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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수련생 문장과 대륙 수련생 문장의 차이를 읽고 생각난 것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8월 23일】 사부님의 《2009년 대뉴욕 국제법회 설법》을 읽은 후 사부님께서 대륙 수련생들은 아직도 당문화가 매우 엄중하다고 하신 말씀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리 믿기지 않았다. 대륙 수련생들도 이미 십수 년 수련을 했고 《해체 당문화》도 학습했는데 어찌 아직까지 당문화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사부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이상 우리는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해체 당문화》를 다시 한 번 학습 했다.

며칠 전 나는 명혜망을 둘러보다가 한 수련생이 쓴 《선을 권하는 편지》란 문장을 보게 되였다. 몇 단락 읽으니 마음이 편안치 않았다ㅡ계속 이어진 반어법, 사람을 내리누르는 기세, 말에는 도리가 있으나 사람들이 보고 나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단번에 《해체 당문화》 에서 나오는 구절이 떠올랐다. “중국인들은 말할 때 반어법을 사용하기 좋아하는데 이 역시 당문화 중의 ‘투쟁’ 유전자의 체현이다.”

나도 전에 반어법을 쓰면 더 힘이 있다고 여겨 아주 만족감을 느끼면서 반어법을 즐겨 사용했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쟁투심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어쩐지 진상을 알리는 효과가 좋지 못해 나는 이렇게 도리 있게 말하는데 속인들은 왜 듣지 않을까? 하고 생각 했었는데 원래 나의 쟁투심이 속인을 밀어버린 것이다.

이어서 나는 또 한편의 선을 권하는 편지를 읽었는데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정말 잘 썼다고 찬탄했다. 문장은 간결하지만 날카로웠고, 전편의 흐름은 바르고 온화했으며, 구절마다 수련인의 선과 자비가 스며들어 있었는데 나는 이 편지를 보자 해외 수련생이 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문장에는 대륙 수련생들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반어법, 대구법을 쓰지 않았으며, 문장을 잔뜩 늘어놓아 길고 지루한 감이 없었고, 추호의 쟁투심도 없었다. 있는 것은 다만 내심으로부터 우러난 당신을 위하는 선(善)뿐이었다.

대륙 수련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당문화 속에 잠겨있기에 스스로 간파하기가 아주 어렵다. 한 가지 기억나는 일이 있다. 2001년 나는 가족들과 함께 브라질 사람이 경영하는 부페식당에 가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외국인 세 명이 우리 식탁 앞에 와서 앉으면서 서류가방을 내려놓더니 우리더러 좀 봐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 사람은 함께 가서 자신들이 먹을 음식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당시 이 세 외국인은 어찌 안면도 없는 사람에게 서류 가방을 봐달라고 하는가 하고 여기면서 그들이 정말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또 좀 있다가 무슨 물건이 없어졌다고 하면서 우리를 모함하지는 않을까 하여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세 사람이 돌아와 가방을 찾아간 후에야 마음이 놓였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세 외국인의 표현이야말로 정상적인 인류사회의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대륙사람들(수련생을 포함)은 당문화의 중독이 매우 깊다. 우리 모두 당문화 독소의 찌꺼기를 철저히 제거하고 더욱 순정한 심태로 세인을 구도하자.

문장발표 : 2009년 8월 2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9/8/23/2069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