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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워크 봉쇄에서 생각되는 것들

글 /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6년 6월 22일】 최근 대부분 지역에서, 동수들이 인터넷에 접속하려할 때 네트워크가 봉쇄되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이는 보편성을 띄는 문제이며 우리 대법제자가 정체에 있어서 어떤 마음이 있어 낡은 세력에게 틈을 타게 했는지 정말로 안을 향하여 잘 찾아보아야 하는 문제이다. 사부님께서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예전에 말했었다.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된 일체의 일들은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 비록 낡은 세력이 존재하여도, 당신들에게 그 마음이 없다면, 그것들은 방법이 없다. 당신의 정념(正念)이 매우 충족하다면 낡은 세력은 방법이 없다.” 우리 매 사람은 모두 안을 향하여 찾아야 하며 정체제고와 승화를 가져와야 하며 사존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필자는 아래 몇 개 방면을 생각하게 되었다.

1. 신사신법, 경사경법은 우리 매개 대법제자의 근본의 근본이며 입으로만 말할 것이 아니며 응당 내심에서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일사일념을 모두 법에 용해시켜야 하며 그렇게 되려면 법공부를 잘해야 하는데, 이는 일체 대법일을 잘하는 근본이다. 어떤 수련생은 정념이 강하고 심태가 순정한 정황 하에 인터넷에 접속하면 종래로 봉쇄된 적이 없었다. 이는 신사신법, 경사경법의 정념과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밍후이왕은 종래로 봉쇄당한 적이 없으며 사부님께서 허용하지 않는 것이며, 밍후이왕은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열어놓은 것이다.

2. 근본 상에서 낡은 세력의 일체를 부정해야 한다

한번은 발정념할 때 보았는데, 낡은 세력이 우리 매개 대법제자에게 계통적인 배치를 하였으며 빼곡하고 아주 질서가 있었다. 때문에 법공부를 잘하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은 매우 관건적이며 중요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사일념은 모두 법속에 용해되어야 비로소 우리가 해야할 일을 잘할 수 있고 근본상에서 낡은 세력의 배치를 완전히 부정할 수 있다.

동수들의 교류중에, 어떤 수련생은 모 지역의 사악이 아주 창궐하며 모모 수련생은 사악의 중점대상이며 여러분은 주의해야 한다고 했고 당사자도 그렇게 여겼다. 이것은 이 방면에서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한 것이 아닌가? 당신이 사악을 크게 보면 자신을 작게 보는 것이다. 당신은 모 수련생이 사악의 중점대상임을 승인했고 이것은 이 방면에 있어서 낡은 세력의 배치를 승인하고 이러한 상태가 존재하는 것을 승인한 것이 아닌가? 사악의 자료실에 대법제자의 정보자료가 장악되는 것은 아니될 말이며 그것들은 정말로 자격이 안 된다! 우리는 응당 근본상에서 완전히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해야 하며 낡은 세력이 배치한 일체에 대해, 우리는 모두 승인하지 말아야 하며 모두 전반적으로 부정해야 한다.

물론 어느 때든지 우리는 모두 안전에 주의해야 하며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과 반박해를 첫자리에 놓아야 한다. 어떤 수련생은 모모 지역에서 얼마나 되는 수련생을 붙잡았고 어떤 수련생은 이것은 고험이며 정상이라고 말한다. 사부님께서는 《도항》에서 말씀하셨다. “우리의 대법을,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어떠한 사람이든지 그를 검증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은 우주 속의 일체 생명을 포함하여 모두 그가 개창한(開創)한 것이며, 그가 창조하고 육성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도 그를 고험(考驗)할 자격이 없다.” 어떤 수련생은 어떤 일에서 잘하지 못했고 사부님께서 점오하셔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고집하는데 낡은 세력은 비로소 박해할 구실이 있게 되는 것이다.

3. 사람의 일체 관념을 버리자

네트워크 봉쇄가 가강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사악이 우리에게서 아직 사람의 관념을 발견하였거나 버리지 못한 틈을 이용한 것이 아닌가? 인터넷에 접속할 조건이 안 되는 수련생은 아직 기다리고 의거하는 마비된 심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수련생은 아직 두려운 마음과 자신이 ‘기술을 안다’는 심리와 소위 ‘과학’의 관념과 인간세상의 이치에 속박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4. 향수할 것을 추구하고 안일한 마음을 구하는 것도 우리가 수련에서 제고하는 것을 영향 주는 장애이다

사부님의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문: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대법제자는 돈을 모을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사부: 또 극단으로 나간다. (뭇사람 웃음) 당신 생각에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면 무엇을 하도록 하라. 당신이 나는 돈을 모아 사업을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하도록 하라. 왜냐하면 미래의 수련은 바로 이처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겠다고 한다면, (뭇사람 웃음) 그럼 원만할 수가 없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강한가? 그러나 정말로 원만할 때 당신은 또 그러한 것을 버릴 수 없는가? 정말로 버릴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때의 사상은 신의 사상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것을 생각해서는 뭘 하겠는가? 아무것도 상관하지 말라. 사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법정인간의 최후일 경우, 일순간에 무엇이든 모두 해체된다. 무슨 돈인가? 종이마저도 없다. (열렬한 박수) 하지만 그것 역시 당신들과 관계가 없다.”

어떤 수련생은(물론 나도 포함) 사부님의 설법을 읽고난 후 단편적으로 이해한다. 나중이면 아무것도 쓸모가 없는데 향수하자, 일상생활에서 고(高)소비를 추구하며 가장 좋은 것을 사서 먹고 가장 비싼 옷을 사 입으며 집에 가장 좋은 가구, 가전제품을 설치하자 라고 하면서 돈을 물쓰듯이 한다. 브랜드를 추구하나, 대법의 자료에 쓸려고 할 때에는 오히려 아주 인색하다.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삼계내의 분자입자로 구성된 것이 아닌가? 그러나 법리상에서 말할 때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며 얻으면 곧 잃어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일체도 모두 德(더)로 바꾸어 온 것으로서 德(더)를 지켜야 한다는 것도 말할 나위가 없게 된다. 한 속인으로서 사회에서 안일함을 추구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는 것은 속인의 상태이다. 그러나 한 연공인이라면 반드시 대법의 이치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야 하며 세간의 일체에 대하여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인간세상의 안일한 생활에 마음을 둘 수 있겠는가?

5. 위사위아(爲私爲我)의 마음을 깊이 파내야 한다

낡은 우주의 이치는 위사위아이며 우리가 대법을 수련함은 바로 낡은 우주의 이치에서 탈태하여 나오는 것이며 무조건적으로 대법에 동화해야 되는 것이다. 위사위아의 마음은 어떤 때에 아주 은폐되어 있어 발견하기 매우 힘들며 심지어 이미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 수련생은 교류할 때 자신을 위하여 변호하며, 어떤 일을 상의함에 쟁론이 끝이 없고, 일에 봉착하여서는 밖에서 먼저 찾으려 하며 대법으로 다른 사람을 요구하나 자신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동수들이 함께 교류할 때 다른 수련생이 어떤 일에서의 인식이 낮은 것을 보고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수련을 잘했고 높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이 자신을 지적하여 편하지 않다 해서 심리가 평형되지 않는 등등은 모두 자아의 마음이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상은 필자의 옅은 인식이며 부족한 점이 있으면 자비롭게 지적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경문 《불성무루(佛性無漏》의 한 단락 설법을 되새기고 싶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을 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을 위하는데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대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

문장발표 : 2006년 6월 2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6/6/22/1310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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