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요녕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0월 29일]
나는 법공부를 마치고 <<명혜주간>> 제354회에 오른 동수의 문장, <<책임>>을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우리 지역의 많은 동수들의 수련상태가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자신은 늘 동수들과 교류하거나 써 내려고 하였지만 늘 장애가 있는 것 같아 하지 않고 있다가 동수의 이 문장을 보게 되자 단번에 의식하게 되었다. 바로 자신이 정법시기 우리 대법제자가 짊어진 책임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는 법을 실증하는 일에서, 조금 큰 일이거나 작은 일이 있을 때면, 동수 사이에서는 서로 비난하고 서로 시비를 캐는 말을 늘 듣게 되고, 진심으로 안을 향해 찾아 정체적으로 협조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모두 안을 향해 찾았으며, 어떠어떠한 마음을 찾았다고 말한다. 도리대로 말한다면 모두 안으로 찾았다면 찾을수록 협조가 더 잘 되고 찾을수록 정진했을 터인데 오히려 상황은 정반대로 찾을수록 일이 더 많아지고 찾을수록 흩어졌고, 교류도 더욱 적어졌다.
개인 씬씽에서, 바람에 풀대가 흔들리거나 씬씽관을 넘지 못할 때면, 마음이 들뜨거나 어떤 수련생은 놀랍게도 속인의 장소에 가서 마작을 하면서 심태를 조절하고 마음을 평형시키려 하는데, 아직도 세 가지 일을 해야 하고, 아직도 그렇게 많은 중생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진상 자료 배포에서 어떤 향 진의 수련생은 진상 자료를 예전처럼 마을마다 집집마다에 놓는 것이 아니라 길가에 쌓아 놓거나 공용 화장실 곁에 놓아둔다. 어느 수련생이 보고나서 이런 방법이 타당하지 않다고 제기하면 그 수련생은 이유를 대며 당당히 말한다. “법은 인연있는 사람을 구도하는데 인연있는 사람은 스스로 와서 주어 갈 것이고 인연없는 사람은 그의 집에 보내준다 해도 보지 않을 것이다.” 정체적으로 수련생을 구하기 위한 발정념에서 어떤 수련생은 장사하여 돈을 벌거나 추수에만 바삐 보내느라 아주 적게 정념을 내보내거나 잊어 버린다.
정법은 이미 막마지 단계에 이르렀고, 전세계 동수들은 모두 각자의 환경과 사업장에서, 그리고 자신의 특장을 운용하여 조사정법하면서 중생구도를 다그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있는 이 곳의 동수들 중 몇몇은 아직도 정체상의 협조를 모르고 있으므로 각자 자기 의견만을 고집하고 있다. 아직도 다그쳐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며 시간을 마작에 헛되이 낭비하고 있다. 아직도 진상자료와 동수의 구원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른다. 바른대로 말해서 바로 우리의 책임, 즉 법을 위해, 우주를 위해, 중생을 위해, 미래를 위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책임을 느끼지 못한 탓으로 대도태가 만약 지금 발생하여 대량의 중생들이 우리 앞에서 도태된다고 할 때, 그 때의 우리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 마음 또한 어떤 기분이겠는가?
만약 우리가 참으로 자신이 짊어진 책임을 느낄 수 있다면, 자각적으로 법을 실증할 것이고, 법을 수호할 것이며, 주동적으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중생구도를 다그칠 것이다. 바로 수련생이 문장 마지막에 쓴 것과 같이, “참답게 책임지는 것은 나의 경계의 승화이고, 씬씽이 제고된 견증이며, 또한 끝없는 사부님 은혜와 위대한 불법의 끝없는 법력의 진실한 체현이다.” 우리 사존의 자비로운 보살핌 아래 우리가 짊어진 책임을 소중이 여기고 이지적이고 지혜롭게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우리에 대한 사존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자.
문장발표 : 2008년 10월 2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10/29/1886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