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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만 경찰 대법제자가, 대륙여행단이 오는 기간에 법을 실증한 과정

– 2009 북대만심득교류회에서 대만 키룽 대법제자 발표문

[명혜망 2009년 8월 28일] 나는 키룽 경찰국 직원이다. 3월 14일부터 5월 16일까지 1만 2천 명이 중국대륙으로부터 9개의 그룹으로 구성되어 대만을 여행차 왔다. 그들은 아침에 타이페이로 갔다가 저녁에 야시장을 방문하기 위해 키룽으로 돌아왔다. 키룽의 파룬궁수련생들은 항구와 시장에서 관광객들을 만났다. 수련생들은 중국에서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폭로할 기회를 귀중히 여겼다. 당시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선택이었는데, 길 옆에 서있는 동수들이냐 아니면 동료 경찰들이냐 였다. 이것은 내가 갖고 있던 단점, 두려움과 집착을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키룽 수련생들은 파룬궁에 대해 진상하는 좋은 기회를 찾았다. 중국인 단체들은 긴 보도를 따라 항구국에서부터 야시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그들은 현수막, 전시대, 연공시범과 대법음악을 무시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수련생들에게는 박해를 폭로하고 대법을 홍보하는 기회였다.

수련생들은 또 많은 교란과 마주쳤다. 수련생들이 관광루트를 따라 현수막을 전시했기 때문에 대만경찰의 방해를 받았다. 대만과 중국 사이의 정치적 긴장 때문에 경찰은 굉장한 압력을 받았다. 그들은 수련생들이 비이성적으로 항의하고 관광객들을 다치게 할 수 있어 긴장을 더 악화시킬까봐 두려웠다. 경찰은 수련생들에게 “공공장소에서 모여 집회를 하려면 허가신청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들은 수련생들이 길가에 늘어선 가게 소유지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승인서를 받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수련생들이 도로는 공공재산이어서 가게주인들로부터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인내심 있게 설명해도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현수막 진열을 금지당하게 되었다. 저녁에, 두 수련생들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쓴 셔츠를 입고 야시장을 걸어 다니고, 경찰들은 그들을 따라다녔다. 밤에 우리는 현수막을 펼치고 연공을 했는데, 경찰들은 우리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들은 이미 아침에 현수막을 펼쳤다. 우리 밤에는 이렇게 하지 말자.”

우리는 파룬궁에 대해 진상할 우리의 기회를 분열시키려는 모든 교란에 대해 우려했다. 한 수련생이 간단한 현수막으로 평화적으로 청원하는 것은 무슨 법적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이것은 역시 우리의 씬씽(心性)제고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경찰이다. 그래서 나는 동료들에게 이런 활동 뒤에 있는 의도를 말해주었다. 나는 나의 책임이 크며 잘해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수련생들이 왜 현수막을 전시하고 중국인들에게 박해진상을 알리려고 하는지 그것을 설명하는 편지를 썼다. 나는 이것을 백 개가 넘는 경찰서로 보냈다. 그 후 중국관광객들의 대만 방문을 책임 맡은 사람이 내게 “파룬궁은 평화롭고 이성적이라는 것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텔레비전 기자들이 관광객들의 도착을 촬영하러 나왔다. 카메라는 “대만은 중국관광객들을 환영한다”라고 쓴 현수막을 피하고, 신문은 파룬궁수련생들이 이 관광객들의 대만 방문을 반대한다고 보도했다. 그들은 또 수련생들의 활동이 불법이라고 힌트를 주기도 했다. 이를 알게 되자 나는 바로 매체대표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나의 우려를 표시했다. 이메일에서 나는 특히 뉴스매체에게 “수련생들은 진실로 중국대륙인들의 대만방문을 환영한다. 그리고 그들이 자유의 나라에 왔을 때 파룬궁에 대한 박해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그들이 낸 보도를 시정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더불어, 동수들 역시 방송국에 전화를 하고 그들이 정정기사를 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날 오후에 그들은 다른 활동을 촬영하고 그들이 앞서 냈던 보도를 정정했다. 나중에 나는 내 편지가 책임 있는 부서에 보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에는 우리에게 비슷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파룬따파를 진실되지 않게 보도하는 것에 마주하여 우리는 무기력했고, 부정적인 매체보도가 짧은 시간에 대량의 사람들을 오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내 경험으로는, 파룬궁에 대해 왜곡 보도된 것에 대해 우리는 바로 반응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길게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인도되기 때문이다.

다음 관광객 그룹이 오기 전 날 저녁, 나는 특정 지역을 책임진 경찰서를 찾아갔다. 나는 경찰서장에게 파룬따파, 박해, 수련생들이 고통당하는 혹형 등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9평 공산당’을 가지고 갔다. 다음 날에도 수련생들에 대한 경찰관들의 태도가 여전히 불친절했다. 내가 경찰들과 이야기하려고 했을 때 상사가 나를 제지하며, 나도 역시 경찰관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것은 그들이 내게 동수들이냐 아니면 동료냐의 사이에서 내게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수련생이기 때문에 내가 파룬궁에 대해 진상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의 두려움, 명(名)과 개인 이익에 대한 집착이 내가 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중단시켰다. 나는 거리에 있지 않아도 될 일을 했다.

수련생들은 진상하기 위해 경찰서로 갔다. 그들도 불학회의 사람들과 사회적 지위가 있는 수련생들을 초청해서 고위 경찰들을 방문했다. 하지만 이 과정은 너무 느렸다. 우리는 약속이 필요치 않은 편지를 쓰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우리를 만나려고 하지 않는 경찰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고 전화를 걸 필요도 없었다.

