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9년 3월 4일] 며칠 전 나는 《명혜주간》 353회에 발표된 《이익의 마음을 홀시하지 말자》란 교류문장을 보았다. 문장 가운데서 “당신이 속인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구세력은 속인이 세상을 뜨게 하는 것으로 당신의 의존심을 버리게 할 것이며, 당신이 동수에게 의거하면 동수에게도 마난을 증가해 줄 것이다.”라고 한 말은 나로 하여금 이틀 전 한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 교류하는 중 그가 “당신이 그를 해치겠거든 그럼 당신은 곧 그에게 의지하라.”라고 한 말을 연상하게 했다. 당시 이 말을 듣고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동수지간에 어찌 해치는 마음이 있겠는가! 그에게 의지하는 것은 바로 그를 신임하는 것이 아닌가? 어찌 그를 해친다고 할 수 있는가?
이 교류 문장을 읽으면서 수련생이 대량의 사실을 열거하여 의존심이 존재한 것 때문에 빚어낸 손해를 보았고, 동시에 나와 교류했던 수련생이 한 그 말의 함의도 알게 되었다. 그는 그 의존심의 위해성을 말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한 층의 법리도 말했는데, 나 개인적으로 여기건대 우리가 평소에 쉽사리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위해성이 아주 큰 일종의 집착이라는 것이다.
물론 일체는 모두 우연하지 않으며 모두 자신의 수련과 관계있는 것이다. 이 며칠 나는 연속 이 방면의 교류를 듣고 보고 하였는데, 내가 깨달은 바로는 사부님의 점화로서 자신은 이 마음을 버릴 때가 된 것이다. 안을 향해 찾아보니 몹시 부끄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남에게 의지하는 이 속인의 마음을 종래로 중시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밖에 발견하게 되었으며, 아울러 그것이 틀린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언제나 사람의 관념으로 그를 인식 하였고, 언제나 그것은 일종의 신임이며 동수지간의 일종 도움으로서 마땅한 것이라고 여겼다. 지금 돌이켜 대법으로 가늠해 보니 그런 일이 아니었다. 이 의존심은 확실히 하나의 사심이고 이익의 마음이며, 또한 밖을 향해 구하는 마음으로서 우리의 수련 중에서 자신을 해칠 뿐더러 동수도 해치며 우리 수련의 정체에 위해를 가한다.
아래에 이 의존심에 대해 뿌리를 파내어 노출하고 해체해 보자.
우선 자신 수련의 각도로부터 이해하여 보자. 자신의 법공부가 적었기 때문에 법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여 사람관념이 늘 나오곤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좌지우지 하였으며, 그러면서도 자신은 느끼지 못하고 그렇지 않다고 여겼으므로 그것은 줄곧 자신의 수련을 교란하였다. 이를테면 명혜편집부에서 자료점이 곳곳에 피어나기를 제창할 때 자신도 그 때엔 큰 자료점이 엄중하게 박해 받았으므로 마땅히 소형 자료점을 건립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에 한 대법제자로서 가정 조건이 허락되는 상황에서 원래는 몸소 체험하고 힘써 실행해야 했었지만 자신의 근본적인 관념을 끌어안고 놓지 못하였다(두려운 마음 : 번거로울까 두렵고, 안전하지 못할까 두렵고, 박해 받을까 두렵고, 가정에 손해를 가져올까 봐 두려웠다). 그리하여 이런 사람의 관념을 튼튼히 고수하면서, 나이가 많고 머리 반응이 느리다는 것을 핑계로 남에게 의지하는 이 사람의 마음을 선택하였다. 자료든지 아니면 난제에 부딪히던지 모두 남을 찾아 해결하였고, 어떤 땐 동수더러 집에 찾아와서 봉사하게 하였는데 이는 확실히 일과 마음을 덜어 주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 같은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 밖을 향해 구하는 마음, 숭배하는 마음도 따라서 자양되어 무의식중에 구세력을 가지해 주고 구세력을 승인 하였으며 자신 수련의 아주 좋은 커다란 기회를 지체시켜 자기 수련의 길을 잘 걸어가지 못하였다.
다음으로, 동수(다른 사람)의 각도로부터 이해해 보자. 수련생을 도와주기 위하여(그 중 어떤 수련생은 문제가 있어도 자기 스스로 주동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수에게 의지한다) 심혈을 다하는데, 많은 문제는 역시 스스로 모색해야 하므로 상당한 시간을 지불해야 하고, 알아낸 다음에는 다시 싫증을 내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타 동수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아울러 안전 위험을 무릅쓰고 시장에 가서 소모 자료를 사야하며 기계를 수리해야 한다…… 무슨 문제가 나타났던 간에 모두 바삐 돌아 쳐야 하는데 그야말로 쩔쩔 맬 지경이다.
