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0월 12일】근간 나는 지나치게 자신을 보전하고 상해를 받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인하여 법에 부합되고 응당 해야 할 항목이라고 여겼지만 일부 동수들이 지지하지 않고 심지어 반대한다고 하여 중지하고 하지 않아 엄중하게 현지에서 법을 실증하는 일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부님의 몇 편의 설법을 공부하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할 때 부동한 의견에 봉착하면 자신이 그 좋지 않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마음을 수련하여 자신으로 하여금 동수에 대한 자비의 포용심을 수련해 내고 더욱 자신의 심태를 순정히 하여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하려는 것이지 그 항목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수련생이 부동한 의견을 제기하면 안으로 찾고 틀리면 고치고 옳으면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수와 아래의 체험을 이야기 했더니 수련생은 나보고 써내어 경험과 교훈을 총결하여 정체로 제고할 것을 건의했다. 아래에 연관되는 수련생은 오해하지 말라. 나는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며, 중생을 더욱 잘 구도하기 위하여 상호 더욱 잘 협조하고 우리들로 하여금 모두 안으로 찾으며 원용불파의 정체를 형성하려는 것이다.
2008년 올림픽 때 우리 지역에서 두 명의 수련생이 납치되어 불법 심판을 받았다. 우리 몇몇 협조인은 정체를 동원하여 구출을 진행하며 박해의 진상을 폭로하는 추적보도를 대량으로 배포하여 사악을 크게 놀라게 하고 떨게 했으며 제거했다. 동시에 동수들을 격려하여 함께 이 일로 발정념을 많이 하고 근거리 정념도 했다. 변호사를 선임하겠는가 하는 데서 협조인 간에 논쟁이 벌어졌으나 가족 수련생이 변호사를 청->선임하였는바 진상효과가 매우 좋았다. 그러나 최후에 두 수련생은 불법 판결 6개월, 5개월을 받았다. 결과가 나온 후 어떤 동수와 협조인은 차갑게 비꼬는 말을 했다. 이런 말을 들은 후 수련생을 구출하려는 우리 몇몇 수련생들은 매우 큰 타격을 받았으며 우리의 적극성도 깨져 저하됐다. 2009년 3월에 이르러 또 한 명의 수련생이 납치되었는데 우리가 그의 가족에게 사람을 내놓으라 하라고 제기하자 또 어떤 협조인은 반대하면서 대법제자도 모두 안 되는데 속인이 사람을 나오게 할 수 있는가? 라고 말했으며 기타 협조인들도 의견을 발표하지 않았다. 당시 표면의 평화를 유지하고 자신을 보전하기 위하여 이 항목을 미루고 미뤄 전 두 달간의 가장 적합한 시기를 놓쳤으며 나중에는 구출하는 일이 피동적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나중에야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되게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집 사람이 불법 수감되었으니 가족이 마땅히 가서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속인의 이 층에서 법이 사람에 대한 요구이다. 만약 가족이 하지 못하면 우리들은 그들에게 진상을 하고 그들이 하도록 하여 마난 중에서 그들이 자신의 위치를 잘 정하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족으로 하여금 수련생을 구출하게 하는 것은 옳은 것이며 우리들은 되도록 순정한 심태를 유지해야 한다. 만약 정체로 협조하여 할 수 없으면 작은 범위로 하여 마땅히 항목의 진행에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마땅히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일부 협조인들은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은 낡은 세력의 안배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여기고 일률로 선임하지 않기로 했다. 가족 동수도 법리상에서 미혹되었다. 나는 그 어떤 형식이든지 오직 중생구도에 유리하다면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전번에 변호사를 선임하여 매우 좋은 진상효과를 보았으며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틀리지 않다고 여겼다. 다만 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심태를 순정히 할 것이 필요하며 속인에 의거하자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비록 이렇게 생각했으나 나는 자신이 좌절 당할까 봐 두려워 나는 감히 말하지 못했다. 