키룽 수련생들은 경찰 고위층에게 파룬궁에 대한 진상편지를 썼다. 그들은 또 경찰이 퍼레이드와 집회법을 남용하기 위해 그런 대형 파견부대를 동원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심정을 전달했다.

다음 날, 경관들의 태도는 완전히 반전되었고 우리의 관계는 따뜻했다. 그들은 단지 교통정리할 경찰들만 보내겠다고 말했다. 법을 실증하는 수련환경이 생긴 것이다. ‘9평 공산당’은 사람들에게 중공이 정말 무슨 물건짝인지 보게 하는 대단한 도구이다. 나는 종종 이 책을 동료나 상사들에게 준다. 중국 관광객들이 왔을 때는 수련생들 역시 이 책을 임무중인 경찰들에게 주었다. 나중에 나의 상사 중 한 명이 나에게, 그가 이 책을 세 번 보았다고 말했다. 한 동료는 내게 그가 이 책을 늘 갖고 다니며 기회만 있으면 본다고 말했다.

나는 아침에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저녁 활동에 참가했다. 야시장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원래 전단지와 브로슈어를 주기로 결정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받지 않았다. 나중에 우리는 중공이 그들에게 파룬궁수련생들에게서 자료를 받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좋지 않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다고 들었다.

우리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했는지 확실히 하기 위해, 나는 여러 진열대를 만들었다. 그런데 한 수련생이 반대하며 경찰이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를 막지 못했다. 경찰은 우리를 중지시키는 대신 오히려 미소 지으며 우리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한 동료가 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말했다. “나는 당신을 대단히 존경한다.”

관광객들이 그곳을 방문하리라는 것을 알고 키룽 문화사무국 밖 광장에서 연공시범을 했다. 중국 관광객들이 우리를 지나칠 때, 그들 일부는 눈을 크게 뜨고 우리를 쳐다 보았고, 일부는 속삭였고, 일부는 소유하고 있던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정치적 압력 때문에 문화사무국은 우리에게 연공시범을 하지 못하게 했다. 우리는 사무국에 편지를 쓰고 이곳 관리들을 방문했는데, 환경은 더욱 나아졌다. 사무국의 책임자는 수련생들에게 다가와서 그가 ‘9평’을 읽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경찰, 문화사무국과 매체의 태도는 관광객들이 도착하기 시작한 후 짧은 기간 내에 극적으로 바뀌었다. 진상은 강력한 도구이다. 나는 진상하는 형식은 문제가 아니라고 이해한다. 우리는 교란에 당면하는 즉시 경찰, 매체와 사무국에 반응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하고 편지를 썼는데, 결과는 좋았다. 나는 문제와 모순이 일어나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다만 진상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을 구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을 제고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가 일어날 때 불평하지 말고 감사해야 한다.

지금 나는 한 경찰로서 나의 배경에 대해 약간 말하겠다. 인권성화가 키룽에 도착했을 때, 나는 교통질서를 담당했다. 나는 또 활동에서도 책임을 졌다. 관광객들의 방문을 위해 서류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한 상사는 내가 내 직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 중국관광객들이 대만에 왔다. 나는 일하는 중에 진상을 알렸고 일이 끝난 후에는 대법활동에 참가했다. 나는 나의 동료가 왜 내가 내 직업을 해칠 수 있는 일에 그처럼 열성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 중국 관광객들이 중국으로 돌아간 후 나는 상사의 지위로 승진되었다. 나의 승진은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쇼크였다. 나는 한 수련생에게 일어난 일은 일반사람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내가 새로운 지위로 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잘 알려진 라디오방송국 기자가 전화를 하고 나를 인터뷰하고자 했다. 주제는 대만과 중국경찰 사이의 비교였다. 기자는 내게, 방송은 중국에서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새로운 직위로 승진된 후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파룬궁에 대한 진실을 알고자 하는가에 놀랐다. 그녀는 중국경찰은 파룬궁수련생들을 박해하고 대만에서는 경찰이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일은 나로 하여금 한 수련생에게는 우연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도와 주었다.

경찰들은 중국에서 중공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과 파룬궁 수련생들이 은밀하게 박해받고 있다는 것을 믿었다. 그들 중 일부는 전혀 구도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들을 불쌍히 여긴다. 나는 한 수련생이 되었고 신성한 길을 걷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운아다!

나는 사부님의 설법 《2009년 대뉴욕국제법회 설법》으로 수련생들을 고무격려하고자 한다 : “만약 지금 내가 이 일을 결속한다면, 미래의 생명이 훼멸되는 것이 너무도 많게 된다. 내려와 법을 얻은 그런 사람과 법을 얻고자 온 사람들은 헛되게 온 것이 된다. 당초에 이러한 생명들은, 그가 지금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지 그들은 모두 신이었으며, 이 속이 이처럼 두려운 것을 보고도 감히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왔으며, 과감하게 왔다. 무엇 때문인가? 그들은 정법에 대해, 대법에 대해 희망을 품고 아주 확고한 신념으로 왔다. 그가 현재의 표현이 어떻든지, 역시 당초를 보아야 하며, 역시 역사를 보아야 하고, 역시 이 생명의 과거가 어떠했는지를 보아야 하는데, 가능하면 그들을 구도해야 한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발표일자: 2009년 8월 28일

문장분류: [심득교류]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html/articles/2009/8/28/110381.html
중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8/19/2067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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