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산동대법제자
99년“7.20” 악당이 공개적으로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은 전국의 대법제자와 한 뜻으로 파룬따파의 진실한 정황을 증공에 이해시켜서 대법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와 착오적인 정책을 개변시키기 위해 두 차례 북경으로 갔다. 우리가 두 번째 갔을 때 북경의 악경에게 불법 체포됐고 현지의 악경에 붙들려 돌아와 남편은 불법노교 박해를 당하게 되었고, 나는 아직 4개월된 아기가 있어서 집으로 돌려보내져 왔다. 여기에서 내가 여러분과 교류하고 싶은 것은 이 몇 년간 정법수련중에서의 일부 체험들이다.
1.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면서도 자신의 수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때 우리 지역의 많은 동수들은 북경에 가 법을 실증하면서 박해를 받았고 어떤 수련생은 불법 감금되었다. 어떤 수련생은 노교소로 보내졌으며 남은 동수들 중 많은 이는 집에서 나올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대법을 실증하고 세인들로 하여금 대법이 박해받는 진상을 알게 하기 위해 나와 몇몇 수련생은 각종형식으로 세인을 향해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막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진상자료가 없어서 시장에 가서 고무풍선을 사왔다.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은 후 “파룬따파하오!”“환사부청백(还师父清白)!”“쩐,싼,런”“파룬궁천고기원(法轮功千古奇冤)!”등등을 적은 것을 낮에 만들어 밤에 여러 곳에 배포했다. 눈이 올 때는 눈더미에 꽂았는데, 그렇게 처음 할 때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어느 날 밤 12시경 지나 나와 한 수련생은 큰 자루 2개에 들어있는 고무풍선을 시중심에 있는 한 강가에 배포하려 했다. 길에서 수련생은 나의 아기를 안았고 나는 큰 자루 2개를 지녔는데 비록 무겁지는 않았으나 작은 산만큼 되었다. 절반쯤 갔을 때 아기가 나를 찾아 나는 고무풍선자루를 동수에게 주고 아기를 넘겨 받았다. 후에 그녀는 나에게 그렇게 많은 고무풍선을 가지고 길을 걷고 또한 강가에 놓을려고 하니까 그 마음이 놀라서 사흘이나 아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우리는 잘 만든 고무풍선을 주변 지역에도 지원해 주었다. 고무풍선에 바람을 넣어 진상표어를 쓴 후 다시 바람을 빼고 잘 포장한 후 동수에게 가져가서 스스로 자기 지역에서 배포하도록 했다.
어떤 때에는 아이를 데리고 층집구역의 벽이나 길가의 마땅한 곳에 파룬따파 진상표어를 뿜었고 어떤 때에는 아이가 자는 틈을 타 혼자서 돌아다니며 진상표어를 뿜었으며 어떤 때에는 동수와 함께 나가서 뿜었다. 어느 한번 “파룬궁천고기원, 환파룬따파청백!”이란 진상표어를 뿜고 나니 신체가 비할바 없이 가볍고 미묘한 감이 느껴지면서 말할 수 없는 희열이 생겼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심성도 제고할 수 있었는데 왜냐하면 끊임없이 일부 사람의 마음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한번은 한 젊은 동수와 함께 층집계단을 밟으며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였다. 내가 아이를 안고 층계를 오르내리며 진상자료를 한참 배포하다 보니까 함께 하던 수련생이 자신에게 맡겨진 층계에 가서 배포하지 않고 층집 아래에서 여기저기 둘러보다 드문드문 자전거 광주리에 한부씩 놓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불만이 생기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도 층계를 오르내리며 배포하고 있는데 당신은 나처럼 빨리 배포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구나. 그 후 나는 마음속의 불만을 다른 동수에게 이야기 했더니, 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그 수련생이 말하기를 “당신 둘은 심성이 같지 않아요. 그녀는 아마 두려움 때문에 층계에 오르지 못했을 거예요.”라고 했다. 그렇다. 나는 왜 그 점을 알아주지 못했을까? 한 노년수련생이 나에게 이런 한 가지 일을 말한 게 기억났다. 대법이 박해를 받은지 얼마되지 않아 한번은 그 노년수련생이 동수의 집으로 갔는데 동수들은 한창 진상족자를 나누고 있었다. 이 수련생은 다섯 개, 저 수련생은 열개씩 나누어가졌는데 그녀는 가져갈 생각이 없었으나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할까봐 체면 때문에 용기를 내 두개를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 침대에 누웠는데, 그때 나가서 족자를 걸기는 고사하고 집에 두는 것 조차 두려웠단다! 노년동수의 경험에 나는 아주 큰 계발을 받았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나는 동수의 감당능력을 홀시했으며 여러 수련생이 모두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게 하기 위해 진상자료를 나눌 때에도 수련생이 가지려는지, 또는 얼마 가지려는지 묻지 않고 나의 의도대로 동수한테 나누어주었다. 한번은 내가 비를 맞으며 동수한테 진상자료를 가져갔다. 수련생은 그 자리에서 자료가 너무 많다고 하면서 나더러 일부는 되가져가라고 하였다. 나는 속으로 동수에게 불만정서가 생겼으며 매개인의 심성과 구체 조건이 부동함을 망각하였다.
