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2008년 4월 16일】나는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른다. 하나의 네트워크 봉쇄 돌파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하려 해도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 많이는 수련생이 일깨워주며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야 새로운 것을 다운로드하여 원래의 것과 바꾼다.
얼마 전 나는 인터넷을 열 때 줄곧 6.62판 비둘기 네트워크 봉쇄 돌파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아주 빨랐기에 나는 마음속으로 그것을 좋아했고 마음에서 일념이 나오기를 내가 봉쇄를 돌파하는 선봉이며 사악이 어떤 봉쇄를 하든지 모두 소용이 없다. 너와 나는 모두 신이다. 모두 돌파할 수 있다. 너는 반드시 나를 도와 법정인간의 순간이 올 때까지 조사정법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이 말을 듣더니 나와 더욱 손발이 맞았다. 매번 인터넷에 접속할 때 한번 클릭만 하면 순리롭게 접속 할 수 있었고 줄곧 이렇게 사용했다.(쯔유먼 6.7봉쇄 돌파 소프트웨어를 다운한 적이 있으나 줄곧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수련생이 비치했다가 이후에 사용하라고 귀띔해주었다. 만일의 경우 사용할 때 일을 지체하지 말라고 했다.)
어느 날 기술을 아는 수련생이 와서 말했다. 나는 명혜망 에서 2008년 3월 4일 ‘쯔유먼 6.7을 사용할 때 다운로드 공구의 대리단자(代理端口)를 개변하는 것에 주의하라’는 기술을 다운로드했다. 내가 당신을 도와 설치해드리죠. 이때 그는 내가 아직도 쯔유먼 6.62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하면서 (지금 보면 가능하게 그가 기술을 잘 알기에 특별히 기술을 중시하는 것 같다) 말했다. 그렇다면 고치지 말라. 그러나 이후에 6.7을 사용할 때 다운로드 공구의 대리단자를 고쳐야 한다. 당신도 언젠가는 6.7을 사용해야 한다.(6.7은 현재 봉쇄돌파 기술 수련생이 연구해낸 최신 봉쇄돌파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지금 고치도록 하라. 나는 그때 내심에서 정말로 그것을 고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기술을 아는 수련생이 이렇게 말하자(이것은 기술을 아는 동수에 대하여 의지하는 사람의 마음이며 물론 여기에서 봉쇄돌파 기술의 중요한 작용을 경시하려는 뜻이 아니며 금후에 새 기술을 쓰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주요하게 여기에서 깨달은 약간의 법리를 말하고 싶다.) 생각해보니 기술을 아는 수련생은 항상 바쁜데 사용해야 할 때도 또 그가 수고해야 될 텐데 … 때문에 곧 고치도록 동의했다.
며칠 후 내가 인터넷에서 진상자료를 다운로드한 후 6.62 비둘기 봉쇄돌파 소프트웨어에 대하여 미련이 있어(이것도 정에 대한 표현으로서 응당 제거해야 한다) 나는 그것으로 한번 인터넷에 접속하고 싶었으나 결국 접속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며칠도 안됐는데 봉쇄돌파 능력이 그렇게 강하던 비둘기가 날수 없게 되었다. 그때 미혹에 빠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일에 관하여 난 깨달으려고 했으나 깨달을 수 없었다. 속으로 아주 간단하게 생각했고 속인의 이치로 놓고 볼 때 당신이 그것을 바꾸었는데 신임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이 있는 것으로 어찌 인터넷 봉쇄를 돌파할 수 있겠는가? 하여 나도 더는 그것으로 봉쇄를 돌파하려는 생각이 없었고 이 일은 이렇게 놓아버렸다.
요사이 나는 명혜망에서 수련생이 쓴 ‘기술에 관하여 교류한 글에 대한 생각’이라는 글을 보았다. 이 글은 내가 전에 사용했던 6.62 비둘기로 봉쇄를 돌파할 때 의심이 생겼던 일을 생각하게 했다. 나로 하여금 기술과 정념에 대하여 약간의 법리상에서의 새로운 체득을 가져오게 했다.
