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신째페(新加坡)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6월 19일] 우리는 모두 정체의 힘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가운데 매우 큰 작용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매개 지역의 동수들도 모두 이렇게 강력한 정체를 형성하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늘 일부 동수들이 이곳의 불학회는 어떠어떠하고 일부분 동수들이 어떠어떠하여 정체를 형성하기 매우 어렵다는 등등의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된다. 마치 자신에게 그런 마음이 있으나 주위의 환경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정체를 형성하는 것은 사람마다 그 책임이 있으며 우리들의 평상시 일사일념, 일언일행이 모두 정체의 형성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사존께서는 >에서 말씀하셨다. “우리 사상계에는 예로부터 물질이 일차적인가, 아니면 정신이 일차적인가 하는 문제가 존재했으며, 늘 이 문제로 의논하고 논쟁해 왔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다.”
나는 기타 동수에 대한 일사일념은 상대적인 물질(정면적인 것 혹은 부면적인 것)도 형성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법을 실증하는 한 가지 항목에 대한 이해가 부동함에 따라, 깨달은 수련생은 하나의 강대한 포용심이 있어야 하고 깨닫지 못한 동수도 하나의 포용심이 있어 정념으로 지지하여야 하는데 그 어느 일방도 부면적인 생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그렇게 되면 곧바로 좋지 않은 물질이 산생되어 법을 실증하는데 있어서 불필요한 장애를 형성하게 한다. 진상을 똑똑히 모르는 속인을 대할 때 우리는 선의(善意)로 거듭 권고(勸告)하면서 그들이 구도되기를 희망하지만, 자신의 수련생을 대함에 있어서는 – 법을 실증하기 위하여 그처럼 많은 것을 지불하였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하여 바삐 뛰어다니는 생명에 대하여서는 – 무엇 때문에 때로는 그처럼 냉담하며 심지어 배척하는 정서까지 가진단 말인가? 나는 한 동수의 말이 생각난다. 매번 그녀가 기타 동수와 모순이 있을 때 그녀는 늘 수련생이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 그 마음을 보면 모순이 사라지고 남는 것은 어떻게 더욱 잘 원용할 것인가일 뿐이라고 하였다. 만약 우리들이 사람마다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면 정체형성은 큰 계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상에서 우리 수련인들은 수구 이 문제를 체현하여야 한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가 입을 열어 말할 때 모두 연공인(炼功人)의 씬씽에 따라 말하고 시비를 일으키는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며 좋지 않은 말을 하지 않는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이 말을 마땅히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는 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가늠 해야 한다.” (>) 우리들이 무슨 일에 있어서 다른 수련생을 담론할 때 우리들은 “시비를 일으키는 말”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좋지 않은 말”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만약 이런 말들이 정체를 형성하는데 불리하다면 우리들은 이 방면에서 반드시 수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정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지만, 눈길은 다른 사람을 향하게 될 때 우리는 반드시 자신은 정체를 형성하기 위해 정면작용을 일으키고 있는가를 보아야 하며 자신의 일사일념, 일언일행을 보아야 한다. 정체는 당신과 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언행에 대해 중시를 일으킨다면 전체 대법제자의 마당은 더욱 강대하게 변하게 될 것이며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깨달음이므로 동수들의 자비한 시정이 있기를 희망한다.
문장발표 : 2009년 6월 19일문장수정 : 2009년 6월 18일 21:42:28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9/6/19/2029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