곧 이런 자신이 상해를 받지 않으려는 하나의 마음, 너무 자신을 보전하려는 마음으로 하여 나는 옳은 것을 견지하지 못하여 이 항목을 지체했다. 수련생을 두 번이나 불법 심판을 했지만 우리는 내막을 알 수 없었고 현지 사악을 폭로함에 소재가 없었으며 수감 당한 동수의 심태를 알 수 없어 구출하는 일은 매우 피동적으로 되어 가족도 신심이 없었다. 사부님의 『밍후이 10주년법회서의 설법』이 발표된 후 법공부를 통하여 비로소 자신의 착오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나는 줄곧 현지의 사악을 폭로하는 일을 했는데 현지의 진상 전단지, 소책자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각 방면으로 오는 압력을 감당해야 했으며 주요하게 동수들에게서 오는 압력이었다. 한 동수의 타격으로 인하여 나는 한 동안 중지했다. 나는 당시 그 수련생이 글 짓는 방면에 매우 능력이 있으니 대법의 일을 누가하면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이 할 만하면 당신이 해라, 나에게 협조하라고 하면 협조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수련생은 몇 가지를 밍후이에 보냈으나 밍후이에서도 발표되지 않았다. 곧 이렇게 현지 진상 전단지는 두 달이나 하지 않아 지체됐다. 나중에 한 수련생이 나에게 말하는 것이 사악은 현지에서 진상자료를 만드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 한 장의 진상자료를 발견해도 상납하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여차여차 한다고 한다. 나는 당시 진상자료를 만들 때는 그것이 찾지 않던 것이 내가 이렇게 긴 시간 하지 않고 있으니 그것이 도리어 찾는데 그것은 나더러 계속하라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여 한 동수와 교류하자 그도 응당 해야 한다고 여겼다. 곧 이렇게 나는 하기 시작했으며 줄곧 오늘까지 해왔다.
나중에 나는 또 동수들이 부동한 의견이 있으며 배후에서 불평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자신을 찾았는데 자신이 그 기간 진상자료를 함에 심태가 순정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다른 의견이 있는 수련생을 찾아가서 함께 일을 잘하자는 성의를 갖고 그의 의견을 들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에게로 가니 그는 또 의견이 없었다. 비록 나는 매우 큰 압력을 느꼈지만 나는 더 이상 포기하려는 마음이 없었고 자신의 심태를 더욱더 순정하게 하여 노력했으며, 옳은 것을 나는 견지했다.
사부님의 『밍후이 10주년법회에서의 설법』을 보고 나는 매우 기쁘고 안심되었으며 나는 내가 견지한 것이 옳다고 여겼다. 현지 진상 자료를 함에 나에게 제일 큰 힘을 준 것은 밍후이고 바로 사부님이시었다. 매번 인터넷에 발표한 진상은 모두 예정대로 발표 되었고 거의 변동이 없어, 이것이 나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이 기간에 하나의 신기한 일이 발생하여 나는 현지 진상자료를 함에 신심이 더욱 견정했다. 한 수련생이 자신이 연공하여 얻은 체험을 서술한 것을 나는 그를 도와 컴퓨터로 써내어 현지 진상 자료에 내려고 원고를 가져다 그에게 보여주고 그에게 수개하게 했다. 비록 그가 당시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그러나 그의 체험이기 때문에 그에 따라 그의 요구대로 고쳐 진상 자료를 편집하여 인터넷에 보냈다. 진상자료는 예정대로 발표되었는데 너무나 신기했다. 그 수련생의 체험을 편집자가 고쳤으며 내가 사람의 마음이 있다고 여겼던 곳을 또 원고대로 수개했다. 나는 너무나 신기하다 너무나 신기하다 고 감탄했다. 밍후이 수련생은 원래 썼던 것을 어떻게 알까? 나는 그 원고를 보내지 않았으며 또한 내 컴퓨터에 그 원고도 모두 없어졌다. 너무나 신기하다! 나는 실증하자고 또 우편함을 열고 “이미 발송한 편지”보관함에서 그 원고를 다운로드 했는데 바로 수련생이 수개한 그 원고였다. 나는 기적의 출현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일을 그 동수에게 알려주었더니 처음에 동수도 감히 믿지 못했으나 후에 나의 해석을 통해서야 비로소 믿었으며 동시에 경탄을 금치 못했고 자신의 집착도 인식했다. 이 일을 통하여 나는 언제나 자비롭고 자상한 심태를 유지하고 동수의 결점을 포용한다면 당신은 제일 좋은 것을 얻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역시 사부님께서 우리가 현지에서 진상을 잘 한데 대한 격려이다.
