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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이 처음 열리는 데 즈음한 감상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1월 19일] ‘천지행’ 논단이 오르자 기상이 일신하여 새로운 국면이 곧 열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일부 생각이 있어 동수와 토론 연구 하고 싶은데, 어디까지 생각나면 어디까지 쓸 생각이다.

우리는 실증과학에 대해 청성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실증과학은 대법제자의 수련을 교란하는 구세력의 대(大)기제이다. 실증과학이 아직도 인류사회의 현황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에, 아울러 아직도 쓸만한 부분이 있는 까닭에 그것이 아직도 해체되지 않고 있다. 동수들, 더욱이 논단에서 기술지원을 하거나 기술을 배우고 있는 동수들은 인식 상에서 반드시 청성해야 한다. 우리는 무슨 실증과학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며, 이 과학은 사이비교이다. 우리는 자신 혹은 외계인의 기술이 얼마나 높은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수련의 전제하에서 기술을 공구로 대법은 진정한 과학임을 실증하고 있다. 우리는 이 형식을 빌어 수련하고 중생을 구도하고 있으며, 대법의 원용불파를 실증하며 사존님의 무량한 지혜와 끝없는 법력을 찬송하고 있다.

사상 중에서의 실증과학의 교란에 대해 정념으로 제거해야 하며,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대법제자는 우주의 더욱 높은 진리를 장악한 수련인으로서 실증과학에 코를 꿰여 끌려가서는 안 된다. 실증과학의 이른바 객관 규율은 우리가 교란과 고험을 만났을 때 교란으로 형성될 수도 있다. 우리는 법공부를 많이 하고 무슨 일이든 ‘진,선.인’대법의 각도로부터 생각하며 사람의 관념을 전변하여 컴퓨터에 좌우지 당하고 지배되거나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 어떤 때 컴퓨터에 괴상야릇한 고장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내가 느끼건대 바로 이 방면의 법리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성된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든다면, 속인중의 기술과 설비가 현재까지 유전해 오면서 그 배후를 주재하고 주입한 생명은 모두 초조히 구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그 어떤 사물을 사용할 때가 바로 중생구도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은 주동적으로 대법에 동화됨으로 가히 직접 가져다 쓸 수 있고, 어떤 것은 진상을 알려 주고 선해 시킨 다음에야 대법에 순응할 수 있으며, 우리가 직접 정리하여야만 이용할 수 있다. 어떤 것은 대법을 인정하지 않는데, 그를 도와 통제요소를 청리하여도 여전히 거부하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진상을 알려 소통한다는 데 대해 말한다면 실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의념으로 그와 소통할 수 있는데 사상 중에서 속인에게 진상을 알려 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것에게 법을 읽어 주어서는 안 되는데, 이것은 엄격한 구별이 있다.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자비롭게 매 하나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 어떤 일, 어떤 물건에 대해 함부로 결론을 내리면 모두 만회할 수 없는 국면을 가져오게 된다. 예를 든다면, 한 번은 내가 mp3 몇 개를 샀는데 그 중 한 개가 겉면이 아주 어지러워 바꾸려 하다가 결국엔 그런대로 남겨 두었다. 돌아온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 생명은 어린 사내애였는데 손뼉을 치고 퐁퐁 뛰면서 외치는 것이었다. “파룬따파 하오.” 아울러 나에게 연속 감사를 드리면서 내가 그를 선택한 데 대하여 감사해 하였다. 그런데 다른 하나는 당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태도 표시를 하지 않았다. 진상을 알려주어서야 인정을 하고 비로소 그도 “파룬따파 하오.”를 외쳤다. 세간에서의 표현으로는 바로 하나는 쓸 때 아주 순조로웠고, 하나는 쓸 때 아주 천천히 겨우 마음에 들게 되었다.

이러한 실례들은 적지 않은 동수들이 모두 겪어 봤다. 세간에서 표현되는 것이란 바로 설비, 계통이 어쩔 땐 좋다가도 어쩔 땐 나쁘고, 각종 고장 현상 등등이다. 처리할 때, 먼저 자신을 닦고 중생을 구하며 진상을 알려주고 인연을 선해하며 악을 깨끗이 소멸하면 손이 닿기만 해도 병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사실 관념을 전변시켜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분명히 알고 우주 정법이 무엇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면, 우리는 더 자비롭게 중생을 구도할 수 있고 더더욱 ‘신통’해 질 수 있어 실증과학의 틀에 구속되지 않을 수 있다.

또 일부 생각이 있는데, 션윈으로부터 깨달은 것이다. 션윈을 성립하기 전후의 효과에 대해 여러분도 모두 보았고 걷는 길도 보았는데, 음악 무용 미술 등등이 모두 귀정되고 있다. 악단의 지휘는 무용배우의 운율을 보며 지휘할 것을 요구하면서 연주하는 데만 몰두하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 전문적인 서비스 무대를 꾸려 대륙의 광대한 수련생을 직면하게 된 이상, 그럼 가장 좋기는 전문화의 길을 걷는 것이다. 바로 하나의 전문 서비스 자문 회사와 마찬가지로 정체적인 업무계획이 있어야 한다. 제품에는 정위(定位)가 있어야 하고 설계가 있어야 하며 통일된 계획적 안배가 있어야 하듯이 제한된 인원과 수많은 자원이 합리적으로 이용되어야지 자기 물건만 수습하는 데 몰두하라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든다면, 사람을 구하는 대 무대는 대륙에 있고, 현재 자료점이 곳곳에 피어난 상황에서 예전에 기술을 배운 적이 없거나 기술을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수많은 수련생들이 점차적으로 자료점 임무를 감당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이런 수련생들을 배려하여 그들에게 쉽게 배울 수 있는 과정과 환경을 마련해 주겠는가는 아마도 이번 ‘기술무대’의 중요한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니겠는가?

전문화한 조직 협조, 전문화한 공예제작, 작품만이 비로소 널리 접수될 수 있고 비로소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틸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여러 사람의 힘과 지혜를 모아 논단을 더 훌륭히 꾸려 우리의 서약을 실현하자. 우리가 실증하는 것은 대법이고 도와주는 것은 동수이며 구도하는 것은 중생이다!

일부 감상으로서 누락을 피하기 어려우므로 삼가 지적을 바란다.

주 : 천지행 기술 논단 사이트 주소는 http://www.tiandixing.org 이다. 독자들은 명혜 홈페이지의 우호연접에서 찾을 수 있다.

문장발표 : 2009년 1월 1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9/1/19/1937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