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수의 글 >을 읽고-
[명혜망 2009년 5월 24일]
오늘 명혜글 >을 읽고 꽤 감촉이 있었는데 예전에 이와 유사한 문제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제기해 동수님들과 교류하려 하는데 부당한 곳이 있으면 많이 시정해 주기 바란다.
수련생은 글 >(명혜망 2009년 5월 17일 글)에서 공항에서 안전 검사하는 한 장면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정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을만큼 동수의 정념도 매우 강하였다. 모두 알고 있듯이 안전 검사는 아주 엄격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한 각도에서 생각해 보았는데, 왜 우리가 일을 하기 전에 첫 일념이 박해였을까? 만약 우리가 지닌 게 일반적인 CD이고 진상 CD가 아니라면 우리가 그것을 소매 속에 감추었을까? 가령 안전 검사원이 정말로 소매 속에 있는 CD를 발견했다면 그들은 정상적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서 더 의심하지 않았을까? 만일 우리가 대범하게 CD를 짐 속에 함께 넣었다면 그들은 하나하나 그 안에 있는 내용을 검사했겠는가? 비행장 안전검사 대상은 주요하게 위험물품으로 예를 들면 칼, 불 등등이다. 왜 우리가 우선 생각하는 게 그들이 검사대상을 대법제자일 것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왜 자신을 늘 박해 받는 이 각도에 놓고 보는가? (여기에서 보아낼 수 있는 것은 수련생은 이러한 예사로운 검사내용에 대해 잘 요해하지 못하고 있다)
일전에 한 수련생을 만났는데 그는 이전에 박해를 받은 적이 있었다. 후에 그는 자신의 신분증명을 전부 고쳤다면서 최근 몇 년간 한 번도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고 알려주면서 그는 비행기를 타기만 하면 가능하게 위험이 있을 수 있고, 파출소에서 그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왜냐하면 비행기를 타면 모두 신분증명을 수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게 분석해 줄 때 그가 이러한 정황에서 비행기를 타도 실은 위험하지 않다고 하자 그는 비로소 자신이 정말 좀 긴장했음을 생각하였다.
정법의 홍세는 오늘까지 추진되었으나 사악은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나기를 달가와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필경 사악이 이미 아주 적어졌으며 박해는 이미 지하로 들어가 버렸다. 이때 우리는 응당 사유방법을 전환하여야 하지 않을까?
사부님께서 >에서 제기 하셨듯 “이 단락 역사는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하여 안배한 것인데, 당신들은 왜 이 주역을 맡지 않는가?”“왜 사악의 박해를 그처럼 중하게 보고 있는가?”(>)고 하셨다. 자신의 정념이 언제나 늘 그렇게 강하지 못해도 나는 늘 이 단락의 법을 생각하곤 한다. 우리는 응당 그런 박해를 받고 있다는 비자각적인 심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며, 중생을 구도하는 역사무대에서 정정당당하게 진정한 주역이 돼야 하는 것이다.
물론 매 사람의 구체정황은 모두 같지 않으며 구체적 문제는 역시 구체적으로 대해야 하는 것으로 안전문제 또한 역시 홀시할 수 없는 것이다. 나도 단지 동수의 글을 읽고 생각되는바가 있어서 자신의 층차에서 일부 견해를 말할 뿐이며, 벽돌을 던져 구슬을 끌어들이려는 생각에서 글을 쓴 것이다. 희망컨대 동수님들이 바르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발고일자: 2009년 5월 24일
갱신일자: 2009년 5월 2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5/24/2015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