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책임과 박해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26일] 방금 밖에 산책하러 나갔다가 문제 하나를 깨우쳤는데, 이를 써내어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바로 책임과 박해라는 문제이다. 대법제자에게는 중생을 구도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또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에서 중공 사당에게 박해당할 수도 있다. 만약 자신을 책임과 박해 사이에 놓는다고 할 때, 나아가고자 하면 박해가 가로막고, 물러서려 하면 책임이 밀고 있어 진퇴양난에 처한 느낌을 받는다.

기왕 우리가 신(神)의 길을 가는 이상, 그럼 마땅히 신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신은 그 어떠한 외래적인 요소에 이끌리지 않으며, 신은 무슨 일을 하든 완전히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온 자비의 원래 소원으로 조건이 없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지출을 하며 그 어떠한 바램도 없다. 가령 신이 오늘 대륙의 이런 국면을 직면했다면,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간단한 하나의 염두, 즉 중생구도만 있을 것이다. 신은 박해가 있다고 하여 중생구도를 안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은 무조건적으로 무대가의 지불을 한다. 사부님은 우리를 구도하시고, 사부님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우리는 왜 사부님을 따라 배우지 않겠는가? 자비로운 흉금으로 중생을 대하고, 무조건 무대가로 중생을 구도하는 이런 일을 잘하는 이것만이 비로소 신의 자비로운 심태이다.

개인적으로 인식하건대, 가령 책임을 완수하는 심태로 중생구도하는 일을 대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피동적인 행위로서 요구에 의해서 하는 행위이므로 자기 원래 소원의 생각은 절대로 아닌 것이기에 일단 박해에 마주하면 쉽게 동요될 수 있다. 왜냐하면 문제를 보는 기점이 언제나 자기 몸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보는 기점을 전변할 수 있는 것이란, 오직 진정으로 중생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보며, 최대한도로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원용한다는 이런 기점이어야만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고, 박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으며, 후회없이 용감하게 중생을 구도할 수 있을 것이며, 사전대원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정념이 족하여 사악은 아마 당신을 감히 박해하지 못할 것이다.

문장발표 : 2008년 11월 2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11/26/190484.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