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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제자를 잘 이끄는 것을 다시 말함

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5월 18일】 명혜망에서 늘 동수들이 어린 제자를 잘 이끄는데 대한 체험을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사당이 학생을 당, 단, 대에 가입시킬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도 있다. 우리 세 식구가 이 방면에 수련한 체험을 결합하여 말해보고자 한다.

나의 식구는 아주 간단하다. 일가족 3식구가 모두 수련인이다. 딸은 올해 8살이고 초등학교 2학년이다. 

2001년 초는, 강택민이 분신자살사건 사기극을 날조한 사악이 가장 발광하던 시기였다. 그때 나는 불법으로 우리 시 세뇌반에 감금되어 있었다. 당시 아내는 이미 임신 중이었다. 내가 불법으로 감금된 기간에 딸이 출생했다. 나는 아이가 한 달이 된 후에야 풀려나오게 되었다. 세뇌반에 있는 기간에 나는 사람마음의 집착으로 아내의 안위에 대해 걱정했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말에서 안심되었으며 감동되었다. 아내는 그 짧은 나날에 조금도 고생스럽지 않았고, 다만 진상을 알려 박해에 반대할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마치 있어 본적이 없는 그런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아이도 아주 말을 잘 들었는데 엄마가 장보러 갈 때 ‘보도’ 음악을 틀어놓고 아이를 혼자 두어도 떠들거나 울지도 않았고 또 머리를 쳐들고 웃으면서 놀고 있었다고 했다.

내 기억에 당시 임신 사실을 알기 전에 아내는 어렴풋이 꿈에서 일찍 하늘 새(天鸟)가 날아와 그녀의 입에 구슬을 넣어 주었다고 했다. 당시 나는 사부님께서 수련인의 아이는 모두 내력이 있다고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아내가 임신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날로 가서 임신검사를 한 결과 정말 임신이었다. 이 신기(神奇)한 일은 사부님의 설법을 공부하여 얻은 것이다. 우리는 아이가 정말로 법을 얻기 위해 우리 집에 왔다고 믿었다.

동수들의 도움하에 우리는 줄곧 이성(理性)적인 심태로 아이를 대했다. 우리는 어린 제자를 잘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으며 동시에 또 아이의 상태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딸은 올해 이미 8살이다. 동수의 말에 따르면 아이는 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부터 매일 법을 들었고 엄마는 임신한 상태에서도 진상자료 배포와 진상 알림을 견지했다고 한다.

우리는 아이를 대하는 상태에서 과시심, 환희심, 또 수구(修口)에 주의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아이에게 무엇을 보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예전에 일부 어린 동수들이 천목이 열린 것를 알고 있다. 또 어른 동수들이 주의하지 않아 여기에 집착하면서 이것저것을 물어 보는데 그 결과 어린 동수의 수련에 상해를 조성했다. 아주 많은 어린 제자들이 성장한 다음에 도리어 안 되는 원인은 여러 방면이 있는데 부모의 책임이 아주 크다.

아이의 상태는 또 어른들 수련 상태의 반응이다. 아이는 아주 순수하므로 부모의 상태는 아주 쉽게 아이의 신체에 반영된다. 여러모로 볼 때 아이의 신체 상태는 우리 수련이 바로미터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 어떤 이는 이해하지 못할 텐데 사실 속인 중에 있는 유전이란 도리이다. 중국 전통에는 “부모의 빚은 자식이 갚아야 하며, 조상의 덕은 자손들이 향수를 누린다”는 말이 있다. 법리상에서 보면 아이의 생명 속에는 부모의 요소가 있다. 어린 수련생은 부모(대를 건너 뛰어 양육하는 도리도 마찬가지이다)를 위해 감당할 수 있다. 모두 도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좋지 않는 상태가 나타나면 나는 먼저 자신의 상태에 누락이 없는지 검사한다. 사실상 이러하다.