박해를 폭로하는 문제에서 나는 우리지역의 일부 동수들에게 아직도 하나의 잘못된 인식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정념으로 박해를 대할 수 없으며 대량으로 박해를 폭로하면 속인들이 보면 두려워할 것이고 감히 파룬궁을 접촉할 수 없다고 여기며, 중공이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적출한 것을 폭로하는데 대한 진상도 하려 하지 않고 대법의 아름다움만 반영하려 했다. 나는 이것이 그릇된 인식이라고 여긴다.
사부님께서 『2004년뉴욕국제법회 설법』에서 이야기 하시기를 “제자: 뉴욕시에서 대법제자들의 노력은 이미 환경을 많이 개변시켰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저희들의 혹형 전시판을 보고 몹시 감동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많은 서양인들이 저희에게 그들은 그런 비교적 공포적인 화면(畵面)을 너무 많이 보므로 해서 그들로 하여금 저희들에 대한 동정(同情)을 잃게 한다고 합니다. 사부님께서 개시(開示)해주시기 바랍니다. “
“사부: 만일 여러분이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이 혹형전이 사람에게 어떤 자극이 있는가에 대하여 말한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들이 표현한 것은 정면(正面)적인 것이고 에너지도 바르고 자비로운 것이라, 절대 사람에게 어떤 좋지 않은 자극을 줄 수 없다. 반대로 느낌이 불편한 것은 꼭 그 사람의 좋지 못한 사상이 조성한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피가 낭자한 모양이고 손과 발이 못에 박혀 피가 흐르고 있는데, 곳곳마다 다 걸어놓고 있지 않은가? 몇 백년 이래, 천여 년 이래 사람들은 다 보아오지 않았는가? 화면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대법제자가 박해 중에서 역시 같은 마난(魔難)을 겪는 것이 아닌가? 여러분은 미술작품 중에서 일부 사악한 것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은 사람을 구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의 반영이 좋지 않은 것은 꼭 원인이 있는 것으로, 그의 사상에 꼭 문제가 있다. 아마 그의 사상이 사악에게 통제 당했거나 아니면 그의 관념에 문제가 있다. 바로 대법제자를 동정하는 사람도 역시 속인사회에서 양성된 관념으로서 인식상 이 한 점에서 불편한 생각이 있을 수 있다. 괜찮다. 많이 해석하면 해결된다.
사람은 세간에서 같지 않는 관념을 형성하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매운 것을 먹기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시큼한 것을 먹기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단 것을 먹기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담백한 것을 먹기 좋아한다. 그것은 자신이 양성한 습관이다. 만약 맨해튼에서 희극을 공연한다고 해도 많고 많은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며 반대의견을 제기할 것이다. 인류는 바로 이러한 것으로 정반(正反) 양 방면의 사람이 다 있다. 사람은 바로 이처럼 상생상극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일 수 없다. 아마 혹형전이 좋다고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다만 그들은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더 이상 머리 속에 장애가 큰 그러한 사람에게 양보함으로 하여 좋은 사람을 구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은 세인들을 구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보지 못하겠다고 하나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으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전율을 느꼈고, 깨달았으며, 제도되었다.(박수)
만약 그가 불편하다고 느끼면 여러분 생각해보라. 이처럼 바른 장(場)이고 사악을 폭로하는 것을 이처럼 똑똑히 썼고 아울러 이 일체가 현실 생활 중에서 바야흐로 발생하고 있는데, 그가 아직도 이러한 문제를 제기함은 이 사람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꼭 문제가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얼마나 노력하고 당신이 얼마나 대가를 치르든지 간에,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세상에는 결국 당신이 구원할 수 없는 사람이 있으며 결국 일부분 사람은 구원 받을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 때문에 낙심할 수 없으며 또한 이러한 사람 때문에 동요될 수 없다. 일부 사람들이 어떠어떠하다고 해서 우리가 마음을 움직여 그를 따라간다면 되겠는가? 우리는 사람들을 개변시키려고 온 것이며 결코 사람에게 개변되어서는 안 된다. (박수)
우리가 사람들에게 주는 것은 모두 아름다운 것이며 우리는 사람을 구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좋지 못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으로 인해 그러한 좋은 사람들이 구원 받지 못하게 할 수 없다. 물론 좋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 역시 꼭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혹시 그의 관념으로 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면에서 여러분은 반드시 냉정하고 이지적이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지 말고 사람의 영향을 받지 말라. 당신은 똑똑하고도 똑똑하게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당신은 중생을 구도하고 있으며 당신은 가장 바른 일, 가장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수) 우리 수련생들이 이러한 일을 하는데, 이 혹형전은 얼마나 고심(苦心)을 기울여야 하며 얼마나 많은 곤란을 극복해야 하는가. 쉽지 않다.
