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녕하대법제자
【명혜망2009년7월11일】최근 한시기 동수들과 교류하고 토론하면서 한 가지 현상을 발견했다. 동수들은 늘 되도록 빨리 주동적으로 화제를 정법 수련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가정에서의 개인적 모순에 대해 끝도 없이 말한다. 지금까지 아들, 딸들과 어떻게 사이가 좋지 않다던가, 남편과 아내가 어떠한 모순에서 관을 넘지 못했다는 것, 아들과 며느리가 모순이 있어 마음이 어떻게 불편하다는 등등, 또 나는 어제 어떤 꿈을 꿨고, 그저께 어떤 꿈을 꿨다는 둥 끝도 없이 중얼거리며 대량의 시간을 소모한다. 지금 시간은 모두 아주 긴박하고 또 아주 보귀하다. 동수들의 집이 가까이 있지 않다보니 10일 혹은 15일에 한 번씩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제한된 이 보귀한 시간에 우리는 마땅히 장기적으로 저층에 머물러 있던 개인 수련 상태를, 응당 법리에 가늠해 교류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겠느냐 하는 교류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5, 6년 심지어 십 몇 년을 수련한 노 수련생이다. 세간은 고작 명,리,정(名利情)에 관한 일 뿐인데 이렇게 몇 년간 수련하면서 아직도 내려놓지 못할 게 무엇이 있는가?
당연히 개별적으로 소수의 특수 상황에서 심성을 더 높이 제고해야 할 사람도 있다. 마치 초등학생이 항상 초등학교에서 유급당해 중학교, 대학교에 들어 갈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 원인은 바로 단 한 가지, 법공부를 아주 적게 했기 때문이다. 고층 법리에 대한 이해가 적기에 깨달은 층차가 높지 않다. 사부님께서는 매번 설법에서 우리에게 항상 “법공부를 많이 하라, 법공부를 많이 하라,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신신 당부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사부님께서 우리의 제고를 위해 거듭 간곡하게 천만번 당부하면서 심려하시는 자비로운 정형을 모두 체험해야 한다. 나는 법공부, 혹은 동수의 교류 문장을 읽을 때마다 매번 얼굴에 눈물이 가득해 진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너무 수고가 많으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공부를 많이 하라는 것은 당연히《전법륜》을 몇 번 공부했으며, 각 지역 설법과 신경문을 전부 다 공부했는지, 얼마나 많이 공부 했는지, 혹은 법을 얼마나 외웠는지 하는 것뿐만이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법에 대해 얼마를 인식 했으며, 얼만큼 이해했으며, 얼마만큼 법리를 깨달았는가 하는 것이다.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공은 연마함이 아주 크다, 전체 우주를 연마하는 것과 같다.”(《전법륜》)고 말씀하셨다. 대법의 수련 성취는 우주의 부동한 요원, 천체 체계의 주와 왕이다.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 새로운 우주의 갱신과 재구성은 우리의 참여가 필요하며 우리 매 한 사람마다 책임져야 한다. 사부님의 바람은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도하시는 것이다. 사부님의 제자로 놓고 볼 때 이것이 바로 전 인류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의 인류는 원래의 미상의 인류가 아니며 모두 고층에서 내려온 생명이다. 그들도 역시 법을 위해 왔으며, 그들도 하늘만한 담력으로 법을 위해 왔다. 그들은 대법이 그들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었으며, 심지어 또 대법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기초를 다졌으며 역시 부동한 천체의 대표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부님의 고도(苦度)로, 대법 속에서 수익한 대법제자이기 때문에 더욱더 무조건 무대가로 대법을 굳게 믿고, 고층에서 내려 왔지만 도리어 세간에 미혹돼 있는 이러한 고귀한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얼마만큼 그들을 구했는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준 시간이 아직 얼마나 남았는지? 현재 사악한 구세력한테서 사람을 뺏어 오는 것은 아주 조급하다. 시간은 우리가 개인 수련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중대한 책임과 그렇게 많은 고된 위대한 일들이 우리의 어깨에 짊어지게끔 우리 앞에 놓여 있는데, 속인속의 명(名),리(利),득실(得失)에 집착하면서 감정의 갈등으로 화낼 시간과 정력이 어디에 있는가? “득과 실의 관계”, “득과 업의 전화”, 이러한 법리는 가히 우리에게 가정의 모순과 속인과의 모순을 잘 처리하도록 지도하고 있으며, 문제에 봉착했을 때 법으로 자신을 가늠한다면 모두 넘어 갈수 있다. 설사 그 당시 넘기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루, 이틀 지나면 마땅히 능히 이해하고 내려놓을 수 있다. 나는 “동수들이 한곳에 모이면 응당 대법의 법리에 대한 이해와 어떻게 더욱 진상을 잘 할 것인가를 교류하면서 많은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법제자의 일체는 모두 대법에서 온 것으로 매 층차에서 사부님은 모두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셨다. 그렇게 좋은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는가? 오직 법공부를 많이 하여, 법을 이해하고, 법리를 명확히 깨닫는다면 자연적으로 있게 된다. 