되돌아보면 2001년 5월 세뇌반에서 나온 후 나는 두려운 마음이 아주 심했다. 누가 집 문을 두드리거나 사무실 전화만 울려도 악인이 왔나 싶어 두려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때 아이도 아주 긴 시간 역시 늘 두려워했는데 거리에서 차의 경적소리만 들어도 모두 두려워하였다. 나의 수련이 제고됨에 따라 두려운 마음이 제거되었을 때 아이의 공포심도 무의식중에 소실되었다. 또 한번은 내가 수구하지 않고 한 동수의 집에서 우리 아이는 종래로 약을 먹은 적이 없으며 신체가 어떻게 좋다고 자랑했다. 비록 한 사람의 연공으로 전 가족이 이익을 얻었다는 것을 실증하긴 했지만 심태에는 아주 강렬한 과시심과 환희심이 있었다. 결국 말이 끝나자 반시간도 못 되어 유치원 선생님이 전화로 아이에게 열이 아주 심하다고 했다. 나는 즉각 자신이 잘못하여 아이가 나의 이런 부족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병상태가 나타났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나는 먼저 자신의 수련 상태를 검사해야 한다. 어른으로 놓고 볼 때 이것은 친정관(亲情关)을 고험하는 것이다. 아이는 일찍이 몇 년간 몇 차례에 걸쳐 큰 마난(魔难)이 나타난 적이 있다. 모두 사부님의 보호와 우리에 대한 사람마음의 고험 중에서 넘어갔다. 

아이가 2살 무렵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동수인 이모 집에서 나올 때의 일이다. 아이가 손으로 문을 여느라 잡아당겼는데 알루미늄 샷시가 다시 닫히면서 엄지 손가락이 문에 끼였다. 아내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노 수련생이 3층에서 내려온 후에야 문이 다시 열렸다. 아이의 손가락은 마치 얇은 흰종이처럼 뼈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모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사부님께 도와 달라고 청했다. 그 결과 아이의 손은 한순간 정상으로 회복 되었다. 전반 과정에서 아이는 또 울지도 않았다. 이런 신기한 일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대법의 신기를 알릴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예제이다. 

이 외에도 아이는 늘 긴 수도관에 머리를 부딪치는 등 일부 위험한 일들에 봉착한 적이 있지만 모두 안전하게 지나쳤다. 한번은 아이가 고열이 났을 때 저녁에 우리는 사부님의 설법을 들려 주었다. 아이는 혼미해지면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내는 마음이 불안하여 정(情)으로 대하면서 언행이 오로지 관심을 갖고 보호했다. 하지만 아내가 이렇게 할수록 아이는 더욱 혼미해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명백했는데 설사 속인 중에서 큰 병이라 해도 명에 아직 목숨이 끊어질 이치가 없다면 마땅히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오직 병업의 고생을 겪기만 하면 끝나는데 내 아이는 사부님께서 보호하고 계시기에 당연히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나의 이 염두는 아주 견정했다. 나는 아내의 인정으로 대하는 보호에 대해 강대하고 엄숙하게 제지했다. 견정하고 엄숙한 언어로 아이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아내도 명백했다. 결국 아이는 정말 강건해졌고 또 신음조차 하지 않았다. 한밤중에 고열이 내리자 웃음을 보였다. 

아이는 대법의 분위기 속에서 출생하여 대법 음악과 텔레비전 프로를 아주 좋아하며, 만회 공연에 나오는 동수들을 따라 춤추는 것을 즐겼다. 아이가 2살 무렵 우리는 『홍음』을 읽어 인도해주었다. 4살 때부터 아이는 우리를 따라 『전법륜』을 한 번, 두 번 읽었는데 틀리는 글자가 아주 적었다. 5세가 되기 전에 아이는 낮에는 도우미 수련생이 봐주었고 저녁이면 우리가 데리러 갔다. 5살이 지난 후부터 유치원에 갔는데 아이는 주동적으로 우리를 따라 연공했다. 일체는 모두 마치 아주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물론 아이의 상태는 같지 않다. 연공도 늘 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도 너무 집착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공부만은 반드시 우리 3식구가 하나의 단체 법공부 팀이 되었다.

