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하북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5월 17일】 사람 속에서의 수련은 바로 집착하는 사람마음을 없애고 자신을 승화하여 부단히 위로 상승하는 것이다. 매 하나의 집착심은 모두 수련인의 앞길을 가로 막고 있으며, 우리의 전진을 저지하는 하나의 자물쇠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이 자물쇠를 열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의 만능 열쇠를 주셨다. 바로 “심혈을 기울려 법공부하고 안에서 찾는 것”이다. 오직 우리가 법의 요구에 따라 하면서 진정으로 안에서 찾고, 법 속에 용해된다면 열지 못할 자물쇠가 없으며 바로 하나의 금빛 찬란한 하늘로 통하는 대도(大道)가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한 수련생이 말한 적이 있는데 안으로 찾음은 일종 즐거움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아직 안에서 찾을 줄 몰랐다. 그러므로 이 한 마디 말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몇 년 후에야 나는 안에서 찾는 것이 심신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다줌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 일체는 모두 사부님의 자비하신 가호이며 끊임없이 나로 하여금 법리를 이해하게 하셨으며 내게 각기 다른 동수들을 접촉하도록 안배하시어 법리상에서 토론하고 교류하게 하셨다. 특히 최근 1년간 법을 외우면서 더욱 생각하지 못했던 효과가 나타났다.
전 세계 대법제자 통일 시간 발정념을 시작한 후부터 나는 늘 저녁에 일찍 자고 12시에 다시 일어나 발정념을 했다. 12시 전에 자지 않은 때는 아주 드물었다. 원인은 졸음이 와서 12시까지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륙 제자들이 통일 시간 연공을 시작한 후 나는 기본상 모두 같은 시간 연공을 견지했다. 그런데 한 단락 시간이 지난 후 남편이 여러 번 나에게 이기심이 있다고 하면서 저녁만 되면 시끄럽게 굴어 몇번이나 잠에서 깼는데 도저히 잠을 들 수 없어 투덜거렸다! 원래 매일 저녁 9시 반이면 나는 잠을 잔다. 알람을 11시 55분에 맞춰두는데 발정념을 하기 위해서이다. 또 하나의 시계는 3시 45분에 연공을 하기 위해 맞춰놓는다.
남편은 걸핏하면 내가 6시 발정념을 할 때 화를 내면서 연속 몇 마디로 욕을 해 나의 발정념을 교란했다. 저녁이면 그는 텔레비전을 본다. 그에게 볼륨을 낮추라고 하면 그는 좋아하지 않으며 나더러 일이 많다고 나무란다. 비록 나는 그와 따지진 않았지만 그러나 마음속으로 그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그가 너무 정념이 없어서 나의 바른 일을 교란한다고 인식했다. 심지어 아주 긴 시간 그에게 진상 자료를 주지 않았다.
이전 한 시기 약 2개월 동안 밤 12시 발정념을 나는 기본상 하지 못했다. 마치 시계의 알람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것 같았는데 아주 괴로웠으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하루는 한 동수에게 이 일을 말하자 수련생은 발정념을 끝낸 후 잠을 잘 것을 건의했다. 나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 다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첫날에는 아주 좋았다. 연공하고 발정념한후 잠을 자니 정신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그 이튿날에는 안 되었다. 저녁에 연공하는데 졸음이 오면서 속이 메스꺼워 연공을 할 수 없었다. 발정념으로 자신을 청리할 때 혼미하게 지났다. 마치 몇 분이 금방 지나간 것 같았다. 그런데 시계를 보니 12시 반이 넘었다. 할 수없이 다시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반달 전 또 다른 한 동수 역시 발정념 시 졸음이 온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때에야 나는 참답게 자신을 법으로 가늠해보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타후아(先他後我),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정각을 수련성취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런데 나는 그렇게 했는가? 무엇 때문에 남편이 나에게 이기적이라고 하는가? 나는 다른 사람을 생각한 적이 있는가? 남편은 속인이다. 낮에는 차를 운전하니 저녁에는 잘 휴식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다만 자신의 감수만 중시하고, 자신의 득실(得失)에 집착하면서 아울러 자신이 하는 일은 바른 것이라고 하면서 이기심이란 더러운 마음으로 덮어 감추면서 자신은 잘못이 없고 그가 잘못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동시에 후천적인 관념을 붙잡고 놓지 않았는데 그것이 바로 한밤을 넘기지 못하고, 어떻게 하루에 5시간 밖에 자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위사(爲私) 속에서 뛰쳐나오니 본래 내가 잘못한 것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줄곧 밖에서 찾았으니 자신의 모든 것이 법에 부합되지 않았다. 그럼 다그쳐 바로 잡고 새롭게 잘해야 한다.
