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하북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2월 7일】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수련하여 원만되기 전까지 수련인은 늘 사람 마음이 표현되어 나온다. 수련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 마음을 버리는 과정에서 자신을 제고하고 승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속인 생활 속에서 봉착하는 매 하나는 모두 우연한 일이 아니므로 정념으로 대한다면 어떠한 일이나 모두 우리들의 수련의 제고를 도와준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접촉하는 직장환경, 가정환경 그건 모두 당신의 수련환경이며 대면해야 하고 모두 반드시 당신이 걸어야 할 길이다. 반드시 정확히 대면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도 대충 얼버무릴 수 없다.”(『각 지역 설법 7』「2006년 캐나다법회 설법」)
나는 생활 중의 일을 모두 수련에서 제고하는 고험으로 간주하고 끊임없이 안으로 찾고 집착을 버리면서 심성을 제고했다.
1. 일상의 사소한 일 중에서 안으로 찾고 집착을 버리다
나는 전에 이런 한 가지 일을 경험했다. 회사 동료와 이야기하면서 내가 한창 흥이 나 할 때 한 나와 관계가 아주 좋은 동료가 나에게 “당신이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이면 말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 그와 몇 마디 논쟁을 벌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말할 수 있는데 왜 나는 말할 수 없단 말인가? 나는 마음이 아주 불편했다. 집에 온 후 이 일에 대해 아주 얹잖았다. 이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나의 수련에 관계가 있을 것이다. 내게 아직 내려놓지 못한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참답게 자신을 분석했는데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집착을 발견했다. 좋은 말만 듣기 좋아하고 귀에 거슬리는 말은 듣기 싫어했다. 자신을 생각해 볼 때 다른 사람이 어느 방면에서 나에 대해 말할 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겉으로는 비록 접수했지만 내심 깊은 곳에서는 도리어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말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나더러 고집이 세다고까지 했다. 나의 이러한 “남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의 집착은 내심에서 이미 “뿌리가 박혔다.” 지난날 나는 늘 자신의 개성 문제에 대하여 수련인의 각도에서 참답게 반성하지 못했기에 줄곧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 주겠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당신도 속인 중에 있으므로, 당신은 그런 듣기 안 좋은 소리를 들어야 하며, 당신은 그런 듣기 안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박수) 만일 그렇지 않으면, 이런 가장 기본적인 수련문제마저 당신은 다 해결하지 못했는데, 자신은 그래도 자신을 대법제자라고 말하는가.”(『각 지역 설법 4』「2004년 시카고 법회 설법」)
사부님의 말씀은 나를 아주 부끄럽게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해왔음에도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수련문제마저 잘 해결하지 못했다니. 이후 여러 차례 이런 정황이 나타났지만 나는 심성을 잘 파악하고 점차적으로 이런 집착을 제거했으며 또 이런 문제에 닥쳤을 때 마음이 아주 담담해졌고 더는 화를 내며 불평하지 않게 되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또 자신에게 과시심, 쟁투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수구하는 방면에서 충분하지 못했음을 발견했는데 나는 앞으로 수련 중에서 이런 사람마음을 닦아버릴 것이다.
수련의 길에서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다. 모두 무엇 때문에 자신의 몸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항상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하고 늘 자신을 반성해야 하며, 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하고 제고해야 한다.
2. 일사일념을 귀정(歸正)하고 교란을 타파
우리의 머리에서 발출하는 일념이 신념(神念)인가 인념(人念)인가, 하는 이것은 우리가 수련의 길에서 바르게 걸어갈 수 있는가와 직접 관계된다. 만약 법에 부합하지 않은 관념이 있다면, 일사일념에서 모두 사악에게 틈을 주어 당신을 교란하고 박해하게 된다. 전 한시기, 나는 머리속에 늘 일종 자동차 문에 부딪칠 것같은 두려운 염두가 있었으므로 거리에 세워진 자동차를 보기만 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이 일념이 아주 오랫동안 내 머리 속에서 맴돌이쳤다. 그 결과 어느 날 나는 정말로 자동차 차문에 부딪쳤다. 아주 심하게 넘어졌는데 그 차도 찌그러졌다.
