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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마음을 버린 경과

글 /하북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6월 15일】

수련을 시작한 지 십여 년이 되지만 내가 가장 버리기 힘든 마음은 바로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비록 줄곧 버려왔으나 지금까지도 두려운 마음이 있다. 수련 전에 나는 담이 작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싸움하는 것을 보거나 죽은 사람을 보는 것을 무서워했고 캄캄한 밤에 다니는 것을 무서워했다. 수련 후 속인의 두려워하는 이런 마음은 일시에 녹아버렸다. 법공부를 비교적 중시했기에 대법의 뿌리는 비교적 단단히 뿌리내렸다.

1999년 ‘7.20’ 이후 아주 자연스럽게 법을 실증하러 나왔으며 북경에 가거나 심방국과 천안문광장에서 현수막을 펼칠 때도 아무런 고려가 없었으며 세간의 일체를 버릴지언정 견정하게 대법을 수호하러 걸어나왔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과정 중서 여전히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야만적으로 붙잡히는 정경이 두려웠고 구타당하는 것이 두려웠다.

두 번째로 북경에 가서 법을 실증하기 전에 나는 우리 대법제자는 정체임을 인식했으며 우리가 서로 많은 교류를 하여 더 많은 대법제자가 걸어나오게 해야 하며 공동으로 우리의 사명을 완성해야 함을 인식했다. 홍색 공포의 환경 속에서 교류회는 때로는 우리 집에서 때로는 다른 동수나 혹은 외지 동수의 집에서 열렸다. 매번 교류회를 하기 전에는 늘 공포감이 있었고 폭로되거나 붙잡힐까 두려웠다. 그때는 아직 발정념을 몰랐으며 이렇게 함이 맞는다고 인식했다. 대법제자의 정체제고에 유리한 것이라면 나 개인이 붙잡히는 것도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신념은 나로 하여금 한 차례 한 차례 점차 두려운 마음을 경감시켜 나갔다.

두려움은 일종 물질인데 이는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이다. 뚜렷이 감각하게 된 것은 2000년 4월말이다. 어느 날 내가 집에서 옷을 빨고 있는데 마음이 괴롭기 그지없었고 마음이 단단하게 함께 엉켜 위로 잡아끌었다. 왜 이렇게 괴로울까? 나는 냉정해진 후 자세히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관찰했다. 원래 나는 비록 이미 두 번째 북경에 가서 법을 수호하고 실증하기로 결정했으나 그때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식은 북경에 간 동수들이 혹독한 매를 맞고 있으며 잔혹한 학대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감당하는 압력이 너무나 크고 두렵기만 했다. 이 두려운 마음이 나로 하여금 아주 괴롭게 했다.

나는 더는 소극적으로 그것을 참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아에서 뛰쳐나와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보면서 이 마음이 어떤 생각인지 관찰하였다. 사악이 이렇게 창궐하고 이렇게 심하게 때리는데 우선 잠시 피하고 가지 말아야 되는 것일까? 그러나 법으로 가늠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맞을까? 답안은 아주 분명했다. 대법제자로서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반드시 대법을 실증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자 가슴에 뭉쳐있던 돌덩이 같은 것이 순식간에 없어졌으며 마음이 아주 넓고 가벼워졌다. 나는 사부님께서 순식간에 이 좋지 않은 물질을 가져다 버리셨음을 똑똑히 감수할 수 있었다. 나더러 괴로워 어찌할바 모르게 했던 이 두려운 것은 사실 유형적인 좋지 않은 물질이었다.

나중에 사악의 납치를 피하기 위해 나는 2년여 간 유리실소 하게 되었고 유리실소하는 몇몇 동수들과 함께 있었다. 표면상에서는 괜찮은 것 같았으나 실질상 나는 법공부에서 이미 비뚤어졌으며 수련시간이 길고 법을 읽은 횟수가 많음을 밑천으로 여겼다. 이는 법에 대한 사람의 이해로 속인의 마음이 나로 하여금 법공부를 느슨하게 했다. 법공부와 연공이 모두 따라가지 못했고 심성이 점차 곤두박질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엄중한 사람마음은 의심이었는데 바로 두려운 마음이었다. 집과 아이에 대한 정은 이 두려운 마음을 가중시켰고 마음은 늘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게다가 유리실소하는 대법제자에 대한 사악의 심한 박해로 끊임없이 함께 거주하거나 혹은 늘 접촉하던 동수들이 붙잡히게 되었고 나로 하여금 늘 국가안전부 특무가 뒤따르고 있다고 근심하게 했다. 법에서 벗어나 안으로 자신을 수련할 줄 몰랐으며 사악이 틈을 타 박해를 받는데 이르렀다. 정말로 침통한 교훈이었다.

하지만 사부님과 대법은 나로 하여금 다시 일어서게 했다. 자료점이 곳곳에 꽃을 피우는 속에서 우리 집도 하나의 작은 자료점이 되었다. 심태가 그다지 안정되지 못하여 어떤 때는 일부 가상의 교란이 나타났다. 이때 두려운 마음의 표현은 자료점이 파괴될까 근심했으며 심태는 이전에 북경에 들어가 호법할 때와 달랐다. 그때는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할 줄 몰랐으며 생각이 아주 단순했다. ‘즉 대법제자라면 반드시 걸어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뿐더러 나는 나의 결심과 예측되는 후과를 모두 얕은 도리로 아이들에게 들려주었고 그들이 알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황이 다른 것으로 나의 가정 자료점은 여러 방면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수련하지 않는 친인들과도 관계된다. 그리고 주변 동수들과 구도할 필요가 있 중생한테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 자료점은 절대 교란과 파괴를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압력이 아주 큼을 느꼈으며 나한테 아직도 남아있는 두려운 마음으로 곤혹스러웠다. 나의 유일한 명확한 방법은 착실히 법공부하는 것이었다.

