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진저우(锦州)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8일】 한 가지 작은 일을 말하려 한다. 그것은 진저우(锦州) 대법제자들이 잘 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륙 대법제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이다. 반드시 박해받고 있는 동수의 가족을 자비로 잘 대해야 한다! 그들 역시 중생이며 특히 난(難) 중에 있는 중생이다. 자비로 그들을 대해야 능히 그들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고, 옥중에 있는 동수의 가족의 마난(魔难)을 경감시킬 수 있으며 능히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2008년 봄, 진저우(锦州)의 사악들이 폭도가 되어 대법제자를 납치하는 중에, 한 산둥(山东)의 동수(이하 “a동수”)가 진저우(锦州)의 악경에게 불법으로 납치되여 진저우(锦州) 간수소에 감금되었다. 이 a수련생은 진저우(锦州) 동수들을 전혀 모른다. 다만 진저우(锦州) 동수들은 오직 한 산둥 수련생이 불법으로 진저우(锦州)에 납치되었다는 것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가 누구인지 집은 어디인지 모두 모르고 있었다. 진저우(锦州) 대법제자들은 본 지역의 대법제자들을 구출하면서 동시에 이 외지 수련생을 생각하고는 방법을 대어 a동수의 이름과 자세한 집주소를 알아 보았다. 전에 한 수련생이 감옥에 갇힌 수련생을 구출하기 위해 열차에 앉았는데, 사악들의 신분증 수색에 걸려 파룬궁 수련생이라는 것이 조사되었다. 그 수련생은 정념이 아주 충족하였다. 비록 열차에서 쫓기기는 했지만 박해는 받지 않았다. 반 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사당이 불법으로 진저우(锦州)의 많은 동수들을 판결한다고 하였는데, 그 가운데에는 a동수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다.
바로 판결하기 일주일 전에 우리는 끝내 a동수의 집주소와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현지 전화번호 안내에 문의한 결과 a동수의 집전화가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때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모두들 오직 직접 한번 다녀와야 한다고 하였다. 두 명의 여수련생이 주동적으로 다녀오겠다고 나섰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또 직장이 있었다. 그는 사장에게 휴가를 받은 후 당일 저녁으로 열차표를 사러 갔다. 그런데 매표원은 표가 이미 다 팔렸다고 하였다. 이때 그들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발정념으로 사부님께 요청하였다. 바로 몸을 돌려 가려고 하는데 매표원이 그들를 불러 세웠다. “두 사람이 금방 표를 물렸는데, 침대표로서 윗층의 것이예요. 살거예요?” 하고 물었다. 그녀들은 “주세요, 주세요!” 하고 대답했다. 당시 그들은 마음속으로 아래 침대표라도 모두 달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당일 저녁에 그들 둘은 산둥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들은 걸으면서 발정념을 하였다. 집에 있는 동수들도 정념으로 가지하여 주었다. 하루밤이 넘는 노정을 거쳐 산둥 모시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a동수의 집으로 가자면 아직도 200킬로미터나 더 가야 했다. 그녀 둘은 큰 버스를 탔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 내려서 또 택시를 탔는데, 수소문한 끝에 정오가 되어서야 끝내 a동수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산둥에 있는 a동수의 부인은 천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수련생을 집으로 맞이하였다. 오게된 상황을 듣고 그는 격동하여 눈물을 주르르 흘렸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노정이 너무 멀다보니 두 수련생은 목이 마르고 또 배가 고팠다. 물을 마시려고 하자 a동수의 부인은 몸을 일으켜 물을 가지러 다른 방으로 갔다. 그런데 좀 지나 그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수련생은 또다시 물을 좀 달라고 했다. 그는 금방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아 맞아요, 맞아요, 깜빡했어요.” 하고 말하면서 물을 가져왔다. 나중에 진저우(锦州)의 두 수련생은 알게 되었는데, a동수의 부인은 직장에서 점심을 먹으러 집에 온 것이었다. 그는 “당신들이 조금만 일찍 왔거나 조금만 늦게 왔어도 나를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나는 밥을 먹고 바로 출근하니까요.” 하고 말하였다. 우리는 사부님께 자비로서 그를 찾게 해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표시하였다.