이때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내게 차를 수리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 기사는 내게 차를 수리해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다만 미안하다는 말을 한마디 했다. 내가 예측했던 것과 달랐기 때문에 나는 아주 실망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자신을 자세히 반성해 보았는데 이 모든 것은 자신이 구한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의 아주 긴 시간 모두 차문에 부딪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것이 집착이 되었고 결국 스스로 번거로움을 불러왔던 것이다. 구하는 것 역시 일종 집착심인데 다만 자신이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는 후천적인 환경 중에서 각양각색의 후천 관념을 형성했다. 이러한 관념은 늘 언제나 우리의 심성을 고험하는데 이러한 후천 관념을 인정하면 바로 수련에 장애를 가져다준다. 이 일념이 신념(神念)인가, 인념(人念)인가를 분명히 가리려면 사람의 생각을 없애 버리고 신의 생각을 강화해야만 바로 수련에서 굽은 길을 적게 갈 수 있다. 물론 정념, ‘신념(神念)’에는 우리의 법공부 기초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시기에도 늘 법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법으로 자신을 충실하게 하여 사악에게 그 어떠한 기회를 주어선 안 된다.
오직 법속에서 수련해 낸 정념만이 사람의 관념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일은 우리의 마음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 어느 날 저녁, 우리 집에서 손님을 청해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자신의 발정념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바로 이 일념으로 그들이 모두 정념 시간이 지난 다음에 오게 하라고 했다. 결국 그들은 내가 발정념을 끝낸 후 모두 왔다. 일사일념은 모두 법속에 있다. 사부님과 바른 신은 모두 나를 도와주신다. 이전에 손님을 청했을 때는 그들이 발정념 시간을 지체할까 봐 두려웠다. 결국 매번 모두 시간을 지체했다. 이리하여 나는 사부님의 “두려움이 없으면 역시 당신을 말하는 두려운 인소가 존재하지 않는다.”(『정진요지 2』「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는 것에 대해 새롭게 인식했다.
3. ‘자아’의 속박을 타파해 자신을 귀정(歸正)
나는 늘 이러한 한 가지 꿈을 꾸었다. 꿈에서 어떤 사람이 나를 집에 가두고 문을 잠궜다. 나는 여기서 뛰쳐나가기가 아주 힘들다고 생각했다. 후에 그 사람이 나갔다. 나도 나가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였다. 그 사람이 돌아와서 나더러 빨리 집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나의 한쪽발이 막 문으로 들어가려 할 때 나는 ‘더는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그 사람이 열쇠를 찾는 기회를 이용해 뛰쳐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사통팔달의 도로가 보였다. 내가 어디로 뛰어도 그는 따라올 수 없었다.
깨어난 후 나는 자신의 관념에 속박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자신이 나갈 수 없다는 느낌이 바로 방법을 찾아 나가려고 하지 않은 것이고 심지어 능히 나가서 다른 사람과 말할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고 현실 상황에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나의 수련 상태가 아닌가? 자신은 기회가 있어 나가서 일부 일을 하여도 되는데 도리어 이것이 두렵고 저것이 두려워 근심만 했다. 나가서 법공부할 때도 매번 모두 다급히 집에 갔다. 남편이 캐묻고 화를 내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자료를 배포할 때는 다른 사람이 볼까 봐 두려웠고, 또 사람들이 버릴까 봐 두려웠다. 마음은 늘 자신의 관념에 따라 움직이면서 앞뒤를 살피는 등 자기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더러 걸어 나와 정정당당하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점화 시켜준 것이 아닌가? 이러한 근심하는 마음, 두려운 마음, 안일한 마음들은 모두 수련하여 없애야 할 사람의 마음이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점화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나는 아주 오랜 기간 자신에게 이것을 해도 안 되고, 저것을 해도 안 된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모두 하나의 자신을 보호하는 마음이었고, 자신이 상처받을까 봐 회피하려는 마음이었다. 결국은 위사위아(爲私爲我)한 사람 마음이었다. 사람 속에서 걸어 나오지 못하면 영원히 신이 될 수 없다. ‘자아’를 타파하고 ‘위아(爲我)’에서 걸어 나와야만 ‘무사무아, 선타후아’에 도달할 수 있다. 법에 부합되지 않은 일체 ‘보따리’를 내려놓아야만 가벼운 몸으로 된 정정당당한 대법제자가 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정법의 이 길을 잘 걷고, 수련 속에서 당신이 당신의 속박을 벗어나 당신의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고, 정념 속에서 중생을 구도할 수 있으며, 당신이 능히 정념으로 당신이 마주한 일체를 대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위덕이다.”(『각 지역 설법 4』「2003년 애틀란타법회 설법」)
내가 한 일은 아직 많이 부족하며 사부님의 요구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을 명심하고 동수들과 함께 노력하고자 한다.
문장완성:2009년 2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9/2/7/19500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