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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을 응당 태워버려야 하는가”로부터 수련을 배워냄을 담론

글/일언(一言)

【명혜망 2009년 8월 17일】

다년간 대륙의 일부 수련생들은 줄곧 “《명혜주간》을 태워버릴 수 있는가?”하고 질문했고 어떤 사람은 줄곧 가정환경을 바로잡지 못함으로 인해 어려워했고 또 어떤 사람은 다른 곤란을 말했다. 여기에서 《명혜주간》을 어찌해야 좋을 지에 대한 일에 대해 교류하고자 한다. 어떻게 사로(思路)를 바꾸어 수련의 기점에서 문제를 보고 근본에서부터 문제를 보아 매하나의 일에서 수련하여 자신을 제고하고 사람을 많이 구할 수 있는가?

이 주간에 대한 일을 가지고 예를 들어보자. 어떤 수련생은 다년간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고 자료점에서 자신에게 제공하는 《명혜주간》에만 의지하고 있다. 시간이 길어지자 주간도 자연히 아주 많이 쌓이게 되었다. 이에 대해 가족들도 압력을 느끼는데, 이에 수련생은 늘 빨리 태워버리자고 하거나 어떠어떠해야 한다고 한다. 사실 우리가 매 한 가지 일을 고려할 때면 모두 출발점과 목적의 문제가 있으며 모두 이 일 중에서 자신을 수련해야 할 문제가 있다. 만일 출발점이 수련이고 정말로 남을 위해 생각한다면 다년간 쌓인 《명혜주간》을 대함에 곧 근원에서부터 왜 이렇게 많이 쌓였는가? 생각해볼 수 있다. 또 이 내용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즉 이런 자료에는 동수의 얼마나 많은 감당이 있었는가 하는 등으로 생각이 간다면, 쌓인 결과에 눈길을 두고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위한 ‘출로’를 찾는 것에 둘러싸이진 않을 것이다.

왜 이렇게 많이 쌓이게 되었는가? 원인은 이렇게 다년간 자신이 감히 명혜망에 접속하지 못하고 늘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제공하는 자료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출로는 어디에 있는가? 자신이 응당 빨리 명혜망에 접속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자료점 수련생이 다년간 자신을 위하여 이러한 자료를 제공했으니 자신은 응당 자립하는 것을 배워 빨리 수련생을 위해 압력을 경감하고 위험을 덜어주어야 한다. 수련인의 환경이 어떠한가는 자신의 수련상태의 체현이며 그럼 가족들이 두려워하는 마음에 직면하여 응당 빠른 시일 내에 마음을 써서 가족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가족들이 진정으로 구도받을 수 있게 해야 함을 생각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수련의 제고와 사람을 구도하는 데 입각해 근원에서 문제를 고려하는 사로인 것이다.

가령 현재 “가정환경을 아직 바로잡지 못했다”는 것은 바로 현재 이러한 것과 대법제자와 아주 연분이 있는 세인이 아직 구도되지 못했음을 설명하며 정법수련이 십년이 되었으나 어떤 방면에서 줄곧 수련되어 올라오지 못했음을 설명한다. 만일 안을 향해 수련하지 않고 오히려 밖으로 내밀며 오직 어떻게 《명혜주간》을 다 불태울 것인가만 생각한다면 그럼 가족들은 여전히 진상을 알지 못하게 되고 자신의 수련도 여전히 제고하지 못하게 된다. 밖을 향해 찾고 밖으로 미는 것은 마치 속인이 약을 먹고 양의사가 “머리가 아프면 머리를 치료하고 발이 아프면 발을 치료”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기껏해야 단지 표면 증상만 완화시킬 뿐이지 근본적인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자신을 구도하지 못할뿐더러 다른 사람은 더욱 구도할 수 없다.

최근 사부님께서는 수련생 문장 《방종하지 말고 귀신을 초래하지 말라》는 글에 대한 평어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모두 성숙해졌을 때, 다음 일보는 곧 시작된다.” 우리 모두가 다그쳐 수련에서 제고하고 사람을 많이 구도하는 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다. 밖으로 구하는 것은 수련이 아니다. 수련은 정당한 것이며 명혜는 사람을 구도하는 것으로서 대법제자는 응당 그에게 정확한 위치를 주어야 한다.

생각해보라, 만일 우리가 학생이고 대학입시를 본다면 교과서, 참고서, 복습자료가 필연코 한 무더기나 될 것인데 날마다 그것을 빨리 태워버려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것을 정상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두렵지 않으며 자료가 많은 것을 다른 사람을 볼 면목이 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왜 대법자료, 《명혜주간》은 그럴 수 없는가? 악당이 우리더러 수련하지 말라고 하면 우리는 곧 수련하지 않고 악당이 우리더러 교류하지 말라고 하면 교류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하물며 《명혜주간》은 본래 대륙의 수련환경이 엄중한 파괴를 받으면서 이러한 방법으로 대륙의 수련환경을 보충하는 것이 아닌가. 만일 이러한 환경마저 감히 요구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수련을 어떤 위치로 놓고 있는 것인가? 어떻게 정진하겠는가?

바꾸어 말하면 근원적인 문제를 볼 줄 알아야만 비로소 사로가 바른 것이며 능히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다면 무엇이든 모두 해결하기 쉽다. 전 세계 대법제자들이 공동으로 정진하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09년 8월 1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8/17/2066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