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일언
[명혜망 2008년 10월 4일] 최근 “제5회 대륙 서면교류대회 원고모집”을 하고 있으며, 많은 동수들이 원고를 쓰는 문제에 대하여 교류하고 있다. 어떤 수련생은 참여하는데 그 중점을 두자라고 제기한다. 내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확실히 마치 그저 간단하게 쓴 것에 그친 것 같은 그런 한 패의 문장들이 나타났다. 종종 일부 동수들의 문장에서 본 것이 생각나는데, 전문적으로 나열한 것이란 모두 개인의 좋지 못한 언행이거나 아니면 현지 동수의 일부 좋지 못한 상태를 기술한 것이었고, 문장을 종결할 때에 또 제기하였는데, 이 문장을 쓴 목적은 자신의 좋지 못한 물건을 폭로하기 위해서이며 금후 잘하기 위해 결심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나는, 이것은 정념이 부족한 것의 체현이라고 여긴다.
개인적으로 인식하건대, 대법제자가 관점을 교류하는 문장, 법회 발언고 등등을 쓸 때에는 반드시 법을 위하고 남을 위하는 목적에서 나와야만 비로소 발표할 가치가(물론 여기에서 절대화나 극단으로 가는 것을 제창하는 것은 아니다)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법을 위하고, 수련생을 위하고, 중생을 위하는 기점에서 쓴 문장은 엄숙하고도 꼼곰하게 검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쓴 것이 대법의 어느 한 방면에서의 구체적인 체현을 실증했는가 실증하지 못했는가? 이를테면 대법의 무사(無私), 홍대(弘大), 자비, 사람 마음에 대한 정화작용 등등이다. 세인에게 진상을 똑똑히 말해 주었는가? 아울러 이런 것을, 자신이 쓴 문장이 반드시 도달해야 할 요구로 삼을 수 있어야 하며, 그로부터 공력을 들여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만 참여하기 위해서 할 뿐이라면 실은 여전히 자아의 기점이 섞인 것이다. 나는 참여하였다. 나는 빠지지 않았다. 나는 시험지를 바쳤다… 그러나 참여 후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가? 법실증에 어떠한 정면적인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었는가? 중생이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어떠한 도움이 되었는가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앞에서 제기한 나열하기만 한 부족한 문장들이 있는데, 명혜망을 자신의 추잡과 부족한 곳을 폭로하는 장소로 여기고, 폭로하기만 하면 자신이 잘 수련할 수 있고, 마난도 감소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녔는데, 보건대는 아주 훌륭한 것 같으나 더욱 높은 표준으로 볼 때에는 틀린 것이다. 다만 자신의 나쁜 점만 써내고 법공부를 통해 어떻게 좋게 변했다는 것은 오히려 쓰지 않았다. 잘 하겠다는 결심만 쓰고, 대법수련을 통해 좋지 못한 것을 내려 놓아 경지가 승화되었다는 실제적인 것은 오히려 쓰지 않았다. 이는 법을 실증한 것이 아니다. 속인은 법을 배우지 않고 사람만 본다. 속인이 이런 문장을 본다면 당신들 대법제자가 어떻다고 여길 것인가? 그곳에서 대법의 아름다움, 고상함과 대법에 대한 동경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사실, 자사자아(自私自我)의 목적에서 나온 언행은 상황의 복잡성을 가중시키는 것을 피하기 어려우며,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생각밖의 번거로움을 조성시켜줄 수 있다. 씬씽(心性) 경지의 제고야말로 비로소 공이 자랄 수 있는 전제이다. 번거로움을 떨쳐버릴 생각만 하면서 법에서 법을 인식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데 속인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과도 흡사하여, 누가 어느 방법이 영험하다고 말하면 그 방법대로 해보려 한다. 수련인은 마땅히 더욱 이성적이어야 하며 더욱 몸소 실속있게 수련[實修]해야 한다. 안으로 찾는다는 것은 좋지 못한 것을 폭로하여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려놓기 위한 것이며, 자신의 수련 경험을 통하여 대법이 사람을 구도한 효과를 실증하기 위한 것이다.
개인의 현 단계에서의 조그마한 인식이다. 동수들에게 삼가 참고로 드릴 뿐이다.
문장발표 : 2008년 10월 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10/4/187074.html