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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실증 중에서 심성제고

글 / 허베이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2월 23일] 나와 몇 산구에 있는 수련생은 모두 97년 혹은 98년에 법을 얻은 노제자이다. 이 몇 년 동안의 수련과정을 회고해보면, 중공악당 장씨와 뤄씨 사악집단의 파룬궁에 대한 장장 9년 넘는 잔혹한 박해를 경험한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법학습을 통하여 부단히 심성을 제고하면서, 우리는 걸어 나와 대법을 실증하고 사악을 폭로하고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정념정행 중에서 비바람을 이겨내고 오늘까지 걷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의 진정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서 짊어진 책임이 중하고, 조사정법 하여 구도중생 하는 역사적 사명이 위대하고 신성한 것임을 깨달았다. 아래에 우리는 사부님과 동수들께 우리의 수련정황을 회보하려 한다.

갑 수련생은 60세인데 조그마한 영업을 벌이고 생활용품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며 늘 차를 몰고 각 촌의 길거리와 골목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홍법하고 진상을 알리는 데 아주 편리한 것이다. 매번 차를 몰고 나갈 때면 언제나 많은 진상자료와 VCD를 지니고 가는데, 어디에 가면 어디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였다. 진상자료나 VCD를 넣은 비닐주머니를 사과나무, 자두나무, 감나무에 걸어놓은 것이 아주 눈에 띄었다. 돌아올 때 보게 되면 이미 연분 있는 사람이 가져간 뒤였다. 그녀는 “이때면 나는 아주 기뻐요. 또 중생이 구도되어서요.”라고 말했다. 밤에도 어떤 때에는 진상스티커에 “파룬따파하오!” “천멸중공, 퇴당단대보평안!” 등 표어를 써서 동수 을과 함께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붙였다. 안전을 위하여 우리는 교류를 하고, 자기 마을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주변의 마을과 인접한 현에 가서도 붙였다. 어떤 때에는 또 마크 펜으로 직접 벽이나 전봇대에 쓰기도 하였다. 진상자료를 붉은 종이로 싼 겉면에는 “복이 왔어요.”라고 썼는데 보기도 좋고 길하게 보여 중생들이 가지려 하였다. 이러한 것은 모두 진감 작용을 하였다.

을 수련생은 60여세인데 밤이면 온 식구(모두 동수)가 나선다. 매번 모두 아내가 집에서 발정념하고, 아들이 농업용 삼륜차를 몰아 그와 며느리 그리고 갑 수련생이 각 촌의 집마다 진상자료와 VCD를 배포하고 진상표어를 붙이는데, 배합이 말없이 잘되었다. 어느 한번은 밤 11시가 되어 집에 돌아갈 때 향정부의 입구 등불이 아주 밝게 켜져 있었다. 그는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은데, 사부님이 바로 옆에 계신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잽싸게 진상스티커를 문어귀에 붙여 놓아 정말로 사악을 놀라게 하는 작용을 일으켰다. 동수의 말에 의하면, 이 일로 파출소에서 촌에 내려가 조사를 했지만 결과는 아무 성과 없이 내버려 두게 되었다.

병 수련생은 수공예로 살아가는데, 직업의 조건을 이용하여 늘 경로당 노인이나 고객, 촌간부들한테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하고 있다. 동수들의 부단한 진상 알리기와 3퇴를 권함에 따라 그들 촌의 환경은 비교적 느슨해졌으며 촌간부들이 그들을 보호하여 줄 수 있는 정도로 되었다. 파출소에서 여러 차례 촌에 내려가 소란을 피우고 사람을 잡으려 하였으나 모두 촌간부들에 의하여 저지되었다. 촌간부는 “당신들이 사람을 잡으려면 직접 가서 잡도록 하라. 우리는 지금 누가 파룬궁인지 모른다. 단 파룬궁은 모두 좋은 사람임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나쁜 일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경찰들은 풀이 죽어 돌아가곤 했다.

우리가 배포한 진상자료는 사방 2~30리에 퍼졌으며, 친척친우들을 방문할 때도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하고 진상자료를 비교적 먼 곳에 있는 현 시와 기타 성시에 배포하여 중생을 구도하고 있다.

나는 금년에 76세이다. 법을 얻기 전에는 온 몸에 각종 질병이었는데, 녹내장, 고혈압, 경추부위의 골질증식으로 인한 오십견의 통증이 있었고, 30여년의 심한 불면증이 있었으며 심장병이 늘 발작하여 사흘이 멀다 하게 병원에 입원하였다. 베이징의 큰 병원에 가서 전문의에게 보였으나 돈만 많이 잃었을 뿐, 병은 고쳐지지 않았다. 연공 후 얼마 되지 않아 이런 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약 한 알 먹지 않았다. 나로 하여금 아무 병 없이 온 몸이 가벼운 행복감을 체험하게 하였다. 사부님께서 내게 두 번째 생명을 준 데 대하여 감사드린다.

