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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에 대한 수련을 다시 논함

【명혜망 2009년 9월 3일】선은 부동한 층차, 경계의 표현이 있다. 우리는 어떠한 현실에 직면해도 선이 전도되어선 안 된다. 응당 ‘법을 스승으로 하고’ 득실을 따져야하며 선의 수련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1, 노인들은 친정에 너무 집착해선 안 된다

모두 알다시피 부모에게 요도하고 자녀를 인자하게 대하는 것은 중화민족의 전통적인 미덕으로써 우리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적당한 선에서 멈추어야 하지 과분하게 집착하지 말아야한다. 속인 사화에서 무슨 일이든 과분하게 극단으로 가면 모두 부정적인 면이 돌출하게 된다.

내가 아는 60여세의 동수 갑은, 개인 수련시기에 수련을 매우 착실 하게 했으며 정법수련시기에 전 몇 년은 세 가지 일도 비교적 잘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도리어 매우 소침해졌는데, 원인은 반신불수로 누워있던 시어머니를 보살피다가 사망한 후 잇따라 또 몇 년간 병으로 누워 혼자 생활할 수 없는 시아버지를 봉양해야 했다. 잠시 국을 끓이고, 잠시 약을 달이며, 잠시 잔등을 안마하라 하고, 또 몸을 뒤척 거려야하고, 물을 마시게 하고,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다. 3분은 이 일을 하고, 5분은 저 일을 하며, 10분도 멈추기 힘들었다. 그러나 수련생은 몇 년을 하루와 같이 마찬가지로 살뜰하게 보살폈다.

이렇게 해 어르신은 만족해 하면서, 며느리에게 강렬한 기대심리가 산생해서 아들이 보살피면 불만이고 손자가 보살펴도 안 되었다. 동수 갑은 할 수 없이 밤, 낮으로 돌면서 혼자 도맡아 했다. 몇 년간 한 번도 편안한 잠을 자보지 못해 피로가 극단에 달했으며 원기가 쇠퇴하여 생기가 없었다. 대법의 책을 보려 해도 자기도 모르게 졸고 가부좌를 하고 연공하다가도 잠이 들었다. 수련 중에서 세 가지 일을 어떻게 했는가 생각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동수들은 그의 이런 상태를 보고 그를 위하여 매우 조급해 했으며 그를 찾아 법리상에서부터 교류를 했지만 그녀는 조금도 개변하지 못했다. 그녀는 편면 적으로 자신의 인식을 강조하면서 수련인은 효도를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선을 수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하면서 도리어 대법제자로서 아직도 더 많은 사람에게 더욱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사명을 홀시하고 자신을 완전히 개인 수련시기의 상태에 몸을 두었다.

당연히 이 효도도 선의 일종 체현이며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응당한 것이다. 그러나 집착이 형성되지 말아야하고 응당 극단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 노인 본신이 매우 높은 퇴직 연금을 받고 있고 동수 또는 남편, 아들도 상당한 수입이 있었다. 사람을 고용해 돈을 주면서 노인을 보살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과중한 부담을 제거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자신의 남편과 아들에게 노인을 보살피는 일부분 책임을 분담하게 하지 않는가? 그렇게 효도를 하면 더욱 전면적이고 크고 작은 일에 모두 지체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같은 환경에 처한 동수 을은 사람을 고용하여 돈을 주는 방법으로 반신불수가 된지 4-5년이 된 시아버지를 보살피게 했는데 마지막에 노인은 매우 만족스럽게 인생의 마지막 길을 갔다. 아울러 자신이 친히 적게 보살폈다고 하여 효심을 나타내는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속인들은 늘 ‘쌍방에 유리하면 취중하고 쌍방에 폐단이 있으면 경한 것을 취하라’고 말한다. 하물며 이것 역시 하나도 잃지 않고 양쪽 모두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관계가 중대하고 사명이 산과 같은데 머리가 응당 청성해야 한다.

여러분은 사악에게 박해를 받아 감옥, 노동 수용소에 감금 된 것은 일종 박해이고 병업에 시달려 세 가지 일을 하지 못하는 것도 다른 일종 박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동수 갑의 이런 상태는 역시 같은 효과를 접수하지 않았는가? 대답은 긍정적이다. 사부님께서는 『청성』이라는 경문에서 “낡은 세력은 모든 대법제자에 대하여 그것들의 것을 한 세트 배치하였는데, 만약 대법제자가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바로 틀림없이 낡은 세력의 배치에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고 엄숙하게 지적하셨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한 것인가? 당연히 세 가지 일을 잘하는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부 가할 수 없고 도의상 거절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는가 아니면 낡은 세력의 안배에 따라한가 하는 것을 가려내는 분수령이고 시금석이다. 원칙적인 시비 문제에서 꼭 하나의 청성한 두뇌가 있어야하며 정확한 선택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노인들이 아이에 대한 관심, 애호의 정은 곧 자애로운 마음으로 과분하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일종 집착을 형성하게 된다. 동수 병은 신변에 6-7세의 손자를 데리고 있다. 손자의 의식주행, 어린이 집에 가고 오는 것을 모두 관할하여 아들과 며느리의 부담을 경감했다. 그러나 그가 손자에 대하여 도리어 “입에 물면 녹을 가봐 두렵고 머리위에 이면 놀랄까봐 두려워한다.”는 처지에 이르렀으며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삼 년을 보지 못한 거 같다.”고 한다. 옷을 입혀주고 밥을 먹여주며 밤중에 늘 손자에게 얼굴을 맞대고 자며 손자가 팔을 벌리고 다리를 뻗는 것까지 다 알며 잠자는 자세 혹은 이불이 마땅하지 않아도 즉시 조절해준다. 손자를 섭섭하게 할 까봐 두려워 늘 잠을 설쳤다. 어떤 때 아이의 부모가 데려다 하루 밤 지내는 것마저 아쉬워했다. 손자에 대한 정은 갈수록 중하여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할 때도 정신이 가끔 다른 곳으로 팔렸으며 일정한 정도에서 사람을 구하는 일에 영향을 주었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수련자 금기』에서 우리들에게 “육친정(親情)에 집착함은, 기필코 그로 인해 지치고 얽매이며 마에 사로잡히게 됨이라, 그 정사(情絲)를 잡아 쥐어 일생토록 방해받으니, 나이가 들면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대법수련자로서 우리는 정말 응당 대법으로 잘 대조해야하며 자신의 집착을 인식하고 버려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에 얽매여 어찌 승화하며 어찌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는가!