법공부속에서 나는 정말로 명백히 알게 되었다. ‘나는 응당 사람이라는 껍질을 벗어던져야 하며 늘 자신을 사람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며 이번의 박해를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로 여겼기에 정정당당 할 수 없었으며 비로소 근심과 고려하는 마음이 있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정법 중에서 정념을 갖고 사람의 마음을 갖지 말라”하셨으며 또 “나는 당신들을 이끌어 수련 중에서 신을 향해 걸어 나가며, 인식 상에서 점차적으로 인간을 벗어나고 인간을 초월하며, 생명이 원만하게 승화되는데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정법중에서 정념을 갖고 사람의 마음을 갖지 말라』) 라고 하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여러 번 공부했으나 진정하게 깨닫 못했다. 나중에 나는 동수와 함께 진상을 알리고 중생구도하면서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조금씩 사부님의 법에 대해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

어느 한 번, 한 수련생이 외지에서 나한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몇 가지 진상자료를 요구하였다. 그때 그 수련생은 수련하지 않는 친척의 전화로 전화했으며 안전하다고 여겼다. 아마 내 전화가 도청되었는지 나중에 그는 미행당하게 되었으며 관련된 통신장비가 모두 도청되었다. 그도 여러 차례 나한테 나의 전화가 여전히 도청된다고 하였으며 내가 거주하는 부근에 의심스런 차량이 서 있고 또 의심스런 사람이 거닐고 있다는 등의 내용을 알려주었다.

그때 나도 잠시 긴장하였으나 나는 나의 이런 일념을 견정히 했다. ‘반드시 예전처럼 내가 응당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나는 자신의 문제를 찾아냈다. 비록 입으로는 별로 말하지 않고 있으나 내심으로는 그래도 수련생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추어내었다. 나는 오직 사부님만이 이 고비를 화해할 수 있다고 여겼고 사부님께 구해주시길 바랐다. 그러자 아주 어렵게 여겨지던 일체가 모두 아주 가볍게 지나가버렸다.

또 한 번은 글자를 고칠 때 우리 구역의 한 법공부팀은 최근 갑자기 2-30명으로 늘었다. 어떤 사람은 환희심까지 나왔다. 또 과시심이 아주 강한 한 수련생도 최근 가입해 들어왔고 도처에 다니면서 다른 동수들이 함께 참가하도록 동원했다. 나는 이 소식을 들은 후 아주 불안해졌으며 안전하지 못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아주 긴박하기에 나는 단지 한 수련생을 찾아서 개인의 생각과 건의를 이야기했다. 만약 이전같으면 나는 아주 조급했을 것이며 초조하게 혹 발생할 두려운 후과에 대해 상상하며 아주 긴장해져 어쩔 수 없이 소용돌이에 빠졌을 것이다.

지금은 막 이런 심태가 나타났으나 즉시 옳지 않음을 생각했으며 정황이 긴급하기에 오직 사부님께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자 즉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나 역시 늘 일에 봉착해 사부님께 구해주실 것을 바라서는 안 됨을 알았고 사부님께서 대법제자한테 주신 신통법력은 나는 응당 자신이 사용해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비록 내가 사악의 교란과 박해를 깨끗이 제거하고 있으나 나는 아직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고 아직도 사람 이 표면공간의 표상을 중히 보고 있다. 큰 마난에 봉착하면 그래도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였다. 실제상 나의 신사신법(信師信法) 정도는 아직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사람의 관념이 아직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침통한 교훈이 나의 사람 관념을 충격하였다. 우리 한 수련생은 대법을 실증하는 중요한 일을 책임지고 있는데 최근 체포되었고 야만적으로 집을 수색당하고 강탈당하였다. 이는 우리 지역에서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일부 교란과 손실을 초래했다. 나는 직접 그와 연계 했었다. 그의 박해는 나더러 참답게 자신의 문제를 찾게 했다. 나는 늘 그의 집에 가서 자료를 받아다가 다른 동수들한테 가져다주었다. 집 주소가 폭로되지 않았고 아주 안전했으며 아주 느슨했기에 밖에서 만나는 것보다 편리했다. 두려운 마음, 안일을 구하는 마음, 자신의 편리만 도모하려는 마음,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는 심리 등 각종의 사람의 마음을 지니고 이런 엄숙한 일을 하고 있었으나 종래 발견해내지 못했다. 나는 그가 중요한 일을 감당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왜 종래로 늘 정념으로 그를 가지하여 주지 못했을까, 또한 그의 공간장 안팎의 사악의 교란과 박해 요소를 깨끗이 제거하지 못했을까?

왜냐하면 내게는 그렇게 강대한 정념이 없었으며 사람의 관념, 사람의 사유가 나로 하여금 자신에게 아직 그러한 능력이 없도록 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실 대법제자 개개인은 모두 능력이 있는 것이다. 단지 표면 공간에서 표현되어 나오지 않았을 뿐이어서 공능이 없다고 여길 따름이다. 하지만 표면공간에서 표현될 수 있든지 없든지 막론하고 진념(眞念)을 움직일 때에는 모두 위력이 강대하다.”(『정진요지 2』「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는 것이다」)

침통한 교훈은 나로 하여금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게 했으며 나는 늘 사람마음으로 수련 속의 크고 작은 일을 보아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일사일념 속에서 자신을 귀정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버리고 정념을 사용하며 신념(神念)을 사용한다면, 그럼 진정으로 안전해지며 더는 두려운 마음이 없게 될 것이다.

문장발표 : 2009년 6월 1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9/6/15/2027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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