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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동안의 수련 중에 몇 번 관을 넘은 경험

글 / 흑룡강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3월 30일】 법을 얻고 지금까지 이 9년 동안에 나의 가장 큰 감수는 바로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드넓은 자비, 대법제자의 정체적인 역량인데, 모두 내가 관과 난을 넘을 때 충분히 나타났다. 동시에 수련의 길은 정말로 아주 좁아 조금만 빗나가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99년 1월에 법을 얻었다. 법을 얻은 데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나는 위장 절반을 절제하는 수술을 한 지 두 달도 채 안 되는 때였고, 나의 딸(당시 아직 법을 얻지 않았다)은 직장에 출근하였다. 다른 부서에서 임시 출근하여 도우려고 온 한 대법제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작은 녹음기 하나를 딸의 사무용 책상에(그녀 책상 곁에 전기 콘센트가 있었음) 올려놓고 사부님의 설법을 틀어 놓았다. 당시 딸은 편도선이 마침 염증을 일으켜 입에 약을 물고 손으로는 쉼 없이 마이크로컴퓨터에 문서자료를 입력하면서 귀로는 무의식간에 사부님 설법을 듣는 과정에 부지불식간에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갔다.

퇴근 시간이 되어 보니 놀랍게도 18부의 재료를 입력하면서 조금도 힘든 줄 몰랐는데, 이는 평소에 종래로 있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퇴근하는 길에 바깥의 풍경을 보니 모두 새 것 같아 당시 딸은 너무도 신기함을 느껴 얼른 집에 돌아와 이렇게 좋은 공법을 아직도 큰 병이 낫지 않은 나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했다.

당시 나의 집 이웃에 한 대법제자가 있었는데 나는 들은 후에 바로 그의 집에 가서 《전법륜》을 빌려다가 지체하지 않고 읽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나는 곧 사부님께서 어쩌면 이렇게 도리 있는 말씀을 하셨을까 라고 여기면서 법을 이렇게 늦게 얻은 것을 후회하였다. 나와 딸은 바로 이렇게 법을 얻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부님은 나에게 한 차례 커다란 신체 정화를 해주셨다. 위장과 허리가 부풀고 아파서 나는 바닥에서 대굴대굴 뒹굴었고 땀에 옷이 푹 젖었다. 당시 혈육정의 교란을 받고 오성이 차하여 씬씽을 지키지 못하였는데, 결과적으로 가족에 의해 병원에 실려 가게 되었다. 병원 측에서는 위장 절제 수술로 야기된 후유증이라 하며 대장이 유착되었고 담낭염이 있으니 위장 수술 자리가 아문 다음에 담낭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듣자마자 이거 야단났다고 생각하고 한 주만 입원하고는 곧 퇴원하여 집에 돌아와서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계속하여 들으면서 이 관을 잘 넘지 못하여 후회하였다. 그때로부터 위장이 간혹 가다 불편한 외에(지금 생각하면 자신이 첫 번째로 되는 감당을 받아 당하지 못하게 되자 사부님께서 아마 나누어 계속 소업하게 하신 것 같다) 신체 기타 일체는 모두 정상이 되었고, 해마다 계절이 바뀔 때면 모두 머리가 아프고 기침이 나던 흠집도 더는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99년 7.20 이 되어 사악이 대법을 박해한 후에 동수들은 응당 진상을 알려야 한다고 깨달았다. 하여 나는 동수들과 함께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스티커를 붙이며 진상 현수막을 걸었다. 날씨가 아무리 추운 날이라 하더러도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온 몸에 땀이 배여 있었는데, 나는 이 모두가 사부님께서 나에게 고무격려 해주시는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2002년 5월 31일에 나는 또 동수와 함께 북경에 가서 진상을 알렸는데,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속에서 일체가 순조로워 무사히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줄곧 정법 진행을 바짝 따랐고 동시에 또 두 차례의 커다란 병업관과 한 차례의 혈육관을 넘게 되었다. 대략 2005년 좌우인데 나의 위장이 또 갑자기 아프기 시작 하였다. 그때는 저녁 식사 후였고 나는 아프다 못해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이 불안하였다. 하지만 나는 아픔이 조금만 줄어들면 발정념 하였고(비록 속으로 병업관인지 아니면 사악의 박해인지 분명히 알지 못했어도) 밤새도록 나았다 더했다 하였다. 이튿날 동수들이 와서 나에게 발정념을 해주고 함께 법공부 하면서 아울러 사부님을 확고히 믿고 사악의 박해를 승인하지 말라고 고무해 주었다. 동수들의 도움 하에 나는 이 관을 넘게 되었다. 하지만 두 달도 안 되어 나의 위장이 또 아프기 시작하였다. 배설할 수도 토할 수도 없었는데, 그 고통이야말로 더 말할 수도 없었다. 당시 집에는 나 혼자 있었는데 삽시에 사람마음이 올라와 딸을 원망하였다. 내가 이 모양이 되었는데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여겨(사실 딸은 자기 애를 무용반에 데려다 준 후에 나를 보살피려 했던 것이다) 억울한 마음이 솟구쳤으며 딸의 문 닫는 소리가 들리자 대성통곡을 하였다. 이때 위장이 또 부풀어 오르면서 아프기 시작하였다. 내가 머리를 돌리는 순간 책상위에 놓인 사부님 법상이 눈에 띄어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건 내가 사부님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생각이 나오자 위장에서 무언가 위로 뒤집어 올라오는 것 같아 급히 바닥에 놓인 통에 대고 시커먼 것을 가득 토해 냈다. 나는 그것을 이쑤시개로 꿰여서 빛에 비추었다. 붉은색이었고 빛을 등지면 검은색으로 보였는데 토해낸 것은 반통이나 되었다(당시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으므로 위에는 음식물이 없었다). 토하고 난 후에는 즉각 온 몸이 홀가분하고 기운이 났으며 마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듯하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렸고 사부님에 대한 감격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온 몸에 병이라곤 없어 가벼운 맛을 진정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정법진행이 앞으로 추진됨에 따라, 검은 소굴에 가서 근거리 발정념을 하든지 수련생을 구출하든지 오로지 정법중의 수요라면 나는 일률로 적극적으로 배합하여 완수하였고 종래로 가정일 때문에 지체한 적이 없었다.

