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6월 23일]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하여 일체를 감당하시었다”는 글에서 수련생은 이렇게 썼다. 악경은 죄인을 파견하여 나를 고문했다. 한번은 죄인들이 나의 두 손을 뒤로 묶고 열 손가락에 쇠바늘을 찔렀다. 처음에는 그것들이 한 손가락을 찌르고 바늘을 빼낸 후 다시 다른 손가락을 찔렀다. 나중에 내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한 손가락에 두 개씩 찌르고도 바늘을 뽑지 않았으나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나의 손가락은 하나도 아픈 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화가 나서 다른 방법으로 나를 고문했는데, 전기 막대기로 나의 두 귀를 지졌다. 귀에서 피가 나도록 지졌으며 그들이 어떤 방식을 채용하여 고문해도 나에게는 아픈 감각이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나의 일체 통증을 사부님께서 감당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A동수와 이 동수의 체험을 교류했는데, A수련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너무나 많이 감당하시었다고 말했다. 수련생이 이 말을 하는 동시에 나의 머리속에서는, 이런 잔혹한 고통의 아픔을 사부님께서 감당하시게 해서는 안 되며 응당 사악이 자업자득하게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쳤다. 그리하여 우리는 정념으로 악행을 제지하는 것에 대하여 교류했다. 마지막에 A수련생은 “사악이 만들어 낸 일체 박해는 응당 그들 자신이 감당해야 하며 사부님께서 감당하시게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래야만이 사악을 놀라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A수련생이 연이어 “나는 어떤 때 발정념할 때 구세력이 나에게 조성한 집착심과 나쁜 것들을 그것들에게 돌려주며 법 중의 것이 아니면 나는 가지지 않겠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강요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그다음 A수련생은 B수련생이 악경에게 폭행을 당할 때 B수련생은 사람을 때리는 자 본인이 감당하라고 생각하니 좀 있다가 그중의 한 악경의 팔이 즉시 부었으며 아파서 더이상 때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후에 그는 만약 모두 사악이 조성한 일체를 사악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면 좋겠다고 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하여 일체를 감당하시었다”는 글에서는 마지막 부분에, 사부님께서《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에서 제자들의 수련문제에 해답한 것처럼 “사부는 당신을 대신하여 고통을 감당할 수 있고 심지어 당신의 통증마저도 내가 당신을 대신하여 감당할 수 있지만 이 엄혹한 압력하에서 당신의 마음을 바로 잡을 수 있을지? 당신이 자신을 신으로 여기는지, 아니면 여전히 사람으로 여기는지? 당신의 정념이 충족한지? 이 모두는 여러분들 자신에 의거해야 했고 스스로에게 의지해야 했다.”라고 썼다. 그러면 사악이 자업자득하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자신이 박해를 받고 사부님께서 거대한 것을 감당함을 통해 법리에서 응당 승화해야 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 작자는 사부님에 대해 일종 감격만 했지 법리에 대해 이성적인 인식으로 승화하지 못했다. 나는 이번의 거대한 아픔을 사부님께서 헛되이 감당했다고 여긴다. 작자는 비록 최후에 사부님의 설법중의 말씀을 인용했으나 근본 법리상으로 사부님의 이 단락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의 승화를 위하여 지불하고 감당하려 하나 우리가 이유 없이 고통을 사부님께 전이하여 감당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실제로 법의 틈을 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그중에서 제고해 올라오기를 바란다. 제자가 법의 휘황함과 위엄을 나타낼 수 있으며 심지어 그 어떤 손실도 없이 일체 박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내고 법리로부터 승화해 올라오는 것만이 사부님께서 최후에 보시려는 것이다. 역시 정법시기에 반드시 응당 나타나야 할 정상적인 상태이다.
문장발표 : 2009년 6월 2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6/23/20323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