그 일을 통하여 나는 안을 향해 찾는 것을 배웠으며 수련생을 배려하는 걸 알게 되었고 이후에 동수한테 자료를 가져갈 때면 수련생이 얼마를 요구하면 얼마를 가져 가 동수에게 심리적인 부담을 주지 않았다.
2. 모자 정을 버리다
2001년 유리실소하던 수련생이 자료점을 세웠다. 현지에 자료를 공급하는 외에 주변지역의 일부 진상을 받아 보지 못하는 동수에게까지 자료를 제공하였다. 매번 어떤 항목에 사람이 부족한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가서 보충하였다. 그 당시 아기가 갓 돌이 지나서 나는 마음먹고 모유수유를 떼었다. 부모님 모두 80순을 넘겨 아이를 돌볼 능력이 없었고 시부모님은 사악의 거짓말에 비교적 깊게 세뇌돼 대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남편이 불법으로 노교소로 가게 된 후 더욱더 대법을 싫어하는 정서가 생겨 아이를 봐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탁아소에서도 일반적으로 너무 어린 아기는 받지 않았으며 적어도 두 살은 되어야 받았다. 나는 동수에게 한살된 애를 봐주는 탁아소를 알아보도록 부탁해서 한집을 찾게 되었다. 그때 나는 비록 일자리는 없었고 수입도 적었지만 생활을 어떻게 해나가며 아이의 탁아소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과다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직 대법의 수요를 첫 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결과 사부님께서 안배를 아주 잘 해 주셨는데, 어떤 때에는 친정 여동생이 돈을 주었고 시아버지 쪽에서도 늘 돈을 주었는데 처음에는 2백원, 후에는 점차 늘었다. 생활은 비록 간고했지만 사용할 돈은 줄곧 생겼다. 내가 아이를 탁아소로 보내는 그날이 바로 전세계대법제자가 발정념을 한 첫날이었다. 6월 10일, 동수들은 내가 아이를 탁아소로 보낼 때 어떤 이는 지지하고 어떤 이는 반대했다. 한 노년수련생은 아이가 어려서 밥도 먹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눈물까지 보였다. 그래서 나는 “큰 이모님, 우리 지역에서 이렇게 많은 대법제자가 붙잡혀 갇혀있고 노교소에 갔으며 어떤 수련생은 박해받아 죽었는데 우리 집에 있는 수련생은 응당 걸어나와 사악을 폭로하고 진상을 알려야 하지 않겠어요, … 나는 아이를 데리고는 불편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없어요. 아이를 탁아소에 보내면 낮에 충분한 시간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수 있어요.” 큰 이모님은 눈물을 흘리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것 역시 아이에 대한 정을 버리게 하는 한 고비임을 알았다. 아이는 태어나지 않아서 나를 따라 북경으로 대법을 실증하러 갔는데, 임신한지 4달이 안된 채 북경천안문광장으로 가서 “파룬따파하오”를 외쳤다. 나는 아이를 안은 채 악경에게 흉악하게 폭행당해 우리를 압송하는 큰 공공버스 계단에 넘어졌다. 나는 아이가 우리 집에 태어남은 법을 얻으로 온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아이가 태어난 뒤 매일 사부님의 설법녹음을 들려주었고, 늘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진상을 알렸다. 아이가 금방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열이 나고 혼미해지면서 꼼짝을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사부님의 설법을 들려주니까 아이가 잠이 들기에, 잠자는 아이에게 설법을 들려주는 게 사부님을 존경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져 녹음기를 꺼버렸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아이는 “법을 들을 래요, 법을 들을래요.”하였다. 나는 다시 아이에게 설법을 들려 주었는데, 그런 게 몇 번 반복되었다. 정말이지 아이에 대한 정은 놓으려 해서 놓아지는 게 아니었는데, 정이 올라올 때면 정말이지 마음이 괴로웠다. 다른 사람들이 아이를 보배처럼 여기는 것을 보면 갓 4개월된 아이가 아빠와 갈라져 아빠사랑을 받지 못하는 게 미안했고, 아이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빚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마음을 내려놓고 낮에 아이를 탁아소에 보내려고 결정한 그 한 단락 시간은 정말 사부님께서 나를 앞으로 밀어주시는 것 같았는데, 아이가 탁아소에서 배불리 먹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문제로 걱정되지 않았다.