나는 현지에서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으로 아주 유명했기에 내게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나는 자신이 잘하고 아이가 잘하는 것이 바로 법을 실증하는 한 부분이라고 인식했다. 그리하여 나는 줄곧 아이가 학교에서 잘하도록 인도하는데 아주 심혈을 기울였다. 아울러 나는 대법제자의 좋은 표현으로 선생님, 다른 학부모들과 소통했다. 아이가 5세 때 유치원에서 취학 준비반 공부를 시작했다. 1년 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짧은 1년 중에서 아이는 비록 유치원에 늦게 들어갔기 때문에 공부 방면에서 두드러지진 못했지만 어린 제자의 순정한 일면으로 선생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그 1년 동안 유치원에서 연말 ‘착한 어린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나는 전체 학부모 회의에서 발언하도록 초청되었다. 비록 당시 자신의 상태로 인해 발언 중에 법을 더 잘 실증하진 못했지만 그러나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공개 신분으로 능히 이런 회의에서 발언한다는 것 역시 선생님들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이 역시 막 법을 얻은 한 선생님이 나중에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2007년 9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간 후 1주일이 지나 반주임(담임)이 가정 방문을 왔다. 담임 선생님은 대학을 갓 졸업했다. 그녀는 나에게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잘 교육했나요.”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 3가지 원인을 말했다. 첫째는, 부모 스스로 바르게 행동하고 솔선수범 해야 하며, 둘째는, 가정이 조용해야 한다. 다투거나, 이혼하거나 마작을 하는 소리 등이 없어야 한다. 세째가 가장 중요한데 나는 파룬궁을 연마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듣자마자 멍했다. 나는 천천히 해석해주었고 내 말을 들은 후에야 이해했다. 나중에 진상 자료를 집에 가져 가서 보겠다고 하였다.

나는 줄곧 아이의 여러 선생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매번 명절이면 짧은 편지로 문안인사를 했고 또 크리스마스 카드(대법 진상을 넣어 축복하는 말)를 아이에게 주어 선생님께 기념으로 주라고 했다. 그때 우리 지역에 한 동수의 아이가 있었는데 우리 아이보다 조금 컸다. 그런데 초기에 학교에서 아주 큰 압력을 받았다. 왜냐하면 동수의 가족은 이전에 엄중한 박해를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개인적인 인식은 학교에 대해 우리는 마땅히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대하고 이성적으로 교류해야 한다. 그들에 대한 표현 방식에 주의해야 한다. 되도록 자비롭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물론 무리한 괄시를 받을 때면 우리는 그를 찾아가 진상을 알리고 이치를 말하는 동시에 위엄도 있어야 한다.

소선대에 들어가는 문제를 말해보자. 솔직히 말해 아이가 출생하여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아이가 장래 학교에서 압력에 직면할까 근심되었다. 그때는 입대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9평’이 나오자마자 나는 바로 입대 문제가 생각났다. 당시에는 아주 처리하기 힘들다고 인정했다. 초기에 또 “곧 결속될 수 있을까? 내 아이에게까지 이런 일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줄곧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약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동수의 집에 아직 법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수련생은 그에게 일단 입대시킨 다음 다시 탈퇴시키겠다고 했다. 사실 이것은 틀린 것이다. 더욱이 법을 공부하는 어린 제자로서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사존께서는 사당이 강제로 끌어서 입대한 것은 입대로 칠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엄격히 요구할 수 없는가? 나는 대법제자의 아이가 입대하지 않는 것 역시 법을 실증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아주 많은 진상을 알고 있는 속인조차 모두 감히 이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대법제자만이 여기서 이끌어갈 수 있다. 신앙 자체는 마땅히 자유여야 한다. 하물며 신앙하지 않는 것조차 자유가 없단 말인가? 대법제자는 이 올가미를 타파하고 가장 처음으로 당단대에 입대하지 않는 것을 돌파해 3퇴 조류와 함께 속인 사회의 천상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9평’과 3퇴 조류은 중공을 두려워 떨게 한다. 중공은 보선(保鲜) 운동 중에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당단대에 끌어들이고 있으며 소선대 입대 연령을 낮춰 유치원에 다니는 6살 아이들부터 입대시켰다. 나는 어린 제자의 마음을 견정하게 하여 입대하지 않는 것을 견지하기로 결심했다. 

