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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대법제자의 “명분”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6월3일] 동수 갑은 7.20 이후에 법을 얻은 제자인데 수련하면서 가정 마난이 비교적 컸다 : 그의 아내는 법 공부, 연공, 발정념과 진상 알리기 등을 늘 방해했고, 몇 번이나 대법 책을 감추었다. 수련생은 아내와 한 번 크게 다투었을 때 “당신이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해도 다 되지만 대법을 배우지 못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당신은 반드시 내가 집에서 정정당당하게 법공부 연공을 하는 것을 허락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모순이 그치지 않아 수련생은 몹시 고민하면서 나한테 몇 번이고 말했다. “ 나는 꼭 우리 가정 환경을 바로 잡아 대법에 올바른 위치를 주어야 겠다”

애초에 나는 동수의 아내가 마성이 커 구세력이 그녀를 이용해서 대법제자를 시험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우리는 발정념으로 동수 아내의 배후에 있는 일체 사악한 요소를 청리해 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발정념을 할수록 그 동수 아내의 마성이 더 커지고, 가정 모순은 갈수록 격렬해 진다는 것을 발견 하였다. 최근 한 번은 동수의 부부가 다툰 후 그의 아내가 집을 나가 버렸는데, 며칠 후 돌아오긴 했지만 동수에게 한 가지 규칙을 세웠다 : “ 난 당신이 집에서 연공하고 무엇을 하던 다 허락할 수 있지만 다른 동수들과 접촉하는 것만은 허락할 수 없어요.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린 이혼하거나 내가 죽어 버리지요……” 그녀의 이런 묘기는 정말로 수련생을 “잡았다” 그 때부터 이 수련생은 감히 다른 동수들과 접촉하지 못했고, 우연히 다급하게 한 번 만나기는 했지만 나는 동수의 침중하고 억제되고 어쩔 수 없어하는 심리를 감수할 수 있었다. 비록 집에서 “명분”을 부여받았지만 왜 도리어 홀가분하지 못한가? 동수의 일로 인해 나 자신이 한 동안 걸어왔던 길이 떠올랐는데, 동수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하고자 한다.

몇 년 전 나의 가정관은 더욱 컸는데 아내의 교란이 갑 동수의 아내보다 더 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어떤 때 내가 동공을 연마하면 갑자기 아내가 뒤에서 콱 밀어버리는 데 나는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을 지경이다. 어떤 때 정공을 연마할 때면 아내는 내 앞에서 쉴새없이 주절대며 내 머리를 흔들며 “들었는가?”하고 묻기도 하였다. 어떤 때 내가 법공부를 하려고 막 책을 들면 그녀는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라고 시켰다. 어떤 땐 저녁에 법공부를 시작하려 하면 그녀는 자겠으니 전등을 끄라고 했다. 어떤 땐 아침에 가부좌하고 앉았는데 그녀가 갑자기 나를 밀어 넘어뜨리는 등등으로 입에는 욕을 달고 있었다. 그 때 우리 집 가정환경은 그야말로 하나의 대관이라고 느꼈다. 내가 가장 잊지 못할 것은, 어느 날 점심시간에 나는 한 수련생을 데려다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홍샤오로우(红烧肉) 한 접시를 사왔는데 아내가 보더니 한 바탕 욕설을 퍼부었는데, 우리에게 욕을 할수록 화가 치밀어 나중에는 훙샤오로우를 쓰레기통에 쏟아 버렸고, 수련생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이런 가정환경을 돌파하고, 대법에 올바른 위치를 줄 것인가? 처음에 나는 이치에 따라 강력히 논쟁하고 발정념으로 상대방을 청리했다. 하지만 그 뒤에 씬씽이 제고됨에 따라 갈수록 문제의 관건은 나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하고, 추호도 밖을 향해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 이것은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기본적 요구이신데, 가정 환경을 바로 잡을 수 있는가의 여부는 “쟁투”에 있는 것이 아니며, “폭력”에 의거하는 것은 더구나 아닌 만큼, 선함과 강철도 녹일 수 있는 그런 자비심에 의거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의 관, 하나의 난 중에도 모두 수련인에 대한 씬씽의 높은 표준 요구가 잠재해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왜 당신을 방해하거나 욕할 수 있는가? 당신 자신에게 아직도 각종 사람마음과 집착 등으로 형성된 좋지 못한 하나의 장이 존재하고, 이 장이 상대방의 마성을 불러와 당신을 공격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의 장이 아주 순수하여 시시각각 일종의 상서로운 심태를 유지 한다면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명하다”는 그런 바른 장이 상대방의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손쉽게 녹여 버릴 것이다.

