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흑룡강성 쌍성시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4월 1일】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의 일은 아이들 장난이 아니고, 속인 중의 기능도 아니며, 매우 엄숙한 일이다. 당신이 수련하려고 생각 하는가 하지 않는가, 당신이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 자신의 씬씽을 어떻게 제고하는가에 달렸다.”(『전법륜』)
사실 ‘7.20’이전에 사부님께서는 이미 꿈속에 나더러 법을 암송하라고 점화해 주셨다. 그 때 나는 법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여 사부님의 점화를 인식하지 못했다. 나중에 법리적인 제고와 또 명혜망에서 수련생이 법을 암송한 한편의 문장을 보고 나는 단번에 법 암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 당시 법을 암송하겠다는 결심을 내렸다.
나는 원래 매일 책을 통독했는데 나중에 법을 암송하는 것으로 고쳤다. 내가 처음 한번을 암송하는 데는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나는 1년이란 시간을 이용해서야 『전법륜』을 한번 겨우 암송했으니 시간을 너무 낭비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다시 통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제 1강을 다 읽었음에도 자신이 아무것도 본 것 같지 않았고 머리가 완전히 비어 아무것도 없었다. 나중에 나는 사부님께서 계속 법을 암송하라고 점화하신 것임을 깨닫게 되어 다시 『전법륜』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또 두 수련생이 나와 함께 법을 암송했다. 우리 이곳에서 학습팀을 건립할 때 까지 줄곧 법을 암송 하다가 여러 사람들이 함께 법공부 하다 보니 나는 법을 암송할 시간이 밀리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각하고 생각하던 끝에 아침시간을 짜내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리하여 나는 연공하기 전 한 시간을을 이용해 내가 암송할 수 있는 만큼 암송했다 .
그런데 이 기간에 또 한가지 작은 문제가 나타났다. 내가 법을 암송하느라 불을 켜놓으면 온 식구들이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사부님께서 단번에 점화해 주셨다. 불상 앞에 있는 연화등을 이용하는 것이었다.(왜냐하면 사부님의 불상은 우리 집 대청 벽에 걸려 있었고 밤새 불이 켜져 있다) 불빛도 직접 비치는 것이 아니라 잔광을 빌어 책을 볼 수 있었다. 이리하여 나는 벽에 있는 작은 창문으로 비쳐 들어오는 잔광을 이용해 책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책의 글씨가 갈수록 똑똑히 보였다.
때로 남편이 다른 사람과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나를 가리킴) 참 대단해! 집안이 그렇게 어두운데도 책을 볼 수 있으면서 늘 자기 눈이 좋지 않다고 말하거든요.”(나는 전에 고도 근시였으나 안경을 맞추지 않았다) 나는 남편의 말을 듣고 그저 웃고 지나쳐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나와 함께 가서 탁상 등을 사자고 했다. 말로는 손자 학습용으로 사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등을 사온 후 손자는 줄곧 등을 사용하지 않았고 아예 내게 사준 것이 되었다. 이 일체가 어찌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안배해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전법륜』을 네 번째로 암송할 때 『명혜주간』에서 동수들이 법을 암송하여 제고가 매우 빠르며 승화도 매우 빠르다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 상태여서 동수와 교류해보니 수련생이 말했다. “당신도 역시 아주 잘하지 않았습니까?” (그녀가 말한 것은 자료를 보내고 진상을 알리는 것을 말함)
생각하고 생각하다보니 어느 날 나는 마침내 부부의 정이란 이 일에서 잘 수련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도 이전에 오랫동안 곤혹스러워 했고 이 일에 대해 매우 번거롭게 여겼다. 때로는 극단으로 나가 집에서 뛰쳐나가 도피 하고 싶었는데 친척들도 이해하지 못하게 했다. 끊임없는 법공부와 법암송을 거쳐 나는 자신이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런 일들을 당신 역시 그것을 너무 중하게 보지 말아야 하며, 당신이 과분하게 걱정한다면 역시 집착에 속한다. 부부간에는 색의 문제가 없지만 욕망이 있는데, 당신이 그것을 담담하게 보고 심리적 평형을 이루면 된다.”(『전법륜』)
법을 외우는 과정 중에 천천히 이 마음을 내려놓았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이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사정이 변화게 되었다. 손자가 갑자기 남편과 같이 자겠다고 하는 것이다. 손자는 혼자 자는 것이 무서우니 나더러 작은 방에 가서 자라고 하면서 자기가 할아버지와 자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줄곧 따로 자게 되었는데(이미 2년이 넘었음) 우연히 함께 자도 아무 일 없이 잠을 자곤 했다. 그러나 남편은 매일 기뻐하면서 집안 일도 잘했고 집에서 필요한 용품도 수시로 사오곤 했으며 식구들과도 웃으면서 유쾌하게 지냈다.