내가 득을 보고서 대법이 좋은 것을 기타 사람에게 알려주어 더 많은 사람이 능히 득을 보고 연분 있는 사람은 법을 얻게 하고 싶었다. 97년 어느 한번 혼자 비디오와 사부님의 설법비디오를 지니고 몇 십리 떨어진 산구에 가서 홍법하면서 친척집에 투숙하였다. 밤이면 농민들한테 사부님의 설법비디오를 들려주었다. 집안에 꽉 찬 사람들이 정신을 집중하여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마음은 아주 감동되었고 그들이 불법(佛法)을 들을 수 있음에 기뻐했다. 9일 사부님의 설법이 끝나서 연분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대법에 들어왔고, 어떤 이는 지금의 조사정법에 나서서 구도중생 하는 대법제자로 되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대법을 실증하고 구도중생을 하라고 하신 것을 깨달았다. 이런 특수한 수련 과정 중에서 부단히 집착을 내려놓고 부단히 제고되고 승화할 것을 우리에게 바라시는데, 오직 어김없이 법의 요구대로 한다면 일체의 일체는 사부님께서 진작 우리에게 준비해 놓아 주신 것이다.

대법제자가 돈에 집착이 없으면 이미 돈과 재물을 아주 담담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적지 않은 동수들은 대법의 홍법과 구도중생 하는 데 많은 돈과 재물을 지불하였다. 나도 대법을 위하여 조그마한 돈을 지불하려 하였다. 산구의 농민들은 생활이 비교적 빈곤하였는데, 나는 그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월급이 있어 조건상 그들보다 부유하다 할 수 있으니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돈을 내어 해결하였는데, 돈이 많고 적음에서가 아니라 관건은 그 하나의 마음인 것이다. 자그마한 홍법과 진상 알리기 마크 펜이나 진상 스티커, 색종이를 사도 모두 내가 지불하였다. 이 몇 년간 진상자료를 전함에 있어서 그들이 현성으로 올라와 일을 보고 나서 지니고 가는 외에 모두 내가 직접 전달하였다. 그들이 더 많이 법학습을 하고 법을 잘 학습하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3가지 일’을 더 잘하게 하기 위하여 나는 사부님의 《호주수련생에 대한 설법》비디오를 그들에게 사주었다. 오직 마음을 써서 법학습을 해야 만이 청성하고 이지적으로 침착하게 자신의 정법수련의 길을 바르게 잘 걸어갈 수 있는 것이며, 사전(史前)의 큰 서약 구도중생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9년 이래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매번 자료를 전하여 갈 때, 모두 순리롭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대법의 신기함이며 대법의 위력인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일대일로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할 때, 속인을 마주하고 입을 열수가 없었는데, 무서운 마음이 심하였고 언제나 앞뒤를 재면서 정념이 부족하였다. 진상을 알지 못하는 세인이 신고하여 자녀들의 사업에 영향을 받을까봐 두려워하였다. 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의 심태, 경지로 중생을 구도할 수 없었으니 효과도 이상적이지 못하였다. 나도 대법이 억울함을 뒤집어쓰게 되어 마음이 조급하였고 박해를 받고 있을 때, 나서서 바른 말을 하여 사부님의 청백함을 되찾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대법제자라 할 수 있는가? 그 원인을 파고 안을 향해 찾으니 내심의 깊은 곳에 하나의 아주 더러운 사심이 숨겨져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사부님을 뵐 면목이 없고 대법에 부끄러웠다. 법학습을 통하여 심성을 제고하고 두려운 마음을 버리고 다시 일대일로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하니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일대일로 진상을 알리는 범위는 현위, 향정부의 간부, 교사, 농민, 공인, 기사 등이다. 알리는 중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속인도 만났었는데, 듣기 거북한 말도 들었다. 한번은 한 법원 간부의 집에 찾아가서 알렸다. 그는 내가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당신이 더 말하면 나는 자료를 찢어버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대에서 제대한 간부로서 사당의 독해를 너무 심하게 받았었다. 나는 발정념으로 그의 배후에 있는 일체 대법과 대법제자를 파괴하는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제거하였다. 나는 자료는 대법제자가 아껴먹고 아껴 써서 모은 돈으로 구도중생 하는 것으로 절대 그가 훼손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당신이 찢으면 죄를 범하는 것이요.”라고 했으나, 그는 자료를 구겨서 땅에 버렸다. 나는 주어서 다시 폈다. 당시 나의 심정은 아주 평온하였고 화를 내지 않았으며 체면상 깎인다는 생각이 없었다. 사부님께서 “우리는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모순이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이 평소 늘 하나의 자비로운 마음과 하나의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와 마주쳐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충적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전법륜》) 라고 하셨다. 그 후에 그와 내가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사과하였다. 사실 나는 전에 《구평》, ‘풍우천지행’, ‘대법이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지다’ 등 VCD와 자료들을 그의 아내에게 건네주었고, 그의 아내와 딸은 이미 3퇴를 하였었다.

