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중국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4월 26일] 수련한 지 10년이 된 지금에 와서야 나는 씬싱 상에서 자신이 매우 많은 주관억판이 있으며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진정으로 다른 사람의 각도에서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생각하지 못하고 진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좋게 하지 못하고는 늘 자신이 좋은 의도였으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더는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자신이 수고하지 않으며 편안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리하여 동수거나 속인과 말하거나 서로 이야기할 때면 모두 귀찮아하면서 늘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하곤 하였다.
어느 한 번 아버지가 나에게 “너는 마치 너희 수련인들이 우리 속인보다 한 등급 더 높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 의식하지 못하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고 생각되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아버지는 “너의 언행거지가 걸핏하면 우리 수련인은 어떠하다고 말하여서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비로소 나의 마음속에는 정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속인은 너무 판단력을 잃었고 너무 못쓰게 되어 그들과 왕래하기 싫어했고 좋지 않은 언담 사상에 오염되지 않겠다고 생각하였다. 사실은 이렇게 자신을 봉폐해버려 수련의 좋은 환경을 잃어버리게 하였다. 나는 일종 습관이 있는데 문만 나서면 신나했다. 좋은 정신 상태가 있어야 진상을 잘 알릴 수 있다고 생각되어 길을 가거나 차를 타면서도 발정념하거나 법을 암송하곤 하여 마음속에 좋지 않은 염두가 없었다. 그러나 혼자 있으면 안 그랬는데 마음은 소극적이고 비관하며 무슨 좋지 않은 염두든 모두 밖을 향해 발산되었다. 사실 이것은 정념으로 자신을 대하지 못한 것이고 자신을 봉폐하여 조성된 것이며 역시 자신에 대한 집착인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동수들 중 매우 많이는 체면에 집착하며 혹은 소극적인데 만약 우리가 모두 그들을 질책하지 않고 그들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그들이 돌아오는 데 압력이 매우 작을 것이다. 어느 누가 따뜻한 집으로 돌아오려 하지 않겠는가? 비록 수련은 자신의 일이고 그들 자신의 원인이 있지만 우리는 하나의 정체이기에 그 어떤 바르지 못한 인소가 나타나더라도 모두 자신의 원인을 찾아야만 비로소 사악이 틈을 타고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사실 그 어떤 번거로움과 모순이 나타나는 것은 모두 우리들이 누락이 있어 사악이 틈을 타고 기어들어와 우리들이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교란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에 대해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우리 모두 청성한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의연히 흐리멍덩한 경우가 있다.
나는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우리 세 수련생이 감정 분쟁이 있었는데 세 사람의 감정은 결국 모두 좋지 않았다. 몇 년 후에 내가 이 일을 생각하였을 때, 진실하게 다른 공간의 사악이 자기들의 두목에게 회보하면서 말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내가 그들을 분리시켜 그들이 서로 아는 체 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주요한 뜻은 이러하였다. 이 광경을 보았을 때에 나는 마음속으로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어찌 이렇게 이용당할 수 있었단 말인가.’ 라고 몹시 통탄하였다. 그들은 모두 괜찮은 젊은이들이었는데 만약 잘 협조하였더라면 얼마나 큰 힘이었겠는가?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 관계가 완전히 좋아지지 못하고 있다.
갑자기 최근 자신이 늘 다른 사람을 오해하고 있고 다른 사람이 나를 찾아 해명할 때도 내가 말하는 어조가 선하지 못하고 의심하며 질투심, 허영심, 과시심, 쟁투심 등이 정말 적지 않아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없어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울러 다른 공간에서 들은 것을 믿는데, 사실 다른 공간의 것은 무엇을 듣던지 보던지 모두 마음이 움직이지 말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 사악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전에 나와 협조하지 못한 동수들은 나의 어조를 참지 못하여 나와 함께 있지 않으려 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위한다면 이 어조를 반드시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마음에서 출발하였다 하더라도 상대가 접수할 수 없고 도리어 다른 사람을 밀어 내보내게 되는데, 이 어찌 좋은 의도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정념으로 수련생을 대하고 정념으로 자신을 대하다》라는 문장을 보고 마음속으로 매우 동감되었다. 일 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한 동수와 우연히 일찍이 이른바 전화 되었던 사람에 대해 말을 하게 되었다. 다른 한 수련생은 아주 애석해 하면서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이러하냐고 말하였다. 나는 그 수련생을 믿으며 나는 그가 일찍이 걸었던 길을 보았고 나는 사부님께서 꼭 그를 관리하실 것이라고 믿으며 그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일 년이 좀 넘어서 그 동수의 친척이 중병을 앓게 되었는데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었기에 완전히 나아 수련을 하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그 수련생은 다시 수련을 시작하였다. 그는 이전에 잘하지 못하여 매우 부끄럽다고 말하였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바로 체면 때문이며 다른 사람이 업신여길까봐 두려워서이다. 그들이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평소에 우리들은 그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모두 정념으로 대한다고 생각하는데, 더욱 많이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법을 얻어 수행함에 장애가 되지 말아야 하며 법을 실증하여야 한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매우 감개하다. 나의 마음은 또 신심으로 충만 되었다. 만약 진정한 마음으로 중생을 위한다면 우리는 응당 멈추지 말고 정진해야 하며 연공을 잘하고 법 공부를 잘 하며 세 가지 일을 잘 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야만 반드시 더욱 많은 사람을 구도할 수 있다.
문장발표 : 2009년 4월 26일
문장갱신 : 2009년 4월 26일 04:51:43
원문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9/4/26/1996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