아마도 내 자신이 이런 마음이 중했음인지 아이 역시 압력을 느끼면서 늘 입대에 대해 근심했다. 간혹 집에 돌아와서 선생님이 입대를 통지한 것처럼 말했다. 나는 즉각 집에서 발정념을 했다. 나중에 선생님에게 물었더니 아이가 잘못 들었다고 했다. 그 후 아이는 반에서 그들이 조직해 한 교실에 가서 공부하고 또 비디오를 보여줬다고 했다. 단지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 아이들만 참가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것이 입대하기 전의 사전작업이라는 것을 잘 안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가 도와줄 테니 근심하지 말거라.” 나는 밤새 한 통의 편지를 써서 선생님 및 학교 책임자들에게 보내는 성명을 썼다. 성명에는 신앙은 자유이고 사당에 입대하지 않는 것 역시 자유(그것의 당장에 규정이 있다)라고 제출했고,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부패하고, 독재와 폭력이 충만된 조직에 참가시킬 권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선생님들이 양심으로 이 문제를 대하기를 희망한다고 제출했고, 우리 아이는 입대하지 않는다고 성명할 것이니 경시해서는 안 되며 이 일로 아이가 권리를 침해당한다면 모두 추궁을 받을 것이라는 등을 제출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나와 교류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그날 저녁 나는 또 특별히 담임에게 전화를 걸어 탈퇴를 권했다. 그 이튿날 아이는 편지를 가지고 학교로 갔다. 선생님들이 모두 보았고 교장선생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사람들의 명백한 일면은 좋은 선택을 했다. 아이는 입대할 필요 없다. 원래 담임은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해 연말에 학생들의 심사에서 품덕이 하로 평가되었다. 내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을 때 그녀는 또 별로 원망하지도 않고 예의있게 대했다. 나는 설에 짧은 글을 적어 그녀에게 문안인사를 했다. 이듬해에는 선생님이 변경되었다. 

나는 선생님과 소통이 아주 좋았다. 아이는 공부에서 진보가 아주 컸고 여러 방면에서 표현이 모두 아주 좋았다. 반에서 간부로 당선되었다. 그 학기에 담임은 또 학생 평가에서 아이에게 제일 높은 평점을 주었다. 나는 이는 어린 제자 스스로 잘했기 때문이라고 인정했다. 동시에 가장인 나도 법을 잘 실증하는 것을 중시하여 양성적인 영향을 준 것도 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우리 가정에 대한 양호한 영향을 통해 나는 아주 쉽게 거리에서 선생과 아이의 상황을 교류하면서 2009년 신운 만회 시디를 주었다. 아이도 어린 제자로서 금년에 주동적으로 3가지 일을 한다. 역시 몇 명의 어린 동창들에게 탈퇴를 권하고 그들에게 아름다운 신운 만회를 보게 했다.

지금 나는 더는 아이의 앞날에 대해 근심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법을 얻었다. 우리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사실 마땅히 어린 제자가 이 위대한 정법시기를 따라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기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마찬가지로 사명이 있으며 자신들의 중생이 구도받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어린 제자의 수련과 법을 실증하는 것을 이끈 방면에서 있었던 일부 방법과 체험을 적었다. 삼가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문장완성:2009년 5월 1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5/18/201079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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