어떤 동수들은 법공부와 법을 깨닫는데 정성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무턱대고 “누구도 와서 나를 방해하지 마라, 나는 법공부와 연공을 하련다. 누구도 나에게 번거로움을 조성하지 말고, 귀찮게 하지 말며, 건드리지 말라, 나는 책을 보고 연공하여 층차를 제고하련다.” 이런 생각, 이런 상태는 보기에 열심히 수련하는 것 같지만 사실 법리에 대한 인식이 희미한 일종의 표현이며 마난과 수련의 관계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 일종 구함의 표현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을 수 있다는 법리를 알려 주었다. 오직 마난의 교란을 극복하고 진지하게 법공부하여 법을 깨달아야만 층차를 제고할 수 있고, 상태를 개변할 수 있다. 단순히 가정의 안정을 구하면서 집안이 안정되기를 기다려 다시 법공부하고 연공하려 하고, 시간이 있으면 법공부하고 연공하려 하는데 그렇다면 아마 한평생 모두 안정되지 못할 것이며, 한평생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여유로운 시간이 없을 것인데, 그렇다면 언제 수련성취 할 수 있겠는가? 모든 일이 모두 순조롭게 뜻대로 되고, 모순이 생기지 않는다면 당신은 또 무엇을 수련하겠는가?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
대법은 우리에게 수련하는 과정은 바로 사람의 집착심을 내려놓는 과정이라고 알려 주었다. 집착을 내려 놓는 것이 바로 심성을 제고하고, 층차를 제고 할 수 있다. 어느 한 층차에서 제고 되었다면 사부님께서 주신 그 한 층차의 아름다움을 가지게 된다. 대법은 또 우리에게 어떻게 집착을 내려놓으며 무엇 때문에 집착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다. 예를 들면 사부님께서는 “만유인력(万有引力)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동일한 층차에서 모든 물체 사이에는 접착으로 연결되면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설명하였다. 우리가 세간에 대한 명(名), 리(利), 情(정)의 집착을 버린다면 우리는 바로 삼계내의 물질의 접착으로 연결되는 견인력의 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바로 자연적으로 승화되어 올라가게 되며 층차가 제고된다. 여기에 또 연공까지 가지한다면 육체 세포를 개변하여 삼계내 물질의 견인력의 제약을 받지 않기에 우리의 육체도 승화되어 삼계를 벗어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왜 세간에 대한 일체 집착을 버려야 하는지 아주 쉽게 이해 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만 층차를 제고하고 삼계를 벗어 날수 있는지를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부님께서는 “우주의 구조”, “우주의 변두리”, “수미산 (须弥山)”, “우주벽(宇宙墙)”, “삼천대천 세계학설”, “과학은 종교이다”, “마난과 수련의 관계”, “세계의 일체는 모두 대법제자의 마음으로 조성한 것이다.”, “자신의 공간 마당의 물질은 자신의 지배를 받는다” 는 등등 등등. 만약 우리 모두 착실하게 조용한 마음으로 법공부 하고 이러한 법리를 명백히 깨닫는다면 삼계가 우리의 안중에는 작기로 하나의 세포만도 못하다. 세간의 더러운 일체는 작기로 아무것도 아니다. 사악한 구세력은 사존과 새 우주가 승인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근본적으로 미래가 없다. 세간의 몇 개 사악이 다 무엇인가? 누가 또 세간의 일체에 집착 하겠는가? 미래가 없는 사악을 두려워 할 게 무엇인가?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불법신통을 운용해야만 뜻대로 이지적으로 지혜롭게 우리의 소중한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법정인간의 시각은 사존과 대법제자에 의해 결정되므로 그 무슨 집착과 바람도 없다.
이러한 법리를 이해하고 명백히 깨닫는다면 우리는 자연적으로 자신의 몸이 천체처럼 거대함을 느낄 수 있으며, 짊어진 책임이 비할 바 없이 중대하고, 신성하며 위대하다는 것과, 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불법신통의 위력이 비할 바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념으로 우주중의 모든 구세력과 사악을 훼멸할 수 있고, 일념으로 비할 바 없이 아름답고 신기한 절경으로 자신이 대응하는 새 우주 공간을 창조할 수 있다. 이때 우리는 자연적으로 낡은 우주의 협의(狭义) )한 자사(为私)의 틀 속에서 뛰어나올 것이며, 누가 세간의 그 조그마한 명리와 쟁탈을 중히 여기고, 누가 또 사람과 사람간의 그 조그마한 정마(情魔)의 마찰에 진지하게 집착하고, 수련의 길에서 일부 마난의 교란을 중히 여기며, 그것을 두려워하겠는가? 법리로 가늠하면서 그것을 돌파한다면, 단지 우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하나하나의 디딤 계단을 쌓는데 불과하다. 무리한 교란과 박해에 직면해 우리에게는 또 끝없는 법력의 신통 및 사부님과 바른 신들이 보호하고 도와주고 있다.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다그쳐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더욱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면서 사악과 겨룰 필요가 없다. 부동한 층차의 법리로 우리가 마음을 바르게 잡고 우리의 길을 바르게 걸어가면 사악은 자멸한다. 이치를 이렇게 깨달았지만 수련은 이 세간에서 아주 엄숙하고도 큰일이다. 절대로 비정상적인 극단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 항상 사존께서 말씀하신 “이지적으로 법을 실증하고 지혜롭게 진상을 명백히 알리며 자비로 홍법하고 세인을 구도한다. 이것이 바로 각자의 위득을 건립하는것이다.”(《정진요지2》〈이성〉)“높은 각자일수록 속인의 이치를 파괴하지 않은다”(《전법륜》)는 것에 따라 해야 한다.