2, 중 청년은 속인의 업무에 과도하게 빠져서는 안 된다.

정부 부서에서 일하는 동수 정은, 업무에 충성을 다하고 무사봉헌 할 정도였다고 들었다. 다른 사람은 출근하여 적당히 일을 얼버무리는데 그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했다. 다른 사람은 주말에 휴식 하는데 그는 주말에도 출근했다. 그가 직무와 책임을 다하고 일을 많이 하고도 보수를 더 요구하지 않는 행위는 지도자의 신임과 호평을 받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책임 내에 속하지 않는 일도 그에게 밀어 주었으며 심지어 점심, 저녁휴식 시간에도 계속 일했고 회사에 온 손님을 동반하여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카드놀이……(지금 사당의 기관 사업단위에서는 이런 ‘연회’ 매우 많다) 이 수련생은 직무에 충성을 다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고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없으며 마작 놀이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직무에 충성을 하지 않는 것이며, 일을 잘하지 못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의리를 중시하지 않는 것이며 인지 사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진흙에서 나왔지만 물들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이런 환경에 처한 동수 당신도 낡은 세력의 다른 일종박해형식 중에 있지 않는가? 당연히 일을 잘하는 것은 본직이다. 그러나 무한도로 심지어 대법의 법리 요구에 어긋나는 것도 아끼지 않고 자신의 “풍격”을 표현할 수 없다. 만약 이렇게 원칙을 가리지 않고 대법의 수련을 어떤 위치에다 놓았는가? 당신 인생의 진정한 선택은 무엇인가? 응당 청성 청성하라. 그렇지 않으며 기원을 잃으면 후회해도 늦는다.

3, 우리는 최대한 선한 일로 자비롭게 사람을 구하자

사부님께서는 >에서 우리들에게 “선의 최대 표현은 바로 자비이다. 그것은 거대한 에너지의 체현이다. 그는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모두 해체할 수 있다.”고 명확히 알려주셨다, 그렇다면 대법수련에서 자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사부님께서『전법륜』중에서 “선을 수련하기 때문에 대자비심(大慈悲心)을 수련해 낼 수 있는데, 자비심이 나오기만 하면 중생이 모두 고생스러움을 보게 되므로 곧 소원을 품어 중생을 널리 제도하려 한다.” 라고 지적 하셨다. 사부님께서 개인 수련시기의 학원에게 설법 했지만 이 법은 무한 층차의 내함이 있으며 지금 정법시기에 처한 제자에 대하여 더욱큰 지도의의가 있다. 그러면 최대한 선의 자비를 오늘 나아가서 금후에 사람을 구하는 행동에 수행해야한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이성』에서 우리들에게 “이지(理智)로써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써 진상(眞象)을 똑똑히 말하고, 자비로써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救渡)하는 이것이 바로 각자(覺者)의 위덕(威德)을 세우는 것이다. “고 요구하셨다.

우리 지역에 한 무리의 이런 동수들이 있는데 그들은 어떤 때 각자의 방식으로 대법을 실증하고 세인을 구도하며 어떤 때는 정체에 원용하여 대법을 실증하고 세인을 구한다. 나의 신변에 이런 노년 동수 한분이 있는데 개인 수련시기에 때려도 되받아 치지 않고 욕해도 말대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시로 일마다 안으로 찾아 일부 명리, 정의 대관을 매우 잘 넘었으며 수련을 매우 착실하게 했기에 십 여 년 전에 10 여 센치 되는 간암이 일찍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며 사부님을 협조하여 세인을 구도하는 과정에서 젊은이처럼 사실 젊은 동수보다 더 잘했다. 그는 늘 한마디 말을 하는데 “개인의 일은 아무리 커도 작은 일이고 사람을 구하는 일은 아무리 작아도 큰일이다”고 한다. 몇 년간 이렇게 말했으며 이렇게 했다. 누구도 그가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얼마나 되는 길을 뛰고 진상자료를 얼마나 배포 하고 사당의 독해를 받은 세인을 얼마 구도 했는지 헤아릴 수 없다. 그의 몸에서 우리는 대법제자의 형상을 보았고 그의 행동에서 우리는 대선대인대지대용의大善大忍大智大勇) 자비한 넓은 흉금을 보았다.

우리는 가정과 업무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양호한 형상을 수립하며 또 고집하지 말아야한다. 심지어 가정과 업무의 집착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부동한 경계의 선을 잘 수련하여 자비로 사람을 구하는 최대 선의 일을 확보하고 잘 해야 한다.

개인의 인식이므로 법리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은 것을 자비로 시정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2009년 9월 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9/3/207630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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