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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욕망을 위해 계율을 지키는’ 식이 되어선 절대 안돼

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5월 12일】

오늘 명혜망에서 『석가모니부처』를 읽다가 아래와 같은 한 단락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부처님의 종제(從弟 사촌동생) 난타(難陀)와 그의 아리따운 아내는 서로 아주 사랑했다. 하루는 그가 막 방에서 아내에게 눈썹을 그려주고 분칠을 해주려 하는데 부처님이 밖에서 동냥하는 소리를 듣고는 문밖으로 나가 부처님께 경의를 올렸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부처님께서는 그를 데리고 부처님의 거처로 가시어 삭발사더러 그의 머리를 삭발하게 했다. 나타는 한편으로는 부처님을 거역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아내를 초조하게 생각했다. 부처님이 그의 마음을 꿰뚫고는 곧 그를 산위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한 늙고 검은 원숭이가 있었다.

부처님이 “네 아내를 이 원숭이에 비하면 어떠하냐?” 난타가 대답하길 “제 아내의 아름다움을 이런 추하고 비루한 것과 비교하시다니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부처님이 이번에는 그를 도리천으로 데려 가셨다. 그곳에는 천자천녀(天子天女)들이 함께 모여 즐겁게 놀고 있었는데 오직 한 궁전에는 천녀(天女)만 있고 천자(天子)가 없었다. 그 천녀의 살은 비단결처럼 고왔고 용모는 옥과 같았는데 아름다우면서 순결했다. 더욱이 인간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절색이었다.

난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왜 이곳에는 천자가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기를 “네가 직접 가서 그녀들에게 물어보거라!” 난타는 즉시 달려가서 질문했다. 그러자 천녀가 말하기를 “인간세상에 부처님의 종제인 난타란 분이 있는데 부처님께서 그를 인도해 출가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출가한 공덕으로 죽은 후 이곳으로 승천하여 이곳의 천자가 될 것입니다.” 난타는 기쁜 마음으로 세존께 와서 고했다. 부처님께서 되묻기를 “네 아내와 이곳 천녀를 비교하면 어떠하냐?” 그러자 난타는 “마치 눈먼 원숭이와 제 아내를 비교하는 것과 같은데 곱고 추한 것을 어찌 서로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부처님은 또 그를 데리고 아래로 내려갔다.

난타는 천상의 즐거움과 천녀의 아름다움에 비추어 곧 계를 지키며 수행했으며, 인간세상의 미색과 영화는 생각하지 않았다. 난타가 욕망을 위해 계율을 지키는 것을 보아낸 아난(阿難)이 시를 지어 그를 풍자하고 비평했다.

며칠 후 부처님은 재차 난타를 지옥으로 데려 가셨다. 그곳에서 큰 쇠가마 속에 사람을 삶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중 한 가마는 텅비어 사람이 없었다. 난타는 괴상하게 생각되어 옥졸(獄卒)에게 물었다. 옥졸은 “인간세상에 부처님의 종제 난타가 있는데 욕망을 위해 계를 지키다 죽어서 승천하면 천복(天福)을 다 누리고 나서 이곳에 떨어져 지옥의 고생을 받게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난타는 두려워져 부처님께 구해달라고 빌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네 천복을 근면히 수행해보거라!” 난타가 대답했다. “저는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면 늘 궁극적인 안락(安樂)이 아닙니다! 천상에서 쾌락을 마음껏 누려도 결국 복이 다하면 떨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삼도(三涂)로 떨어지고 지옥의 처참한 고통은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합니다! 저는 더 이상 승천을 바라지 않습니다. 세존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제가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해 주십시오!” 이에 부처님은 그에게 사제(四諦)의 묘법(妙法)을 두루 설하자 7일만에 아라한으로 성취되었다.」

이 일화를 본 후 빙그레 웃음이 나왔으나 곧이어 오싹하며 깨어났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나 자신은 또 얼마나 “욕망을 위해 계를 지키는” 식이었던가?!

예를 들면 내 얼굴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어떤 수련생이 건의하기를 잠을 좀 많이 자고 영양에 주의하라고 했을 때 뜻밖에도 마음이 움직였다. 또 어떤 수련생이 연공을 견지했더니 살결이 부드럽게 변했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도 모르게 연공을 아주 잘 견지했다. 연공은 확실히 피부를 개선하고 번티를 개변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미용’을 위하고 ‘건강’을 위해 연공하는 것이니 이것이 “욕망을 위해 계를 지키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예를 들면 아이(수련생)가 학교에서 성적이 내려가기만 하면 아이한테 이렇게 일깨워준다. “너는 안으로 찾아야 한다. 이 기간에 수련에 정진했는지 찾아보거라.” 수련을 마치 성적을 올리는 수단으로 보고 성적으로 수련의 표준을 가늠하는 식이 되었다. 대법수련은 확실히 지혜를 열어줄 수 있으나 절대 속인 중의 무엇을 위해 당신에게 지혜를 주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아직도 성적에 연연하고 있는데 이것이 그래 “욕망을 위해 계를 지키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예를 들면 발정념을 할 때 “박해를 피하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여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는 목적에서 순수하게 중생구도를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많건 적건 “자신을 보호”하는 성분을 지녔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발정념을 하는 이것이 그래 “욕망을 위해 계를 지키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예를 들어 진상을 알릴 때 때로는 순정한 불심(佛心)과 철저한 ‘무사무아’의 경지가 아니며 우연히 작디작은 ‘나’가 뛰쳐나오곤 한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원만’을 위하여 세인을 구도하는 이것이 그래 “욕망을 위해 계를 지키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속인의 것을 철저하게 내려놓지 못하고, 한 손에는 사람을 붙들고 놓지 않으며 다른 한 손에는 부처를 잡고 놓지 않는다. 물론 수련을 놓아버릴 수는 없지만 속인의 것도 무조건적으로 포기하기 아까워한다. 수련은 고생인줄 알면서도 속인 속에서 불편한 일만 생기면 밖으로 내민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물론 믿지만 천백년래 형성된 사람의 이치도 단칼에 끊어버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수련 속에서 얻은 분복을 득의양양해 하며 스스로 즐거워하고, 속인 속에서 잃어버린 것에 대해 의기소침해지는데 이런 근본적인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어찌 진수(眞修)라 할 수 있겠는가?

과거에 난타는 인과를 철저히 깨달아 “7일만에 아라한으로 성취”되었다. 우리는 대법수련으로 수련함이 더욱 빠르다. 최후 수련 시각에 동수들과 함께 하루빨리 대법에 동화되어 최후의 사람마음을 뿌리째 제거하고 철저히 속세에서 해탈하며 진정으로 대법이 만들어 낸 위대한 신이 되어 신통을 펼치고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며 중생을 구도하길 희망한다.

문장발표 : 2009년 5월 1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9/5/12/2007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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