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자태를 낮추다》를 읽은 소감
글/ 중국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8월 1일] 《명혜주간》제392기 미국 한 동수의《자신의 자태를 낮추다》는 문장을 읽고 동감했다. 마치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나를 도우려고 쓴 문장인 것 같다. 맞다, 장기간 자신이 무슨 물건 때문에 몹시 거슬렸던 느낌이다.
우리 중국대륙 사람은 공산사당의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정확한” 사설에 장기적으로 물들어 변이된 요소가 더욱 돌출하며 도리가 없어도 3분간 쟁론하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이 차를 빨리 운전하여 사람을 다치게 하고도 그 사람이 길을 걸을 때 조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에 부딪히면 본능적으로 책임을 떠밀며 생고집을 피우고 어떤 사람은 가능하게 자신이 생고집을 피운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말을 높이 내세우면서 마치 자신은 정말로 영원히 정확한 것처럼 결점을 찾지 못한다. 세인 중에는 이런 현상이 아주 보편적이다. 수련한 후 자신이 좀 의식하고 적지 않게 고쳤으나 골수로부터 형성된 이 관념은 뿌리가 아주 깊어 자신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느끼며 수련생이 자신에 대해 어떠어떠하다고 하면 그로부터 억울함을 느낀다.
특히, 우리 대륙에서 교직에 있는 동수들은 학생들이 당신을 신임하고 존경하며 가장들이 당신을 믿고 존경(당연히 그런 것은 아니다)하기에 만약 사업에서 일정한 업적이 있으면 아주 쉽게 이런 변이된 사상이 자라며 장기간 발전해 나가면 근본 주의하지 않으면 곧 나타난다.
예를 들면, 어떤 수련생은 문화가 낮아 글자를 잘못 읽으면 응당 그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는데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알려줄 때 태도가 위에서 아래를 가르치는 자세이며 어떤 수련생은 습관이 조금 차하여 단체 법공부 할 때 마음대로 말하고 움직이며 무슨 물건을 움직이는 소리가 교차되는데 본래 선의로 지적하는 것 또한 당연하지만 지적할 때 늘 질책하는 태도이다. 극소수 수련생은 남녀지간의 정에서 처리가 부당하여 가정이 파탄되고 그들 자신의 수련과 생활환경을 곤혹스럽게 하며 어떤 수련생은 자신의 가정을 곤경에 처하게 한다. 이런 수련생을 도와주려고 하지만 마음 속에 늘 노기를 품게 된다. 사부님의 자비는 될 수 있는 한 시간을 연장하여 더 많은 사람을 구도하고 사부님께서는 무슨 사람이나 다 구도하라고 하셨다. 하물며 그들은 아직 우리의 동수이고 내가 이렇게 하였는데 어디에 선한 마음이 있는가? 수련생을 도와 줄 수 있는가? 이것은 수련생을 아래로 밀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이때 매 개인의 집착이 다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녀지정의 집착이 없는 수련생이 그렇지 않은 수련생을 대할 때 불가사의하다고 느낄 것이고, 겸손한 수련생은 과시심이 남아있는 수련생을 볼 때 이상한 느낌이 들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정념이 아주 강하여 진상하고 삼퇴를 권할 때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많아 집에 숨어 나오지 못하는 수련생을 이해하지 못헐 수 있다. 어떤 수련생은 돈과 재물에 대해 집착하지 않기에 아직도 돈과 재물을 생각하고 있는 수련생을 보고 가능하게 불가사의하다고 느낄 것이다. 기실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사람의 집착에 대한 집착이고 응당 다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처럼 이런 집착이 있는 사람은 무의식중에 쉽게 동수지간의 간격을 만들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대사에 영향을 끼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수련생은 글에서 “미국사람은 유치원에서부터 다른 사람을 어떻게 칭찬하는가를 알려준다. ” 나는 오직 유아치원부터 배워 수련생이 잘 한 방면을 많이 보고 동수의 특별한 점을 많이 발견한다면, 처음부터 시작하여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어구를 배워(당연히 맹목적인 칭찬은 아니다) 수련생을 많이 고무 격려해주고 긍정적으로 또한 선의적으로 동수의 단점을 지적한다면 동수들과 하나의 원융불파(圆容不破)의 정체를 형성할 것이다.
문장 발표: 2009년 8월 1일
문장 분류: 수련 마당문장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8/1/20549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