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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한 관용으로 일체를 대하자

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8월 2일] 장기간에 걸쳐 인터넷, 우편, CD, 전단지, 대면하여 진상 알리기 등으로 다양하게 서로 보충하는 방식으로 법을 실증하였다. 현실사회 속이든지 가상의 인터넷 세계에서든지 모두 형형색색의 대법에 대하여 부동한 태도가 있거나 부동한 의견이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러한 제 각각 심태의 특무 및 법을 파괴하는 삿된 깨달음을 가진 무리들을 포함해서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이러한 사람들의 부동한 의견을 대할 때 심지어 대법에 악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아마 애당초 우리들은 모두 선을 권하는 자태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인내심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일부 좋지 않은 부정적인 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면 욕하거나 공격하는데 물론 이러한 악의 방식은 왕왕 한때는 효과를 보게 된다. 비록 도리상에서 모두 선을 닦아야 함을 알고 있으나 효과를 추구하다 이러한 선하지 못한 방식을 묵인하고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법을 실증하는 부동한 시기와 부동한 단계에 있어서, 우리는 모두 부동한 일, 부동한 정황에 봉착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일을 대하고 각종 세부적인 것을 처리하는 과정은 사실 모두 아주 관건적일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미래에 남겨주는 참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을 공격할 때 사실은 우리 자신에게 내재한 지혜가 결핍하기 때문이며 자신이 승화될 것이 요구되고 있다. 왜 우리는 선의 방식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악의 방식이 오히려 즉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여기는가? 그것은 우주의 일정한 층차 속에 존재하는 상생상극의 이치로 대응되는 두 가지 특성의 부동한 물질이며, 두 가지 물질이 관통되어 있는 우주의 범위 내에서 선과 악, 정과 부가 서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이다. 일정한 우주 층차 범위 내에서 우리는 이 두 가지 물질의 제약을 받을 수 있으며 우리는 선의 방식이 좋은 효과를 일으키지 못한다고 여길 때 그것은 우리가 수련에서 일정한 층차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제고되어 올라왔을 때, 원래의 경지에서의 선과 악의 제약을 초월하면 그것은 더욱 큰 자비와 지혜이며 그때 우리는 정말로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늘 설법 속에서 우리를 고무 격려하시는데, 대법제자는 미래의 부동한 우주의 신이며 심지어 더욱 높은 경지의 주, 왕이라는 이러한 말씀을 들었을 때 우리는 모두 아주 기뻐하며 심지어 득의 양양하여 즐거워하고 구세력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면 우리는 모두 그러한 사악한 구신(舊神)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러한가? 구세력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그러한 순정하지 못한 사상과 뿌리깊은 놓기 싫어하는 관념은 모두 구세력의 표현이 아닌가?

구(舊) 우주의 최후의 그러한 고층생명은 모두 대법에 대한 고험이 모두 박해임을 알고 있으나 그것들은 아직도 저층의 구세력 생명을 방종하고 인도하여 대법에 대하여 박해하는 것을 견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아직도 그것들의 구 우주의 관념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 오직 이러한 박해야만이 대법제자를 단련시킬 수 있다고 한다. >에서 아이를 교육하는 것을 말씀하셨고 우리 많은 사람들은 모두 이성적으로 아이를 교육하고 아이를 때리고 욕해서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있다. 왜 아주 많은 사람들은 아이를 교육함에 아직도 아이를 때리고 아이를 욕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가? 심지어 내심의 깊은 곳에서 이러한 방식이 효과가 있다고 여기는가? 우리가 동수의 부동한 의견을 대할 때 수련생 사이의 부동한 견해를 포함하여 우리는 마땅히 선해야 함을 명백히 알고 있으나 왜 아직도 질책하거나 악한 어조를 사용하고 있는가? 그러한 것은 단지 일종 간단한 집착이나 관념이 아니며 구 우주의 뿌리깊은 요소에서 내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수련 속에서 봉착하게 되는 문제는 모두 작은 문제가 아니며 우리는 조사정법하고 있고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사명은 중차대한 것이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공부를 많이 하여 반드시 철저히 구 우주의 관념을 뿌리째 제거하여야 하며 철저히 박해를 결속지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대륙에 블로그(博客)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 공간을 만들었다. 대법제자를 놓고 말하면 인간세의 어떠한 사물이든지 가히 우리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으며 내가 생각하건대 블로그는 법을 실증하는 방식에서 아주 편리하다고 본다. 나도 아주 많은 진상을 알리는 블로그와 마당을 보아왔다. 어떤 곳은 대기원의 글을 전재하였고 퇴당표어 등등이 있었는데 가능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폐쇄되어 버린다. 그러면 재차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것도 법을 실증하는 방식이며 이러한 유형의 블로그와 공간이 존재하는 것도 아주 필요한 것이며 직접 사람에게 가장 직관적인 경고와 일깨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블로그를 만들 때 다른 하나의 사유방식으로 소재와 자료를 구성했었다. 여러 측면과 여러 각도에서 블로그에 실을 글을 선택하였다: 1. 심도 있게 악당을 폭로한다. 악당이 중국에서의 사악한 표현은 여러 방면이며 국가대사로부터 일반 민중에 이르는 생활상의 작은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능히 사악의 본질을 보아낼 수 있다. 중국사회에 부단히 각종 일들이 용솟음쳐 나오는데 예를 들면 쓰촨웡안(四川瓮安)사건, 상하이양쟈사건, 독분유사건, 주가시세 등등은 모두 심도 있게 악당을 해부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안건들이며 이러한 우리의 신변에서 발생되고 있는 생생한 안건들을 적나라하게 세인에게 펼쳐주어 세인으로 하여금 더욱더 명석하게 악당의 본질을 인식하게 할 수 있다. 2. 일정한 경지에서 수련인의 심적 경지는 순정하고 관용한 것이며 부동한 경지에서의 체득을 산문이나 시가, 음악, 시사평론 등 예술작품이나 각종 요소들을 곁들여 표현해낸다면 속인에게 있어서는 얻기 힘든 일종의 광경으로서 마음이 상쾌할 것이다. 비록 속인이 수련의 내포를 보아내지 못하더라도 높은 경지에서의 작품은 청정함과 높은 이치, 우주의 진실을 체현해낼 수 있는 것으로 모두 심령의 깊은 곳까지 속인을 진감시킬 수 있는 것이다. (주의: 자신의 IP를 감추어 안전을 보증하여야 한다)

99년부터 시작하여 법을 실증한지 십 년이 되었다. 사실 이 십 년을 돌이켜보면 그 체득은 가히 여러 단계로 세분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처음 일년은 능히 걸어나올 수 있는가, 그 후의 몇 년은 전면적으로 진상을 알리기, 이 몇 년간은 법을 실증하는 방면에서 더욱더 전업적이며 더욱더 심입되었다. 사실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가 더욱더 높으며 우리가 법을 실증함에 초기와 같아서는 안되며 마음대로 해서도 안되고 우리가 한다면 반드시 가장 좋게 하여야 하며 반드시 대법제자의 높은 경지, 높은 재간과 능력을 나타내야 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매 하나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작품은 모두 진정으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작용을 일으키게 하여야 한다.

우리는 큰 행운으로 우리가 사부님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큰 행운으로 우주의 정법과 함께 하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구 우주의 층층의 미혹의 안개에서 뛰쳐나와야 하며 인류사회라는 이 큰 연공장 속에서 자신이 증오(证悟)한 경지로 법을 실증하고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을 구도하여야 한다.

문장완성: 2009년 7월 29일

문장발표: 2009년 8월 2일문장갱신: 2009년 8월 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9/8/2/2056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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