남편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니 내 마음도 안심이 되었다. 색욕 이 관도 넘게되었다. 그러므로 이 일 역시 모두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신 것으로 나 자신이 한게 무엇이 있는가? 당신이 그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일체는 순조롭게 진행 되는 것으로 마치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당신은 이런 소원만 있으면 된다. 진정하게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사부가 해 주는 것이며 당신은 전혀 해낼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
수련은 정말로 아이들 장난이 아니다. 때로는 자신이 수련이 잘 되었고 세 가지 일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게는 아직도 사람마음이 깊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동수들이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마음속으로 매우 즐거워하고 수련생이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혹은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마음이 편치 않고 때로는 상대와 쟁론까지 한다. 예를 들어 발정념 할 때 내 손이 기울어져 있다고 수련생이 제기하면 마음속으로 내키지 않아하면서 나도 몰래 그 동수의 손을 훔쳐보면서 만약 손이 기울어진 것을 발견하면 즉시 당신의 손도 기울어져 있지 않은가? 하고 쟁투한다. 쟁투심이 곧 바로 일어난 것으로 근본적으로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의 소재를 찾지 못했고 안을 향해 찾지 않았다.
물론 자신도 때로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 상태가 오래 지속했기 때문이다) 그냥 이렇게 한다면 어찌 사악을 제거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가? 또 예를 들면 동수들과 함께 거리에서 3퇴를 알릴 때 만약 수련생이 나보다 더 잘하면 그렇게 많은 중생을 구도하여 수련생을 대신해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마음이 수련인이 생각할 것인가? 그리하여 나는 안을 향해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매우 많은 마음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쟁투심, 환희심, 과시심, 질투심 등 각종 마음을 찾아내 동수들 앞에서 폭로했다. 잇따라 발정념할 때 손도 더는 기울어지지 않았고 마음도 평온해졌다.
바로 내가 막 원고를 쓰기 전날 자식에 대한 정이 또 솟아나왔다. 이 일이 있기 전에는 자신이 이 문제를 잘 내려놓았다고 생각했고 2년간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아들은 전화를 받자마자 첫 마디가 “무슨 일이세요?”라고 했다. 내가 이야기를 다 끝냈더니 아들은 “됐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전화를 내려 놓고 말았다. 놓고 난 후 심정이 말이 아니었다. ‘대체 엄마란 말도 한마디 하지 않다니.’
이어서 둘째 아들 식구 셋이 시내에 나갔다 많은 옷을 사가지고 와서는 내게 이것은 300원이고 저것은 200원이라고 소개했다. 당시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 내 것만 없구나.’ 즉시 이 마음이 일어나면서 ‘나도 내일 가서 한 벌 사야겠다. 자식을 이렇게 키우기가 쉬운 줄 아느냐? 너는 어째서 네 엄마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느냐?’ 사부님의 법을 학습했다.
“속인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지만, 당신이 만약 이것에 집착한다면 당신은 전혀 수련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불교 중에는 이 내포가 없다.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면 사람의 정을 곧 내려놓아야 한다.” (『전법륜』)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학습한 후 내 마음은 고요해졌다. 나는 반드시 자식 정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련 중에서 오직 법을 잘 학습하고 사부님께서 법에서 요구하신 대로 안을 향해 찾기만 하면 곧 끊임없이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문장발표 : 2009년 4월 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9/4/1/1981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