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7월 6일] 개인적으로 인식하건대, 박해 당하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사악은 줄곧 대법제자에게 간격을 줌으로써 이런 박해가 가중해 지게 한다고 본다.
제 389회 <<명혜주간>>에 두 편의 제자교류 문장이 있는데 내가 느끼건대 이 방면에서 그들은 모두 아주 잘 했다고 본다. 한 은 흑룡강 대법제자가 쓴 <<우리 지역에서 정체적으로 협조한 일부 체득>>인데, 그들은 협조인의 작용을 충분히 발휘하였기 때문에 박해가 발생 했을 때 정체적으로 협조하여 박해를 벗어나거나 감소되게 하였다.
또 한 편은 제목이 <<현상으로부터 사악을 철저히 해체하는데 대해 논함>>인데, 문장 가운데 이런 단락의 말이 있다. “흔히 납치된 수련생은 큰 환경에서 수련할 때는 하는 일이 아주 아주 많고 또 큰 일을 하여, 우리 많은 사람은 모두 그 가운데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바른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일단 이 수련생이 박해를 당하게 되면 처음에는 그래도 발정념을 해 주지만 며칠도 안되어 자신과 관계없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수련생은 노교소 감옥에서 혹형을 받아 불구가 되고, 참혹한 박해를 받아 생명이 아무 때 건 빼앗기게 되었어도 물어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에 대해 나도 깊은 동감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이때면 박해 받는 동수에게서도 누락이 모두 나온다. 내가 느끼건대 이는 단지 동수간에 자비심이 없는 문제일 뿐만이 아닌 것으로서, 대법제자는 원래 하나의 정체인데 이렇게 간격을 두고 있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큰 누락이 아닌가? 간격을 제거하면 수련을 잘한 수련생이 사람을 구하는 중에 정상적인 작용을 발휘하게 할 수 있고, 누락이 있는 동수로 하여금 정법 진행을 따라잡게 함으로서, 대법제자 정체가 금빛 찬란하고 위력이 거대해 지게 하자.
개인 인식으로서 부당한 곳이 있으면 지적하여 서로 교류하면서 함께 제고하자.
문장완성: 2009년 7월 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9/7/6/2040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