한 가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새로운 설법을 공부하고 우리는 정의감이 있는 변호사를 청해 무죄 변호를 하는 것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지 결과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정의감이 있는 변화사가 법정에서 법률로 대법제자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이 합법적이라는 것을 명확히 말함으로써 사당의 사법이 독단적이고, 인권을 묵시하는 사악의 본성을 폭로하여 사악을 놀라 두렵게 할 수 있고 또 수련생을 구출할 수 있다. 이것은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십여 년의 반박해, 사부님을 협조하여 정법 한 것이 바로 진상을 하고 중생을 구도하려는 것이 아닌가? 우리들은 곧 사부님의 지시대로 하는 것이므로 이 기회를 꼭 틀어쥐어야 한다. 하는 과정에서 꼭 정체 배합을 잘 해야 한다. 정의감이 있는 변호사를 청하는 과정은 곡절이 많았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마난(魔难)도 컸다. 개정 일이 사흘 밖에 없는데 변호사는 아직 천리밖에 있고 수중의 안건은 아직 결속되지 않았다. 변호사가 제때에 올 수 있는가? 이때 모두 근심하면서도 “마음 하나가 움직이지 않으므로 만 가지 움직임을 제지시킬 수 있다(一個心不動, 能制萬動). ” (『정진요지2』「최후의 집착을 버리자」)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었으며 우리들이 대법을 실증하는 것은 틀리지 않는다.
법원에서는 개정 일을 감히 공개하지 못하고 악당은 백방으로 방해했는데 사악은 두려워 뒷걸음질함과 동시에 우리는 더욱 신념을 견정히 하고, 사부님을 믿고, 동요하지 않았고 이 일이 꼭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0일 오전 10시가 개정일인데 9일 밤에야 변호사는 타향으로부터 왔다. 아침 8시, 법원에 온 변호사는 2시간동안 서류를 찾아서 읽어 본 후 사건의 내막을 요해하고 무죄 변호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 시각 법원의 앞 뒤 문, 법정 안팎은 대법제자들로 가득 둘러쌌다. 모두 발정념을 하고 정의로운 변호사가 무죄 변호하는 것을 교란하는 일체 사악의 요소를 해체하는 한편, 법정안에 있던 법관, 검찰 배후의 일체 사악한 요소들을 해체했다. 이 사람들은 박해를 제일 엄중하게 받았고, 제일 위험하며 제일 가련한 생명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구도할 책임이 있다. 막 개정했을 때 법관, 검찰관들은 기세가 매우 사나웠으나 나중에는 차츰 말에 조리가 없었으며 최후에 어조를 낮추어 법정안의 분위기는 평화롭고 심판석에서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무죄 석방하라”고 말했다. 이것은 정체가 배합하여 근거리 정념을 한 위력의 체현이다.
정의로운 변호사는 신앙의 자유가 사람의 삶에서 소유한 권리이다.『중화인민 공화국 헌법』제 36조에서도 명확하게 신앙의 자유를 보호하며 선교(宣教)는 죄가 없으며 종교를 믿는 것은 자발적이라고 규정했다.
파룬궁을 ‘사교(邪敎)’라고 규정한 것은 강택민이 1999년 10월 26일 프랑스 『르 피가로』 신문 기자를 회견할 때 파룬궁을 ‘사교’라고 했으며 10월 27일 “인민일보”해설자가 문장을 발표한 것에 불과하다. 이는 완전히 지도자 개인의 행위와 매체의 행위에 불과할 뿐 법적인 효력이 없는 것이다.
사상 (신앙)은 죄가 아니며 죄를 다스리려면 유형의 죄를 다스리고 행위적인 죄를 다스리지, 신앙의 정신적 측면에서 정부와 법률은 이미 관할하지 못한다.
대법자료, “9평”, CD, 등은 사회에 해로운 행위라고 증명할 수 없으며 신앙자의 문자 메시지는 정상적인 것이다.
이렇게 하자 법정 내의 법관, 검찰, 당사자들의 가족, 직장 상사 및 동료 더 나아가 방청석의 법관, 변호사 등 각계 인사들에게 정의로운 변호사는 그 자리에서 “신앙은 자유이고 파룬궁은 무죄이다.는 무죄 변호를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가족의 반응은 매우 컸다. 납치 당한 동수와 아내는 파룬궁 수련을 하여 다년간 친구들의 오해를 받았으며 심지어 그들을 멀리한 사람도 있었다. 이번에 박해에 대해 못 본 척하고 뭇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또 매우 큰 원망이 있었다.
정의로운 변호사의 변호를 듣고 이들은 마치 꿈에서 금방 깬 것 같았으며 『중화인민 공화국 현법』제 36조에서 명확하게 신앙자유에 대해 보호한다는 것을 알았다. 공개된 모든 법률 문서에는 파룬궁을 사교라고 규정한 것이 없다. 우리나라 형법에서 죄의 제일 본질적인 특징은 행위가 사회에 대한 위해성이라고 규정했다. 범죄는 행위를 처벌하지 사상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행위가 없으면 범죄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중국의 법률이 가로 막히고, 덮혀 있으면서 백성을 희롱하는 것이다.
파룬궁 수련은 위법이 아니며 파룬궁은 무함(誣陷)을 받았고 가족은 죄를 범하지 않았다. 사당은 바르지 않기에 권리를 법으로 대처하고 사당 위에 놓았다. 아울러 그동안 없었던 기만, 분통, 억울한 감을 느꼈으며, 그 자리에서 박해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질문하려 했다. 집에 돌아간 후 박해 받은 수련생이 매우 걱정되어 전화로 가족을 위로했다. 그러자 그들은 파룬궁과 박해받는 가족에 대한 태도가 180도 변했다.
이번에 정의로운 변호사를 청하고, 정체가 협력해 수련생을 구출함과 동시에 법정 심사에 참가하는 것에 참여한 동수들은 모두 이것이 얻기 힘든 수련과정임을 느꼈으며, 두려워하는 마음을 많이 닦아냈다. 예를 들면 자신이 사법기관에 들어가면 연루될까 두려워하고 박해를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근거리, 법정 심사 과정에 따라 발정념 하고, 법관, 검찰관의 표정을 보면서 발정념을 하여 법정 내의 일체 사악한 교란 요소를 더욱 강력하게 해체했다. 이 과정을 통해 정념의 위력을 체험했다.
이번 법정 심문은 우여곡절을 거쳐 모두들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정체에 협조하여 중생을 구도하고 사악이 두려워하는 생각지 못한 효과에 도달했다고 느꼈다. 심판대청 안에는 대법제자 외 사십여 명의 속인이 있었는데 모두들 근 두 시간 파룬궁을 위하여 무죄 변호하는 것을 들었다. “본 법정에서 무죄로 무조건 석방을 선고한다.”라는 이 한 마디 말은 인간 정의 힘의 재현이다.
매번 수련의 기연은 다시 없으며 사부님께서 매번 고심하시며 기다리시는 것은 우리들 수련의 원만과 더욱이 보다 많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시간을 틀어쥐고 사부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을 잘 해야 하며 수련의 길에 유감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문장발표: 2009년 10월 1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0/18/2105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