며칠 전 두 수련생이 이런 말을 하였다. 한 수련생이 “당신이 알고 있는 갑 수련생은 대법자료를 만드느라고 밤늦게 까지 바삐 도는데, 어떤 때는 새벽 1시, 2시 넘어서야 자료점에서 집으로 돌아간다.”라고 말했다. 다른 한 수련생은 “나는 문건 하나를 편집하며 소프트웨어 하나를 다운받고 문제 하나를 알아내기 위하여 어떤 땐 컴퓨터 앞에 온 종일 앉아 있다. 안전의 믿음성을 보증하기 위하여 반복적으로 시험해 본다. 하루 혹은 여러 날 만에 알아낸 일을 다른 동수에게 가르쳐줄 때엔 10분도 채 안 걸려 모두 해결 된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 역시 동수의 수련 내용이고, 그들은 모두 대법을 실증하기 위하여 지불하고 있으며, 남을 위해 배려하는 것이고 또한 자신의 위덕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수련생은 장시기 동안 의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과분하게 찬양하고 맹목적으로 숭배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았는가. 기술을 아는 그런 동수들도 영으로부터 시작하였고, 그 자신이 수련하자 해도 이미 아주 쉽지 않은 것으로서, 생겨난 이런 집착심은 또 그들에게 얼마나 되는 원래 마땅히 감당하지 말아야 할 나쁜 물질을 가져다 줄 수 있겠는가. 그들 역시 수련중의 사람이다! 이러한 하나의 환경 속에서 수련하면서 씬씽의 제고를 파악할 수 있는가는 아주 관건적이다. 만일 어떤 수련생이 법리상에서 잘 파악하지 못하여 그에 대한 남의 찬양, 존경, 숭배를 밑천으로 삼는다면 마성이 생길 것인데(과시심, 환희심 등), 이는 또 구세력이 틈을 타고 들어올 구실로 될 것이 아닌가?
다시 법리의 각도로부터 이해해 보자. 여러분도 알다시피 “물질과 정신은 일성이다”, “ 우주중의 어떠한 물질이든, 전반 우주중에 가득찬 모든 물질을 포괄하여 모두 영체이며, 모두 사상이 있으며, 모두 우주법이 부동한 층차 중에서의 존재 형태이다”(《전법륜》) 우리가 의존심, 숭배심과 같은 이런 사람의 마음을 내보낼 때면 모두 좋지 못한 하나의 장, 위사(爲私)한 장을 형성하는데, 그것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이다. 이 장이 아직 형태를 이루지 못했을 때에 우리 이곳에서 표현 되는 것이란 바로 하나, 둘, 아주 적은 수의 이 사람마음, 이 염두일 것이지만 아마 우리에게 관과 난을 가져다 줄 것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안을 향해 찾아보아야만 그것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 장이 형태를 이루었다면 우리 이곳에서 표현되는 것이란 많은 사람에게 모두 이 마음이 있게 될 것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큰 난, 큰 관을 가져다 줄 것이고 심지어 전반 정법 형세를 교란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예가 이미 아주 많다. 큰 데로 말하자면 사물에서 시간에 집착하고 올림픽에 집착하며 원만에 집착하게 된다. 작은 데로 말하자면 개인에게 숭배심, 의존심, 환희심 등 각종 사람마음, 각종 사람의 관념이 있게 되는데, 실은 모두 검은 색, 위사한 것, 구세력이 안배한 교란의 장이다.
얼마 전에 우리 이곳에 이런 일이 발생하였다. 우리 지역의 한 노 수련생이 몇 년 전에 법을 실증하러 북경에 갔다가 불법 판결을 받았는데, 노교소에서 사악과 배합하지 않았고 나온 후에는 또 법 실증에 뛰어 들었다. 나는 그와 그다지 익숙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를 몹시 존경하였다. 그는 컴퓨터에 정통했고, 자료를 만드는 기술 일부도 정통하였다. 때문에 집으로 부르는 수련생이 갈수록 많아졌고, 서서히 어떤 동수에게는 일종 의존심과 숭배심이 형성되어 그가 잘 배웠고 인식이 높으며 기술이 정련되었다고 여겼다. 심지어 개별적인 수련생은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다. 문제가 생기면 이 동수한테 밀어놓자. 그는 높이 수련했으므로 사악의 힘이 닿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7월 달에 사악은 올림픽을 보위한다는 이유로 또 다시 갖은 풍파를 다 겪은 이 노 수련생을 박해하였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나는 속으로 몹시 부끄럽다. 비록 나는 그런 동수들처럼 그렇게 너무 집착한 건 아니지만 필경 자신은 남에 대해 의존한 적도 숭배한 적도 있었던 것이다. 신변의 이런 침통한 교훈 속에서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상기하게 되었다.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된 일체의 일들은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법회 설법》) 지금 나는 이 단락 법리의 내포에 대해 또 새로운 인식이 있게 되었으므로 써내어 동수들과 교류한다. 표현이 아주 전면적이 못되는데 지적해 주기 바란다.
동수여, 우리 어서 빨리 이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자! 당신을 위하여 더욱이는 우리의 정체를 위하여 의존하지 말고 숭배하지 말아 구세력이 더는 틈탈 구멍이 없게 하자.
문장발표 : 2009년 3월 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9/3/4/1965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