3. 두려운 마음을 버리고 안전인원은 진상을 알다
한번은 내가 주민구역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했는데, 갓 한 단원을 배포하고 다른 단원에도 사람들이 출입하지 않는 것을 보고 올라갔다. 삼층까지 올라가니 사람 말소리가 들리기에 위층에서 사람이 내려오고 있다고 생각해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아래층에서 큰 소리로“뭐하는 사람이야, 어서 내려와!”하는 소리가 들려서야 나를 두고 부르는 소리임을 알았다. 내가 2층으로 내려가자 전달실의 경비아저씨가 문에 붙여진 진상자료를 짚으며 화가 나서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누가 배포한 것인가? 당신은 누구를 찾고 있는가?”그때 나는 심태가 아주 평온한 상태로 이는 내가 응당 구도해야 할 생명이구나,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장 대범하게 말하기를 “아저씨 그것은 제가 배포한 것인데요. 저한테 아직 소책자 한부가 있는데 아저씨한테 드리죠. 아저씨와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서 파룬궁진상을 알기를 바랍니다.” 나의 말소리가 그렇듯 평화롭자 아저씨는 즉시 태도를 바꾸었다. 떨리는 두 손으로 내가 건네주는 소책자를 받아드는 얼굴에는 이미 엄함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다그쳐 말하기를“아저씨, 제가 전단지를 배포하는 것은 거짓말에 속은 세인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에요. 몇 달 전 우리지역의 한 대법제자 모모가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진상을 모르는 세인이 신고해서 구류소에서 악경한테 맞아죽었어요. 그녀의 집에는 아직 80여세의 시어머니와 딸이 있는데 돌볼 사람이 없어요. 그녀의 남편도 몇 장의 전단지를 배포하다 노동교양 3년을 받게 되었어요.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파룬궁에 관한 모든 게 다 가짜예요. 강모모가 무고하고 선량한 백성을 얼마나 많이 해쳤는지. 나는 진심으로 아저씨가 진상을 알기를 바라며 좋은 미래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저씨의 말소리는 약간 떨렸으며 연이어 말하기를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 ”그가 진상자료를 받은 손은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한 생명이 진상을 알려는 갈망을 보게 되었다. 말을 하면서 아저씨와 나는 문밖으로 나섰다. 먼 길까지 나를 눈으로 보내주었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자비로운 마음을 지니고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하면 상대방은 바른 마당에 포위되어 일체 부정확한 요소가 해체된다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법제자가 내보낸 순정한 이 마당은, 사람의 모든 사상의식 속의 좋지 못한 것을 제거할 수 있고 순정한 마당은 그것을 해체할 수 있으며 사람의식 중의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해체하는바 이것이 바로 구도와 자비의 다른 일종의 체현인 것이다. 사람 의식 중의 좋지 못한 일체 모두를 그에게서 해체하여 없애어, 그가 단순한 사상의식만 남았을 때 사람은 바른 것을, 선한 것을 인정하는데 그는 동화된 것이 아닌가?”(>)
4. 진상나팔을 걸다