그리고 또 우리의 정체에는 아직도 두 가지 큰 집착이 있는 듯하다. 온 종일 사당은 왜 아직도 무너지지 않은가? 언제 법정인간이 돌아오겠는가? 하는 이것은 얼마나 큰 하나의 집착인가? 속인들이 말하는 비평적으로 보자면, 바로 우리들 자신이 잘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몇 년 전에 바로 말씀하셨다. 삼퇴가 5백만이 되었을 때 그것의 뿌리는 이미 뽑혔다. 그것이 쓸모없을 땐 하루도 존재하지 못하게 즉각 해체 시킨다. 지금 삼퇴가 이미 4-5천만이 되었는데 그것이 어떻게 아직도 존재할 수 있는가? 우리가 그것이 무너지기를 집착할 때 밖으로 구하는 게 아닌가? 큰 누락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으면 안으로 찾으라, 안에서 찾으라고 재삼 당부하셨다. 작년에 사부님께서는 역시 말씀하셨다. 대법이 좋다는 것이 분명해야만 미래에 들어 갈 수 있고, 사당 조직을 퇴출해야만 미래에 들어 갈수 있다. 이 두 가지 되돌아감을 지나친다면 미래가 없다. 만약 사당이 무너지고 진상이 천하에 드러날 때에야 중생이 삼퇴를 한다면 그것이 될 수 있는가? 될 수 없다. 어떻게 사람을 구할 수 있는가? 반대로 우리 모두가 걸어 나와서 오점(污点)을 씻어내고 속인의 마음이 모두 없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안배해 주신 층차에 모두 도달했다면, 구도해야 할 중생은 모두 이미 구도 되었는데 사당의 존재가 왜 필요 하겠는가? 법정인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직 무엇을 기다리는가? 사부님께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는 것은 현재 사람을 구하는 형세가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땅히 자책감에 얼굴이 붉어져야 한다. 우리는 항상 응당 중생을 얼마나 구도했는가? 또 어떤 속인 마음을 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당연히 정법은 우주가 천지개벽 이래 종래로 있어 본 적이 없다. 이후에도 다시는 있을 수 없다. 오직 사부님께서 자비하셔서 우리의 어떠한 중생도 떨어뜨리려고 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땅히 용맹정진 하여 사부님의 자비로움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정법의 노정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바로 사부님께서 또 어느 법회를 열고 있는지, 또 어떤 설법을 하셨는지, 또 새로운 신경문이 나올 것이 아닌가 ? 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 하나의 큰 누락이다! 사부님께서 몇 년 전에 바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우리들의 수련을 지도하는 것은 바로 그 한부의 《전법륜》이다. 또 몇 만권의 책이 나온다 해도 모두 《전법륜》에 대한 보조와 해석일 뿐이다. 일반적 상황에서 모두 우리가 잘하지 못하고 있을 때 혹은 문제가 생기려고 할 때 사부님께서는 설법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바르게 가도록 도와주며 정진하도록 격려해준다.
사부님께서 많이 알려주고 해석해주면 우리 자신들의 깨달음이 틀림없이 적게 된다. 최후에 와서도 사부님께서 모두 우리를 도와 깨닫게 하시는데 우리는 또 어떻게 제고할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의 선천적인 최고의 위치로 올라갈 수 있는가? 이것이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인가? 대법은 능히 우주를 창조할 수 있고, 법은 능히 우리에게 정념을 줄 수 있고, 법은 능히 우리에게 불법신통을 줄 수 있으며, 법은 능히 우리더러 원만하도록 할 수 있고, 법은 능히 우리의 오점(污点)을 씻어 줄 수 있으며, 법은 능히 우리더러 비할 바 없는 위덕을 갖게 할 수 있고, 법은 능히 일체 아름다움을 산생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법공부에 심혈을 기울여 법을 깨닫고, 하나의 보통 수련자에만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 점차적으로 부동한 층차, 더욱 고층의 법리를 확실하게 투철히 깨달아 끝없는 법리로서 사부님께서 맡겨주신 3가지 일을 잘한다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해준 일체 영광과 아름다움은 모두 그 속에 있다. 우리는 사부님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하나의 정정당당한 정법시기 대법제자로, 우주의 제일 호칭인 대법제자가 되어야 한다!
개인의 깨달음이오니 잘못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리며, 우리의 정체를 원용하면서 공동히 정진합시다.
문장완성 : 2009년 7월 11일
문장분륜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9/7/11/2043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