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보정(保定) 지역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10월 10일】 최근 들어 사악이 몹시 창궐해졌다. 10․1 전야에 보정 남부 지역 세 곳 현에서만 50명 대법제자가 악경에게 잡혔는데 그 중 40명이 수일 내에 노교소로 보내져 박해 받을 것이라고 한다. 갑자기 닥친 사악의 박해에 우리는 모두 놀랐다. 이건 도대체 웬일인가? 이 몇 개 현의 대법제자들은 정체적으로 줄곧 비교적 안정했다.
소식에 의하면 박해 원인이 핸드폰 때문이라고 한다. 몇 개 현 일부 동수들이 모두 핸드폰으로 서로 통화하는 문제가 이미 몇 년째 발생했다고 한다. 그 중의 한 수련생이 현지 공안에게 장기간 감시를 받고 있었는데 납치된 동수들 대부분이 이 동수와 모두 연계됐거나 간접적으로 연계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현지 공안은 이미 이런 동수들의 내막을 장악하고 거의 동일한 시간에 납치했던 것이다.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이다. 개인이나 국부지역에 나타난 문제는 필연코 우리 정체와 관계 있다. 다시 말해서 누구에게나 다 관계가 있는 것이다. 자신은 마음속으로 이 도리를 알고 있지만 밖으로 구하는 사유가 습관이 되어 여전히 붙잡힌 동수의 문제라고 여기며, 그들은 느슨해지고 마비되고 자만했던 것이 아닌가? 어쩌면 그렇게도 안전을 홀시했단 말인가?
라고 생각했고 또 진정으로 착실하게 자신을 찾아보지 않았다. 장기간 감시당했던 그 동수에 의해 이번 문제가 야기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나 역시 그 동수와 접촉한 적이 있음이 떠올랐고, 나 자신이 연루되자 비로소 안을 향해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다보니 수많은 문제가 있었다. 나는 내가 안전에 아주 주의한다고 줄곧 여겨왔다. 겪은 마난도 많았고 교훈도 많았으므로 비교적 주의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예전의 일이었다. 안을 향해 찾으며 현재는 안전 방면에서 이미 아주 느슨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느슨함을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우리 이 정체도 아주 느슨해졌다. 다른 공간의 사악이 갈수록 적어지고 세인이 갈수록 우리를 이해해 주는 이 같은 큰 환경에서 서서히 수련의 의지를 느슨히 했고, 자신에 대한 요구를 느슨히 했다.
주요표현으로는 아래와 같은 몇 개 방면이다.
안전 면에서 이상의 몇 개 현을 제외하고도 기타 지방의 동수들에게도 전화통화에 주의하지 않고 서로 핸드폰으로 통화한다. 그러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이렇게 생각한다. ‘몇 년이나 핸드폰을 사용해도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두려울 게 뭔가? 관건은 마음에 있고 문제의 표면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마음이 바르면 되는 것이다. 늘 바깥에 나가 공중전화로 통화하기란 얼마나 시끄러운가!’
사부님께서는 여러 번 설법에서 이 법을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안전에 주의하라고 당부하셨는데 우리가 법의 요구대로 하지 않는다면 어찌 법을 실증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문제에서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이건 자신을 실증하는 게 아닌가? 자신이 옳다고만 여기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스스로 정념이 강하다 여기고, 남들이 두려워해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요행을 바라며 잠시나마 일이 발생기지 않은 것을 일하는 근거로 삼으면서 자신을 고집한다. 우리는 모두 법을 스승으로 삼는다고 말하는데 만약 이렇게 하는 것이 법에 있지 않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내가 생각하건대, 법리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관통됐고, 부동한 층차에 부동한 표현형식이 있다면 세간에도 한 층 사람의 이치가 표현된다고 본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최대한도로 속인사회에 부합되게 수련하라고 하셨다. 속인이 지금 연구해 낸 소프트웨어를 사악은 우리의 핸드폰을 감시하는데 이용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마땅히 정념정행하면서 그것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승인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이 우리를 감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틈을 탈 허점을 주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을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다.