우리는 진일보로 세인을 향해 진상을 알리기 위해, 진상을 알리는 고음나팔을 만들어 주민구거나 번화한 곳, 노교소 등 사람이 많은 곳에 높이 걸어 진상에 관한 소식을 틀어놓았다. 어느 날, 나는 한 주민구 옥상에다 나팔을 걸려고 하였다. 낮에 옥상으로 올라가는 통로를 찾아냈을 때 순식간에 저렇게 높은데 내가 올라갈 수 있을까? 어떻게 올라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곳에 가보니 공교롭게도 층계 거기에 사다리가 놓여 있었다. 사다리의 길이가 옥상에 오르기에 알맞은 것 같았다. 이는 사부님께서 나를 도우고 계시는 것으로 나자신에게 나는 반드시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 12시 정념을 발하고 나는 나팔을 들고 낮에 정해놓은 곳으로 갔다. 층계는 캄캄했지만 살금살금 층계입구로 가서 사다리를 올리고 순조롭게 기어 올라가서 나팔을 잘 설치한 뒤 옥상에서 내려오려고 하는데 내려가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겨우 찾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속으로 조금씩 당황되면서 발을 어떻게 내디뎌도 사다리를 밟을 수 없었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였다. 그 결과 나는 순조롭게 내려왔지만 어떻게 내려왔는지 알 수 없다. 지금도 도대체 어떻게 내려왔는지 알 수 없다.
몇 시간 후 고음나팔은 은은한 대법음악을 시작으로 귀청이 울릴 정도로 커다란 진상 녹음 내용이 암흑을 꿰뚫고 천가만호로 보내졌다 … .
5. 남편을 도와 사오에서 걸어 나오게 하면서 자신을 수련하다
남편은 사악의 노교소에서 세뇌되어 소위 “전화”됐는데 아주 심하게 중독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남편이 불법노교 당하는 동안 비록 내가 아이를 데리고 지냈지만 힘든 줄 몰랐고, 마음은 바른 믿음으로 충만했고 겹겹한 곤란은 낙관적으로 극복했다. 허나 남편이 노교소에서 돌아와 엄중하게 사오한 모습을 보니까 마음속의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가 하루빨리 깨어나도록 나는 일체 기회를 이용해 사부님의 설법과 대법진상 등을 틀어놓았다. 정말 한 번만에 그를 돌려놓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쓰레기”를 안고 놓지 않았다. 나는 또 지혜를 이용해 대법 책을 읽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말하기를, 당신이 2년간 고생하는 동안 나는 법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 당신이 돌아왔으니 내가 아이를 돌보고 당신은 나한테 법을 읽어달라고 했다. 원래 아주 성실했던 남편은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나에게 법을 읽어주기도 했다. 나는 이런 형식을 통해 은연중에 대법에 감화해 그가 개변되기를 바랬지만 그래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나는 그와 여러 차례 교류했지만 남편의 높이높이 있으려 하는 마음과 조금도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정신 상태와 표정은 나의 마음을 깊게 찌르며 아프게 했다. 많은 동수도 그와 교류했는데, 가히 심혈을 다 기울였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각종방법을 다 사용했지만 남편은 시종 자신이 사오한 이론을 고집하면서 개변하려 하지 않았다. 매번 남편이 사오한 삐뚤어진 이치를 말 할 때면 나는 듣고 싶지 않아 늘 화를 내며 그와 다투었다.
