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0월 26일】 지금 나는 동수의 부족함을 보게 될 때면 먼저 자신을 보는데, 자신에게 이 방면의 부족함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고 다시 자신의 마음을 잘 조절하고 불순물을 버리면서 순수한 심태로 수련생을 일깨워 주어 함께 정진한다. 내가 이런 부족함을 인식하고 없애기 위해 노력할 때, 동수도 내 앞에서 이런 집착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세 가지 일을 하는 동시에 우리의 많은 사람마음이 폭로되는데 어떤 것은 심지어 아주 깊은 곳에 숨어 있어 쉽게 발견하기 어려우며 자신마저도 의식하지 못하는 집착이다. 수련생은 거울로서 자신의 부족함을 비춰줄 수 있다. 사부님께서 몇몇 동수들에게 함께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도록 안배하신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나와 몇 분 동수들은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아서 그들의 몸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본다.
동수 a는 성격이 급해 말을 빨리 한다. 만일 동수들이 함께 일을 교류하려 하면 a는 늘 자신이 깨달은 법리를 앞질러 말하면서 늘 남의 말을 자르고는 확실하고 의심할 나위조차 없다는 어투로 말을 할 뿐더러 다른 사람의 다른 인식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동수 b는 결론 내리기를 좋아하고, 동수 c는 말투가 선하지 못하고 늘 남을 훈계하는 것 같아 듣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나는 선의적으로 동수들에게 여러 번 이런 문제를 제기했지만 모두 효과가 없었다. 나중에 나는 생각해 보았다. 수련생이 내 앞에서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은 나 역시 유사하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표면적으로 보면 동수들 앞에서 나의 표현은 아주 겸손하고 이런 집착이 없는 것 같다.
나중에 나는 자신의 언행에 주의를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동수들 앞에서 자신을 많이 억제할 수 있었으나 어떤 때는 이런 집착이 남김없이 폭로되었다. 이를테면 하나의 법리에 대한 인식에서 나는 늘 자신이 수련 중에서 깨달은 법리를 가족 동수에게 들려주는데 말하는 어투가 마치 내가 깨달은 법리는 바로 이런 의미라는 식으로 어투가 너무 단정적이어서 동수더러 나의 인식을 인정하라는 것 같았다. 사실 무의식중에 수련생을 내가 깨달은 이 층차에 국한시킨 것이다. 뿐만 아니라 늘 남의 말을 자르고는 자신을 드러내기에 급급했는데 마치 누구도 내 인식보다 높지 못한 것 같고, 내가 할 말만 다하면 그만이었으며, 다른 동수의 다른 인식을 참을성 있게 들으려 하지 않았다. 교류는 마땅히 누구나 모두 자신의 인식을 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어찌 내가 말하는 것만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인식은 들으려 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것은 자신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이미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무엇이 나쁜지 의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련인의 말은 에너지가 있다. 사람을 구하는 이 관건적인 시각에 한 마디 결론적인 말을 한다면 아마 이 생명을 심연 속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아주 많은 동수들은 수구에 주의하지 않으면서 화가 나기만 하면 무슨 말이든 함부로 한다. 이를테면 “이 사람은 마(魔)이다”, “이 사람은 바로 구할 수 없는 사람에 속한다”, “ 그는 단번에 전변될 수 없어!” 등등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 속인을 그 곳에 정해 놓아 그를 구도하는 어려움을 배가하는 것이 아닌가? 정법이 종결되지 않았다면, 그는 구도될 기회가 있을 터인데 어찌 사람마음을 버리지 못한 탓으로 법에 없는 말을 할 수 있는가?
자신을 돌이켜 보니, 생활 중에서 늘 결론 내리기를 좋아하면서 “당신은 곧 어떠어떠하다”, “그는 바로 이런 사람이다” 하는 등의 말을 한다. 아이들에 대해서도 화가 나기만 하면 아무 말이나 했다. 어떤 땐는 말을 끝내고 나서 말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가 입을 열어 말할 때 모두 연공인(煉功人)의 心性(씬씽)에 따라 말하고 시비를 일으키는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며 좋지 않은 말을 하지 않는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이 말을 마땅히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는 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가늠해야 한다. 마땅히 말해야 하는 것은 법으로 가늠하여 연공인의 心性(씬씽)표준에 부합되면 문제가 없다.”(『전법륜』)
내가 생각하건대 우리는 반드시 법의 요구에 따라야 하며, 수구를 잘하여 함부로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 외에 누가 근본을 보아낼 수 있겠는가?
어떤 수련생은 남의 결점과 잘못을 지적할 때 말투가 선량하지 못하고 원망, 비난을 지니는데, 어떤 때는 말을 할수록 화를 낸다. 분명 수련생을 도우려 한 일인데 결과는 선량하지 못한 말투 때문에 수련생을 설득하지 못할뿐더러 동수간에 간격을 조성한다. 우리는 ‘진, 선, 인’을 수련한다. 만약 말투가 선하지 못하다면 마음도 선량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어느 한 번 내가 가족 동수에게 부족을 지적할 때, 가족 수련생은 “당신이 하는 말투는 c동수와 똑같아요”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방금 한 말을 생각해 보니 말투가 정말 똑같았다. 나는 곧바로 안을 향해 찾아보았다. 왜 동수에게 부족함을 알려줄 때 말투가 선량하지 못할까? 자신에게 사심이 있기 때문이다. 동수의 부족함(혹은 동수의 방법이 자신에게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이 자신의 사람마음을 충격했던 것이다. 이 집착은 많은 사람마음을 숨겨 놓았다. 가족 정에 대한 집착, 질투심, 쟁투심 등이 그 안에 있었다. 사실 남을 비난할 때면 자신이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만약 완전히 자신을 잊고 완전히 남을 배려하고 사심이 없다면 말투는 이렇듯 선량하지 못할 리가 없으며 동수도 기쁘게 접수할 것이다.
내게는 또 하나의 체험이 있다. 사부님께서는 일체 일을 이용해 우리의 집착심을 버리게 하신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발생하든 절대 일의 표상에 미혹되지 말아야 하고 일 속에 빠지지 말아야 하며, 누가 옳고 그른가를 찾고 그 속에 들어가 한데 엉키지 말아야 하며 반드시 뛰쳐나와야 한다. 먼저 생각할 것은 이 일이 나의 어떤 마음을 향해 온 것일까, 나의 무슨 마음을 버리라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매 한 차례 제고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문장발표 : 2008년 10월 2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8/10/26/1884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