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수(真修)는 박해를 철저히 제거할 수 있다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3월 22일】며칠 전 본 지역에서 공안 내부인이 들려주기를 갑 수련생이 감시되어 이미 공안에 기록되었다는 것이었다. 일부 동수들은 가능하게 안전을 생각해 기타 동수들에게도 안전에 주의하도록 연락했는데 나도 그중에 속했다. 동수들은 인터넷에 이 소식을 올렸다. 당시 나는 별 다른 생각없이 다만 발정념으로 사악의 박해를 제거하였다. 그런데 후에 동수들이 확인하니까 잘못된 정보라는 것이었다. 어떤 동수들 중에서 이 소식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어떤 이는 누가 이렇게 잘못 전달했는지 원망하였고 또 어떤 이는 해석하였다.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제3자와 같았다. 근본적으로 이 일이 자신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고, 아울러 또 이러한 사람들은 왜 일을 이렇게 번거롭게 만드는지, 왜 뛰쳐나와 자신을 보지 못하는지? 어디에 우연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후에 들리는 말에 의하면 어떤 동수들은 정말로 “주의”하기 시작해 그 동수와 연결하지 않았고, 심지어 모두 걷어치워 진상자료도 만들지 않았다고 하였다.
내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이 일이 나 자신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을 때, 나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너무나 놀랐다! 무엇 때문에 이런 착오를 범하게 되었는가, 우리 정체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중에서 뒤섞여 있는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무엇 때문에 즉시 나 자신의 수련중의 문제를 찾지 못하였는지? 무엇 때문에 즉시 자신의 수련중의 부족을 인식하고 제때에 법으로 자신을 바로 잡지 못하였는지? 또 왜 기타 동수에게 그런 사실을 전달하였는지? 공안의 말을 인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이끌려 움직인 것이 아닌가? 즉시 자신(다른 사람은 아니고)의 부족함을 찾아 제때에 자신을 바로잡고 발정념으로 교란을 제거해야만 즉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오직 발정념으로 외래의 교란을 제거해야 한다. 전했던 소식은 대법제자들이 내심의 염두와 행동에서 좋지 못한 인소를 불러와 자신을 바로잡지 못한 것이다. 역시 밖을 개변하려고 하면서 자신을 개변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박해를 철저히 제거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조용히 법공부를 하고 안에서 찾았을 때 머리가 많이 명석해 졌다.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찾고 사악의 박해를 승인한 변이된 관념을 제거하고 근본적으로 사악의 박해를 부정하였다. 새로운 인식으로 동수들과 교류하려고 하니 부당한 곳이 있으면 자비로 지적하기를 부탁한다.
우리 모두는 사부님께서 정법 중에 근본적으로 이러한 박해를 안배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승인할 수 없다. 우리 대법제자 역시 승인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박해는 무엇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사악의 박해는 아직도 계속 되고 있는가, 우리도 대법제자의 마음이 조성한 것임을 모두 알고 있다. 무슨 마음인가? 두려운 마음, 자신을 두려워하고, 동수들이 박해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근심하는 마음, 어떤 일이 일어 날까봐 근심하는 마음, 자신이 또 연관되지 않는지, 이것들이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지 않을지? 마음이 아주 불안하다. 의심, 사악이 또 무엇을 노리는지 의심하는 마음, 또 어떤 행동이 있지 않는지, 자신이 한 일이 발견되지 않았는지, 어떤 사람이 나를 신고하여 그것들에게 미행을 당하고 감시를 당하는 등등이다. 다만 박해를 도피하려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자신에게 법리상에서 부합되지 않는 어떠한 신념과 언행이 있었기에 박해를 불러오게 되었는가를 생각하지 않는다. 속인의 마음이야 말로 사악이 박해를 조성할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러한 마음은 자신을 위한 이기심이다. 이러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사악이 바로 은폐된 여러 가지 사람의 마음과 관념의 집착 중에서, 우리를 세간의 가상에 미혹시켜 사악의 박해를 중하게 보게 한다. 바람이 불면 풀들이 움직이듯 바로 따라서 움직인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정체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다만 적은가, 많은가 하는 정도가 부동할 뿐이라고 본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불안전한 인소로서 반드시 수련하여 없애야 할 마음이다. 이것을 배척하려면 발정념으로 제거해야 한다. 나는 어떤 소식을 들었든지 막론하고 자신의 일사일념 중에서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에 봉착하면 법으로 가늠하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한 말씀을 생각하고 사악이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악이 어떻게 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고, 사악한 원인은 우리들의 마음을 겨냥한 것이다. 이러한 안에서 찾는 전제하에서만 발정념의 효과가 좋다. 왜냐하면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밖을 개변하려고 하는 것은 진정한 정념이 아니다. 언제나 안에서 찾고 자신을 바로 잡고 동시에 외래의 강압하는 교란은 제거해야만 정념 정행할 수 있다.