2006년 정월 17일, 나의 둘째 아들이 차 사고로 사망하였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 흉보에 대해 나는 어딘가 감히 믿을 수 없었다. 내 아들은 평소에 대법을 반대하지 않았고 어떤 때는 진상자료 송달을 도와주기도 하였으며 또 사당 조직에서 탈퇴 하였는데 어쩌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한 순간 짙은 혈육정에 휩싸인 나는 아들의 불행에 슬프게 울었다. 이때에 신변에 있던 수련생은 묵묵히 나를 위로하면서 사부님의 법으로 나를 계발해 주어 나로 하여금 단번에 청성해지게 하였고 사부님의 법을 떠올리게 하였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생활을 간섭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지할 수 없다. 아내와 자식, 부모형제를 포함한 그들의 운명, 그것이 당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려 하는데, 사람은 제각기 운명이 있다!”(《전법륜》) 나는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명, 이, 정을 닦아 버려야 하는데 어찌 혈육정에 빠져 분발하지 못한단 말인가. 나는 속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넌 수련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 사흘 날 아침에 나는 일어나 연공을 하였는데 2장 공법 포륜을 할 때 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야말로 재료감이다.” 나는 이로 하여 놀랐는데,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또 나를 고무격려 해주신 것이다. 그 날 나는 아들의 추도회에 참가하러 온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아들의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3퇴를 권했다.

막 이 혈육정 관을 넘기자 이익 방면의 관이 또 앞에 가로 놓였지만 당시에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아들이 생전에 친구에게 10여만 위안의 돈을 빌려준 일이 있었는데 이번엔 사람도 없고 돈도 없어졌다. 비록 아들의 친구가 선서하듯 이틀 내에 돈을 찾아 주겠다고 말했으나 몇 달이 지나도록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안절부절 하며 전화로 돈을 달라고 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그래도 부연적으로 몇 마디 하던 것이 후에는 아예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불평이 분분하여 소뿔을 파고들어 가듯이 나올 줄 몰랐고 늘 이렇게 반복하였다. 결과적으로 사악에게 틈 탈 기회를 주어 신체가 갑자기 불편해지면서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피부가 누런색으로 변했으며 눈 흰자위마저 황색으로 변했는데 오줌도 콩기름 같은 색깔이었다(속인으로 보면 바로 급성 황달성 간염의 증상). 이때에 나는 놀랐고 자신이 또 잘못했다는 것을 돌연히 깨닫게 되었는데, 또 이익 속에 빠졌던 것이다.

사부님의 법은 그렇게도 분명히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연공인(煉功人)으로서 이치상 스승의 법신이 책임지고 있기에 다른 사람이 당신의 것을 가져가려고 생각해도 가져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한다. 어떤 때에는 당신이 보기에 그 물건이 당신의 것이며 남도 당신에게 이 물건은 당신의 것이라고 알려주지만 사실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당신은 바로 당신의 것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최후에 이르러서는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그 가운데서 당신이 이 일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내려놓지 못한다면 바로 집착심으로서 곧 이런 방법으로 당신에게 이익에 대한 마음을 제거해 주어야 하는데 바로 이 문제이다.”(《전법륜》) 나는 왜 관건적인 시각에 이르기만 하면 이렇게도 무기력한가. 아직도 자신은 평소에 법공부를 착실히 하지 않은 것이다. 딸은 나와 교류를 하였는데, 나더러 교훈을 접수하고 넘어지면 일어나야 한다고 하면서 아울러 나에게 오늘 씻어낼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아주 확고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사악의 박해를 승인하지 않는다. 누락이 있다 해도 사부님의 법에 따라 귀정할 것이다. 바로 이렇게 하여 사흘 만에 나는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우리 이 최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모두 수련을 엄숙히 대하고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 하여 진정으로 수련하는 대법제자로 되어 사부님 은혜에 어긋나지 말자. 감사드린다! 허스

문장발표 : 2009년 3월 3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9/3/30/1980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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