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6일] 최근 우리 지역의 몇몇 가정 자료점에 있는 프린터에 연속 끊임없이 문제가 나타나, 자료점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게 하였다. 이는 나로 하여금 하나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였는데 주변에 있는 일부 동수들과 여러 차례 교류 토론 하였지만 생각이 그다지 일치하지 못하였다. 오늘 그것을 써내니 동수들께서 공동으로 교류 토론에 참가해 주길 바란다.
이 몇 개 자료점은 비록 가정 형식이긴 하지만 모두 주변의 여러 동수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쓸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자료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범위가 넓어 현지의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일정한 작용을 일으켰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령 동수들이 언제나 이런 공급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면 이는 정체제고에 불리하고, 대법제자에 대한 정법 진행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이런 방식은 우리 지역 어떤 동수들의 마음속에 이미 일종 모식(模式)으로 되어 개변하려 하지 않는 것 같다. 만약 정말로 개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장차 우리 정체제고의 하나의 아주 커다란 장애로 될 것이다. 우리는 수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것으로는 수련을 대체하지 못한다. 그것은 다만 우리 수련의 한 방면일 뿐이다. 그런데 바로 어떤 수련생은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것을 수련의 주요 수단으로 여기고 자신이 정진하려고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을 찾아 간다. 나에게 빨리 책자를 준비해 달라, 나는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러 가야 한다. 책자를 다 배포하고는 마음 편히 집으로 돌아가고, 며칠이 지나면 또 한 번 온다.
몇 년 전에는 이렇게 해도 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토록 사악이 미쳐 날뛰는 시기에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아주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수련은 끊임없이 제고해야 하는 바, 우리는 한 계단, 한 계단씩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곤란을 보고 돌아서 가는 것은 수련인이 할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한다면 우리는 모두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이치를 알고 있다. 가령 누가 까닭 없이 당신에게 돈을 준다면 당신은 꼭 받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덕으로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이 늘 당신에게 편리를 제공해 줄 때 당신도 무언가와 바꾸어야 할 것이 아닌가? 어쩌면 어떤 수련생은 나도 돈을 지불했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도 더 많은 돈을 당신에게 지불할 테니 당신이 한번 해보라. 이렇게 하는 말이 그다지 완곡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완곡하면 이 한 층을 뚫을 수 없다. 돈을 냈다고 마음 편히 사심을 감출 수 있다고 여긴다. 우리는 자신을 자료 만드는 동수의 위치에 놓고 한번 생각해 보자. 수련생이 자료를 만들 때의 그런 신성한 수련상태를 돈을 주고 살 수 있겠는가? 이는 곧 사부님께서 돈으로 파룬을 살 수 없다고 말씀하신 법과 같은 이치이다. 기왕 돈이 있는 바에야 왜 자기 스스로 만들어 자신의 수련의 길을 걷지 않는가? 최소한 컴퓨터를 사면 날마다 우리 명혜사이트를 훑어보고, 주말이면 <<명혜주간>>을 볼 수 있는데, 그러면 더 이상 동수에게 손을 뻗쳐 수련생을 시끄럽게 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남을 배려하는 것도 우리가 닦아야 할 주요한 방면이 아닌가? 사실 많은 동수들은 겉으로 보기엔 아무 조건도 구비하지 못한 것 같지만 그에게 수련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사부님은 무엇이든 다 안배해 주셨다. 사부님은 우리의 마음만 보신다. 두려운 마음이 있다고? 두려운 마음이 있다면 더욱 마땅히 해야 할 것이다. 하는 과정에 두려운 마음을 닦아 버리고 자신의 세계를 원만시켜야 한다. 또 우리가 명혜망 홈페이지를 열 때 눈앞에 나타나는 그것은 무한히 넓고도 아름다운 무궁한 세계이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당신은 이 세계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수해 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가?