a동수의 부인은 아직 수련하지 않지만, 그는 진저우(锦州) 대법제자들에게 아주 감사해 하였으며 역시 아주 강한 정념이 있었다. 그후 그의 남편을 구출하는 가운데 그는 우리와 아주 잘 배합하였다. 이미 몇 번 진저우(锦州)에 와서는 박해한 회사를 찾아갔으며, 매번 어느 곳으로 가든지 그는 모두 정면적으로 대법을 대하고 사악을 질책하였다. 특히 사당이 불법으로 판결할때 그의 사당 법정에서의 표현은 아주 좋았다. 그녀는 또 자기가 있는 현지의 한 명의 동수(이하 “b동수”)가 역시 불법으로 진저우(锦州)에서 납치되었는데, 역시 비밀리에 판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산둥으로 돌아간 후, b수련생이 집에 두고 간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딸이 우여곡절을 몇 번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b동수의 부친과 그의 이모를 찾았다. 그리고 그들을 배동하여 진저우(锦州)로 왔다. 그는 또 자기의 친구에게서 2000원의 돈을 빌려 b수련생을 위하여 소송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경제적 형편은 아주 곤란하였던 것이다. 진저우(锦州) 악경들에게 수색당할 때 이미 그의 집의 현금, 저금통장을 전부 빼앗겼었다. 남편이 납치된 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아이를 학교로 보내기 위하여 부득불 돈벌이 나온 것이었다. 매월 겨우 500원의 수입이었다. 월급이 나오지 않을 때에는 그 500원 마저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원망하는 말이 없이 “진정우(锦州) 대법제자들은 나의 남편을 잘 알지도 못하는데, 마치 친인처럼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있으니 나는 부인으로서 더욱 마땅히 잘해야 할 것이고, 대법제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들이다.” 라고 말하였다.
남편을 구하기 위하여 지난 달 중순에 그는 또다시 진저우(锦州)로 왔다. 올때 b동수의 이모와 한 명의 산둥 동수(이하 “c동수”)도 함께 왔다. 그는 c동수로 하여금 진저우(锦州) 동수들과 서로 협력하여 구출한 체험을 교류하게 하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c수련생은 도리어 진저우(锦州) 열차에서 두 명의 속인과 다투기 시작했는데 아주 격렬하였다. 진저우(锦州) 동수들과의 교류에서 c수련생은 박해받는 동수의 가족에 대해 선하지 않다고 무의식중에 말하였는데, 당시 우리 진저우(锦州) 동수들은 알아차리고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어서 일어난 일은 도리어 우리들에게 이 문장을 쓸 필요가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b동수의 이모는 진저우(锦州) 감옥에서 b수련생을 만난 후 바로 c동수와 함께 집으로 갔다. a동수의 부인은 남아서 계속 진저우(锦州) 사악들이 빼앗아 간 돈과 물건을 찾아오려고 노력하였다. 어느 날 사악들이 즉시 그의 남편 a수련생을 진저우(锦州) 감옥으로 옮기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 간수소로 가게 되면 혹시 남편을 만날 수(그가 진저우(锦州)에 여러 번 왔어도 다만 재판이 있을 때에만 남편을 만났다)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진저우(锦州) 동수들은 즉시 그를 배동하여 간수소로 갔다. 간수소에 가서 물어본 결과 남편을 금방 끌고 갔다고 하였다. 그들은 즉시 택시를 불러 감옥으로 향해 쫓아갔다. 이때 a동수의 부인은 더이상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실성한 사람처럼 통곡하였다. 택시기사가 단도진입적으로 너무 어리석다고 말하였다. 그와 함께 배동한 수련생은 그에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당신의 몸을 잘 돌보아야 해요.” 라고 했다. 이때 그는 한편으로 울면서 한편으로 토로하였는데, 그녀의 말투가 산둥 사투리라 기사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그와 접촉을 많이 한 동수들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는 “나의 남편을 진저우(锦州) 경찰들이 불법으로 납치해 가면서 나에게 그 어떤 수속이나 절차도 없었다. 당시 나는 집에 없었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감각으로 궁지에 빠졌었다. 아주 긴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신변에서 우리 모녀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나 역시 현지의 동수들을 찾지 못하였다. 나는 어디에 가서 남편을 찾을 수 있는지! 우리 모녀는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나는 처음에 남편이 집을 나가 우리를 버리고 갔다고 원망했다. 우리집은 원래 작은 가게를 꾸렸었다. 그러나 단번에 진저우(锦州) 경찰들에게 돈과 모든 것을 빼앗겼다. 자금을 돌릴 수 없어 그 가게는 할 수 없이 문을 닫게 되었다. 나는 매일 남편이 생각났다. 남편은 어디에 있는지? 