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산동대법제자 일심(逸心)
【명혜망 2009년 8월 2일】
내게는 하나의 강대한 장애가 있었는데 바로 진상 자료를 배포하거나 아니면 직접 만나 진상을 알리거나 다른 사람이 나한테 파룬궁이냐고 묻는 것을 두려워했다. 파룬궁이라 말했을 때는 상대방이 가지려 하지 않거나 들으려 하지 않을 거라고 늘 그렇게 여겨왔다. 나는 정정당당하지 못했다.
나는 일반적으로 밤에 노점을 차렸는데 그럴 때마다 몸에 진상자료를 좀 지니고 나가 직접 만나 배포한다. 다른 사람이 내가 파룬궁이냐고 묻는 것이 그냥 두려웠다. 무엇을 두려워하면 무엇이 오는데 처음에 한 남자에게 CD를 건네주었을 때 그는 나한테 “파룬궁인가요?” 하고 물었다. 나는 당황하여 “아니요, 아닙니다. 설 만회 공연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가지려 했지만 그 남자는 틀림없이 파룬궁이라며 가질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더이상 권하지 않았고 밤새 내내 더는 다른 사람에게 감히 건네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 마음이 아주 괴로웠다. 생각해보면 나는 왜 다른 사람이 파룬궁이냐고 묻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중생은 모두 사당 선전의 독해를 받아 파룬궁이 좋지 않다고 여기며 감히 보려하지 않고 감히 가지려 하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사악을 깨끗이 제거할 때가 아닌가? 우리는 바로 대법을 실증하려 온 것인데 두려울 것이 뭐가 있는가? 일을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먼저 하나의 장애를 설치했다. 사람을 제도하는 것은 법이며 이 일은 오직 사부님께서 하고 계시며 다른 사람이 가질 것인지 들을 것인지는 그 자신의 선택으로 나는 오직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생각해 보라. 인류가 말하는 자신이 원숭이에서 진화해 왔다는 설이 다 우아한 자리(大雅之堂)에 올라앉았는데, 이렇듯 위대한 한 부의 宇宙大法을 당신들은 오히려 그에게 하나의 정확한 위치를 주기에도 쑥스러워하는가,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진정한 치욕이다.”(『정진요지』「환경」)
나는 왜 정정당당하게 세인에게 파룬궁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못하는가? 물론 극단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며 안전에 주의하지 않으면서 하는 것도 아니며 적어도 내심에서는 응당 정정당당해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발정념으로 내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도하는 것을 저애하는 일체 사악한 요소를 깨끗이 제거하였고 사부님께 가지를 청했다. 그때 이후 나는 진상 자료를 배포하든지 직접 만나 진상을 알리든지 또는 많게 하든 적게 하든지 더는 다른 사람이 파룬궁이냐고 묻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파룬궁이냐고 물으면 나는 말한다. “당신이 내가 파룬궁인지 아닌지 알아서는 뭘 하겠는가? 보고서 당신에게 좋은 점이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요? 마치 한 의사가 당신의 병을 잘 고쳐줄 수 있는데 당신이 그 사람의 성이 왕 씨인지 이 씨인지 알아서 뭘 하겠는가?” 그러면 “그렇네요. 제가 가서 볼께요.”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당신은 정말 말을 잘하는군요. 더 빠질까 두려워요.” 나는 웃으면서 그녀한테 말했다. “당신은 좋은 데로 빠지는 것도 두려운가요?” 그녀도 웃으면서 가져갔다.
한번은 내가 션윈 CD를 한 노년부부에게 건네주었는데 그들도 파룬궁인지 물었다. 나는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고 잠깐 섰다가 말했다. “당신은 파룬궁을 아시나요? 파룬궁은 사람더러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니 당신들은 반대하지 마세요. 파룬궁을 반대하면 당신들한테 나빠요.” 그들 둘은 연속 말하기를 “우리는 반대하지 않아요. 우리는 반대하지 않아요.”하면서 CD를 가져갔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말한 것에 도리가 있고 어떤 일은 확실히 그러하다면 인정하고 있으나 보지 않으려 하거나 삼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나는 그들한테 말한다. “당신이 이 일생에 얼마나 많은 사람과 교제했든지 얼마나 큰일을 했든지 오늘 내가 당신한테 한 이 말들을 당신은 언젠가 뼛속 깊이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일체 생명은 모두 법을 위해 왔다고 말씀하셨는데 한 생명에게 진상을 알리거나 그한테 삼퇴를 권할 때 그가 인정하거나 거절하거나 뼛속 깊이 새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면 그에게는 일종 각성작용을 일으켜 어떤 이는 곧 묻는다. “그렇게 엄중한가요?” 나는 “그럼요. 당신은 반드시 뼛속 깊이 새기게 될 것입니다.”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곧 “그럼 보도록 하지요.”라고 하거나 혹은 “그럼 나도 삼퇴를 할께요.”라고 한다.
사실 많은 경우 우리가 얼마나 말을 잘하는가 혹은 말을 많이 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관건은 심태로서 심태가 부동하면 결과도 곧 달라지며 상대방의 표현은 바로 우리 심태의 반영이다.
문장발표: 2009년 8월 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8/2/2057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