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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정념의 주견(主見)을 느슨히 하지 말아야

—— 동수의 ‘꿈에 집착하지 말자’란 문장을 읽은 감상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11일】 명혜망에서 동수의 ‘꿈에 집착하지 말자’란 문장을 보고, 나는 깊은 감동과 체득이 있었다. 동수의 상황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일찍이 아주 장기간 꿈의 점화에 집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엄중할 때는 심지어 꿈에 의지할 때도 있었다. 특히 수련 중에서 한 사건이 발생하여 만약 잠시 확정할 수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면 종종 마음속으로 꿈에서 점화해 주길 기대했다. 꿈을 꾼 후 다시 생각해 볼 때 점화인지? 아니면 교란인지? 어떤 때는 정말로 정확히 장악하기 힘들었다. 엄중할 때에는 잠이 들기만 하면 바로 꿈속에 빠져 들어갔다. 자신이 생각한 것과 한 일에 따라 꿈속 풍경도 수시로 변화무상했다. 그리하여 나는 부득불 늘 자신에게 “꿈에 따라 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하면 “자심생마”의 액운과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다고 일깨워 주었다. 그 한 단락 시간 법공부, 연공을 막론하고 또 법을 실증하는 일에서도 모두 꿈이란 이런 형식의 교란이 아주 커서 심신이 지쳤으며 자신은 이 때문에 큰 고민에 빠졌다.

주위의 동수들과 교류하면서 토론해보니 이 문제에서 그들은 모두 나처럼 엄중하지 않았다. 나는 진정 이런 교란에서 걸어나오려면 꿈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밖에 그 무슨 다른 방도는 없었다. 왜냐하면 “법은 능히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기” 때문에 사부님의 부동한 시기 설법을 공부함을 통해 지금 나는 끝내 이미 오래된 이런 곤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기서 나는 문장을 쓴 동수와 자신의 이 방면의 체험을 교류하고자 한다.

이러한 곤혹에 대하여 나는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반드시 자신의 주의식을 강화하고 “진정한 나”와 “가짜 나”를 분별하는 것임을 체험했다. 사존의 설법 중에서 나는 수련 중에서 어떠한 시기에도 우리는 늘 절대 자신의 주의식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3가지 일을 잘하고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려면 마땅히 끊임없이 법속에서 주의식을 강화할 것이 필요하며 각종 좋지 않은 염두, 업력 및 사상 관념을 제거하고 “가짜 나”를 분별하고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금년 올림픽 기간, 사당의 초목개병(草木皆兵)은 크고 작은에서도 불시에 들려오는 이따금씩 처량하고 날카롭게 귀를 찌르는 경보 소리가 들려왔다. 일시에 검은 구름이 도시를 압도하면서 붉은 마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사당은 올림픽을 빌어 계속 파룬궁을 박해하고 탄압했다. 각 지역의 공기 속에도 층층마다 사악의 요소가 가득했다. 당시 나는 자신이 사악들이 모두 중점적으로 주시하는 인물로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바로 전체 올림픽 기간이 사당의 소위 ‘민감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아울러 개막식 날은 더욱 그것들의 ‘민감한 시기’가 ‘민감일’로 되어 환경이 평소에 비해 긴장했다. 때문에 우선 바람을 피하고 보자는 것도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개막식 전날 밤, 잠이 든 후 단번에 꿈에서 자신이 진상하고 있을 때 악인의 신고로 간수소 대문으로 들어갔다. 그 이튿날 마침 사당은 올림픽 개막식을 했다. 꿈에서 깨어난 후 나는 생각했다. 이는 도대체 나더러 중지하라고 점화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공간의 교란인가? 최근 집 발코니에서, 화장실 등 천정에서도 자주 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바로 자신에게 그 어떤 누락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수련 중에서 또 어디에 누락 이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안으로 찾는 한편 법으로 가늠하여 자신의 언행을 바로잡았다. 반나절을 찾았음에도 확실한 실마리가 없었다. 이때 나의 내심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한 것을 발견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일할 때는 정념의 주견이 있어야 한다.”(『뉴질랜드법회설법』)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나는 이전에 ‘명혜망’에서 말한 것처럼 중생구도는 민감한 날이 없으며, 이 때문에 사람을 구도하는 것은 절대 중지해선 안 되고 이 일체는 모두 가상과 교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이 방면에 관련된 설법을 일찍이 우리에게 제시하셨다. 기억에 따르면 전에 어떤 수련생은 꿈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사부님의 점화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곤혹해하고 있을 때, 사부님께서 “사상 중에서 사상업력이나 혹은 기타 관념 등 당신이 잠을 잘 때 반영되어온 각종의 것들은 모두 다 主意識(주이스)의 행위가 아니며 그것들은 모두 신경 쓰지 말라.”(『캐나다법회설법』)라고 말씀하셨다.