그날부터 시작해서 나는 매일 저녁 연공과 발정념이 끝난 후 잠들었다. 알람을 없앴음에도 기적이 나타났다. 더는 졸음과 메스꺼운 감각이 없었다. 아침 5시쯤 바로 일어난다. 남편 역시 텔레비전을 보면서 내가 말할 필요 없이 주동적으로 볼륨을 낮추고는 나에게 볼륨이 이만하면 되겠어? 하고 묻는데 나에 대한 태도마저 전부 달라졌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된다면 당신의 신체는 하나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온다면 당신 신체의 물질도 보증하고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전법륜』)
전에는 왜 견지하지 못했을까? 원래 그때는 사람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서 안으로 찾지 않고 심성에서 자신을 제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법으로 가늠하고 법에 부합하지 않는 요소를 없애 버리자 완고한 것이 평온해졌고 일체가 모두 좋아져 정말로 “막다른 곳에도 길이 열렸다.”
작년 4월에 수련생이 나를 도와 직장을 찾아 주었다. 어느 가족 회사의 상점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직원은 오직 나 한 사람 뿐이었다. 매일 출근하여 청소한 후 손님이 오면 제품을 소개하는 일이었다. 회사 책임자는 내가 하는 일에 아주 만족해하면서 나와 같은 직원은 찾기는 힘들다고 했다. 나는 무의식중에 일종의 환희심이 나타났다. 간혹 주위 사람들에게 “어디 가서 나처럼 참답게 일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겠어요.”하고 말했다. 9월에 책임자는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 주말에 휴식하는 문제를 제출하면서 “우리는 지금 주말에 쉴 수 없어요.”하고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주말 휴식이 취소당할까 두려운 생각이 있었다. 왜냐하면 이 단락 시간에 나는 주말을 이용해 진상자료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사악이 사람을 조종하여 교란한 것으로 여겨졌다. 나는 견결히 이것을 승인하지 않았고 그것을 부정하였다. 이 일로 인해 몇 차례 발정념을 했다. 어느 날 책임자가 전화를 걸어 나에게 물건을 발송해야 하므로 빨리 가게에 가서 문을 열어줄 수 없는지 부탁 하면서 “만약 안 된다면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거리에서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직원이라고는 나 한 사람뿐인 무엇이 그리 대단한가, 또 이곳을 떠나면 일자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이것으로 누구를 놀라게 하려 하는가! 이 일은 쉽고 자유롭고, 책임이 별로 없으니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적은 월급으로 다른 일자리를 찾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이곳보다 돈도 더 많이 벌 텐데! 일이 끝난 후 생각할수록 불안했다. 어쩌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수련인이 봉착하는 모든 일은 우연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으로 잘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놀랍게도 아주 많은 사람마음이 폭로되어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이 나를 칭찬할 때는 바로 환희심, 과시심이 나타났고 주말에 휴식하는 일에 대해서는 또 질투심이 나타났다. 남들은 근무시간이 나보다 짧고, 정오에는 휴식하며 또 시간외 수당도 있다. 8월에 월급을 줄때 전에 있던 경리는 내 월급에서 60원을 뺐다. 나는 바로 화가 치밀어 그와 말다툼을 벌였다. 또 사장 및 부사장과 이 일을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월급을 뺀 것은 이치가 없지만 그러나 어떠한 일이나 모두 그 배후 요소가 있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했고 들어온 돈을 잃을까 두려워했다. 이 일체는 모두 속인 행위의 표현이 아닌가? 완전히 우주 특성을 벗어났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명(名)에 집착함은, 유위(有爲)적인 사법(邪法)이라, 만일 세간(世間)에 이름 나려면 기필코 말은 착하게 하나 마음에 마(魔)가 있어 대중을 미혹시키고, 법을 혼란하게 하노라. 돈에 집착함은, 재물을 구하고 거짓 수련하는 것이라, 교를 그르치고 법을 그르치어 백년을 헛되게 보냄이라, 부처수련이 아니로다.”(『정진요지』「수련자 금기」)