지금 많은 방면에서 안전의식이 아주 미비하다. 어떤 법공부 팀은 공개적이고 협조인도 공개적으로 움직이며, 자료점도 공개적이다. 동수 간에 서로 수구(修口)하지 않아 누가 무엇을 하는지 모두 안다. 전화 통화도 서로 나누는데 있어서 조금도 감추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이는 정상인가? 어떤 자료점은 문전성시를 이루어 들락날락한다.
자료점은 적지 않게 건립되었지만 명혜망 요구에 도달하여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데, 명혜망과 단독 연계하는 자료점이 별로 없다. 어떤 지방에서는 모두 통일적으로 소모 자료를 공급하고 경제 능력이 있는 수련생은 돈을 협조인에게 주어 협조인이 통일적으로 구입하여 집에 보내 주는데 여전히 큰 자료점의 방식으로 계속 하고 있다. 이런 방법 역시 인위적으로 안전하지 못한 요소를 조성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길을 걸어내야 하는 바, 일을 덜려는 것은 사실상 자신에게서 수많은 수련 기회를 놓치는 것이며, 자신에게서 닦아버려야 할 수많은 사람마음을 덮어 감춘 것이다.
많은 동수들은 예전보다 지금 정진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마치 예전의 그런 열정이 없는 것 같다. 사실은 자기에 대한 요구를 느슨히 한 것이다. 왜냐면 자기가 해 놓은 그 일체가 다른 공간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잘하고 못한 것 역시 사람 여기에서는 현저한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수련생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할 만한 일은 다 하였고, 세 가지 일도 하고 있지만 열의가 다 식어 원래의 그런 열정을 제기할 나위도 없는데다가 사람의 게으름, 환경의 느슨함까지 겹쳐 서서히 자기에 대해 요구가 그다지 높지 않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속인의 것에 끌리어 텔레비전을 보고, 속인의 소설을 보며 속인 사이트를 본다. 대도무형(大道無形)의 형식 중에서 수련하기란 가장 어려운 것으로서 누구도 당신을 협박, 강박하여 수련하라고 하지 않으므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지 않는 그 자체가 바로 자신을 늦추는 것이다. 우리가 정체 상에서 해이하고 정진하지 못하는 것은 구세력 요소가 우리 이 지역에서 그렇듯 창궐하게 파괴할 수 있는 구실로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2009년 대 뉴욕 국제 법회 설법》에서 아주 많은 분량으로 안일, 늦춤, 소침 문제를 말씀하셨다. 이는 정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문제이고 또한 우리가 현재 돌파해야 할 문제이며, 반드시 뚫고 나가야 할 고비이다. 최후일수록 요구도 높고 최후에 이를수록 이와 같은 느슨한 환경에서 수련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정신을 차리지 않고 법공부를 잘 하지 않는다면 충족한 정념으로 엄격히 법의 요구대로 할 수 없을 것이고, 정법 진행을 따라가기가 아주 어려울 것이며, 안일, 늦춤, 소침 이런 물질에 끌려 대법제자가 짊어진 중대한 사명을 완수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법제자는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눈은 아무것도 보아내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법리를 볼 수 있다. 우리가 일하는 표준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대법으로서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우리에 대한 법의 표준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부동한 층차에서는 부동한 표준에 도달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조금도 모호함도 없으므로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 수련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라서 전진하지 않으면 후퇴’하기 마련이다.