이로부터 나는 깨닫게 되었다. 가정은 수련인을 쾌속으로 제고, 승화시키는 가장 훌륭한 환경이며, 이런 환경 속에서는 당신의 쟁투심, 미워하는 마음, 색욕심, 위사위아 하는 등등 마음이 가장 쉽게 나타나 당신의 수련, 향상하는 마음, 고밀도의 부닥침과 겨룸이 생성하게 된다. 오직 자신이 끊임없이 안을 향해 찾고, 안을 향해 찾는다면 당신은 자연히 비약적으로 승화하게 될 것이다! 상대방을 당신의 가족이라고만 간단하게 보지 말아야 하며, 더구나 “적”으로 대립해서 보지 말아야 한다. 매 관마다 모두 “사람”으로부터 “신”으로 가는 한차례의 시험으로 봐야 한다. 생활의 사소한 일, 개인 이익을 위하여 아내 (혹은 남편)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은 “사람”에게 고개 숙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 사람마음의 한 차례의 돌파인 것이다. 능히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의 것이며, 사람의 것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신의 것이 있게 된다.

끊임없이 자신을 이성적으로 일보일보씩 전진하도록 지도하는 동시에, 나는 자신의 씬씽이 아주 빨리 제고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집안 일도 피동적인 상태에서 주동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속으로 한 점을 튼튼히 틀어쥐고 있었다. 나는 아내와 다투지 않으며, (혹은 될수록 다투지 않는다) 당신에게 얼마나 큰 마성이 있고, 애초에 구세력이 어떻게 당신을 배치하여 나를 괴롭히던 간에 당신은 필연적으로 나와는 “큰 연분” 이 있는 사람이므로 나는 당신 배후의 사악한 요소의 교란을 청리하는 동시에 더 많이 당신을 배려하고, 당신을 배려하고, 당신을 배려할 것이다……어떤 때 내가 방금 책을 들었는데 그녀가 나에게 이것저것 하라고 시킨다. 그러면 나는 “그래, 그러지” 하고는 그 일을 다 끝낸 다음 묻는다. “또 할거 있나?” 그러면 그녀는 “물러가요!” 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다시 책을 계속해 볼 수 있었다. 어떤 때 내가 금방 입장하고 발정념을 하면 그녀는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바닥을 닦아요!” “알았어!” 다 닦고 난 뒤에도 깨끗하지 않다면서 나를 “돼지”라고 욕하면 나는 다시 한 번 닦았다……어떤 때 그녀는 아주 비싼 옷을 사가지고 와서는 나에게 묻기도 했다. “ 화나지 않아요?” “화나긴, 당신이 입고 기쁘다면 나도 기쁜 거야.”

나는 그렇게 서서히 자신의 심태가 예전보다 훨씬 온화해 져, 아내와 다투려고 하던 그 기운이 점차 없어짐을 발견 하였다. 어떤 때 작은 일 한 가지를 가지고 나와 다투려 할 때면, 나는 요만한 일에 화를 낼 필요 있는가?라고 생각했다. 마치 그녀는 나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했다 ……그럴 때면 그녀는 다투고 나서 나에게 사과하곤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더 후에는 내가 법공부를 하거나 연공하거나 발정념 할 때, 더는 나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묵묵하게 있는 것이었다.

더 후에는 내가 심태가 좋지 않아 화를 낼 때 그녀는 나에게 따라 배운 말을 아이한테 한다. “ 우리 발정념으로 너의 아빠 배후의 사악을 청리 해 주자”

더 후에는 내가 친척, 친지에게 진상을 말하여 3퇴를 권할 때 그녀는 곁에서 따라 말했다. “탈퇴 하세요, 탈퇴 하세요, 공산당이 뭐가 좋아요? 모두 한 무리 탐관오리들인데….” 그래서 내가 아내에게 “당신 정말 잘하는 군” 이라고 했더니 아내는 “ 내가 볼 때 당신이 좋은 사람이기에 비로소 당신을 도와 불을 지펴 준거죠, 그렇지 않으면 난 상관도 하지 않을 걸요”

어떤 때 그녀는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내가 집에 막 들어서면 나를 밀어낸다. “우리 속인은 텔레비젼을 보겠으니 당신은 가서 법 공부하고 연공이나 하세요.” 매 번 이럴 때마다 나는 그야말로 감개무량해 진다!

“명분”, “명분”, 이것이 바로 한 대법제자로서 가정에서의 “명분”이다. 그는 가족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점은, 당신이 잘함으로 인해 아내가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감수하게 한 것이며, 이는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해 그들에게 더욱 아름다운 미래가 있게 한 것이다. 그렇지만 가정의 “명분”은 “다투어” 온 것이 아니라 묵묵히 안을 향해 찾으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데서부터 수련해 낸 것이다. 그동안에 수많은 고생이 있긴 했지만 매 일보마다 남겨 놓은 것은 모두 승화된 발자취였고, 매 일보는 모두 사람으로부터 신에게로 내디딘 것이었다……

문장발표 : 2009년 6월 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9/6/3/2021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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