또 자료를 만드는 동수들은 우리가 동수들에게 많은 편리를 제공해 주는 것을 좋은 일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실은 바로 정반대이다. 왜냐하면 우리 수련인이 실천하고 있는 이치는 절대 사람 마음으로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쪽에서 편리를 제공해 주는 동시에 편리를 얻고 있는 수련생이 있게 된다. 이는 속인중의 서로 돕는 그런 형식이다. 수련인은 모두 반드시 무엇을 수련이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장차 매 왕이나 주의 세계에 반드시 있어야 할 일체를 남이 제공해 주는데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수련인에 의거하여 착실하게 수련해 낸 것이다.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수련생이 가져간 것은 당신이 제본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때엔 바깥 포장까지 다 한 자료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특수한 상황에서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일종의 방식으로 삼아 장기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은 쓸 수 없다. 관건은 사부님께서 우리 매 대법제자들에게 모두 수련 원만될 수 있는 길을 안배해 주셨다는 것이다. 당신은 동수에게 편리를 제공해 준 동시에 수련생이 자신의 길을 걸어 자신의 위덕을 건립하는 것을 저애하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자신의 수련제고에 있지 말아야 할 장애를 만든 것으로서 관건은 또한 정체적인 제고를 저애한 것이다.
나는 자료를 만드는 동수들이 하루 종일 이렇게 저렇게 바쁜 모양을 보게 되면 나 자신이 비록 진작에 이렇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동수의 이런 바쁜 상태를 줄여 주려고 어떤 때에는 따라서 같이 바삐 돕곤 하지만 근본적으로 문제해결을 얻지 못하였다. 이전에 명혜망에서도 이 방면에 대한 교류문장을 보았지만 그저 보는 데만 그쳐 버렸고, 어떻게 노력하여 이 문제를 돌파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최근에 와서 어떤 자료점에 나타난 있지 말아야 할 상태를 보고서야 문제의 엄중성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나는 사부님의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녹화를 몇 번 보고 나서, 나는 이미 특수상황 외에는 더는 어떠한 동수에게든 자료를 제공해 주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자료를 제공해 주지 않는 것이 주요 목적이 아니라 주요하게는 이런 방식으로 능력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길을 걸으려 하지 않는 그런 동수더러 자신의 길을 걷도록 격려하려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의 수련 환경과 상태가 더욱 훌륭한 개변을 얻도록 하려는데 있다. 또 어떤 수련생은 실로 스스로 자료를 만들 수 없으면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이런 일종 방식만 고수하지 말아야 한다. 직접 만나서 진상을 알려주는 것은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요구하신 것으로서 우리의 필수과목이며 많고 많은 사람 마음을 모두 이 대면해서 진상을 알려주는 과정에 닦아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말한다. 안된다. 당신이 자료를 공급하지 않으면 그들은 당분간 만들 수 없을 텐데 이는 진상자료 배포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동수여,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진상 자료를 배포하기 위해 자료를 배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수련은 끊임없이 제고해야 한다. 만약 우리의 수련이 제고를 얻지 못하면 자료를 아무리 많이 배포한다 해도 의의가 없는 것이며, 우리 자신도 수련해 내지 못하면서 또 누구를 구해줄 수 있겠는가? 오직 우리가 하는 일이 옳아야 일체 모두가 순조로울 것이고, 일체 모두는 사부님의 보호가 있게 되므로 무엇이든 영향 받지 않을 것이다. 또 어떤 수련생은 말한다. 그 수련생은 잘하지 못하니 내가 도와 주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참으로 그를 도와 주고 싶으면 도와주라. 하지만 반드시 자신의 수련이 영향 받지 않는 전제하에서 도와주어야만 하고 반드시 기점을 바로 놓아야 한다. 이건 자사적이 아니며, 이 역시 정체에 책임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도 정체중의 한 입자이므로 어느 입자라도 제고하지 못하면 모두 정체의 제고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한 쪽에서는 자료를 기다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기계를 수리하지 못하고 있고, 또 자료 만드는 수련생은 교란을 받아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 할 수 없으며, 발정념 할 때 손이 세워지지 않는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야 말로 사람을 근심스럽게 한다!
현 단계에서의 깨달음이므로 동수들께서 지적해 주기 바란다. 허스
문장발표: 2008년 11월 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11/6/1892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