나는 어떻게 하면 당신을 찾을 수 있는지? 나중에 나는 혼자 몸으로 진저우(锦州)에 갔었다. 사람과 장소가 낯설어 의탁할 곳이란 오직 경찰을 찾아가는 것 뿐이었다. 그들은 나의 남편이 간수소에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나는 어디로 가든지 남편을 만날 수가 없었다. 며칠 지나 하는 수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떠나기 전에 아이에게 돈을 조금밖에 남겨놓지 않아 아이는 이미 돈이 떨어져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였다고 하였는데, 나는 한동안 마음이 매우 고통스러웠다. 고통속에서 나는 부득불 일하러 갈 수밖에 없었다. 매월 다만 5백원의 수입으로 딸이 학교 다니는데 들여야 했고, 우리 모녀는 또 밥을 먹어야 했었다! 하늘이여! 나는 어쩌면 좋을지? 어느 날 나는 갑자기 남편이 늘 말하던 한마디 ‘사부님을 믿어야 한다. 사부님을 믿어야 한다.’는 구절이 생각났다. 나는 나도 당신의 사부님에게 청을 들여 보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이선생님(李大师) 나를 도와 주세요’ 하고 청을 드렸다.” “갑자기 어느 하루, 진저우(锦州)에서 두 명의 사람이 왔다. 바로 나를 도와 남편을 찾아준 사람들이 온 것이었다. 보아하니 그들은 얼마나 선량한지 바로 친인이 온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뒤이어 나는 진저우(锦州)로 왔다. 진저우(锦州) 대법제자들은 나를 마치 친인처럼 대하였다. 거기에서 나는 그들의 선량한 마음에 감동되었다. 그들과 나는 친척도 아니고 연고도 없으며, 그들도 모두 집이 있고 가정이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안전을 내려놓고 나를 찾아왔다. 이때 나는 알았는데, 오직 사부님께서 위대하시기에 이렇게 훌륭한 좋은 제자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나의 마음은 완전히 변하였다. 나는 다시는 남편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그도 무사(無私)의 사람이며, 그도 세상의 사람들과 친척도 아니고 연고도 없는데 이렇게 큰 위험을 무릅쓰고 진상하여 중생을 구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진저우(锦州) 대법제자들은 자비롭고 선량한 마당(场)중에 견강하여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걸어나와 대법제자들과 배합하여 박해를 반대하고자 한다!
현재 a동수의 부인은 이미 고향으로 갔다. 사부님의 가지와 대법제자의 홍대한 자비가 능히 그들 모녀들이 간고한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반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우리는 다시 대륙에서 집에 있는 동수들은 반드시 불법으로 납치된 동수들의 가족에게 많은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향하여 진상을 하여 그들로 하여금 온화한 대법제자들의 자비로운 감수를 받게끔 해야 하며, 그들로 하여금 원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그들에 대해 말할 때 태도가 딱딱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그들의 고충(苦衷)을 이해해주어야 한다. 특히 매 명절마다 선물이 크고 자고를 떠나 방문하는 것은 우리들의 할 일이다. 나의 기억에 의하면, 2007년 음력 그믐이 되기 며칠 전에, 우리 시(市)의 집에 있는 동수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본 시(외에 한 개 현을 합하여)에서 불법으로 납치된 대법제자들의 명단을 통계하여 분조로 나누어 그들의 가족을 방문했었다. 가족들은 아주 감동하였으며, 대법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으로 크게 좋아졌고 그들의 정의감 역시 따라서 승화된 것을 감각할 수 있었다.
금년에 사당은 올림픽을 이용하여 마음대로 대법제자를 납치하고, 또 수 만 명에 달하는 동수들이 소굴에 감금되었다. 우리는 발정념으로 그들에게 가지하는 동시에 그들의 가족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가족중에 역시 수련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지만, 그러나 필경은 차지하는 비율이 크지 않으며 아직도 많은 친척들과 연관된다. 이 역시 거대한 군체이다. 많은 중생들은 급히 우리가 가서 구도해 주기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들은 서로 보충하면서 정체를 원융시키고 자신을 내려놓고 세 가지 일을 잘하며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수련생을 구출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부족한 곳은 지적을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11월 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8/11/8/18940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