몇 년 동안 아직도 일부 박해 중에서 사악에서부터 나온 관념을 접수하여 박해에 대한 정확하지 못한 인식이 있는데 반드시 빨리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는 각성하여 대법제자의 수련은 죄가 없으며 합법이므로 마땅히 박해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자신이 집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하는데 죄가 없으면 합법적이다. 단체 법공부하고 동수들과 서로 교류하는 것도 죄가 없으며 합법적이다. 작은 자료점을 꾸리고 진상자료를 편집하여 복사하는 것은 죄가 없다. 진상하고《9평》주는 것도 죄가 없으며 합법적이다. 집에 대법책이 있고, 진상자료, 기계 설비가 있는 게 죄가 없으며 합법이다. 이러한 일을 하는데 마땅히 박해를 받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것은 사악이 우리를 박해할 수 있는 “죄증”이 아니다. 그러한 공안국, 파출소, 거민회, 회사의 영도 및 사당의 일체 조직, 사람을 관리하는 자들은, 우리의 수련을 관할 할 수 없으며, 우리 수련을 지도할 수 없다. 무의식 중에 자신을 영도하는 위치, 박해 받는 “약자”의 위치에 놓아서는 안 된다. 표면상에서는 감각이 두렵지 않고 혹은 많은 일에서 우리도 아주 잘할 수 있다는 정념으로 그들을 대면하면서 잠재 의식 중의 깊은 곳에 그것들을 인정하는 물질이 있는가 없는가? 를 보고,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박해를 연결할 수 있는 변이된 관념을 제거하고, “당신이 진상으로 나를 말할 때 나는 바로 당신을 박해할 수 있다”는 이것은 사악 집단의 논리이며, 틀린 이론의 사악한 말이므로 대법제자는 마땅히 인정해서는 안 된다.
어떤 때에 우리는 마음속으로 알고 있지만 머리 속에서 가능하게 아직도 좋지 못한 염두가 나타나 그것이 노출되어 나온다. 우리는 그것을 틀어쥐고 그것을 정확하게 가려내 진정으로 자신이 아니므로 그것에 따라 가면 안 되며 그것을 제거하고 자신을 잘 장악하여야만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특히 수련 중에서 잘 하지 못한 것에 경각성을 높였을 때, 어느 방면에서 누락이 있을 때, 제일 쉽게 사악의 박해를 접수할 수 있다. 당연히 명백하게 접수하는 것은 아니다. 그때의 마음은 자신이 없으며 박해를 받을까봐 두려워하고, 공간을 뚫을까봐 두려워하고, 혹은 정서가 소침하고, 용기를 잃고, 신심을 잃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등 이러한 것들은 모두 사악에게 부합된다. 당신이 잘했던 못했던 그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당신을 수련하고 있고 자신의 잘못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 잘 하면 되는 것이다. 관건은 잘하지 못하여 또 사람의 집착 중에 떨어져 사람의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사고한다면 자신을 대법제자로 여기지 않고 사부님을 확고히 믿지 않는데 사부님께서 어떻게 관할할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청성》에서“수련생으로서, 당신이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낡은 세력은 모든 대법제자에 대하여 그것들의 것을 한 세트 배치하였는데, 만약 대법제자가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바로 틀림없이 낡은 세력의 배치에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마땅히 이러한 습관을 양성해야 한다. 그 어떤 말을 들었든지 막론하고 소식과 모순에서 모두 제때에 각자가 자신의 부족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일사일념을 수련하여 바로 잡고 변이된 관념을 제거해야 한다. 동시에 발정념으로 외래의 이미 형성된 교란의 인소를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우리는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안배한 노정에 따라 걸어갈 수 있으며, 사부님의 말씀대로 정념 정행할 수 있다.
문장완성:2009년 3월 2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9/3/22/197569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