‘7․20’ 사악이 박해를 시작해서 중생으로 하여금 진상을 얻지 못하게 하여 구도 받지 못하게 했고 훼멸시키려 했으며 그러면서 네트워크에 대하여 봉쇄를 하였다. 우리의 봉쇄 돌파 기술을 하는 동수도 끊임없이 최신 봉쇄 돌파 소프트웨어 기술을 연구했다. 네트워크 봉쇄 돌파를 연구하면서 기술을 갱신하는 과정에서 이 소프트웨어는 이 기술을 연구하는 동수의 심성수련과 끊임없이 거기에서 마음의 경계를 제고하고 승화하는 것을 충분히 체현했다. 그리고 그들이 연구해 낸 봉쇄 돌파 기술을 사용하는 동수도 봉쇄를 돌파하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과정에서 기술을 책임진 수련생이 기술을 연구하면서 심성을 제고하여 표준에 도달하는 과정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기술을 연구하는 수련생이 연구해 낸 새로운 봉쇄돌파 기술을 신뢰하지 않고(기술을 연구하는 수련생을 신뢰하여 수련생을 해친다) 바로 무위로 가서 하며 구함이 없이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봉쇄 돌파 기술을 연구하는 수련생이 만들 때 부여된 그 강대한 에너지가 충분히 발휘될 수 있고 혹은 초상 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봉쇄 돌파 기술을 사용하는 동수도 자연히 조금의 인위적인 의식의 상태가 없으며 당신이 처해 있는 그 한층 법의 수련 층차에 부합되는 것이다. 이때 당신도 당신의 그 경계에서 신의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봉쇄 돌파 기술을 너무 중하게 본다면 나중에는 신뢰하게 되며 바로 집착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봉쇄 돌파 소프트웨어가 있게 되면 마치 보험에 든 것처럼 집착하게 되며 무엇이나 두려워하지 않는 정도에 이르게 된다면 아주 쉽게 다른 공간의 사악은 당신의 집착하는 틈을 타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새로운 봉쇄돌파 기술이라도 이 기술을 사용하는 수련생이 이 기술에 대하여 집착하는 사람의 마음이 있게 되면 봉쇄돌파 소프트웨어가 지니고 있는 봉쇄돌파 기술의 강대한 에너지는 곧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며 초상적인 발휘란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때문에 근본에서 사악의 네트워크 감시와 봉쇄를 타파하려면 더욱 우리 매개 대법제자의 정념을 필요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신념(神念)으로 형성된 정체를 이룬 거대한 신념의 마당인 것이다.
여기까지 깨닫게되자 나는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6.62로 줄곧 인터넷이 잘 되었던 원인은 바로 내가 그것을 사용할 때 가능하게 자신이 기술을 모르기 때문에 봉쇄돌파 기술의 작용에 대한 신뢰와 집착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그때 내가 6.7로 업그레이드 하지 않았어도 순조롭게 명혜망에 접속 할 수 있었음은 이 소프트웨어와 이 봉쇄돌파 기술을 사용하는 동수인 내가 서로 하나의 신의 상태에 처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자신을 과시하려는 마음이 아니며 당시의 상태를 설명하려는 것이며 소프트웨어로 하여금 충분히 또한 초상 적으로 자연스럽게 봉쇄를 돌파하는 작용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부님께서 다른 공간에서 해주신 것이며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있다”(《전법륜》) 오직 당신이 그 소원이 있고 그때의 심성이 당신이 처한 그 한 층의 법에 부합되면 되는 것이다. 그때 6.62를 놔두고 6.7로 업그레이드 한 후 6.62로 인터넷에 접속 할 수 없었던 것은 기술을 아는 수련생이 한마디 한 후 자신이 기술을 아는 수련생을 숭배하는 사람의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비록 그때 말을 꺼내지 않았으나 행위에서 이미 6.7기술로 업그레이드하려고 하였던 것이며 그것에 대하여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하여 이때에는 이전의 그러한 신의 상태에 처하여 있지 않기에 6.62도 자연히 신의 상태에 처하여 있지 않게 된 것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나는 바로 사부님께서 《정진요지》〈왜 보이지 않는가〉의 말씀이 떠올랐다. “깨달음(悟)이 먼저이고 보는 것은 나중이라, 마음을 닦고 업을 제거하여 본성이 나와야만 비로소 볼 수 있다. 그러나 상사(上士)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깨달음에 의해 원만을 이룬다.” 나는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깨달음’은 바로 ‘바른 믿음’이며 바로 ‘정념’인 것이다. 수련인은 오직 늘 이 바른 믿음만 있다면 원만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수련은 바로 “세상의 사람은 모두 미혹”(《홍음 1》〈집착을 내려놓자〉)된 환경 속에서 수련하고 있으며 “깨달음에 의해 원만을 이룬다.” 바로 믿음에 의해 원만을 이룬다. 수련생이 글에서 말했다시피 “대법제자의 법에 대한 바른 믿음이야말로 사악의 각종 박해를 타파하는 근본인 것이다.”
문장발표: 2008년 4월 1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 정법수련 > 추천문장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8/4/16/1765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