이런 상태가 아주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날을 보내는 게 정말로 괴로웠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고통 속에서 생각을 더듬기 시작했다. 남편의 상태는 왜 줄곧 개변되지 않을까? 나는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 나와 남편은 만나서부터 줄곧 연분이었으며 서로가 몇 세 전부터 알고 있었음을 느꼈고 남편에 대한 정도 아주 깊었다. 나는 자신에게 자문했다. 당신은 이 세상에 무엇 하러 왔는가? 왜 정에 이끌려 사람에서 걸어 나오지 못하는가? 나는 꼭 이 정을 놓아야겠다. 내가 진정으로 남편에 대한 정을 내려놓게 되면서 자신의 더욱 많은 사람의 마음을 찾게 되었다. 나에게는 남편이 빨리 전변되기를 바라는 집착이 있었다. 만약 남편이 전변되지 못하면 다른 동수들이 나에게 수련을 잘하지 못했다고 비웃을 것만 같아 동수간에 명을 구하는 마음이 아주 강하게 있었다. 그렇게 구하는 마음을 안고 동수들이 많이 와서 남편과 교류하기를 바랬고 밖으로 구하는 마음이 중하였다. 허나 동수들은 남편이 신고할까봐 두려워하는 경계심이 있어서 매번 좋은 효과에 도달하지 못한 채 총총히 가버렸다. 나는 비록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동수한테 불만이 많았다. 동수 중에는 남편이 사오한 상태를 보고 의심하기 시작했고, 나에게 남편을 데리고 다른 동수의 집으로 가 교류하지 말라고 할만큼 남편을 숨겨진 특무라고 두려워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안전을 고려해 그들도 나와의 왕래를 줄였고 나에게 대법의 일을 하는 것을 정지하게 하였다. 이로서 나는 조급해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 .
나에게서 이런 마음들을 찾아냈을 때 사부님께서 마침 >을 발표하였다. 사부님께서 말씀하기를 “우리의 마당이 불순하고 바르지 못하여 중생을 구도하고 생명을 구원하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악을 질겁시킬 수 없었는바 그것이 우리 자신의 문제가 아닌가?!”고 하셨다. 사부님의 말씀은 깊이깊이 나의 뇌리에 넣어졌으며 나는 반드시 우선 나 자신을 바르게 수련해 자신을 개변하며 다른 공간의 사악이 나의 심성상의 틈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정말 그렇게 하여 나의 좋지 못한 많은 생각들이 전변되면서 남편 또한 따라서 각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명백해진 후 십분 자신의 소행을 뼈저리게 뉘우쳤으며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를 하게 되면서 제고가 아주 빨랐다. 그는 또 주동적으로 부근이나 고향의 사악에게 “세뇌”되어 깨어나지 못한 동수들과 교류를 하였다. 남편이 직접 찾아 법에서 교류를 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각성하였다. 그 일에서 나는 어떠한 일과 부딪히던지 언제나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하며 자신의 심성에 공을 들여야 하며 오로지 자신에게서 집착하는 그 마음을 찾아내면 일은 즉시 전변의 기회가 되는 것을 깊이 인식하였다.
6. 가정 자료점을 추광하다
한번은 다른 지역의 동수와 교류하면서 우리 지역에서 자료가 부족해 즉시 자료를 배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수련생은 명혜망에서 일찍 우리더러 가정 자료점을 세우라고 했고, 자료점을 도처에 꽃을 피우도록 했다고 일깨워주었다. 동수네 지역은 가정자료점이 일찍 세워졌는데 우리도 몇몇 협조인과 상의해서 가정자료점을 추광하라고 했다. 나는 동수의 말에 깨어나 현지의 동수와 나의 견해를 교류하면서, 큰 자료점에서 일이 자주 발생되는 원인과 유리실소하는 수련생이 책임지고 있는 큰 자료점은 부담이 아주 중하다보니 그들이 장기간 대법의 일에 바쁘고, 그러다보니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말도 했다. 법공부는 수련의 길을 잘 걸을 수 있는 근본 보증이며, 우리는 응당 자신의 수련의 길을 걸어가야 하므로 늘 그들에게 의거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말했다. 동수들 모두 아주 잘 이해하면서 흔쾌히 각자 자신의 집에서 소형가정자료점을 건립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정법노정을 이 일보로 밀어주신 것을 알았으며 동수의 인식도 올라왔다. 가정 자료점을 세우는 과정에서 동수들 각자 많은 곤난을 극복했으며 나중에는 모두 진정으로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주 기뻤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도와서 하시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냥 이런 소원만 있었을 뿐이었다. 진정으로 그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은 사부님이신 것이다.