사실 관건적인 것은 우리 자신들이 청성(淸醒)해야 한다. 우리들은 떳떳해야 하며 우리들은 가슴이 두근거려서는 안 된다. 당신은 당신이 신의 길에서 걸어가고 있는 생명이란 것을 보지 못하는가. (박수) 때문에 속인과는 구별이 있는 것이며 속인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당신들이 맨해튼에서 한 이러한 일들은 신들이 모두 탄복하고 있으며 정말로 탄복하고 있다. 그러한 신들이 정면(正面) 작용 혹은 반면(負面) 작용을 일으키든 간에, 그들은 모두 탄복하고 있다. 세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세상(普世)의 선악 가치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국외의 대법제자들은 사악이 대륙 대법제자의 박해에 대한 폭로를 위하여 혹형그림전시판으로부터 혹형 시연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너무 크므로 수고가 매우 많았다. 하지만 심각하게 박해를 받는 우리 대륙대법제자들은 도리어 이 방면에서 대량으로 폭로하려 하지 않는데 사악을 대신하여 죄악을 숨기는 것이 아닌가? 대법이 이렇게 좋고 대법제자는 모두 좋은 사람인데 사당은 도리어 이와 같이 엄중한 박해를 한다는 것은 바로 사당의 사악한 점이다. 이래야만 비로소 사람들로 하여금 중공을 인식하게 하고 이래야만 정상적인 사유논리이다. 나는 대법제자의 일념이 주위 중생에게 영향 주며 만약 우리가 정념이 충분하다면 속인을 개변할 수 있고 속인은 우리에 의하여 개변된다. 사악을 폭로하는 것과 대법의 아름다움을 당연히 동시에 하여야 비로소 사람들로 하여금 중공을 분명히 인식하고 대법의 좋은 것을 알게 된다.
사악을 폭로하는 진상을 함에 어떤 때는 무의식 중에 박해를 인정하게 된다. 자료점이 파괴되었을 때 사악이 컴퓨터, 프린터 등 법기를 빼앗을 때 폭로하려 하지 않고 속인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며 잡힌 동수에게 죄를 가할까 봐 두려워한다. 이것은 박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속인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자신이 당당하지 못하다고 여겨서인가 빼앗아간 것이 많을수록 동수의 죄가 더 커서인가? 그것은 박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우리들이 한 일체가 합법이라고 정말 인정하면 사악이 법을 범하는 것인데 아직도 그런 고려가 있는가? 만약 그것을 강도에게 빼앗겼다면 당신은 자신이 죄가 있다고 여길 수 있는가? 그것은 강도죄가 아니고 강도죄 증거가 아닌가?
이상은 내가 최근에 법을 실증하면서 체험한 작은 것이며 자아를 보전하려는 사심을 버리고 법을 위하여 책임지는 기점에서 쓴 것이다. 부당한 점을 동수들이 자비롭게 시정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2009년 10월 1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0/12/2100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