많은 동수들은 여전히 일하는데 마음을 쓰고 있는데 나 자신을 포함하여서이다. 법공부나 교류회의에서는 많은 시간을 들여 담론하는 것이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일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것에 공력을 쏟지만 정작 심성문제는 아주 적게 말한다. 심성문제를 말하기만 하면 잠잠하다가도 잠시 후 또 일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물론 어떻게 일을 잘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하겠지만 마음을 닦는 것에 대해서 홀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지 않다가는 사람 마음으로 일하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형식적으로 일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모호하게 만들게 되며, 이렇게 많은 일을 했으므로 나는 지금 정진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천이 증명하다시피 일을 아무리 많이 해도 수련을 대체할 수 없으며 열정도 심성수련을 대체할 수는 없다. 누구든지, 얼마나 일을 많이 했든지 막론하고 장기간 대법의 요구대로 엄격히 자신의 심성을 수련하지 않으면 여러 방면으로 오는 문제와 손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중국 대륙과 같은 이런 가혹한 환경에서는 더욱 그러하다.”(《명혜편집부 문장 ㅡ 각성하라, 우리의 길을 바르게 걸어가자 》)
세 가지 일을 한다는 것은 세 가지 일을 잘한다는 것과 같지 않다. 날마다 법 공부를 견지 한다는 것은 법 공부를 잘했다는 것과 같지 않다. 우리는 하는 데만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마땅히 잘 하는데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심성문제와 관련되는 것이 아닌가?
“씬씽(心性)이 얼마만큼 높으면 공이 그만큼 높다.”(《전법륜》)
또 하나의 문제는 남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그 마음이다. 사부님께서는《맨해튼 설법》에서 이 문제를 명확하게 지적하셨는바 실질적인 것은 사부님께서 없애주신 것이다. 습관을 고치는 일 역시 참으로 어렵다. 모두 안을 향해 찾는다고 하는데, 다시 말해서 자신의 일과 자신이 인식한 일에서 안을 향해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일에서 아직도 안을 향해 찾는 것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마주친 일부 문제, 인식하지 못한 자신의 문제, 혹은 애타게 자신을 찾아보아도 아직 깨닫지 못하는 일에 대해 남이 지적해준다면 이는 사실 좋은 일이 아닌가? 무슨 방식이든 상관없이 체면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안으로 찾는다면 그는 꼭 제고될 것이다. 그러므로 더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남이 내 말을 한다 해도, 설령 뒤에서 나를 왈가왈부한다고 해도 오직 정확히 대하기만 하면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제고만이 비로소 제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지역은 수련생 지간에, 협조인과 협조인 지간에 장기적인 모순이 해결을 얻지 못하여 서로 비난하고 말하지 못하게 한다. “수련이란 바로 안을 향해 찾는 것이라 맞든 맞지 않든 모두 자신을 찾아야 하며 닦음이란 바로 사람의 마음을 닦는 것이다. 늘 지적과 비평을 받아들이지 않고 늘 밖을 향해 지적하며 늘 다른 사람의 의견과 비평을 반박하는 그것이 수련인가? 그것이 어떻게 닦는 것인가? 습관적으로 늘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고 여태껏 자신을 보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은 수련을 잘했는데 당신은 또 어떻게 하겠는가? 사부는 당신이 잘 수련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늘 가서 다른 사람을 보는가? 오히려 안을 향하여 닦지 않고 자신을 찾지 않는가? 자신에 대한 말을 꺼낼 때면 당신은 왜 좋아하지 않는가?”
“지금부터 시작해서 누가 다시 남더러 말을 못하게 한다면 그가 바로 정진하지 않는 것이며, 누가 다시 남더러 말을 못하게 한다면 그는 바로 표현한 것이 수련인의 상태가 아닌데 최저한도로 이 한 점에서 말이다. (박수) 누가 만일 이 하나의 고비에서 더 넘기지 못한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그럼 너무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련인의 가장 근본적이고 또한 가장 마땅히 제거해야 할 것이며 또한 반드시 제거해야 할 것으로 당신이 제거하지 않는다면 원만을 향해 걸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로스앤젤레스시 설법》)
우리 수련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주동적으로 안을 향해 찾으면서 선의적으로 수련생을 도와주어 우리의 환경이 진정으로 하나의 정토가 되게 하여 우리 정체의 제고를 빠르게 하자.
이번의 침통한 교훈을 받아들여 절대로 더는 늦추지 말자! 막바지 길을 잘 걸어가자.
문장발표 : 2009년 10월 1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0/10/2099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