내가 어떻게 진수라고 말할 수 있는가! 문제를 찾았다. 나는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달에 회사에서 바쁘면 내가 쉬지 않고 근무하고 바쁜 일이 끝나면 그때가서 쉬겠다고 말했다. 책임자는 기뻐하면서 내 말에 동의하고는 잘 이해하는 사람과는 일하기가 쉽다고 말했다. 일체가 평온하게 변했으며 불안한 것들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주 주관이 뚜렷했고 아주 능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늘 다른 사람에게 이것은 안 되고 저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관념은 수련 중에서 줄곧 표현되었다. 늘 동수의 결함만 보면서 수련생이 법으로 가늠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동수와 교류할 때도 늘 자신을 높이 보았다. 그러나 자신은 도리어 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보건대 동수에게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면서 돌아서서 자신을 보려 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상대방이 여하여하 하다고 본 것을, 반대로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정진요지』「시간과의 대화」)
자신은 수련생을 도와 빨리 법 중에서 깨닫게 하여 속인 속에게 걸어 나오게 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특히 연초 이후 한 동수와 만나 교류할 때마다 늘 논쟁을 벌였다. 한 가지 문제를 놓고 각자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관점을 인정하게 하면서 바로 자신이 맞다고 강조했다. 온갖 방법을 다해 상대방을 부정하고 심지어 언어나 표정조차 모두 선하지 않았는데 마치 연속으로 포를 쏘듯이 완전히 사당 문화가 조성한 투쟁하는 물건이었다. 나는 줄곧 수련생이 일부 문제에서 법리가 뚜렷하지 못하다고 인정하면서 수련생이 떠난 다음 마음속으로 계속 “안 된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교류를 잘하여 그로 하여금 법상에서 명백하게 인식하게 해야겠다.”고 중얼거리면서 즉각 사부님의 설법을 찾아 적었다.
표면상에서는 동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나는 점차적으로 자신의 이기심이란 집착을 보게 되었는데 이기심을 둘러싸고 그 마음을 늘 버리지 못했다. 모순 중에서 바로 자신을 보고 자신을 수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수련인은 층차의 경지가 부동하다. 법리에 대한 이해, 법에 대한 깨달음 역시 부동하다. 그런데 어찌 자신이 깨달은 법리로 다른 사람을 지도하려고 하면서 개변시키려 할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전법륜』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부동한 층차에는 부동한 법이 있으며, 매 한 층차의 법은 모두 우주의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지만, 이 한 층차 중의 법은 이 층차 중에서 지도적 작용이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동수에게 존재하는 문제에 직면하여 만약 자신의 관념을 품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법에서 동수와 교류한다면 법리상에서 함께 제고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류하는 과정이 바로 서로 제고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시 수련생을 만났을 때 피차 자신이 깨달은 법리로 교류를 진행했다. 우리 둘은 모두 법리상에서 제고했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우리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으로 찾으며 안으로 찾으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에야 진정으로 안으로 찾는 오묘함을 체험했다. 그 집착심을 찾고 , 그것을 버려야만 마음이 진정으로 가벼워지며, 법속에 용해된 즐거움이 존재하는데 마치 대법제자의 “하나의 관(关) 하나의 난(难) 한 층의 하늘”이란 노래 가사와 같다. 안으로 찾는 것을 잘하려면 반드시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하며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해야 한다.
오늘 수련심득교류회의 기회를 빌어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 무한한 경의를 드립니다. 사존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 드립니다! 제자는 반드시 멈추지 않고 정진하여 사존께서 안배하신 정법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고 잘 걸으면서 이 만능열쇠를 잘 응용하겠습니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지적을 바란다.
문장완성:2009년 5월 1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5/17/201053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