법에 대조하고 가늠하면서 명백해졌을 때 마음이 밝아졌다. 구세력의 각종 형식의 교란을 제거하고 주의식을 강화하여 정념으로 각종 관념, 업력 등으로 구성된 가상을 부정하고 없애 버려야만 바르고 순정하게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이리하여 나는 끊임없이 연속 발정념을 하여 자신에게 존재하는 이런 좋지 못한 물건 및 외래 교란을 철저히 청리했다. 낮이든 저녁이든,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려도 여전히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도하했다.

바로 이렇게 올림픽 개막하여 결속될 때까지 줄곧 각 가도, 도로 구간, 향진(乡镇), 작은 구역 등 모두 감시가 삼엄한 듯이 보였지만 나는 시종 사부님의 가르침과 법의 요구에 따라 예전과 마찬가지로 조리정연하게 계속해서 자신이 해야 할 3가지 일을 했다.

여기서 나는 무의식중에 수련생이 수련 중에 봉착한 많은 진짜같은 꿈속의 점화 혹은 관을 넘는 것을 부정했다. 사실 나 자신이 해이해지고 정진하지 못할 때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즉시 점화〔예를 들면 손에 게(蟹子)를 들고 밖에 나가 보내는데 “게를 보낸다(送蟹)”는 것으로 “해이하다(松懈)”는 것을 일깨워 나로 하여금 정진하게 한다.〕하셨다. 나는 이것은 모두 분별하기 힘들지 않다고 생각한다. 수련 노정에서 우리는 사존의 자비하신 가호와 점오 속에서 한걸음 한걸음씩 오늘 여기까지 왔다.

바로 이것을 생각할 때 이 방면의 관련 체험을 쓰고 싶었고 마음속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생각했지만 우물쭈물 하면서 쓰지 못했다. 바꾸어 생각해보니 아마 아직까지 다른 동수들이 꿈에 대한 집착 방면에서 나와 유사한 경험과 곤혹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작은 체험을 교류해 동수들에게 다소나마 참고와 도움을 주고자 한다.

여기서 나는 꿈에 대한 집착, 점화에 대한 집착은 법리에 대해 확실하지 못하고, 정념이 부족한 표현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근본상에서 일체를 법리상에서 출발하여 법을 스승으로 모시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해 무슨 일이든 모두 각종 점화에 의지한다면 설사 올바르게 했을지라도 그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이 법속에서 깨달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위덕은 또 어떻게 쌓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매 차례 마음을 닦고 제고할 기회를 아쉽게 잃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때문에 우리가 수련 중에서 시시각각 확고하게 법을 스승으로 삼고, 정념으로 자신을 주도하면서, 마음은 중생을 생각하며 우리 수련의 길을 명백하고 정정당당하게 걸어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기를 원한다.

작은 체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많은 지적을 부탁하며 공동으로 정진하고 제고합시다.

문장발표:2008년 1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8/11/11/189549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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