2007년에 한번은 내가 모 단위의 주로 ‘×교’를 틀어쥐고 있는 사무실의 주임의 집에 갔었는데, 본인은 있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문을 열었으나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며 돌아가라고 하였다. 내가 “나는 이렇게 나이가 많고 먼 곳에서 찾아왔어요(약 3리 길). 날씨도 이렇게 더운데, 당신은 나에게 들어와서 잠깐 쉬라고 하지 않고 계단에 앉아 있으라고 하는 건가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쑥스러웠는지 나를 들여놓았다. 나는 그녀에게 대법이 좋은 것을 알리고 ‘천안문분신자살사건’의 진상을 말해주었으며, “천멸중공, 퇴당단대보평안” 등을 말하였는데, 그녀는 듣고 아주 흥취가 있어 하였다. 어떤 때에는 중공이 너무 부패함도 말하였으나 3퇴에 대하여서는 태도표시를 하지 않았다. 돌아갈 때, 그녀에게 《구평》과 ‘풍우천지행’, ‘대법이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지다’ VCD와 ‘퇴당수첩’, 소책자(이름이 기억나지 않음) 그리고 몇 장의 《명혜주간》을 건네주었더니 그녀가 받았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일찍 돌아와 있어서 오늘 진상 알리기를 한 것을 더는 속일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화를 내면서 나에게 물었다. “당신이 모모네 집에 갔었소?” 나는 “네 갔어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또 말했다. “당신은 그 사람이 뭘 하는지 아오?” 나는 “알아요. 나는 바로 그를 구하려고 해요. 더는 그가 범죄를 범하지 않고 중생을 독해하지 않게 하려 구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말했다. “그가 당신을 위와 끊어버렸으니 후에는 더는 나가서 활동하지 마오. 지금 붙잡고 있소.” (지역 저녁신문의 시공안국 통지에 파룬궁수련생을 신고하면 상금 2천위안이라고 실렸다.) 나는 나의 위는 사부님이시다, 대법제자가 조사정법 하여 구도중생 하는 일은 가장 위대하고 신성한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정법(正法)은 반드시 성공하며 대법제자들은 반드시 원만할 것이다.” (《문안》)라고 하셨다. 남편은 “붙잡으려 해도 방법이 없었는데 집으로 찾아가다니, 이것은 스스로 덫에 걸려드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무서워하지 않는데 당신은 뭐가 겁나요. 그리고 그도 감히 그러지 못해요. 그는 보응 받는 것을 무서워해요. 그가 말한 대로 안 돼요. 사부님이 말씀하신대로 돼요.”라고 말했다. 그때 나의 마음은 조용하기 그지없었고 조그마한 두려움도 없었다. 남편은 내가 조금도 두려워 하는 표현이 없자 마음을 놓았으나 식사량이 줄었고 뭘 먹으려 하지 않았다. 후에 며칠 위를 치료하는 약을 먹고 나서 좋아졌다. 나는 사부님을 견정히 믿고 대법을 견정히 믿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하나의 부동(不動)은 만 가지 움직임(萬動)을 제어하는 것이다!” (《법륜대법 미국중부법회에서의 설법》)라고 하셨다. 그 사람을 구도하기 위하여 나는 올림픽 개막식전에 또 《천재인가 인화인가》라는 소책자와 ‘글을 숨긴 바위’, 《예언과 인생》, 《신운야회》등 VCD를 그의 집에 가져갔다. 과거 그들의 단위에서는 늘 대법을 모함하는 문예항목을 만들었고 복도에 대법을 모함하는 만화를 붙였다. 그가 진상을 알고 나서는 더 이상 이러한 정황이 나타나지 않았다.

수련 중에서 나와 가족은 모두 신기한 경험을 했다. 예를 들면,

1) 2007년 한번은 남편이 은행에 가서 금액을 지출하게 되었다. 2천위안을 지출하려고 했는데, 6천위안이 빠져나간 것을 즉각 발견하게 되었고, 영업원과의 교섭 끝에 다시 4천위안이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이전에는 돈이 빠져나가도 본 적이 없었는데, 사부님의 점화로 우리는 4천위안의 손실을 피할 수 있었다.

2) 금년 여름 나는 시에서 현성으로 돌아갈 때 차 한 대가 오기에 차 번호판과 기사를 아주 똑똑히 보고 손을 흔들었으나 차를 세우지 않았다. 두 번째 차가 나의 옆에 서서 차 번호판도 볼 사이도 없이 매표원이 모모현시로 간다기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차를 탔다. 가는 도중에 보니 처음 지나갔던 차가 뒤집혀 있었다. 사부님께서 보호하여 나를 타게 하지 않아 이번의 차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한 대법제자로서 스스로 느끼건대 ‘3가지 일’을 잘 하지 못하였으며 정진하는 대법제자와 비교하면 거리가 너무나 멀다. 나는 이후의 날들에 있어서 더욱 용맹정진 할 것을 결심하거니와 더욱 잘 할 것이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를 저버리지 않겠다.

문장발표 : 2008년 12월2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12/23/1920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