7. 낡은 관념을 닦아 버리고 일대일로 진상을 잘하다
정법노정에 따라 자료점은 도처에 꽃을 피웠으며 동수들은 모두 걸어 나와 일대일로 진상을 알렸다. 나는 이전에는 대법을 실증하는 일에 바쁘다보니 아주 적게 걸어 나가 진상을 알렸다. 많은 동수들이 매일 나가서 일대일로 진상을 알리는 것을 보니까 나는 이 방면에서 아주 차한 것을 알게 되면서 조급해 지는 것이었다. 내가 일대일로 잘하지 못한 것은 실은 나의 낡은 관념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낯선 사람과 말하는 게 아주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때에는 사람과 말은 했지만 반나절이 지나도 삼퇴 시키지 못했다. 머리속에는 후천적인 관념으로 삼퇴 시킬 상대방을 한바탕 평가하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만 찾았다. 후에 나는 반드시 이 장애를 돌파해야 했기에 일대일로 진상을 비교적 잘 알리고 있는 노년수련생을 찾아갔다. 그리하여 그녀와 함께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현장에서 진상을 알리는 방법과 경험을 배웠다. 그 수련생은 아주 열정적으로,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말을 붙였다. 그리고 어떤 사람을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고 있어서 차츰 자연스럽게 주제를 이야기 했다. 그렇게 그녀를 반시간동안 따라다니자 막혔던 게 차츰 뚫렸으며 즉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나 또한 독립적으로 진상을 알리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3명을 삼퇴 시키면서 신심이 크게 증가했다. 내가 1대1로 진상을 알리려는 소원이 생기자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셨음을 알았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나는 남편과 함께 나가서 삼퇴를 시켰다. 남편은 발정념을 하고 나는 삼퇴를 권하였는데 권하는 대로 거의 다 삼퇴시켰다. 그날부터 나는 진상을 알리기를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으며 일체 세인과 접촉하게 되는 기회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내가 배운 경험을 주변의 동수와 교류했고, 농촌 고향으로 가서 동수와 교류했더니 그들도 모두 계발을 받았다. 고향의 한 수련생은 원래 두려운 마음이 아주 중했다고 했다. 진상을 알리면 남편, 아들, 며느리 등 가족들이 알까봐, 그리고 다른 사람이 신고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녀는 나와 교류한 뒤 이웃에 가서 잠간 사이에 십여 명을 탈퇴시켰다. 그렇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돌파한 후 그녀는 신심이 크게 증가됐고 발정념도 어렴풋하지 않았으며 그 후에 그녀는 가족 모두 다 탈퇴시켰다.
나 자신이 걸어온 수련의 길을 돌이켜볼 때 하나의 가장 큰 체험이라면 법공부를 잘하는 게 3가지 일을 잘할 수 있는 근본적인 보장이라는 것이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줄곧 협조인으로 있었고 일이 비교적 많았으나 나 자신에 대한 법공부요구가 비교적 엄격하게 했다. 일반적으로 매일 > 2개 강의 이상을 공부했다. 나 자신이 비교적 온당하게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근본적이었던 것이다.
종합해 보면 몇 년간 나는 정법노정에 따르면서 종래로 게으르지 않았다. 그러다 자료점이 도처에 꽃피우게 되면서 이전처럼 그렇게 바쁘지 않으니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해 느슨해 졌고, 어떤 때는 안일한 마음이 자양되었다. 빨리 나 자신의 좋지 못한 상태를 바로잡기 위해 최근에는 나에게서 허다한 사람 마음을 찾아냈다.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 안일함을 구하는 마음, 스스로 잘하였다고 생각하는 마음, 사악의 박해를 받지 않고 잘하여 잠재의식 속에서 기뻐하는 마음, 과시심, 그리고 동수들 사이에서의 명리심 등등이다. 가정에서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는 것을 주의하지 않았으며 개성이 비교적 강하고 성격이 급해 남편이 말하고 일하는 방식이 눈에 들지 않았다.(기실은 모두 나의 마음을 견주어 오는 것이다) 수련인으로서의 상서롭고 자비로운 심태가 없는 등등이다.
나는 아직도 닦아버려야 할 집착이 많음을 알고 있다. 법을 실증함에 아직 많은 곳에서 잘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노력 할 것이며 이지와 지혜로써 정법시기대법제자의 역사적인 사명을 완성해 나가 사전의 큰 소원을 실현하려 한다.
타당하지 않는 곳은 자비롭게 지적하길 바란다.
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